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시간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후기

토토로
2024-03-13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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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에코 프로젝트 세미나 시즌1의 첫 번째 책으로 옥타비아 버틀러의 sf장편 소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를 읽었다. 1993년 출판된 이 책은 30년 후인 2024년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마침 올해는 2024년! 우리가 살고 있는 2024이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니긴 하지만 버틀러가 그린 2024년은 실제 보다 더더더 처참하고 암담하여 책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았다.

 

장벽 밖으로 나가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속 2024는 끔찍한 세상이다. 가뭄, 기아, 강간, 약탈, 고갈, 살인, 방화, 약물중독, 빈부격차....를 기본으로 깔고 간다. 그런 세상에서 목숨과 얼마 안되는 식량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은 최소한의 마을 단위로 높다란 장벽을 쌓는다. 3미터. 지켜야 할것이 많다면 그보다 더 높이. 그러나 장벽 안의 것을 노리는 침입자는 언제나 있는 법이다. 장벽 내에서의 갈등, 인간성 타락도 이만저만한 문제가 아니다. 생존을 위해서 누군가는 결국 장벽을 나가야 한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의 우화> 속  '로런' 뿐 아니라 디스토피아를 다루는 대부분의 소설이나 영화에서 누군가는 늘 장벽 밖으로 나간다.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 중에서.  수용소 안에서만 지내던 눈먼자들.  수용소 환경이 갈수록 열악해지자 수용소 밖으로 더듬거리며 나온다.

 

다만, 로런의 탈출이 단지 생존을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만은 주목할 만하다. 로런이 나고 자란 곳은 목사인 그녀의 아버지가 지도 관리 해온 곳이다.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을 불변하는 절대자로 숭배한다. 로런은 그곳엔 아무런 희망이 없다고 생각한다. 목사의 딸이지만 하나님을 완전한 존재로 믿지 않는다. 로런은 변화의 신, 지구종을 심는 공동체, 새로운 신앙으로 구성되는 공동체를 꿈꾸며 북쪽을 향해 길을 떠난다.  나는 책을 읽으며 로런 일행이 캐스캐이드 산맥 어딘가에 도착했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혹시 그곳에 송이버섯이 자라나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미디어 속 디스토피아

<씨.뿌.사>가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이라 그랬는지, 세미나 시간에 이와 관련된 최근의 미디어 영상에 대해서도 가볍게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유의 <Love Wins All> 뮤직비디오, 그리고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둘다 엄태화 감독이 만든 작품이다.

 

 

-내면의 눈으로 본 서로의 모습이다. 이때는 장애를 가진 몸이 아니며 깨끗한 옷을 입고 있다.  사랑의 필터로 볼땐 이렇게 보인다는 의미를 담았다. 

 

아이유의 뮤비가 발표되고 논란이 있었다. 특히 장애인 단체에서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나는 "이 뮤비에 대해 그렇게까지 생각한다고? 너무하네, 그럼 우린 아무말도 못하게 되는거 아냐?" 라는 입장과  "아, 어떤 사람들에겐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구나..."라는 입장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다가 더 고민하지 않고 흘려 보냈다.  지금도 내 생각을 답하기 힘들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콘크리트 유토피아> 에선 두가지 아쉬움이 있었다. 극단의 상황이라면 더 노골적일 수밖에 없는 성적 관계가 이 영화엔 전혀 없다는 점, 개나 고양이 같은 비인간 동물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 다는 점이 그랬다. 그런 것들을 싹 지워버리고 그리는 디스토피아라니. 뭔가 중요한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었다. 버틀러의 소설에선  본능에 충실한 즉흥적인 성관계가 많았는데 내 눈엔 그게 훨씬 자연스러워 보였다. 

 

변화가 신이다.

그대가 손대는 모든 것을 그대는 변화시킨다.

그대가 변화시킨 모든 것은 그대를 변화시킨다.

변치않는 진리는 오로지 변화뿐

변화가 곧 하나님이다.

 

<씨.뿌.사>의 주인공 로런은 변화를 신으로 받아들인다. 변하지 않는 질서를 상징하는 초월적인 신 하나님에 대한 거부로 읽히기도 하고, 새로운 세상을 살아가는 유연한 자세로도 보인다.

파지사유 생태팀도 늘 변화를 시도한다. 연말 연초가 되면 한해 커리를 짜며 변화를 위해 얼마나 고심을 하는지 모른다. 일단 뭐든 자리잡고 나면 가능한 변하지 않는걸 좋아하는 나로서는 따라가기 쉽지 않다.ㅋ  그러나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변하지 않는 것만큼 지루한 것도 없는 법이다.  또한 변화에 적응하지 않고 과거의 것만 고집한다면, 그리고 변화되고 변화시키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생존력(생활력)은 점점 떨어질 것이다. 

 

그러니 변화를 좋아하진 않지만....늘 변화를 추구하는 생태팀 샘들을 따라가다 보면 올 한해도 그럭저럭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후기를  여기서 마무리한다.ㅋ

(메모도 후기도 어려운 옥타비아 버틀러의 sf....)

