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후기2_인센티브 효과까지 생각해보자

관리쟈
2023-05-0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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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교통은 도시를 전제로 한다. 도시에서는 수많은 이동이 존재하고, 중요하다. 이동을 위해 이동수단을 발전시키는데 그것이 역설적으로 도시를 죽인다. 저자는 이동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기후 위기는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도시에서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가의 전제는 ‘걷기’이고, 걷기의 질이 보장되는가를 척도로 보면 된다. 적당한 걷기의 조건이 확보되면 거리는 느슨한 만남의 장소가 될 수 있고 자발적 시민 질서의 능력을 키울 수 있다. 이것이 저자가 기대는 기준이다.

 

물론 우리의 도시는 그러하지 못하다. "걷기 공간은 납치되었다". ‘납치’라는 표현에 대한 저자의 친절한 설명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있긴 있지만(제거되면 납치가 아니니까) 제 자리에 있지 못하고, 제 능력을 발휘할 수도 없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납치의 주범은 자동차이다. 자동차가 길을 다 차지한 거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납치의 예는 이러하다. 걷기 공간이 대형카페나 쇼핑몰, 외곽(하천길)에 있어서 거기를 가려면 차를 이용해야 한다. 납치된 공간 되찾아고기의 예는  작년에 시도된 ‘15분 도시’ 만들기 사업이다.

“개인의 형편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공기의 조건을 개선하려는 공동체 공기 기술”이 15분 도시이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제인 제이콥스는 도시는 느슨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으며 그 장소는 거리라고 한다. 15분 도시는 제이콥스의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이 메커니즘의 주축은 다시 말하지만 ‘걷기’이다. (걷기의 대표, 기린이 생각나는 군^^) 걷다보니 모이게 되고, 모이니 담소를 나누게 되고, 문제를 해결하려고 머리를 맞되게 되고, 그 속에서 자발적 시민 질서가 창출되는 것. 거리의 시민 되기, 멋진 일인 것 같다. 저자는 도시 계획에는 이런 메커니즘이 중심이 되어야 하며, 또 재편되어야 한다고 본다. 15분 도시들은 마을버스로 연결되고, 가장 친환경적인 철도가 교통의 뼈대를 이루어야 한다. 도시를 잇는 노선망에 대한 연구도 흥미롭다.

 

보통 많이 사용되는 망은 동심원구조이거나 격자구조이다. 그러나 이런 구조는 자동차 통행에 유리하게 설계된 것이고, 자동차를 증가시켜 결국은 자동차 홍수에 빠지게 한다. 뼈대인 철도와 지선인 마을버스들로 구성된 구조로는 코펜하겐의 손가락 구조가 있다.

도시인 손바닥과 도로인 손가락들로 구성된 구조이다. 손가락 사이는 녹지들이 들어서 있다고 한다. 자동차 지배 공간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교통망은 재편되어야 한다. 그 재편 방향은 손바닥과 손가락, 손가락 들의 깍지 끼기처럼 도시와 녹지가 어우러지고, 이웃 도시와 쉽게 교통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날 서울이나 도시에서 완전히 새로 설계하는 일은 어려울지도 모른다. 교통과 도시는 일상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자동차 지배 공간을 억제하는 일을 게을리할 수는 없다며 이동에 대한 숙고를 요청한다. 어떻게 이동할 것인가.

나의 이동권은 이동의 내부적 효과(마음에 드는 이동) 뿐만 아니라 외부적 효과(타자의 이동에 방해가 되는지, 도움이 되는지), 만일 나의 이동이 없을 시 일어날 인센티브 효과 등을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보통은  얼마나 빨리 편하게 이동할 것인가라는 내부적 효과만을 생각하기 쉽다. 도로 통행료나 유류세를 누가 부담할 것인가 논란을 보면 이 문제가 미처 고려하지 못한 부분이 있음을 알게 해준다.

명절 고속도로 통행료, 혼잡통행료, 교통유발부담금은 저자가 보기에는 이전부터 지켜졌어야 하는 원칙이었으나 번번히 부과에 실패해왔다. 시민 단체들은 이것을 공공성 강화의 입장으로 반대했다.

혼잡통행료 등은 원인자부담의 원칙이며, 자동차, 특히 개인 승용차에 부과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것이 사용료인가 했더니 단순히 그건 아닌 것 같다. 공공사업에 쓰이는 행정용어인데, 발생할 비용에 대해 그 원인을 제공한 자가 부담한다는 논리를 뜻한다. 이를 테면 쇼핑몰이 들어서면서 도로를 개설한다면 그 쇼핑몰이 원인자 되는 것이다. 현실은 경제 살리기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쇼핑몰에 부담을 주지 않고, 그 결과 도로를 무한 확장시켜왔다. 쇼핑몰이 도로를 만들거나 자동차라는 행위자가 도로 위 공간을 차지할 때 , 그 부정적 외부효과, 특히 더 좋은 걷기 공간을 납치하는 원인자로 보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자동차 지배를 억제하는 효과로 이것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내부 효과, 경제적 효과에 치우쳐 경색되어 있는 것은 죽어가는 도시를 살리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해결을 모색하는 장은 사실 두리뭉실해서 세미나에서도 끝이 흐지부지하다는 비판이 많았다. 그럼에도 두 가지 정도 다시 생각해볼 점 이 있는 것 같다. 도시인들이 다른 삶을 고려하고 삶의 양식을 바꾸도록 하려면 사회적 압력보다 개인의 마음에 기대는 것이 더 낫다는 주장이 첫 번째이다. 개인의 마음이라고 하지만 이는 사회적 압력의 실질적 기반을 이루는 것이라고 보는 것 같다. 거리에서의 이동처럼 마음의 이동 또한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정보에 기반해서 자기 가치감을 높이는 길일 때 마음은 가장 잘 움직인다. 길에 장애물이 있듯이 인생에도 장애물이 있을테고, 길의 외부효과처럼 마음의 외부효과도 고려해야 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각종 정책을 짤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대중교통이 매우 고급스런 가치를 지닌 교통수단이 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점은 생각해보지 못한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와 교통을 연결하며 ‘죽음’을 들고 온 점도 인상적이었다. 수명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고 그것을 누리면 호상, 그렇지 못한 ‘우연한 죽음’은 횡사라고 부른다. 기계들도 보통 수명이 있고 노화되며 폐기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개체들은 어느 하나 이런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 그러나 초개체인 시스템은 다르다. 시스템에는 정해진 수명이란게 없어서 얼마든지 확대 될 수 있다. 물론 시스템도 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죽음은 언제나 우연한 죽음이며 횡사이다. 사실 기후위기는 이런 시스템의 횡사 위기이다. 생태시스템에서 보듯 시스템의 삶은 균형맞추기에 달려 있다. 길은 횡사를 부르는 장소가 되기 쉽다. 이동의 위기는 길의 위기이며 시스템의 횡사라고 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기후 위기를 논하는 어떤 영역에서도 해당영역의 문제가 더 근본적이며 온실가스 등은 ‘증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걸 어떻게 보아야 할까? 모든 영역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중이다. 아마 어느 때보다 망의 세부적인 것까지 신경쓰고, 그 연결망에서의 위치와 역할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이번 책에서 배운 것이 그런 것이다. 세부성은 사건의 영역뿐만 아니라 고려해야할 생각의 영역이기도 하다. 내부효과+외부효과+인센티브 효과.

 

댓글 1
  • 2023-05-08 08:26

    이번에 이 저자의 신간 <오송역>이 출간되었는데, 제 sns에서 엄청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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