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민주주의 혁명을 향하여 발제와 메모

2023-03-31 07:42
126

얘기 나눠보고 싶은 부분들 올립니다.

이 책 얇다고 만만히 봤는데 까다롭네요.

 

 

이 기술 해결지상주의에서 나는 1990년대에 지배적이었던 탈정치적 구상에 대한 기술적 판본을 본다. 디지털 기술들을 전개하면서 기술 해결지상주의자들은 탈이데올로기적 조치들을 옹호하고, 이것은 이들이 정치를 피할 수 있게 한다. 디지털 플랫폼이 정치 질서에 토대를 제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분명 정치적 적대가 극복되었고 좌와 우를 ‘좀비 범주’로 보는 제3의 길 정치인의 주장과 비슷하다.(34쪽)

 

이 합리주의적 구상에 관한 쟁점을 다루면서 나는 이러한 제도에 대한 헌신에 실재로 이쓴ㄴ 것은 합리적 정당화가 아니라, 민주시민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동일화와 수많은 실천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라는 것을 주장해왔다. 합리성에 특권을 부여하는 접근법은 민주적 가치에 대한 헌신을 지키는 과정에서 정념과 정동이 하는 중요한 역할이라는 중심요소를 제쳐놓는다.(40쪽)

 

정동과 동떨어진 합리성이라는 이상의 추구는 많은 민주주의 정치이론의 목적이지만, 자멸적인 이론적 기획이 될 뿐만 아니라, 정치적 실천을 위한 가이드가 될 경우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81쪽)

댓글 8
  • 2023-03-31 08:15

    이 책에서 간략하게 다루어서 아리까리한 부분을 샹탈 무페의 <경합들>, 특히 대담에서 발췌했습니다.

  • 2023-03-31 08:28

    발제올려요~

  • 2023-03-31 08:35

    잘못 올려서 다시 올립니다 ㅋ

  • 2023-03-31 08:56

    아휴~ ㅋㅋㅋ

  • 2023-03-31 08:57

    뚜버기
    진보라는 관념은 기독교 종말론의 세속화된 판본이라는 칼 뢰비트의 논지에 대해 논하면서 블루멘베르크는 근대 시대가 ‘자기 주장 self assertion’의 관념 형태로 참되고 새로운 질을 소유한다고 주장한다.(47)
    로티를 따라서 우리는 근대 이성이 자신이 가진 전근대적 유산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은 바로 근대 이성이 그 한계를 인정하고 총체적인 통제와 최종 조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때라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신학으로 부터 해방되는 산통을 겪으면서 스스로 자기 존재의 토대를 제공하는 이성이라는 착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 프로젝트의 기반을 반드시 약화시키지 않는다.(49)
    우리가 정치적인 것과 인식론적인 것의 두 프로젝트 사이에 필연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민주주의 정치 프로젝트는 반드시 정동으로부터 분리된 합리성의 형태로 이해되는 합리주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관념을 포기하면서도 민주주의 정치 프로젝트를 보호하기 위한 조건에 있게 된다.(40)
    정치프로젝트는 대중의 일상적 경험과 구체적인 열망을 토대로 대중에게 말할 필요가 있다. 정치 프로젝트는 대중의 현실적인 조건에서 생겨나야 하며, 대중이 파악할 수 있는 대적자를 지정해야 한다. 대중은 바로 구체적인 요구를 중심으로 정치화될 수 있는 것이지, 추상적인 반자본주의적 웅변술의 급진주의자들이 대표하려고 하는 수많은 이해 관계 집단과 함께 하지는 않는다.(58)

