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자들』 후기

겨울
2022-10-24 07:42
349

  에코 프로젝트 마지막 겨울시즌이 시작됐다. 겨울엔 자고로 뜨뜻한 아랫목에 배 깔고 누워 책을 읽는 게 최곤데...네 권의 읽을 책이 죄다 SF다. 겨울시즌을 이끌어갈 띠우샘께 왜 SF냐고 물었지만 씨익 웃기만 하고 답을 안 준다. 그리고는 첫날, 드디어 답을 들을 수 있었다.

  “SF(Science Fiction)는 말 그대로 과학소설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소설 소재의 한계를 확장해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현대사회의 급속한 변화에 대해 성찰하고 가치관을 함양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준다. SF는 기존 방식에 안주할 수 없는 위기감이 올 때, 공동체의 큰 변화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장르다. 도무지 답이 없는 현실 문제에 접근해 기존의 사고를 뛰어넘는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로.”

  띠우샘의 설명 중에서 이런 말들이 와닿았다. 그래서 에코 프로젝트 겨울시즌이 ‘사유하기’라고 띠우샘이 환기시켜 줬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SF소설을 읽음으로써 우리의 사고를 한껏 확장시킬 수 있겠구나. 봄부터 시작해서 여름과 가을, 텃밭 농사를 지으며 우리 삶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공부도 했지. 이제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깊이 사유할 때야.’

 

  우리는 우선 조별로 나뉘어 미리 준비해온 메모를 한 사람씩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소설 『빼앗긴 자들』은 몰입해서 읽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는 의견이 많았다. 나 역시 서로에게 달인 쌍둥이 행성, 아나레스와 우라스의 지리적인 여건이 처음엔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아서 책 뒤의 지도를 수시로 들여다봤다. 우라스는 현재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와 같아서 그 문제점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는 데에 다들 동의했다. 반면 아나레스는 그곳이 사회주의 사회인 걸까? 하는 의견이 있었으나, 책 뒤의 해설을 보면 책이 출간된 시기는 “히피문화와 반전운동, 아나키즘의 부흥이 일어난 1970년대”로, 그 시대적 영향 아래 저자가 “자유와 평등, 진정한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아나레스에서 유토피아를 실현해 보이려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나레스는 유토피아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척박한 환경인데다가 그곳에도 권력을 추구하는 인물은 존재하며 서로에게 낙인을 찍고 배척하는 행위가 벌어지니, 결국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게 아닌가?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우라스와 아나레스 중 어디로 가야 하나? 결국 이 소설은 언제나 새롭게 다시 시도되는 탈유토피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쉐벡이 다시 아나레스로 돌아갈 때 우라스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는데, 가져가면 안 되나? 쉐벡이 우라스로 간 가장 큰 목적은 연구였을까, 아니면 우라스 민중들과의 접촉이었을까? 등등, 우리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SF소설은 영 취향이 아니라는 조원에게 그럼 어떤 소설, 어떤 작가를 좋아하냐는 질문을 하고 그 답변에 등장한 소설가를 얼른 적어놓기도 했고...ㅎ

 

  조별 모임을 마치고 다 같이 모여앉아 차분한 목소리가 겨울이라는 계절과도 잘 맞아떨어지는 띠우샘의 강의를 들었다.

  왜 SF인가부터 SF의 특징과 역사, 저자 소개와 소설의 줄거리, 주요 내용들까지. 특히 저자인 어슐러 르 귄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다. 책날개에 소개된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비인간 존재들과 맺는 관계에 대한 성찰’을 하게 된 경위가 멸종된 줄 알았던 인디언 ‘이시’와의 만남으로 설명되고, 아나키스트 유토피아에 주목하게 된 배경이 저자 본인의 말로 소개되었다. 그리고 제목과 관련해서는 부제인 ‘An Ambiguous Utopia(애매모호한 유토피아)’가 생략됐다는 것. 르 귄은 유토피아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으며, 이 작품을 ‘사고실험’으로 읽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띠우샘은 부제를 넣고 봤을 때 제목을 ‘홀리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인간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언제나 같을 수는 없기에 그 사이의 균형은 늘 문제시”된다. 소설의 주인공 쉐벡은 우라스에서 다시 아나레스로 돌아간다. “그의 삶 속에서는 계속해서 애매모호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그가 “오도니안으로 살아간다면 이 애매모호함이야말로 또 다른 가능성을 낳을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로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대신 ‘홀리지 않은 사람들’이 되어보면 어떨까.”라고 띠우샘은 제안한다.

