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실험일지 #78 한 트러블 메이커의 깨달음
에코실험일지 #78 트러블 메이커의 깨달음
[에코실험일지]는 2025년, 파지사유가 엮어내는
크고 작은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무언가 잘 깼다.
그릇도 잘 깨고, 계란도 잘 깨고, 분위기도 잘 깨고...
초등 6년 동안 안동-대구-부천-서울 4군데 학교를
옮겨 다녔고
이후 서울에서도 참^^ 부침 많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전학을 많이 다녀서인지 기억이 뒤죽박죽이지만,
안동에서는 골목길에서 뛰어다니느라 무릎이 깨졌고
대구에서는 시장에서 계란 온 판을 깨서 첫 가출을
시도했고
부천에서는 냉이 캐다 집을 잃어버렸고
서울에서는 반항하다가 미닫이문 창을 깼다.
그렇게 무언가를 계속 깨면서 나는 나를 문제아로
규정했다.
오히려 사춘기 이후에는 선 넘지 않게 조심하면서
나름 규범대로 살아보려고 애썼다.
물론 더 이상 무얼 깨진 않았지만 나는 좀 예민한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신기하게도 “트러블 메이커라”도 좋다는
이상한 사람이 생겨서
나는 결혼하고 애도 낳았다. 지금에 와서 보면
결혼으로 도망친 거였다.
그래도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좀 ‘사람’이 되었다.
나쁜 쓰레기에서 좋은 쓰레기가 된 거 같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나에 대해’ 다시 알고
싶어졌다.
‘나와 관계된 것들’에 대해 다시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꿈분석도 해보고 정신 분석도 해보고 공부도 시작해보았다.
공부의 시작이 파지사유와의 만남이고, 그림의 시작은 조금 더 이후였다.
공부와 그림이 나의 질문에 조금씩 답을 해주었다.
둘은 경첩처럼 서로에게 이어져 있었고 서로를
보완해주었다.
‘공부’에 대한 관심으로 재작년에는 팟캐스트
정희진의 <공부>를 즐겨 들었다.
걷고 달리며, 파지사유를 오고 가며, 좋아하는 부분은 두세 번씩 들었다.
그리고 벽돌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사두었다.
언젠가는 꼭 읽으리라 마음먹으며.
거짓말같이 다음 해 양생 프로젝트
<페미니즘 세미나>에서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읽는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렇게 나는 페미니즘 세미나를 시작했다.

첫 책은 이소진의 [증발하고 싶은 여자들]이였다. 1990년대생 여성들의 자살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는 이 책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청년 여성의 삶 전반에 걸친 노동과 가족에서의 차별, 경쟁풍토, 폭력 등을 되짚는다.
“젠더는 단순한 변수가 아니라 관점의 정치학임을
탁월하게”보여준다.
빌려 읽어서 이 책은 지금 없지만 곱씹게 되는
부분이 많다.
<자본읽기>를 하면서도 고병권샘이 말씀하신 마르크스의 르포르타주 방식 보여주기가
이 책의 서술방식과 닮아서 떠올랐다. 숫자나 계량화의 연구방식이 아닌
인터뷰를 통한 질적 연구방식은 한 사람 한 사람을
내가 직접 만나고 있는 듯했다.
특히 인터뷰이 목소리를 글로 풀어 놓으며 말의 여백까지 (쉬는 타이밍, 말을 고르는 시간, 고유의 언어적 특성 등)
느껴지는 글쓰기가 마음을 흔들었다.

시즌1의 마지막 책 [다락방의 미친 여자]는 정말
어려웠다.
빅토리아시대 여성 작가들의 문학비평이 녹록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하하하~ 그 이상이였다. 그렇지만 ‘나를 다시 읽는
작업’으로서 충분했다.
“빅토리아 시대의 조지 엘리엇이 느낀 자기모순과 자기혐오가 21세기의 나에게 손을 내민다. 베일을 벗는 일, 베일 뒤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거울의 반영에서 걸어 나와 나를 기록하는 일이 아닐까? ‘나의 기록’은 누군가처럼 가부장에 감염된 문장으로 시를 쓰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감염된 몸으로 그림을, 춤을, 관계를, 그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거울에서 빠져나왔나?......외부를 향한 전망이 제거되었다고 느낄 때의 고통을 알 것 같다. 셔터를 내린 채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자신의 반영에 집착하는 것. 그리고 무너지는 것. 다행히 지금의 나는 여기를 향한 ‘창’을 조금 열어 두었다. 여전히 <파과>(구병모 소설)의 ‘조각爪角’처럼 뭔가를 숨기고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가부장의 조력자지만 페미니즘은 알고 싶은, 그리고 읽는 변덕스러움이 ‘주제넘은 노력’이 아닌지 자신 없는 나에게 다락방의 미친 여자들은 새로운 목소리를 물려준다. 모순을 향해 나아가라고.” (시즌1 에세이 중에서)
지난 토요일, 시즌2의 마지막 책, 버틀러의 [누가 젠더를 두려워 하랴]가 끝났다.
곧 초간단 미니 에세이를 일요일까지 초읽기로
써야 한다.
시즌2가 곧 끝나지만 나는 여전히 어느 순간 트러블 메이커로 변신하고
매 순간 모순덩어리다.
그러나 페미니즘의 렌즈로 나를 다시 경험하는
작업은 아파도 즐겁다.
세미나 친구들과 함께 매번 조금씩 새로운 곳으로
이동하는 기분이다.
더 중요한 건 이런 내가 싫지 않다는 것!
그래서 내년에는 파지사유에서 페미니즘 세미나를
새로 시작한다.
파지 워크샵에 기획안을 들고 나가 까이기도 하고
무사샘과 이런저런 고민을 주고받으며 생각이
계속 옮겨간다.
지금 세미나 친구들의 의견도 듣고 내 욕망도
들여다본다.
아. 쉽지 않은 시작이지만 친구들에게 기대어 본다.
걱정되지만 그래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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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메이커 ㅋㅋ
제일 무서운 단어였는디
참이 친근한 단어로 만들어 주셨네요
참샘 책은 늘 알록달록해요 참샘같아요. 톡톡 튀는 여러 색이 잘 어울려요
어렸울 때부터 몸에 익힌 뭔가 깨는 능력
파지사유랑 넘 잘 어울리는 사람이네요
깨는 능력 점점점 키워가시길~~
트러블과 함께하기? ㅎㅎ
좋아좋아~좋아요~^^
이토록 다정한 트러블 메이커를 봤나!!!
내게 참샘은 다정하고, 잘 웃는 햇빛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