    블로흐는 긍정적으로 전환될 수 있었으나, 증오의 정치를 향해 맞춰져 버린 에너지인 독일 사회에 존재한 파편적인 요구들을 흡수해 버리는 능력을 히틀러의 매력이라고 보았다.(76)
    좌파 포퓰리즘 전략은 / 잘못된 것의 기원에서 지배관계를 야기하는 조건들을 다루고, 이 조건들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는 / 민주주의 프로젝트를 제공하면서, / 원한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정의를 향한 정동을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 우리/그들이라는 대립을 그려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여기에서 쟁점은 헤게모니 투쟁이며……헤게모니 투쟁은 언제나 중요한 정동적 차원을 가지고 있는 동일화를 다룬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정동을 다른 정동으로 대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더 강한 정동을 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한 스피노자를 청취해야 한다.(78)

    정동을 일깨우기 위한 관념은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가 한 사회에 고유한 사회적 세계를 도입하는 ‘상상적 의미작용’이라고 부르는 것에 연결되어야 한다.
    장석준씨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에서 발췌 : [카스토리아디스(1922-1997)가 볼 때] 해방된 사회라면, 사람들이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나가야 한다. 물론 그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고, 애당초 답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좋은 사회는 단지 각자가 스스로 좋은 삶에 관해 물음을 던지고 답을 구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에 가장 좋은 제도들을 갖추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와 현실사회주의는 모두 이런 상상력의 분출을 가로막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북돋기는커녕 하나의 신화로 상상계 전체를 식민화했다. 두 체제 다 진보의 신화로 상상계를 획일적으로 지배하려 했다. 진보의 신화에 맞춰 좋은 삶을 상상하도록 강요했고, 이 상상계 안에서 얼마나 표준에 가까워졌는지에 따라 삶을 평가하게 만들었다. …… 물론 이것은 카스토리아디스 사상의 소개로는 지나치게 간단하고 일면적이다. …… 다만 여기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탈성장론의 출발점이다. 카스토리아디스의 사상이 무르익을수록 그는 상상계를 획일적으로 지배하는 성장 신화와 대결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래서 그는 20세기 말의 선구적인 생태주의 사상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의 영향을 받은 라투슈 같은 이들은 이를 '상상계의 탈식민화' 과제라 불렀으며, 그들이 결국 합의한 더 짧은 표어가 다름 아닌 ‘탈성장’이다. …… 탈성장론은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아가고자 하는 '좋은 삶'에 관해 우리 스스로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 자문(自問)하자는 호소다. 이렇게 자문하면 누구나 마주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생각은 분명 아닌, 그리고 더 이상 의미를 찾기도 힘든 낯선 신앙이다. 도대체 왜 내가 여태껏 이 신앙에 맞춰 살아왔지? 카스토리아디스 자신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도 더 이상 진보를 진짜로 믿지 않는다. 모두가 내년에 조금 더 가지고 싶어 하지만, 행복이 연간 3%의 소비 성장에 달려 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성장의 상상계는 분명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서구에서 유일하게 유효한 상상계이기도 하다. 서구인들은 곧 해상도가 높은 텔레비전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102013134763280

    동일화가 발생하기 위해서 참여자들이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할 필요가 없으며…이들이 공유하는 것은 공통의 대적자이며, 수많은 경합적 공간에서 자신들의 구체적인 투쟁을 추구하려는 기회를 제공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거주할 수 있는 유일한 지구를 유지하려는 것이다.(106)

    목표는 자본주의를 ‘박살내는’ 것이 아니라, 앙드레 고르가 ‘비개혁적’ 개혁이라 부르는 일련의 것들을 수행하고, 평등주의적 관계들을 실현하는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협동조합적이고 아래로부터의 시민사회 중심 기획과 같은 대안적 제도들을 발전시키면서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것이다.
    앙드레 고르는 “노동을 덜 하고, 소비를 덜 하면서 보다 잘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 이렇게 욕구의 영역을 의지적으로, 집단적으로 제한함으로써, 그럼으로써만 이 자율의 영역을, 즉 자유를 확장할 수 있어야만 한다”(『에콜로지카』, 생각의 나무, 2008년, 106쪽)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 마을에서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는 세탁장, 빨래건조장, 놀이공간, 문화공간들을 만들어 에너지를 덜 쓰고 차를 덜 타는 생태적 공동생활을 제안한다. 무페가 말한믄 앙드레 고르의 ‘비개혁주의적 개혁’은 이 구성을 말하는 것일까?

