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프로젝트 - <날씨의 아이들> 후기

느티나무
2022-11-01 13:19
377

영화 <날씨의 아이>를 보았다.

작년이었던가, 거의 두 달 가까이 비가 내리는 긴 장마를 겪고 올해 기록적인 폭우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기후에 대한 위기를 실감했다.

<날씨의 아이들>은 비가 내리는 도쿄가 배경이다. 물에 잠긴 도쿄는 지금의 우리 현실이다. 성경 속 노아의 방주 이야기나 영화에서 지구의 대륙 전체가 물에 잠기는 장면들이 이제 상상만이 아닌 현실에서 일어날 일들이 된 것이다.

영화를 본 후 감상평을 나누는 시간,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고, 사랑이야기로 혹은 기후위기의 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혹은 아이들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는 등의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영상이 너무나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다고도 했다. 나는 무엇보다 하늘이 바다와 같은 물로 가득 찬 곳으로 묘사된 것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에 의해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의 세상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대기층 이상으로 여겨지지 않는 하늘이 아니라 예부터 영성이 머무는 장소로서의 하늘이 소환된 것이다.역사에서는 인류가 자연에서 주는 것만을 먹고 살던 수동적인 존재방식에서 스스로 땅을 경작하고 가축을 기르는 생산적 생활방식으로 전환을 하던 시기부터 하늘과 땅에 종속되었다고 한다. 땅을 경작하는 대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제물을 바치는 것이다. 이렇게 인류세가 진행되는 동안 하늘은 늘 경외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고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면서 인류는 영성을 잃어버렸다.

<날씨의 아이들>에서 신카이 마고토 감독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영성을 보여주고 있다. ’‘날씨 아이’, 혹은 ‘기후 무녀’의 운명을 타고난 히나의 영혼은 실낱같이 가는 힘으로 하늘과 연결된다. 맑고 투명한 물의 세계, 아름다운 빛의 투명한 물고기가 떼지어 다니는, 그러나 자신의 기분에 따라 땅의 일에는 무심하게 날씨를 부리는 하늘. 단지 기후 무녀의 기도로만 소통이 가능한 하늘이다. 날씨 아이, 맑음 소녀 히나는 맑은 날씨를 원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들어주면서 자신의 몸이 차츰 투명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신만이 물에 잠기는 도쿄를 구할 수 있음으로 스스로 몸을 바쳐 도쿄를 구한다.  영화가 만약 이렇게 끝이 났다면 우리는 필경 인신공양을 떠올렸을 것이지만 감독은 남주 호다카의 힘으로 땅으로 다시 끌고내려 온다. 그 댓가가 도쿄의 3분의 1이 물에 잠기는 것이었지만 모든 이들의 욕망을 대신하여 희생하는 것은 결국 인류를 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인류세의 인간들이 아무도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히나의 희생은 무용한 것이다. 방법은 영성을 잃어버린 현재에서부터 그것을 회복해 나갈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호밀밭의 파수꾼』으로 컵라면을 덮어두는 장면은 호다카를 '속물적 욕망에 가득찬 세상에서 피비의 해맑은 순수의 세계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콜필드의 시선'과 중첩시킨다. 그 일은 하늘에서가 아니라 땅위에서, 그리고 지금을 살아가면서 이루어야 하는, 히나를 지키고 우리의 영성을 일깨우는  일인 것이다.  우리의 영혼에 에코를 불러 일으키는 일... ...

 

 

 

 

 

댓글 10
  • 2022-11-01 19:49

    말과 소리
    말하는 법, 글 읽는 법을 잊어버리는 질병. 그 질병이 팬데믹이 되어 세상에 퍼진다. 질병에 잠식당한 세상은 무정부 상태. 공공시설은 다 망가지고, 사회 질서도 무너진다. 사람들은 손짓, 고함, 으르렁거림으로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낸다. 먹어야 사니까, 마치 굶주린 승냥이처럼 쓰레기통을 뒤지고, 남의 것을 뺏고, 살인도 쉽게 한다.

