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선언> 후기

띠우
2023-04-14 21:48
129

우리나라가 초저신뢰 사회라는 말은 이미 공공연하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성장을 통해 사람들의 삶이 점점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 예언했지만, 지난 40년 동안 그것을 추구했던 많은 사회는 ‘돌봄의 부재, 무관심이 지배하는 곳’이 되었다. 지금은 각자의 공정을 소리 높여 외치는 사회다. 생각해보면, 각자도생과 이윤중심의 경제성장 사회는 애초부터 서로의 무관심이 전제될 수밖에 없다. 부제가 ‘상호의존의 정치학’인 <돌봄선언>은 자본주의적 경제성장 사고에서 벗어나 ‘돌봄’을 사회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우리의 활동이 정치를 만들어가야 하는 잔인한 4월, 상호의존의 정치학의 부재를 다시 한 번 실감하고 있다.

 

저자는 돌봄이 삶의 모든 수준에서 즉 친족, 공동체, 국가, 경제와 정치의 모든 영역에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한다. 이렇게 된다면 참 좋겠다. 정말 좋겠다. 그리고 우선 현재 돌봄이 어떻게 기울어진 상태로 유지되고 있는지부터 정리해나간다. 가정안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재생산 개념은 시장에 의해 착취가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확인하게 한다. 이를 넘어서기 위한 보편적 돌봄을 내세우는 것이다. 또 책에서는 여러 가지 예를 통해 친족관계가 인간사회를 넘어 동물과 환경에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설명한다. 여기서 ‘난잡한 돌봄’이라는 표현을 제시하는데, “난잡함이란 더 많은 돌봄을 실천하고 또 현재 기준에서는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난잡함’의 의미는 우리의 기존사고방식을 넘어 성적 관계가 종의 차이를 넘나드는 것이며 수많은 이종성을 긍정한다는 의미다. 종을 넘나드는 차원, 가장 먼 존재와도 돌봄이 가능해진다.  배타적 돌봄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선언이기도 하다.

 

보편적 돌봄에서 국가는 복지국가모델에서 멈추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이 태어나서 늙을 때까지 모든 생애주기에서 질 높고 융통성 있는 돌봄을 거의 무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복지국가는 능력주의를 인정하는 분위기라서 조심스럽게 논의되어야 한다. 국가의 역할에서 돌봄을 가장 앞세웠다는 것은 기존 방식을 뒤집는 효과가 있다. 이는 공공성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자본주의에 포섭되어가는 그린 뉴딜 정책, 녹색성장이 현재 유효한가에 대한 의문들이 제기되었다. 이것은 유럽중심의 이야기라는 한계를 보여주는 것으로, 우리나라는 복지국가에 접어든 적도 없이 신자유주의시대로 곧장 직행했기 때문이다. 전략적으로 복지국가를 가져온 것인지 모르지만, 탈성장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들이 나왔다.

 

메모를 두고 이야기 나눈 것들은 다양했다. 받는다는 것의 고마움을 늘 느끼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경험하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많다는 것과 뭐라도 해야 그 과정에서 서로의 돌봄이 가능해진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자유와 의존이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모두 돌봄을 가지고 있다. 부유층이 가장 돌봄에 의존하는 것이 사실이다. 또한 비장애인들은 장애인의 삶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휠체어가 움직일 수 없는 계단을 이용해 우리는 빠르게 움직인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나. 거기다 이동권에 있어서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의 이용은 노약자의 삶으로 연결되고 있으니 말이다. 전장연의 행동이 우리삶의 돌봄을 더 확장해준다는 의미다. 그 속에서 경합은 가능하지만 집단화된 경계집단은 사라져야 한다. 이번 시간에는 켄 로치가 영국복지제도의 허점을 소재로 만든 영화들도 여러편 소환되기도 했다.