    생태적 분기가 필요로 하는 깊이있는 변환이 사회운동만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하는 상상은 착각이다…선거 정치를 회피한다면 결정적인 진전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108)
    지금까지 그런 이유로 해서 선거판에 뛰어 들었다가 실패 혹은 전향해버린 기성 정치가들이 떠오른다. 어떤 차이를 만들어 낼 때 지금까지의 실패와 다른 선거정치가 가능할까?

    나는 필수적인 생태적 분기로 녹색민주주의 혁명을 구성하게 되면 / 사회,경제 및 기후 위기가 만들어내는 취약성의 감각을 이용하려는 시도와 권위주의적 안보 및 보호를 촉진하기 위해 이 감각이 불러일으킨 정동을 / 좌파가 성공적으로 무너뜨리는 전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109)
    대중의 한 사람인 나를 강하게 움직인 정동이 녹색민주주의라는 계기 안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는 분명 보호의 요구에 대한 응답 중 하나이다. 이 목표가 원한의 정동보다 더 큰 힘을 가지도록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는다.

  • 2023-03-31 09:14

    -오히려 좌파 포퓰 리즘 전략은 전진과 후퇴의 계가가 언제나 존재하는 '진지전war of poston ‘이다. -(p14)

    좌파 포플리즘은 팬데믹이라는 비상상황을 슬기롭게 이용하지 못했다. <사회불평등과 생태위기>에 대한 도전과 저항이 점철된 상황에서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낼 기회가 찾아 왔으나 대중의 요구와 정동을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에 집권에 실패했다.
    오히려 영리한 우파포플리스트들은 배제의 정동을 이용해 새로운 동일화 유형을 만들어 냈고
    ( 트럼프담론의 경우, p75)
    안보와 보호에 대한 요구(폴라니의 자기보호p31)를 틈타 디지털 거인들은 사회통제의 디지털화로 우리의 삶을 조직하고 있다. (P33)
    우파포플리즘과 디지털 거인이라는 거대 산맥을 넘어 민주주의 프로젝트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공통 정동을 통해 민주적 가치와의 동일화를 촉진하는 담론을 생산해야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p40)
    저자는 숙의정치를 통한 이루는 합의에 무리가 있다고 보고 , <경합적 대립>개념을 이야기한다.(p51)
    투쟁의 첫번째 요건은 <우리/그들이라는 구분>이고 적대적 대립이 아닌 경합적 대립을 통해 정치적 동일체를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코나투스와 리비도를 통한 공동의 정동이 정치적 신체를 구성한다는 점이
    ’누구와 연대할것인가‘라는 지점에서 해러웨이의 주장( 부분들의 접합-총체성이 아닌 부분의 연결)과 연결^^되는 부분이라 매우 흥미롭다.(p32 샌도벌의 대립 의식(유색인 여성이라는 새로운 정치집단의 형성 과정)-다층적 억압 구조에 놓인 여성들간의 차이를 횡단하는 연대 주장)
    -나아가 우리는 또한 스피노자에게서 사회적 연결이란 리비도적 본질과 같은 것이라는 논지를 발견한다. 로르동은 스피노자의 이런 부분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정치적 신체를 정의하는 관계 형식은 구체적으로 부분을 특정한 방식으로 모으는 공통 정동으로부터 나온다. 부분들의 관점에서 파악해보면, 따라서 정치적 신체란 정동의 문제이다. 인간 개개인은 합리적이고 계약을 중심으로 하는 숙의 과정을 통해서 정치적 집단화를 형성하지 못한다. 개 개인들을 함께 묶는 것은 정동이며, 이러한 정동들이 관념, 가치 그리고 공통적인 상징계를 위한 매개 수단이라는 것은 거듭 말할 가치가 있다.“-
    P80

  • 2023-03-31 09:16

    올립니다.

  • 2023-03-31 09:32

    메모 취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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