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다 8월 장률의 <풍경> 후기

겸목
2023-10-2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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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필름이다 상영회를 통해 미아 한센 러브의 영화를 처음 보았다^^ 3회의 상영회 모두 좋았다. 그렇게 보게 된 장률의 영화도 '처음' 보는 작품들이었다. 그래서일까? 좋았다!! 언제부터인가 영화를 보러갈 때, 영화에 대한 소개나 정보 없이 극장에 들어가려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앉아 있다, 영상이 마구 침범해 들어오는 순간을 좋아한다. "아! 이런 얘기구나!!"라고 알아차려갈 때 짜릿함이 있다. 정보가 넘쳐 나서, 보지 않은 영화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는 척할 수 있는 시대라, 내가 생각해낸 방편이다.

 

장률 감독에 대해서는 '유명세'로만 알고 있다. 그리고 별로 호기심이 가지 않았다. 이런 '마음의 장벽'을 세우고, 장률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어서, 필름이다 상영회에서 본 장률의 영화들이 좋았다! <경주>, <두만강>, <풍경> 세 영화 모두 익히 보아왔던, 잘 만들어진 영화들과는 달라서 눈길이 가게 됐던 것 같다. 내가 본 장률의 영화는 프로의 작품이 아니라 영화과 학생이 고군분투(제작비, 장비, 스토리, 주제의식, 실험정신, 스타일 등등)하며 만들어내는 작품이란 '느낌'이 들어서 좋았다. 세련되지 않지만, 뭔가 할 말이 있구나, 전달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잘 전달되지 않는구나, 그런데 또 완전히 전달되지 않는 것도 아니라서, 감독과 관객이 '짐작'의 영역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있는 영화다. '이런 거 말하구 싶었나?' 얼핏 느껴지는데 그걸 분명히 말해버리면 그 의미가 아니게 되는 뉘앙스를 애매모호하고 미숙하게 표현돼서 절묘히 전달되었다는 '이해/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흔히 학생 작품에 '못 만들어서' '뭘 말하려고 하는지 진짜 잘 드러난다' 또는 '그걸 말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오히려 다른 게 잘 드러난다' 같은 칭찬인지 비판인지 애매모호한 평가들이 있다. 확실히 장률의 영화는 매끈하게 빠진 영화는 아니고, 의도적인지/의도하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서툰 솜씨'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그게 그리 나쁘게 보이지 않는 장점이 있다. 나에겐 그랬다.

 

<풍경>은 다큐영화이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의 생활을 담고 있다. 장률이 이주노동자들의 모습을 담는 장치는 '꿈'이다. 당신의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한국에 와서 돈 많이 벌어서 잘 살고 싶은 꿈도 있고, 지금 떨어져 사는 가족이 보고 싶어 꿈에 그들을 만난다는 꿈이야기도 있고, 공포와 악몽에 가까운 꿈이야기도 있고, 아내와 제주도를 여행한 꿈이야기도 있다. 특히 제주도 꿈이야기를 해준 사람은 한 번도 제주도에 가보지 못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제주도를 고향에 있는 아내와 같이 가고 싶다는 그의 꿈은 정말 '꿈 같다'. 두려움에 떠는 꿈, 외로움을 호소하는 꿈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 마음이 아팠다. 타지에서 불량한 노동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이 너무 잘 드러나서였다.

 

<풍경>은 다큐영화인데, 이례적으로 '상상'이 영상에 들어가 있다. 이주노동자들이 말하는 꿈의 내용을 '픽션'으로 연출해서 보여준다. 고향의 코끼리를 이야기한 사람의 꿈이야기 다음에 이어지는 코끼리화면은 관객으로부터 '저건 뭐지? 사실이냐 환상이야?' 헷갈리게 한다. 다큐가 담아야 할 것들은 '사실'인데, 그 '사실' 가운데에는 인물들의 환상이나 바람도 들어가야 한다고 장률 감독은 생각했던 것일까? 다큐의 장르적 약속을 깨는 듯한 연출이었는데, 나는 저건 또 왜 안 되나? 이런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상했다. '웰메이드' 영화가 아니기 때문에 이상한 '짬뽕' 같은 장면이 들어간다고 크게 문제될 것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고, 이런 게 '자유롭다'는 것이 아닐까 잠시 생각했다. 바람에 세 발 자전거가 움직이는 장면이 있는데, 영혼이 그 자전거를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던 것 같은데 너무 어설퍼서 스텝이 줄을 잡아서 끌고 있다는 확신을 줬다. 영화적으로는 어설펐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아릿해지고 이해되는 '묘한' 순간이었다.

 

왜 이렇게 장률 감독에게 마음이 너그러워지는 걸까? 그가 한국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가 영화를 정식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모르겠다. 그냥 마음이 간다. 이유 없는 편애다. 장률의 또 다른 영화 <후쿠오카>는 별로였다. 장률에게 그냥 그렇게 마음이 가는 것인가 의심스러워 다른 영화를 찾아보았는데, 아저씨(권해효/윤제문)들의 첫사랑타령은 박소담이 나오고 후쿠오카까지 갔어도 별로였다. '다행이다!' 나는 그냥 장률의 영화를 좋아하는 게 아니다. 장률의 좋은 영화에는 어떤 장점이 있는 게 분명하다.

 

<풍경>을 볼 때, 후기를 쓰겠다고 지차했던 것은 <풍경>을 한 번 더 보고, 나는 왜 장률의 영화가 좋을까 다시 한번 생각해보고 정리해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8월 상영회의 후기를 10월에 쓰고 있는 만큼, 나는 이후 장률의 영화를 다시 보지 못했다. 그래서 아직 잘 모르겠다. 못 만든 듯한 영화인데 왜 좋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군산>과 <이리>를 찾아보고, 또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경주>를 처음 보았을 때, 예상치 못한 이야기 전개와 거대한 무덤으로 가득한 도시 경주를 배경으로 '죽음'에 대해 블랙코메디처럼 다루는 장률의 방식이 신선했다. 백현진의 꼰대스러움과  류승완의 휴지로 꽃을 접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느낌 있었다. 그 신선함의 내력은 무엇인지 찾아보고 싶다. 올해가 다 끝나가고 있는데, 숙제가 남았다. 좋은 일일까? 아니 그 반대일까? 10월 상영회가 코앞에 닥쳐 부랴부랴 반성문을 써봅니다.

 

 

 

 

댓글 3
  • 2023-10-26 01:35

    반성문이라니요~ㅎㅎ
    숙제가 남아 있다니...올해가 가기 전에 여기서 다시 읽게 되길 바래 봅니다.

    고맙습니다!!!!!!!

  • 2023-10-26 12:06

    시간이 지나서 읽게 되는 후기도 좋네요. 장률은 확실히 독특함이 남는 감독이에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23-10-26 20:04

    겸목쌤 후기를 읽으니 다시 생각나네요. 그 이질적인 느낌에서 오는 뭔가 이상하면서 매력적인 느낌??이 떠오릅니다! 저도 다시 볼 수 있으면 좋을텐데 요새 영화 한 편 다 보는게 왜 이리 힘든 일이 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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