 

문탁의 마을경제공부가 지녔던 급진성은 돌봄을 호혜성 개념으로 바라보았던 점이다. 우리의 마을경제는 공유의 삶을 체험하는 것에 방점이 있었고 물자공유의 실험실이었다. 이는 개인적 소비자의 선택에 중심을 주기보다는 서로를 돌보는 시민권의 모델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복을 써 온 것으로 알 수 있다. 그러한 우리의 지속적인 활동과 노력이 사회적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지속이 갖는 힘은 확대로 이어진다. 여기서 확대는 규모이기보다 경계를 넘나드는 관계의 확대로 나아가는게 아닐까 싶다. 부담스럽더라도 현재 벌어지는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갖고, 우선 참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되기도 했다. 시간과 자원이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서로에게 질문하기도 했다. 파지사유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일로 수리센터 이야기가 화제였다. 거기에 ‘사물도서관 플랫폼’도 만들어보자고 한다. 자꾸 의견이 나온다. 다음 백일장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흥미롭다.

 

이번 주에는 노라님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노라님은 아픈 동안 돌봄을 받는 경험을 통해 주변 이웃들과도 친구가 되어 서로 돌보며 살아가야겠다고 했다. 돌봄받는 것이 무능력이라고 비관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도 서로를 돌보는 경험을 우리는 노라님과 해봤으니 그게 뭔지 안다. 자율과 의존의 양면성을 눈앞에서 보여준 사람이 노라였다. 취약함을 견디는 것을 남들과 공유하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가 본 것이 무엇인가. 세상 모든 생명의 취약함이 돌봄의 근거이고 생명유지의 근거이다.

댓글 2
  • 2023-04-15 08:54

    취약함이 돌봄의 근거
    나의 취약함을 잘 알고 드러내고 돌봄을 기꺼이 받고
    그 반대의 과정도 잘 해보는 거
    그렇게 서로 돌보는 게 삶이라는 거
    개인의 차원이든 집단의 차원이든
    아는 것 같은데 모르나봐요 참 쉽지가 않으니

  • 2023-04-19 07:19

    호혜성에서 공유로, 다시 돌봄으로, 이런 키워드의 변화가 도돌이표가 아닐텐데.. 그만큼 삶이 바뀌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어요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891
<분해의 철학> 5,6장 메모 (8)
띠우 | 2023.05.26 | 조회 162
띠우 2023.05.26 162
890
분해의 철학 3,4장 후기 (1)
뚜버기 | 2023.05.25 | 조회 128
뚜버기 2023.05.25 128
889
에코프로젝트1 破之思惟-시즌1 에세이 발표 후기 (5)
뚜버기 | 2023.05.25 | 조회 208
뚜버기 2023.05.25 208
888
<분해의 철학> 두번째 시간 - 메모와 발제 (6)
| 2023.05.19 | 조회 128
2023.05.19 128
887
<분해의 철학> 1차시 후기 (2)
토토로 | 2023.05.15 | 조회 122
토토로 2023.05.15 122
886
<분해의 철학> 1차시 메모와 발제 (5)
토토로 | 2023.05.11 | 조회 160
토토로 2023.05.11 160
885
시즌1 - 나카자와 신이치와 야생의 산책, 마무리에세이발표회에 초대합니다. (11)
뚜버기 | 2023.05.09 | 조회 311
뚜버기 2023.05.09 311
884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후기2_인센티브 효과까지 생각해보자 (1)
관리쟈 | 2023.05.07 | 조회 120
관리쟈 2023.05.07 120
883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3> 후기 (4)
오늘 | 2023.05.02 | 조회 172
오늘 2023.05.02 172
882
에세이 초고, 이곳에 올려요~ (4)
새봄 | 2023.05.02 | 조회 216
새봄 2023.05.02 216
881
파지사유 破之思惟시즌2 데이비드 그레이버, 가능성들(5월31일 개강) (13)
에코실험실 | 2023.04.28 | 조회 1706
에코실험실 2023.04.28 1706
880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메모 (6)
토토로 | 2023.04.28 | 조회 102
토토로 2023.04.28 10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