<와일드 테일즈> 너무 늦은 후기

겸목
2022-04-12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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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필름이다 상영 공지가 올라와서 화들짝 놀라 3월 상영회 후기 올립니다. 지난 상영회때 후기를 쓰겠다고 했던 것은 영화를 한 번 다시 보고 싶어서였는데, 결국 시간을 훌쩍 지나 희미해진 기억을 더듬으며 후기를 쓰게 되었네요. 아....그날 우리가 봤던 영화 <와일드 테일즈>(2015년)만큼 '빡치는 순간'은 아니지만.......그것보다 한 단계 낮은 레벨의 소심한 빡침을 스스로에게 느껴봅니다. 이러려고 그랬던 건 아닌데....인생이 맘대로 되지 않네요.

 

<와일드 테일즈는> 올해 필름이다의 새로운 기획에 따라 상영되었습니다. 둥글레-겸목(코메디), 띠우-기린(드라마), 청량리-뚜버기(B급영화)의 조별 선정작을 올해 상영하게 되는데, 코메디분야 둥글레와 저의 선정작품의 첫 상영작이 <와일드 테일즈>였습니다. 둥글레에게 처음 연락을 받았을 때는 그려려니 했는데, 막상 선정작업에 들어가니 쉽지 않더군요. 코메디영화 가운데 함께 볼 수 있는 우수작을 골라야하는데, 코메디영화의 특성상 B급으로 제작되어 웃고 넘기자는 작품이 많기 때문에 뭘 골라도 아쉽더군요. <행오버>나 <롱샷> 같은 영화는 흥행성 있는 최근작들이지만 굳이 같이 볼 필요가 있을까 싶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같은 명작은 너무 알려진 작품이라 신선미가 떨어지고, 그렇다고 짐캐리나 톰행크스가 나왔던 예전 코메디영화를 고를 수도, <결혼이야기>나 <매기스 플랜>류의 로맨틱코메디를 고르기도 마땅치 않아 보였습니다. 어떤 건 너무 더렵고, 어떤 건 너무 가볍고.....

 

그래서 의도치 않게 몇 편의 영화를 보게 되면서, 코메디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이거다!' 싶은 작품을 한눈에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제가 느낀 코메디영화의 정수는 '예상 밖의 좌충우돌'이었어요. 왜 그래야 하는데? 또는 개연성이 있나? 보통 스토리를 짤 때 기본적으로 고려하는 것들보다, 코메디감독들은 '일단 웃기자! 일단 예상을 벗어나자!!'라고 작정한 사람들 같았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에너지 넘치는 낙관주의자일 거라 느낌이 들더군요. '세상을 웃겨주겠어!' 이런 결의를 가진 사람들은 분명 낙관주의자들이겠죠. 

 