  애매모호함 속에서 흔들리지만 홀리지 않으며 나아간다...많은 이들이 밑줄 치며 읽었을 쉐벡의 연설을 보면 이 말을 좀 더 확연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에게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상호협력이라는 하나의 원칙 외에는 어떤 법률도 없습니다. 자유로운 유대라는 하나의 원칙 외에는 어떤 정부도 없습니다... 우리는 소유하는 자들이 아니라, 나누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유복하지 않아요. 우리 중 누구도 부유하지 않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강력하지 않습니다. 그게 당신들이 원하는 아나레스라면, 그게 당신들이 추구하는 미래라면, 그러면 말하건대 당신들은 빈손으로 그 세계에 와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들어오는 것처럼 홀로, 벌거벗은 채, 과거도 없이, 재산도 없이, 타인에게 온전히 기대어 와야 합니다. 주지 않은 것은 받을 수 없는 것이지요. 당신들은 스스로를 주어야만 합니다. 혁명은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당신들 스스로가 혁명이 될 수 있을 뿐입니다. 혁명은 당신들의 영혼에 있거나, 아니면 어디에도 없습니다.”

  쉐벡은 공동체에 헌신하면서도 개인에 대한 성찰을 놓지 않는다. 그래서 결국 혁명은 개개인이 깨어 있는 매 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 이른다.

  강의가 끝나고 짧게나마 전체소감을 나눴다.

  아나레스와 우라스 둘 다 문제라는 걸, 아나레스도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걸, 소설을 거의 끝까지 읽고야 이해했다. 부제를 알았더라면 더 잘 읽혔을 텐데.

  낯설게 하기는 SF를 읽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낯설게 현실을 보게 하여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한다.

  SF의 진입장벽이 높다. 줄거리를 먼저 찾아보고 읽었는데, 140쪽부터는 빠져서 읽었다. 오도를 남자로 착각. 혁명가나 리더는 남자라고 생각하는 굳은 사고를 깨달았다.

  SF 세계에서의 페미니즘을 논의해볼 수 있겠다.

  물리학에는 문외한이라서 주인공의 연구 분야에 대한 이야기는 대충 건너뛰며 읽었다.

  이 소설을 두 번 읽었다. 두 번째 읽었을 때 보이는 것들이 있다.

  끝까지 못 읽었는데 오늘 강의를 듣고 나니 끝까지 읽을 수 있을 거 같다.

  등등의 이야기들이 나왔다.

  이렇게 겨울시즌 첫 시간을 마쳤다. 책을 다시 읽고 이야기 나눌 기회가 주어진다면 훨씬 풍부한 이야기들이 오갈 것 같다. 책을 읽고 메모하고 조별로 이야기를 나눈 다음 강의를 듣는 방식이 신선했고, 메모한 부분이 겹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다 달라서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이 좋았다.

 

  다음번에는 『날씨의 아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이야기 나눌 예정이다. 녹색평론에 실린 꽤 긴 글도 읽고 와야 한다. (자료 준비해주시고 알찬 강의 해주시는 띠우샘, 고맙습니다!)

 

  *다른 조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댓글에 써주시면 좋겠습니다. 제가 빠뜨린 내용도요.

댓글 6
  • 2022-10-24 09:53

    저희조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자발성을 토대로 자유롭게 구성되는 공동체를 만들려 노력한다 해도 사불같은 권력이 생겨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텐데 어떻게 그 권력이 고정되지 않게 할 수 있을까? 쉐벡처럼 늘 성찰하며 새로운 혁명을 시도하는 수밖에 없겠다 뭐 요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던 것 같네요.

    겨울님 꼼꼼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2-10-24 17:11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어요. 

