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숲] 여덟번째 시간 후기

르꾸
2024-05-10 03:59
90

 

지난 시간까지 《슬픈 열대》 독파하고 새롭게 만난 《야생의 사고》, 산 넘어 산이구나라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생기기도 하고 레비스트로스 읽기가 즐거움의 텐션을 끌어올리기도 한다는 읽기 평이 공존하는 첫 시간이었다. 1장 발제를 맡은 나는 2021년 새롭게 번역된 영문판(그간 영어번역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논쟁이 있었다)을, 2장을 맡은 뚜버기 샘은 일어판을 참조해서 한글판의 난해한 내용을 좀 더 이해해보고자 해서 세 버전의 《야생의 사고》가 한 테이블에서 만났고 우린 이 우연한 마주침에 잠시 ‘환호’했다.

 

《야생의 사고》(1962)는 레비스트로스의 학문의 여정을 크게 3시기로 구분할 때 두 번째에 해당되는 시기로, 첫 번째인 《친족관계의 기본 형태》(1949), 《슬픈 열대》(1955) 이후 세 번째인 신화학 시리즈(1964~1971)를 출간하기 직전 신화학 연구를 위한 준비작업으로 ‘분류의 본질과 힘’에 대한 정교한 이론적 명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야생의 사고》는 같은 해 출간된 《오늘날의 토테미즘》과 쌍을 이루고 있으며, 레비스트로스는 《오늘날의 토테미즘》을 《야생의 사고》에 대한 일종의 입문서로 얘기하며 그 책에서 충분히 설명된 개념, 정의, 사실들은 다시 반복하지 않겠다고 서론에 제시한 바, 우리한테 《야생의 사고》가 난해한 것은 사실 우리의 읽기 능력의 문제라기보다는 책 자체가 불친절한 것도 있다는 얘기다^^.

 

1장 ‘구체의 과학’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원시인의 사고는 서구 문명인의 사고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강조한다. 흔히들 생각하듯 원시인의 사고는 ‘미개하지 않고’ 서구 문명인의 사고와 다를 바 없이 논리적임을 그는 시종일관 주장한다. 원시인의 분류체계는 사물에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며, 그것은 바로 과학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시인의 과학적 사고와 서구인의 과학적 사고는 그 방식에 있어 차이가 난다. 그렇다면 원시인의 과학적 사고는 어떤 것인가? 이를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wild thought)라 부르면서 ‘구체의 논리’로 표현되는 사고, ‘구체의 과학’이라 칭한다. ‘구체의 과학’은 감각에 기반한 감각적 사고 혹은 주술적 사고로, 주정적 성격이 강한 반면 서구의 과학은 감각에 기반한 지식을 허용하지 않는 주지적 성격이 강하다. 서구 근대의 과학적 사고(인과율에 의한 결정론)와 대비를 이루는 것으로 주술적 사고, 혹은 감각적 사고는 다른 말로 신화적 사고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지각과 개념의 중간에 위치하는 이미지를 통한 사고이며 대표적인 예가 토테미즘이고 현대에서는 브리콜라주에서 이런 사고 방식을 엿볼 수 있다.

 

브리콜라주는 우발적인 움직임을 전제하며, 아무 것이나 주어진 도구를 써서 자기 손으로 무엇을 만드는 장인(손재주꾼)의 작업방식인데, 신화적 사고의 특징과 맞닿아 있다. 신화의 구성단위가 언어에서 빌려온 것이어서 미리 정해진 의미에 따라 구속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손재주꾼이 모아서 쓰는 부품도 그처럼 미리 구속을 받는다. 한편 무슨 재료를 사용할까 하는 결정은 다른 부품을 대신할 수 있는 가능성에 의해서도 좌우된다. 그러므로 하나의 선택이 이루어질 때마다 구조는 완전히 재구성되며 그것은 막연히 상상했던 것과 결코 동일하지도 않고 애초의 것보다 훨씬 나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신화적 사고 체계를 잘 들여다보면 결국 구조의 폐쇄성보다는 구조의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

 

2장 ‘토템적 분류의 논리’에서 레비-스트로스는 원주민들이 방대하고 체계적인 분류법을 가지고 있음에도 서구 학자들이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못했음을 비판하면서 자신이 원주민의 분류법을 제대로 설명하고자 한다. 원주민의 분류법은 조직적이고 견고한 체계의 이론적 지식에 근거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그들의 분류와 명명은 세심한데 이는 그들이 자신의 주변 환경(동,식물)에 대해 얼마나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인류학자는 광물학자, 식물학자, 동물학자, 천문학자적 자질도 동시에 갖추고 있을 때에야만 원주민 사고의 정밀함과 사려깊음을 포착할 수 있다(서구인의 ‘분열병’과 원주민의 ‘총체적 사고’의 대비를 잘 보여주는 대목). 신화와 의례를 해석하고 그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 동식물의 이름 등을 정확히 밝히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데 그들의 의례에 등장하는 식물을 보면 개개의 식물이나 그 종류가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두 식물 혹은 식물군이 짝이 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룰 때 그 의미가 생기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히다치족의 매 사냥 의례에서 월경 중인 여성이 긍정적으로 여겨지는 이유를 형식적 관점, 기술적 관점, 의미론적 관점에서 설명하면서 이를 통해 애초에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는 주제들 사이의 상동성이 총괄적인 준거체계를 이루고 있음을 제시한다. 그럼에도 원주민의 분류체계를 해석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첫째, 외적인 어려움으로 우리가 분류의 기초가 되는 관찰과 원리에 무지하다는 점이고 둘째, 내적인 어려움으로 원주민의 사고가 몇 개의 요소 사이에 관계를 세울 경우, 연결형식에 어떤 논리를 적용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레비스트로스는 요소들 사이의 성립하는 관계는 인접성과 유사성에 주로 기초하는데 이러한 관계 설정은 근대의 분류법과 유사하며 이외에도 감각적인 것, 지적인 것, 공시적인 것과 통시적인 것의 형태로도 파악할 수도 있음을 설명하면서, 논리의 축의 수, 성질과 특성은 문화마다 다를 수 밖에 없으며 원주민의 문화가 빈약할지라도 여러 차원에 걸친 논리가 작동함을 강조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원주민의 토템적 분류가 ‘구체성의 논리’에 기반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이것이 공시성과 통시성의 갈등 속에 있으며 공시적으로 성립되는 개념체계 위에 인구통계학적 변동이라는 통시성 상황이 전개되는 본래적 복잡성에 주목한다. 따라서 원시인의 사고는 통시성과 공시성, 사건과 구조, 미와 논리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는 안전 거리를 취하고 있음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함을 강조한다.