둥글레와 저의 고심어린 선정 가운데 첫 작품인 <와일드 테일즈>는 한국판에서는 '참을 수 없는 순간들'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데, 우리가 한 번쯤 겪었을 법한 '빡치는 순간'들을 코메디영화답게 '극대화'해서 보여줍니다. 개인적으로 이선균과 조진웅이 나왔던 <끝까지 간다>(2013년)가 생각나는 작품입니다. 이선균과 조진웅이 화장실 변기에 머리 박고, 무덤을 파헤치고, 저주지에 빠진 자동차에서 기어나와 혈투에 벌이듯, <와일드 테일즈>는 시작은 미약했으나 그 끝은 창대한 '분노의 질주'를 보여줍니다. 멀쩡히 주차한 자동차가 불법주차 스티커가 붙인 채 견인되거나, 도로에서 난폭운전하는 차량을 만나거나, 일하는 식당에서 집안의 원수를 만나게 되거나 했을 때, 한순간에 스트레스가 몰려오겠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적당히 분노와 짜증을 해소합니다. <와일드 테일즈>는 우리가 느끼는 분노와 짜증을 매가톤급의 스케일로 보여준다는 차이점만 있을 뿐입니다. 이 부분에서 문탁식구들은 왜 저렇게까지 폭력적인가? 저렇게 폭력적인 영화를 보는 게 바람직한가? 라고 거부감을 표현해주시기도 했어요. 저는 '허구'의 장치가 갖는 기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영화에서 뺑소니사건의 운전사를 갈아치우는 사건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지만, 현실에서도 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저런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집안의 원수를 실제로 죽여버리는 전개에 대해서는 그만큼의 '살의'를 가진 적이 있지 않았는가 떠올려보았습니다. 허구를 통한 반영과 반추는 그 나름의 기능을 갖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뱀파이어에 관한 아주 특별한 다큐멘터리>(2014년)는 영화를 고르다 보게 된 영화인데, 너무 좋았어요. 저예산의 독립영화라 화면이 매끄럽지 못한 아쉬운 점이 있지만, 상상력의 총량이란 게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작품입니다. 이후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는 크게 주목받게 되었다고 하네요. 시간 되시면 한 번 쓰윽 보셨으면 합니다. '어디 한 번 얼마나 좋은가 보자!'라고 각잡고 보면 실망할 수 있지만, 크게 기대하지 않고 보면 예상 밖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작품입니다. 그리고 한국영화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2020)도 김성오, 이미도, 서영희, 양동근의 코메디연기가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 작품도 큰 기대 없이 보셔야 재미를 느끼실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코메디영화의 안쓰러운 숙명 같은 데 느껴지네요. 웃음이라는 것은 예상 밖의 상황에서 오기 때문에 관객을 방심하게 만들어야 하고 그 가운데 폭소를 터뜨릴 시한폭탄도 준비해야 하고, 좋다는 소리를 듣기보다는 '별로다!'라는 평가를 받기 쉬운......이런 요상한 장르를 사랑하는 코메디감독들이라니..... 매력적인 사람들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둥글레와 겸목은 매력적인 감독들의 코메디영화를 두 편 더 선정해놓았으니 공지 올라가면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 보러 오세요. 

 

 

댓글 3
  • 2022-04-12 19:30

    분노의 다양성을 보았달까요

    끈질기고 집요한 계산적인 (비행기편) 분노, 용기없는? 이성적 (쥐약편) 분노, 어디로 튈지 한치앞을 모르는(추월편) 분노, 즉각적이고 직관적인(뺑소니편) 분노, 정의와 결합된(폭탄편) 분노,  진정될 수 있는 (결혼식편) 분노ᆢ

    (음ᆢ 나는 어떤 유형일까ᆢ)

    처음간 영화제 뭔가 긴장되기도 했지만 뒤에서 연이어 터지는 겸목샘 웃음소리에 더 재밌게 봤어요~~

  • 2022-04-13 07:12

    영화도 재밌었지만

    이 영화를 선정한 겸목-둥글레의 정신세계도 흥미로웠어요.

     

    많이 느끼는 거지만

    우리들은 다차원적으로 그룹핑이 되는 것 같아요.

    활동단위, 주된공부영역이 가장 메이저한 카테고리인데

    영화취향도 재밌는 그룹핑이 되더라구요.

     

    제 생각에 이런 영화는 (이런 자리가 아니라면) 절대 관심이 없었을 기린, 요요랑 함께 

    이 영화를 선정한 둥글레-겸목과 함께

    영화 보는 경험이 재밌었어요^^

  • 2022-04-13 20:17

    맞아요.. 혼자서라면 절대 고르지 않았을 영화였지만,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마침 <입보리행론> 인욕품을 읽고 있던 때여서 분노와 인욕,  타이밍이 좋았습니다. ㅎㅎ

    분노야말로 그동안 쌓은 선업과 공덕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니, 분노와 같은 번뇌에 실체없음을 직시하라고

    <입보리행론>의 저자 샨티데바는 인욕품에서 거듭거듭 설하고 있었는데,

    아, 놔~ 우리 영화의 주인공들은 만일 그것이 실제상황이었다면 사이코패스 레벨의 결정들을 내리고 실행하더군요.

    영화적 상상력이라는게, 참, 판타스틱한 것 같아요.

    얼마든지 있을 법한 상황들을 내놓고  예상도 못한 방식으로 풀어놓으니 말이에요.

    으~~ 다시 생각해도 끔찍하고 살벌한 장면이 많았지만 으~~ 뻔하지 않아서 곳곳에서 웃음이 터지는 영화였습니다.

    우리는 어떨 때 웃음을 터뜨리는가,  웃음은 긴장을 해소시키는가, 전혀 다른 종류의 긴장을 만드는가?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그 또한 이 영화의 영화적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산에 있어야 하는 때여서,  기린님과 띠우님이 고른 다음 상영작을 놓치게 되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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