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끝의 버섯 3회차 후기

느티나무
2023-11-24 01:20
171

루쉰 세미나를 마치고 샤오싱을 다녀왔다.

다녀와서 바로 발제를 맡은 탓에 <세계 끝의 버섯>을 가방 속에 넣고 갔다.

비행기를 탈 때도 버스를 탈 때도 내내 곁에 두고 틈틈이 읽고 읽었다.

그런데 돌아오자마자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다.

발제는커녕 내내 문탁에 나올 수도 없었다.

겨우겨우 3부 발제를 했지만 세미나 동안 몽롱하니 뭘 했는지 기억이 가물하다.

 

내가 맡은 3부 14장~17장은

각기 다른 장소에서 한때 동일한 역사적 사건으로 얽혔으나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 시간을 보내고,

또다시 송이버섯으로 연결된 숲들의 이야기다.

미국의 오리건주의 숲, 일본의 사토야마 숲, 중국의 윈난성의 숲

다른 모습들로 현존하는 패치들이다.

인간의 다양한 방식의 교란이 개입되었다.

숲이 삶에 직접 관련되어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벌목과 플랜테이션, 산불방지제도,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고리들....

숲은 이러한 다양한 마주침을 통해 성장하고 거부하고 창발한다.

포자들이 날아다니며 새로운 생태계를 창조하는 버섯과 함께.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과학자들의 이야기다.

송이버섯 학회에서 만나 합동으로 현장연구에 참여하는 모습이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차이를 인식하고 다양한 마주침을 통해

함께 성장하거나 서로를 거부하는 연구가 창발하는 패지들을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였다.

이것은 ‘다이몬 교배’를 하는 송이버섯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송이버섯의 포자는 반수체로 짝을 이루는 쌍이 아니라 오직 한쪽의 염색체만 있다.

다른 반수체 포자와 짝짓기를 해서 완벽한 쌍을 이루기도 하지만

염색체의 쌍을 이룬 체세포들과 결합할 수도 있다. 이를 ‘다이몬 교배’라고 한다.

이 방식은 마치 나의 팔과 짝짓기를 하는 것과 같다.

(이 시점에서 <트러블과 함께하기>의 이야기, 나비와 교배한 ‘카밀’이 생각난다.)

곰팡이는 그 어떤 ‘하나’의 몸체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마주침에서 제외된 채 자급자족해 살지 않는다고 한다.

곰팡이 몸체는 나무, 다른 생물과 무생물, 그리고 다른 형태로 바뀐 곰팡이와

역사적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생겨난다.

위의 학회에서 만난 과학자들도 열린 질문들에 대해 이와 같은 방식으로 탐구한다고 한다.

이처럼 차이를 만드는 몇 안되는 생각이 그 분야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아~ 버섯과 곰팡이는 위대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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