    -->이런 질병을 상상해 본적이 없어서일까. 처음에는 상황파악이 잘 안됐다. 뒤늦게야 나는 이 이야기 속에 대화가 없고, 그저 고함과 주먹질만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런 혼동 속에서 은밀히 질병을 빗겨간 사람이 있다는 것. 말할 수 있는 세 사람이 만났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 (영화 <설국열차> 엔딩처럼...) 여성과 두 어린 아이. 작가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그들에게서 희망의 가능성을 찾고 싶었던 걸까..(이런 설정.. 이젠 꽤 상투적이긴 하다.)

    -->발췌
    라이는 그 아이들을 버려두고 차를 몰고 떠나려고 했다. 거의 그럴 뻔했다. 아장거리는 아이 둘이 죽게 내버려둘 뻔했다. 하지만 죽음은 이미 충분했다. 그 아이들을 데려가야 했다. 다른 결정을 내리고 멀쩡히 살아갈 수는 없었다.....
    유창한 말이라니! 그 여자도 말을 할 수 있어서. 아이들에게 말을 가르쳐서 죽은 걸까? 남편의 분노가 곪아 터져서 살해당한 것일까. 아니면 낯선 사람의 질투어린 분노로 살해당한 것일까? 그리고 아이들....분명히 이 아이들은 침묵 이후에 태어났다. 그렇다면 질병이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이 아이들에게 면역이 있나? 확실히 그 아이들 나이 정도면 이미 병 때문에 언어를 잃고도 남았다. 라이의 마음이 마구 달려나갔다. 만약 세 살이나 그 이하의 아이들이 안전하고 언어를 배울 수 있다면? 만약 그 아이들에게는 교사가 필요할 뿐이라면? 교사와 보호자가.
    “난 발레리 라이란다. 나에게는 말해도 괜찮아”

    작가 후기 중에서 발췌
    -->나는 인류에 대한 희망도 애정도 없다는 기분으로 단편을 시작했지만, 결말에 이를 때쯤에는 희망이 돌아와 있었다. 언제나 그런 식인 것 같다.
    -->주먹을 쓰지 않고 의사소통을 하는 방법을 익힐 만큼 성장하는 날이 오기는 할까 생각하면서 앉아 있었다.

  • 2022-11-01 22:48

    <날씨의 아이> 음악이 아주 좋았던 기억이 나네요.

  • 2022-11-01 23:10

    p54 세 번째 관점에서, <블러드차일드>는 남성 임신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언제나 남자가 가장 믿기 힘든 그런 위치에 놓이게 되면 어떨지 탐색해보고 싶었다. 남자도 여자가 하는 일은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려는 비뚤어진 경쟁심 때문이 아니고, 강요도 아니고, 호기심도 아닌 이유로 임신을 선택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궁금했다. 나는 사랑의 행동으로 임신을 하게 되는 남자, 환경적인 어려움 때문만이 아니라 그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임신을 선택하는 남자에 대한 극적인 이야기를 쓸 수 있을지 알아보고 싶었다.
    -->지난 주말에 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의 소설 "사건"을 영화화한 레벤느망을 봤다. 극 중 대학생 안이 교수에게 "여자만 걸리는 병에 걸렸어요. 집에 있는 여자로 만드는 병"이라 말하는 데, '아 그렇지, 임신이란 그런 병이지'라고 공감했다. 내게 임신은 축복이 아니라, 지난한 과정이었고 그 이후에는 나만 걸린 병 같았다. 왜 나만 이래야 하는 지. 남편이 원망스럽고 여자라는 내 신세가 정말 싫었다. 후기에서 작가가 밝히듯이 블러드차일드를 남성임신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니, 속이 다 시원했다. 이것이 SF소설이 선사하는 낯설게 하기의 효과인가.

  • 2022-11-02 00:12

    아..여기군요! ^^

  • 2022-11-02 00:50

    올립니다.