    강의 두번 듣는 느낌^^
    사유하기 좋은 계절에 함께 해서 좋네요~

  • 2022-10-24 19:00

    봄여름가을시즌이 있어서 안 보이던 것들도 볼 수 있는 눈을
    아주 미흡하게나마 장착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남은 7주도 함께 상상력을 키워가봐요~
    겨울님, 후기 고맙습니다^^

  • 2022-10-25 11:22

    "혁명은 개개인이 깨어 있는 매 순간에 일어난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이네요.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시간도 혁명의 순간이겠지요.
    SF소설은 영 취향이 아니라 했지만^^ SF소설에 애정을 가져보겠습니다.

  • 2022-10-25 16:00

    여러번 읽을수록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고 띠우샘 조언이 있었는데... 겨울샘 후기를 읽으니 더욱 그러네요.

    후기 감사합니다

     

  • 2022-10-26 07:35

    메모를 남겨볼까했지만, 댓글로 소감 남겨봐요. 20대에 한번 봤던 책이고 중고책으로 팔았다가 다시 중고책을 사서 봤어요. ㅎㅎ 저도 처음엔 아나레스를 유토피아의 어떤 전형으로 보고 읽어갔던것 같아요. 그러다 아이랑 헤어져 사는 결정을 해야한다던지, 방도 맘대로 쓰지 못한다던지 하는게 유토피아인가? 나는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지.., 이런 생각을 하게되더라구요. 그래서 작가가 이 책을 사고 실험으로 봐달라는 말도 다가와요. ...

    저는 오도니안들이 너무 경직되어 보이고 차가워보여서 저런데서 살기는 싫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왜 저자는 이런 세계를 명백히 우리 세계와 같은 우라스에 대비해서 이상을 찾아온 사람들의 세상으로 그렸을까, 어쩌면 그 이상이 완성된게 아니라 그 과정을 그렸다 싶어요. 그 와중에 권력 지향적인 사람들이 있고 여전히 얄팍한 욕심을 내려놓기 힘든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이 다 없어지는게 유토피아가 아니라 그런 욕심도 어느 정도 흡수되지만 '어느 정도'만 작동하는게 안전하고 이상적인 사회 아닐까 생각했어요. 유토피아의 완성된 모습이 아니라 그리고 가는 과정, 아니.. 유토피아라는 고정된 이상없이 함께 그려가는 세상.. 그걸 작가는 말하고 싶었나 생각합니다.

    그래도 좀 애매합니다. 고정된 이상이 없는 세상이라기엔 should가 너무 많은 세상 같아서요... 오도니안들 많은 결정이 우리가 그러듯 '해야한다'거나 '옳다'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제가 아나레스를 이상적으로 볼 수 없는 가장 큰 이유거든요. 그냥 당위들이 싫어라기 보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생각과 행동의 거의 대부분이 당위에 기반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이 명백한 세상이거든요. 옳기 때문에 해야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어서 한다..랄까요. 아마 당시에 비전을 명료히 하기위해 무엇이 더 옳은지 탐색하는게 중요했을것 같긴해요.

    저는 이 책을 보면서 [낯선 땅, 이방인]이 많이 생각났어요. 아마 시기적으로 비슷한 영향 아래 있어서 그런것 같아요. 그래도 살짝 [낯선 땅, 이방인]이 먼저 나온것 같은데.. 어쩌면 어슐러 르 귄도 이 책을 일었을 것 같은데...라고 상상해봐요. 그럴 때 어슐러 르 귄의 쉐벡은 [낯선 땅, 이방인]의 주인공 벨런타인에 비해서 덜 영웅적이고 덜 예수님같고 .. 그런것 같아요. 그 점이 맘에 들기도하고 .. 그래서 한편으로 [빼앗긴 자들]의 상상력이 더 좁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는 마지막에 등장하는 헤인인의 태도가 가장 흥미롭더라구요. 헤인이 배경인 책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나중에 한번 봐야겠어요.

    다시 어슐러 르 귄의 책을 보다니.. 정말 추억 돋는 몇 주였어요. 추천해주신 띠우님, 뭔가 동지애가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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