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의 논란에 돌을 던지다

청실장
2019-10-23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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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평론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조커>(2019)는 충분히 이름값을 하고 있다. 올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받는 순간부터 사실 논란은 예고된 것이었다. 아니, 어떻게 DC코믹스의 영화가 베니스에서 대상을 받을 수가 있지? 잠깐만, 조커를 연기한 배우가 바로 호아킨 피닉스라고? 메소드 연기로 이름난 배우가 히어로물의 캐릭터를 연기하다니. 두 가지의 부조화에 기인한 내적 혼란만으로도 몸은 이미 반응하고 있었다.

왼쪽이 조커를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 오른쪽은 토드 필립스 감독

 

아니나 다를까, 개봉 이후 <조커>를 둘러싼 논란이 끊이질 않고 있다. ‘씨네21’에선 아예 찬반 평론을 스페셜(10월17일자)로 다루고 있다. 칼럼니스트 위근우와 배우 유아인의 논쟁도 누리꾼들에게 이슈가 됐었다. ‘300명을 넘게 죽인 <존 윅>에 대해선 별말 없으면서, 유독 <조커>의 폭력에 대해 왜 그렇게 비판적인지 모르겠다’는 토드 필립스 감독의 불만도 이러한 연장선에 놓여있다.

왼쪽이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한 <조커>, 오른쪽이 키아누 리브스의 <존 윅>. 존 윅은 전설적인 살인청부업자로 나온다. 현재 3탄까지 나왔다.

 

DC코믹스 최고의 영화 중 하나로 꼽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2008)에서도 배트맨의 상대로 조커가 등장하지만 배우(히스 레져)의 연기와 그의 죽음이 회자되었지 윤리적인 문제로 논란이 일어나진 않았었다. 그런데, 이번에 조커를 전면에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에 대해서 이토록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동원(한겨레)의 글과 박지훈(씨네21)이 <조커>에게 긍정적 평가를 보내는 이유는 ‘익숙한 선악구도를 무너뜨리고 기존의 도덕적 잣대를 되돌아보는 과정을 통해 정신분열증 시대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면, 위근우(경향신문)와 김병규(씨네21)의 비판적 내용의 핵심은, ‘폭력에 대한 자기연민을 마치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설명하면서, 비겁한 영화적 장치 혹은 정당화하는 트릭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두 찬반 비평의 핵심은 아서가 행하는 폭력을 어떻게 볼 것이냐의 태도에 있다. 아서의 폭력은 정당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아서에게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누군가는 이를 비겁한 자기연민의 영화적 장치로 읽었고, 또 다른 이들은 사실적으로 지금의 시대를 드러낸다고 본다. <조커>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동의하지만 이러한 찬반론 모두 조커를 DC코믹스의 영화 캐릭터로 본다는 걸 전제하기 때문에 같은 한계를 안고 있다.

 

즉 <조커> 대한 잘못된 독해는 배트맨 시리즈를 통해 아서 혹은 조커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전제 하에 읽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서’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지금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아” 고정시켜 놓은 조커의 이미지 위에 윤리적인 비판을 가하는 것은 오히려 비윤리적일 수밖에 없다.

호아킨 피닉스의 전작이자 린 램지 감독의 <너는 여기에 없었다>를 같이 놓고 보면 그러한 오류는 좀 더 선명해진다. 청부살인을 하는 전직 FBI요원인 주인공 ‘조’는 선악의 구도로 파악이 안 되는 인물이다. 그의 자살이나 타살을 통한 폭력도 자기연민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조와 마찬가지로 아서가 벌인 다섯 번의 살인은 모두 그가 자신을 드러내는 자폐적이고 병적인, 그러나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봐야 한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서 조가 자살을 자신이 구원받는 방법으로 생각하듯이(물론 린 램지 감독은 다른 해법을 제시한다).

린 램지 감독의 영화 <너는 여기에 없었다>의 한 장면. 조커와는 전혀 다른 외모로 연기한 호아킨 피닉스.

 

완벽히 이 사회의 윤리 바깥에 서 있는 타자인 아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되돌아봐야 할까? 먼저 우리는 <조커>에서 조커를 뺀 아서를 봐야 한다. <조커>에서 DC코믹스를 뺀다면 무엇이 남을까? 아마도 아서의 일그러진 등짝만 남을 것이다. 외면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신체. 조커 대신 ‘제롬’이라는 이름을 사용해도 이 영화는 전율적일까? 이름은 상관없다. 그냥 ‘조’라고만 해도 충분하다. 그렇다면 <조커>는 좋은 영화일까? 그렇다.

 

좋은 영화는 ‘윤리의 기반 위에 있기(박지훈)’ 때문에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 영화들의 이야기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극장을 나오면서 삶의 이야기로 되돌아온다. 그럴 때 영화읽기는 ‘삶의 기술’이 된다. 영화보기에 머물지 않고 신체의 연장으로서 기술이 되는 영화. 즉 <조커>가 좋은 영화인 이유는 그런 ‘자기되기의 실천적 도구’이기 때문이다.

 

 

댓글 4
  • 2019-10-24 10:46

    지난 월욜 조커를 봤다. 보는 내내 영화가 비어보인다는 생각이 들었고 단조로웠다. 조커에 감정이입되기 어렵다 생각했는데 이 영화의 호평은 불평등한 구조 속 악당의 탄생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고...나는 세상과 잘 안 맞는 걸까? 이런 문제의식이 생겼다...

  • 2019-10-24 15:50

    저는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불편했어요 ㅋㅋ 악당을 그렇게 멋있게 연기하면 정말 악당이 멋있는 줄 알지 않을까요? ㅋ
    영화의 윤리적 가능성을 실현하는 관중의 능력? 또한 영화와 관중이 서로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가 있지 않나?
    음... 악당은 멋있다기 보다 찌질해야죠~ <넘버3>의 송강호처럼~

  • 2019-10-25 07:49

    저는 조커를 인상깊게 봤는데요. 우선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에 너무 몰입되서 2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갔어요. 연기가 영화의 모든 것을 끌고 간다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사람의 몸짓, 표정, 갈비뼈, 등뼈연기는 완벽했어요. 장면마다 깔리는 음악들도 "wow".
    아서가 광대 일을 할때 그리고 퇴근 후 엄마를 모실때 영화자체는 굉장히 우중충하고 어두운데, 반대로 친구를 죽이고 엄마를 죽일때에는 반대로 많은 빛이 들어와요.
    제가 이상한걸 수도 있는데, 아서가 조커로 변하는 순간, 저는 그 몸짓을 보면서 황홀하기까지 했어요. 작은 친구의 이마에 입맞춤하던 순간, 그가 아서였던 마지막 순간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이 영화때문에 사회에 윤리적 문제들이 생길 수 있어서 논쟁이 많이 되고 있지만 저는 그 문제 때문에 영화가 무조건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여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2시간동안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영화였어요. 내가 주인공이 된듯이.

  • 2019-10-25 11:50

    저는 한 사람의 영혼 속에 다른 것이 생성되어 변화를 만드는 과정에 흥분됐어요
    그것이 폭력이라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혁명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의 악의 분자가 에너지가 되어 세상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으니까요
    그것이 꼭 평화적이고 점잖을 필요는 없는거 같아요
    단 방향은 주시해봐야 할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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