  • 2022-11-02 08:07

    메모 올립니다.

  • 2022-11-02 08:35

    메모

  • 2022-11-02 08:55

    <특사>

    그들은 우리를 이해하고 싶어했고 의사소통하고 싶어했어요. 우리가 어떻게 서로서로 어울리는지 알고 싶어 했고, 그들에게는 정상인 일들을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견딜 수 있는지도 알아야 했죠.(187)

    커뮤니티, 군체라고요. 각 커무니티에는 개별체가 수백씩 들어 있어요. 지성을 갖춘 군중이랄까요. 하지만 사실은 그것도 틀렸어요. 그 개별자들은 사실 단독으로 살아남을 수 없지만, 한 커무니티를 떠나 일시적 또는 영구적으로 다른 커뮤니티로 이동할 수 있어요. 그들은 완전히 다른 진화의 산물이에요. 내가 그들을 볼 때도, 당신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봐요. 바깥에 튀어나온 가지들, 그리고 어둠. 안에서 번뜩이는 섬광과 움직임요....(중략) 커뮤니티에 감싸이는 것은 마치 .... 편안한 구속복에 싸이는 것과 비슷해요. 그런 것을 상상할 수 있다면요. 많이 움직일 수는 없어요. 커뮤니티가 허락하지 않으면 전혀 움직일 수 없죠. 아무것도 볼 수 없어요. 그렇지만 어째서인, 처음 한 번만 지나고 나면 무섭지 않아져요. 평화롭고 쾌적하지요. (189~190)

    개념조차 없어요. 의식을 바꾼다는 개념이요. 그들은 아프거나 다치지 않는한 무의식 상태에 빠지지도 않고, 설령 독립체 몇이 의식을 잃는다고 해도 커뮤니티 전체가 의식을 잃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아요. 그러니 커뮤니티는 사실 잠을 잔다고 말할 수 없어요. 우리가 자야 한다는 현실은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받아들였지요. 어쩌다 보니 우리가 그들에게 완전히 새로운 무엇인가를 소개한 셈이에요.(191)

    그들이 나를 다룬 방식과, 외계인들이 포로생활 초기에 나를 다룬 방식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소위 인간이라는 자들은 자기들이 나를 괴롭히고 있음을 알았다는 점 뿐이에요.(201)

    나를 고문한 자들이 내 동포였다는 사실을 여러분에게 말하는 건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예요. 그자들은 나와 같은 인간이었어요. 나와 같은 언어로 말했어요. 고통와 모멸감과 두려움과 절망에 대해 나만큼 잘 알았어요. 나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자들은 하지 말자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203)

    커뮤니티의 포로 중에도 자살하는 사람은 있었죠. 그리고 커뮤니티들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죽고 싶어서 스스로 충분히 심한 상처를 입힐 수 있다면, 죽는 거였죠. 그들은 지켜보기만 했고. 하지만 죽음을 택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감싸여서 뒤틀린 안심과 평화를 얻을 수 있었다. 어째서인지 감싸이면 기분이 좋았다. 어떤 식으로든 시험받고 있지 않을 때, 포로들은 자주 감싸였다. 커뮤니티의 독립체들이 인간을 감싸면 즐겁고 편안하다는 시실을 았았기 때문이다. 그들도 노아처럼, 왜 그런지는 몰랐다. 처음에는 인간을 포로로 구속하고 검사하고 유감스럽게도 독을 쓰기 편한 방법이기 때문에 감쌌다. 하지만 커뮤니티들이 다른 이유가 없는데도 오로지 행위 자체의 즐거움을 위해 인간을 감싸안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처음에 커뮤니티들은 포로 역시 그 행위에서 즐거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203~204)
    210, 218, 219~220

  • 2022-11-02 08:59

    날씨의 아이들..처음 볼때 생각치도 못했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앞으로도 종종 생각날 거 같아요~~
    블러드차일드 메모 올립니다.

  • 2022-11-02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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