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시 <세상 끝에서 춤추다> 메모

관리쟈
2024-03-19 09:54
121

이 책 읽기 어렵다고 , 또는 재미없다고, 원성이 자자하네요.

글들이 '에세이와 강연' 원고들을 모은 단편 모음집이잖아요?

우리가 자주 하는게 '에세이와 강연' 쓰기 또는 듣기인데, 뭐가 다를까요?

르귄 의 에세이는  쓰는 방식이 다를까요?

또는 우리도 다른 친구들 에세이를 들을 때 어렵고 재미없었을까요?

이런 의문이 드네요. ㅎㅎ

저는 '서사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발췌했습니다.

댓글 10
  • 2024-03-19 20:37

    올립니다

  • 2024-03-19 21:10

    올립니다

  • 2024-03-19 21:45

    올립니다

  • 2024-03-19 22:17

    저도 올림다

  • 2024-03-19 22:40

    메모 올려요~

  • 2024-03-19 22:48

    올립니다

  • 2024-03-19 23:08

    (저는 한글파일이 없어서... 취합하기 편하시게 댓글로 붙입니다 ^^)

    윤리와 도덕 사이 - <가족계획의 도덕적 윤리적 함의>에서

    도덕(률) - 성격이나 성향 관련. 옳고 그름이나 선과 악의 구별에 관한 것.
    윤리 - 도덕을 다루는 학문. 인간 의무를 다루는 학문. 법학을 포함. 행위의 규범. 이성적인 이론.

    ‘도덕’의 기본 의미는 성격이나 사람에 쓰인다. 도덕적 결정이란 한 사람이 수행하는 행위라 본다. 법률과 같이 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정부, 교회, 또는 관심있는 집단의 칙령이나 권고와 같이 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도덕적 선택이란 기본적으로 생존(육체적&정신적)에 알맞은 선택이라 보인다. 즉 삶을 지지하는 선택이다.

    르귄이 이해하기에,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생존은 위태롭다. 우리는 아주 절박하게 ‘인구 제한’을 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엄격한 가족계획, 아니면 역병 및 기아, 아니면 제3차 세계대전이라는 선택지 밖에 없는 듯하다. 그런데 선택지를 고르기 위해 윤리학을 동원한다면? 통하지 않을 것이다. 윤리규범은 낡았고 이 상황에 맞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성적인 사고도 좋지만 그걸로 충분하지 않다. 논쟁과 근거를 가지고 낡아빠진 거대한 법체계와 싸워볼 수도 있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다. 필요한 것은 적절한 도덕이다. 생명을 위해 선택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르귄은 그러기 위해 여자들부터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규범, 법률, 강령, 계율 대부분, 즉 모든 윤리는 남자들이 만들고 남자들을 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윤리가 여성의 도덕성, 즉 여자들이 생각하고 느끼는 옳고 그름과 극단적으로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새로운 도덕성”이 필요한 분야다. 예를 들면 섹슈얼리티와 수태, 임신, 출산,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루는 영역. 이 문제들에서 남자들이 만든 규범은 대부분 부적절하고 심할 경우 재난 수준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이게 “남자의 세상”인 척하고 아직도 그런 신화에 휘둘리고 있다.

    “너무나 친밀하고도 깊이 생명과 관련되어 있는 여자는 죽음에도 수월하게 대처한다. 여자에게 원치 않는 태아를 제거한다는 것은 고양이가 약한 새끼에게 젖을 주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생명의 성스러움에 관한 원칙을 발달시킨 건 남자다. .. 그리고 여자들은 열렬히 그런 원칙들을 스스로의 것으로 차용했다. 하지만 원칙이란 추상일 뿐… 여자의 기본 본능은 생명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생명이라는 ‘사실'과 결부되어 있다. 원치 않는 생명을 버리는 자연의 무자비함이 여자에게도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여자를 알기> 아이린 클레이몬트 드 카스티예호

    앞서 읽은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에는 주인공 로런이 초공감증후군으로 인한 자신의 고통 때문에 회복 불가능해 보이는 다른 사람을 잔혹하게 죽이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에서 로런은 배려와 리더십의 아이콘으로 그려지는 데 반해 이런 모습은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한 이기적인 행위로 보였다. 그런데 르귄의 글과 위에 인용한 글을 읽으며 이것이 ‘새로운 도덕성’일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로런이 사는 세상은 기존 틀, 기존 믿음 체계를 가지고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이었다. 자신과 동료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매순간 긴장해야 하는 상황에서 윤리적 가치가 통할까? 오히려 스스로를 믿고 행하는 로런의 선택들은 자연스럽고 곡해되지 않은 여성적 도덕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윤리는 아니지만 도덕이다. 로런은 죽은 윤리의 멍에에서 새로운 도덕성을 끌어냈기에 생존으로 가는 길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 2024-03-20 02:02