 

댓글 6
  • 2024-03-14 09:00

    Love Wins All, 가난한 상상력이란 가사도 엄청 문제화되었었죠.
    뭐라하는 사람들은 장애를 지닌게 가난한 상상력의 세계에 사는 거고
    그들이 결혼하는 해피엔딩에서는 장애가 없는 모습이니
    장애는 없어야 되는 기피의 대상이 된다는 거였죠.
    이런 관점에서는 장애인은 자칫 기피의 대상이 되거나, 잘해야 온정의 대상이 될테이고
    장애를 가진 몸을 그 자체로 긍정아며 그 몸으로 어려움을 이겨내든 실패하든 하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삶의 모습을 안그린다는 거여요.

    이걸로 논쟁이 붙은 커뮤를 봤는데,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거 같았어요.
    처음에는 이걸로 뭐라할게 없다, 장애는 당사자들도 없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겠냐,
    유토피아를 상상하면 깨끗한 옷, 당당히 걷는 다리, 앞이 잘보이는 눈을 상상하지 않겠냐,
    이런 댓글이 우세했어요. 그런데 장애 당사자가 나타나서 이런 말을 했죠.
    나는 그런 상상을 하지 않는다. 그런 상상은 나를 더 아프게 한다. 다리를 고쳐줄 혁신적인 의료를 기다리게 한다.
    나는 그냥 장애를 가진 몸으로 오늘 하루 문밖을 잘 나서고, 사람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정말 감동적인 말이었는데 생각이 안나네요.
    그 이후 댓글들이 확바뀌었어요. 미처 생각못했다. 많이 배우게 된다는 글이 대세였지요.
    저도 장애감수성이 바뀌는 경험을 했어요.

    그리고 논란이 커졌던 건 저 감독의 뮤직비디오 '가이드' 나오면서죠.
    '캠코더가 찍히는 화면의 설정값은 폐허가 되기 전 멀쩡했던 세상'이라고 해서.
    캠코더 장면은 비디오에서 후반부에 결혼하는 부분에서 나오는데,
    폐허 이전을 멀쩡했던 세상이라고 하면 자연스레 장애를 기피의 대상으로 여긴다는게 보이잖아요.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과는 결이 많이 다르죠.

  • 2024-03-14 09:24

    그렇군요. 사랑의 필터로 바라보아도 장애가 없는 상대가 아닌, 원래 모습 그대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모습으로 표현되는 뮤비였다면...샘 댓글을 읽으니 저도 생각이 정리가 되네요.(설득을 잘 당하는 편ㅋ)

    아름다움과 (일종의) 정상적인 것에 대한 기준을 어릴적부터 끈임없이 주입받아 왔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것부터 변화를 일으켜야겠어요.
    긴 댓글 감사합니닷^^

  • 2024-03-18 10:59

    처음엔 지구종이 뭔라는건지 좀 이해가 안되서 책에 정을 못붙이다가
    읽어나갈수록 흥미진진해졌는데 마지막은 또 새로운 시작으로 끝나는 느낌이라
    맥이 좀 빠졌는데
    세미나에서 다음편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어 재밌었어요
    픽션인데 마치 다큐가 될 것 같은 이야기
    미리 미리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해둬야하지 않을까 싶네요

    뮤비의 동향까지 알고 계시는 분들 덕분에 다양한 이야기 나눌 수 있었어요
    르귄을 읽으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는지 은근 기대가 됩니다.
    세미나 시작하니 좋네요(이거 진심반 의욕반 ㅋㅋㅋ)

  • 2024-03-18 20:45

    변화가 신이라... 저도 다른 인물들처럼 굳이 그걸 종교라 해야하나? 개념만으로도 충분치 않을까? 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기억이, 감정이 얼마나 잊혀지지 쉬운 것인지를 떠올리니 쪼금(?) 설득이 되는 것도 같았어요. ㅋ 그래서 늘 되새기라고 주인공에게 초공감자라는 설정을 한 것 같다는 상상도... ㅎㅎ

    저도 소설 뒷부분이 아쉽다고 생각했는데 시리즈물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더군요. 언젠가 다른 시리즈도 읽고 보고 싶어요.

  • 2024-03-18 22:58

    은총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언제고ㅋ
    후기를 읽다가 보니 본능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성적관계는 정말 우리의 본능인걸까요....

    세미나가 어디로 갈까 싶었는데 이야기가 마구 나오긴 하네요~~ 후기 고맙습니다.

  • 2024-03-19 09:47

    이 시리즈물이 신약성서를 패러디한 것이라 했잖아요.
    위기와 몰락의 시대에는 다들 종교하나쯤은 만듭시다 하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유대교에 대한 신흥종교 그리스도교처럼요.
    로런의 캐치프레이즈 "신은 변화이다"는 그리스도교의 "신은 왕이다"를 패러디했고
    각 시리즈는 신약성서의 우화들을 패러디한 것처럼
    우리도 이 패러디를 재차 가공해봐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들 종교만든다면 무얼 내세우실라우? 무얼 신이라고 하고 싶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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