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의 철학] 1강 후기

새은
2024-03-08 15:44
126

오랜만에 파지사유에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

토토로샘의 [분해의 정원] 1~2장 강의와 자누리샘의 1장 발제였습니다. 토토로샘은 일상에서 일어나는 가장 가까운 분해의 순간들을 예시로 보여주시며 설명해주셔서 이해가 쏙쏙 되었습니다. 주변의 분해자들을 '분해의 달인' 이라는 워딩도 굉장히 참신하고 재밌었습니다 🙂 그리고 자누리샘은 1장을 설명해주신 덕에 책 자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35년 나치즘은 국민에게 지지를 받게 됩니다. <제국 자연 보호법> 발표 등과 같이 생태학을 기반으로 한 생태와 순환에 큰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인데요. 모순적이게도 성 정체성과 같이 다양성은 존중하지 않으며 인종청소를 해나갔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나치즘으로 이어지고 있는 생태학은 일상에 젖어들었을 텐데, 그 생태학은 덫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나? 질문합니다.?

프리드리히 프뢰벨은 놀이의 아버지로 나무블록인 가벨과 킨더가르텐이라고 하는 자연에서 뛰어노는 유치원을 만든 사람입니다. 생각하면 놀이가 분해인가? 라는 질문이 드는데요. 우선 나무블록 놀이의 특징은 쌓기와 무너뜨리기입니다. 쌓기는 증식을 의미하며 무너뜨리기는 제어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분해의 과정과 꽤 흡사합니다. 완벽한 분해는 없듯, 분해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나무블록 놀이도 완벽이라는 형태를 목적으로 하는 놀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유도가 높겠지요. 또 이 놀이 중에 나무블록의 개수를 늘리면 안 됩니다. 유한 속에서 무한을 만드는 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또 만들고 싶다면 다 쌓인 나무블록을 계속해서 무너뜨려야 합니다. 재밌는 건 이 나무블록이 무너질 때 나는 소리를 분해의 소리라고도 합니다. -와다다- 무너지는 소리라는 기호가 분해의 과정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나치즘의 생태학과 프리드리히 프뢰벨의 분해에는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 아쉬움은 부분이 전체를 만든다는 것인데요. 나무블록 한개 한개가 쌓여서 전체가 만들어지듯, 생태학이라는 기호가 일상에 쌓여 사회가 만들어지듯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순환적인 분해를 더 중요시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이해하기엔 시작도, 중간과정도 없이 생산되고 - 시간이 흘러 변화되고 - 전체로 스며들고 - 전체로 스며든 존재를 흡수해서 또 생산되는 이 순환 자체가 전부 분해라는 겁니다.?

그래서 분해는 리더나 통치적이지 않기에 중심성이 없고, 자본의 형태인 깔끔하고 편안한 게 아닌 울퉁불퉁 냄새나고 불편한 존재이자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특징은 분해의 부산물이 새 생명을 만들고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달팽이샘께서 말씀해주시듯 분해라는 기술을 알고, 분해적 시선을 가지는 것만으로 삶은 조금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게 분해의 특징이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강의만큼이나 질문답변 시간도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당근마켓에 대한 생각, 나폴리 사람들의 삶 속 분해의 순간들, 발전소와 같이 생산하는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들 등. 질문답변 시간을 통해 자누리샘의 발제에 네그리하트가 생태학을 정치학적으로 풀었다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분해라는 행위는 사회와 떨어질 수 없는 존재 같습니다. 저자는 네그리하트가 생산이 있어야 분해가 있다는 시선을 가지고 있어 아쉽다고 말했지만, 저 역시 아직은 네그리하트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결국, 분해란 생산이 된 것을 기초로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과연 7월에 세미나까지 끝났을 때 제 생각이 바뀔지도 궁금해졌습니다 🙂

오늘 강의를 들으며 철학이 사유의 확장이라면 분해는 활용의 확장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대는 물건도, 음식도, 사람도 활용되지 못하고, 활용할, 활용될 의지를 잃어가는 중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저는 인간사회와 취업현장에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현 사회의 형태와 분해적 시선을 대입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분해 될 것이 없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자기계발에 몰두하거나 활용의 의지를 잃고 취업을 포기한 체 히키코모리가 되는 사회현상이 새롭게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저는 전자에 속한 사람인데 약간은 분해가 될, 분해를 실천해볼 의지를 얻어갈 수 있는 강의였습니다 🙂

 

 

댓글 5
  • 2024-03-09 10:57

    나치의 모순을 프뢰벨이 간과한 것과 연결하여 풀어낸 것이 인상깊었어요. 그 모순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것두요. 하여 분해의 철학이 화두로 삼고 있는 것이 확, 아찔하게 다가왔어요.
    덕분에 분해의 정원 세미나에 대한 기대와 애정도도 쑤욱 올라갔어요. 남은 강의 시간에 이어질 "완전성에 대한 욕망과 분해" 탐구도 기대합니다^^

  • 2024-03-10 21:15

    이번 강의에서 어떤 이야기든 기승전 '새은의 식혜'로 연결되어 희한했던... ㅋ 그렇게 토토로샘의 편애를 받은 새은씨가 후기까지 잘 써주었네요!
    작년에 <분해의 철학>으로 처음 세미나를 했을 때, 저자가 나치의 생태파시즘을 왜 가지고 왔는가에 대해 한참 설왕설래를 했던 것 같은데 이번 강의에서는 그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좋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 긍정적인 개념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여러분들과 모여 강의를 들으니 좋더라구요~ 강의도 좋고 후기도 좋고

  • 2024-03-13 16:37

    애들 어릴 때 프뢰벨 사는 데 돈 많이 썼는데, 강의에 나와 깜짝 놀랐음!

  • 2024-03-13 20:26

    빠른 후기에 깜짝 놀랐어요.
    MZ세대...
    강의 시간에 노트북에 일목요연하게 내용을 정리하는....
    그런데 이렇게 성실한 후기까지...

    네그리와 하트~ 어렵긴 하지만 '제국'와 '다중'을 분해의 입장에서 해석하는 후지하라의 분석은 인정!
    나치의 생태파시즘은 또 우리에게 경각심을 갖게 하기도 하고요.
    다음 시간 차페크의 소설을 통해 보는 분해의 세계도 기대가 됩니다.

  • 2024-03-14 08:38

    쏙쏙 들어오는 강의, 후기 감사합니다~^^
    세미나 분들 첫만남에 반가웠고요,
    나치즘의 생태관 흥미로웠습니다.

    너무 익숙한 픠뢰벨에 이런 철학이 담겨있을줄이야~ 싶었네요.
    다음 강의와 세미나가 어떻게 풀려나갈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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