    캘리포니아를 차가운 곳으로 보는 비유클리드적 관점
    뚜버기
    유토피아들은 쭉 유클리드적이었고 유럽적이었으며 남성적이었다
    ‘유토피아’라는 말은 나에게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단어였다. 디스토피아는 리얼리즘으로 여겨진 반면, 유토피아는 번지르르 포장된 가짜였다. 민주주의, 공산경제 등등 좋은 개념들은 다 갖춘 것 같지만 그렇게 위해서 엄청난 계획과 통제가 작동해야 되는…그런 이상향. 그런 이미지를 가지게 된 이유를 이번에 깨닫게 되었다.그것은 하나도 매력적이지 않은 미래였다.
    르귄이 호출하는 대심문관과 유리즌 역시 이 점을 더욱 확실히 말해준다. ‘대심문관’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삽입된 책 속의 책이다. 철저한 이성주의자이자 신을 부정하는 둘째 아들 이반을 대변하는 대심문관은 이단을 판가름하는 종교재판을 진행하는 데 거기에 그리스도가 강림한다. 그는 나약한 인간에게 감당할 수 없는 자유를 주었다는 죄목으로 그리스도를 벌하려 한다. 신이 진정 인간을 사랑했다면 자유가 아니라 인류를 화합시킬 수 있는 기적과 질서를 주었어야 했다고 그는 주장한다. 대심문관의 유토피아는 유클리드적 이성의 산물이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성으로 모든 생명을 규제하고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오자는 생각”에 사로잡힌 결과이다.

    “여기에 없고 지금 없다는 것이 합리적인 유토피아, 혹은 제우스형 유토피아의 가장 핵심이다. 그 유토피아는 ‘지금 여기’에 반하는 의지와 이성의 반응으로 만들어지고, 토머스 모어가 이름 붙인 대로 ‘어디에도 없는’ 곳이다. 내용물이 없는 순수한 구조물이며, 순전히 모형이자, 목표다. 그게 그런 유토피아의 미덕이다.”

    지금까지 유토피아는 일방향의 미래에 갇힌 상상이었다. 하지만 윌리엄 블레이크는 감옥은 법이라는 돌로 지어졌음을, 밀란 쿤데라는 낙원에 대한 꿈은 전체주의의 지옥으로 이어질 것임을, 유클리드적 이성이 파괴로 귀결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비유클리드적 관점의 유토피아
    원래 유토피아 사상은 커뮤니타스의 경험에서 출발했다. ‘커뮤니타스’(빅터 터너)는 크리스마스, 동지축제와 같은 의례 과정에서 세속의 사회질서가 전도되고 그로부터 해방되어 평등해진 개인들 사이에 집단적인 공통성이 발휘되는 순간 만들어지는 집단이다. 유클리드적인 합리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여겨지기에 따로 떨어진 막간의 시간이자, 일상 바깥의 시간이다. 하지만 그것은 실존한 시간이며 그렇기에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상상할 수 있었다.

    “커뮤니타스는 구조의 틈새를, 경계를 뚫고 들어간다. 구조 가장자리에서는 주변성을 파고들고, 구조 아래에서는 열등함을 파고든다. 커뮤니타스는 거의 어디에서나 신성하거나 ‘성스럽다’고 여겨지는데, 이는 커뮤니타스가 구조화되었거나 제도화된 관계를 지배하는 기준을 어기거나 소멸시키며, 유례 없는 효능 경험을 동반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터너)

    커뮤니타스 경험을 제도화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유토피아의 시도는 유클리드적 이성과 충돌해 왔다. 어둠 속에 있고 모호한 것을 밝은 빛 속으로 진리를 드러내려는 시도는 실패해왔다. 찬란하고 공격적이고 선형적이고 진보적이고 팽창하고 전진하는 뜨거운 ‘양’의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비유클리드적 관점에서 “돌아가고, 내면으로, 음으로 가야 한다.” 르귄은 노자를 인용하면서 ‘음’의 유토피아를 상상한다. 어둡고 습하고 모호하고 약하고 잘 구부러지고 수동적이고 참여적이고 원형이며 순환하고 평화롭고 자애롭고 물러서고 수축성 있으며 차가울 것이다.