 

세미나는 주로 1장과 2장에서 레비스트로스가 장황하게 쏟아냈던 말들의 궁극적 함의가 무엇인지를 놓고 그의 의도를 이해하고 추론하는 일에 주로 집중되었기에 그 내용을 중심으로 1장과 2장을 우선 정리해보았다. 주로 ‘구체의 과학’, ‘브리콜라주’, ‘공시성과 통시성’, ‘예술과 과학과 신화’ 등에집중하면서, 나누고 세분화하는 ‘근대적 분류’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원시인의 ‘분류’는 어떻게 다른 지에 많은 얘기들이 오고 갔다.

 

낮달 샘은 원주민의 자연에 대한 무수한 관찰과 실험을 실용성보다는 지적 호기심이 우선한다고 해석한  레비-스트로스에게서 ‘자기 반영적 탐구’를 읽어내면서, 서구인과 원시인의 ‘분류’ 자체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 우리의 ‘분류’ 논쟁을 촉발시켰다.

 

‘살다살다 이런 책은 처음’이라고 엄살을 부린 새봄 샘은 레비스트로스가 말하고자하는 바를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하려고 애쓰셨으며 그 과정에서 주술적 사고(마술)의 인과성이 무엇인지를 정리하는 질문을 던졌고 돈키호테 샘은 과학이 우연과 필연의 구분 위에 기초하는 것에 물음표를 붙임으로써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과학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었다.

 

동은 샘은 손재주꾼의 사고방식이 원시인의 신화적 사고와 닮았다는 레비스트로스의 설명에서 예전 길드다에서 각자 명함을 만들면서 한가지 키워드를 넣기로 했을 때, 고심 끝에 ‘손재주’를 적었는데 당시는 몰랐던 자신의 ‘감각적 사고’를 발견하고 기쁨 뿜뿜, 자존감 뿜뿜했음을 고백했다.

 

어때 샘은 자폐스펙스럼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치료하면서, 이 아이들의 언어 구사를 통해 일반인과는 다른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데 레비스트로스가 원주민의 사고방식을 ‘편견’ 없이 이해하려는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그가 말하는 ‘야생’이 강인함, 길들여지지 않은 본래의 무엇, 그래서 자연스러운 힘이 담겨있는 것으로 읽힌다고 했다.

 

레비스트로스의 논리가 너무 흥미롭고 ‘야생의 사고’가 너무 ‘우아하게’ 느껴진다는 참 샘은 예술가답게 동은 샘과 더불어 감각적 사고, 초감각적인  것에 익숙해 레비스트로스의 언어가 절로 느껴지는 듯하다. 부러울 따름이다ㅎ 레비스트로스는 원주민의 구체적 사고의 논리를 토템적 분류체계를 통해서 설명하는데 계속해서 요소들 사이의 관계를 놓치지 말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체계 속의 각 항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중요하다는 건데, 참샘이 아이 학교 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으면서 각 구성원들이 위원회라는 체계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을지를 고심하는 모습에서 구조주의자 참 샘이 엿보인다ㅋㅋ

 

그 자리에 없었던 한가위 샘은 ‘부재하는 현존’으로서 계속해서 우리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구조주의 언어학 전공자이신 한가위 샘이 반드시 있어야만 우리의 온전한 세미나가 될 수 있다는 이구동성때문이었다:)

 

다음 시간부터 점점 더 복잡해지고 난해해질 것만 같은 《야생의 사고》, 여튼 출발했으니 시작이 반이다^^

 

댓글 3
  • 2024-05-10 08:51

    오~토론에 집중하시면서 언제 식구들 각각의 생각과 이야기까지 정리하셨대요? ㅎㅎㅎ
    그 열띤 자리로 돌아간 것 같아요.
    우리 이제 반은 넘어간 거네요? 앗싸~~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4-05-16 14:31

    1, 2장 완벽한 정리~ 감사합니다^^

    오늘 녹평읽기 세미나에서 인공지능 기술, 그럼 이제 인간이란 뭔지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야생의 사고와 인공지능은 어떤 맥락에서 질문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다양한 이야기가 흘러 넘치는 레비스트로의 숲 세미나 참 좋아요~

  • 2024-05-16 16:20

    서구인의 분열증과 원주민의 총체적 사고의
    대비도 르꾸샘이 체크해주시니 와닿아요<
    아~
    우리는 섬세한 야생의 사고를 회복할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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