    따뜻한 유토피아는 가능한가
    레비스트로스 또한 양과 음의 대조처럼 뜨거움과 차가움을 대비한다. 그는“사회적인 변화와 에너지를 뽑아내기 위해 카스트 사이와 계급 사이의 구별을 끊임없이 촉구하는” ‘뜨거운 사회’들과 역사적인 온도가 거의 0도에 가깝도록 스스로를 제한하는 ‘차가운 사회’들을 구별한다.
    차가운 사회는 수만년간 지구 상에서 가장 넓은 지역에서 지속해온 원시 사회들을 뜻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지키는 일에 관심을 많이 가졌기에,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역사가 끼어들어 구조적 변형을 가하지 못하도록 고안한 장치들을 가지고 있었다. 혼인제도는 인구를 일정 수준에서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혼인제도, 구성원들의 대립을 이용한 권력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정치생활 등등. 그런데 레비스트로스는 뜨거운 사회의 최고와 차가운 사회의 최고의 통합에서 유토피아를 상상했다.
    “진보를 ‘생산’한다는 짐을 문화가 완전히 넘겨받은 사회는…… 역사 바깥에 위치하고 역사 위에 놓여, 다시 한 번 정연하면서도 투명한 구조를 띨 수 있다. 살아남은 원시 사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그 구조는 인간 조건에 적대적이지 않다.”(레비스트로스)

    기계는 진보가 맡고 생물은 리듬대로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주의는 또다른 유클리드적 상상 아닐까? 레비스트로스는 서구 문명을 바이러스에 비유했다. 서구(바이러스)와 접촉했던 많은 작은 사회들은 서구화(감염)되어 스스로의 존재를 보존하지 못하고 건강을 잃어버렸음을 떠올린다면, 뜨거운 사회와 차가운 사회의 긍정적 결합(기계를 인간으로 바꾸는 문명)은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지도에는 없는 길과 음의 유토피아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다면, 분명(노자의 말마따나) 그곳으로 가는 길은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길을 통해서이리라. 같은 맥락에서, 내가 그려 보려는 유토피아의 본질 역시, 그 유토피아가 올 것이라면 이미 존재하고 있어야 한다.”
    르귄은 “똑바로 나아갈 때 두번 다시 유토피아에 갈 수 없다”고 말한다. 지도를 던지고 미래상을 버릴 때, 바윗틈으로 뒷걸음질칠 때, 옆길로 새고 뒤로 돌 때, 다시 한번 되돌아갈 때 그곳에 유토피아가 있을 것을 믿는다. 르귄이 말하는 유토피아는 적을수록 풍요로운 세계-탈성장의 세계와 닮아 있다.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게의 걸음으로 뒷걸음질 치라’고 말한 이반 일리치 그리고 “가장 고대적archaisch인 유형의 더욱 고차원적인 형태의 집단적 생산 및 영유”를 비전으로 제시한 말년의 마르크스가 믿었던 유토피아도 그 곳이 아닐까? 세상끝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살고 오래된 세계가.
    지도를 그리지 않고 지도에는 나지 않은 길을 걸어가기……왠지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 세상 끝으로 춤추는 이들을 만나러 가자.

  • 2024-03-20 03:31

    늦었습니다.

  • 2024-03-20 06:56

    출력용 메모 모음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75
N <짐을 끄는 짐승들> 3회차 후기
느티 | 02:17 | 조회 13
느티 02:17 13
974
<짐을 끄는 짐승들> 3회차 메모 (9)
띠우 | 2024.04.23 | 조회 48
띠우 2024.04.23 48
973
<짐을 끄는 짐승들> 2회차 후기 (1)
곰곰 | 2024.04.23 | 조회 54
곰곰 2024.04.23 54
972
<짐을 끄는 짐승들> 1회차 후기 (5)
| 2024.04.16 | 조회 71
2024.04.16 71
971
<짐을 끄는 짐승들> 2회차 메모 (9)
관리쟈 | 2024.04.15 | 조회 78
관리쟈 2024.04.15 78
970
<짐을 끄는 짐승들> 1회차 메모 (9)
관리쟈 | 2024.04.02 | 조회 86
관리쟈 2024.04.02 86
969
3차시 <세상 끝에서 춤추다> 후반부 후기 (3)
달팽이 | 2024.03.28 | 조회 87
달팽이 2024.03.28 87
968
[세상 끝에서 춤추다] 2회차 메모 (11)
관리쟈 | 2024.03.26 | 조회 135
관리쟈 2024.03.26 135
967
2차시 <세상 끝에서 춤추다> 전반부 후기 (10)
뚜버기 | 2024.03.26 | 조회 117
뚜버기 2024.03.26 117
966
2차시 <세상 끝에서 춤추다> 메모 (10)
관리쟈 | 2024.03.19 | 조회 121
관리쟈 2024.03.19 121
965
첫시간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후기 (6)
토토로 | 2024.03.13 | 조회 142
토토로 2024.03.13 142
964
첫시간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 메모 (7)
관리쟈 | 2024.03.12 | 조회 126
관리쟈 2024.03.12 126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