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스타 책읽기> 걱정이 너무 글로벌해져 걱정 - 르디플로 1월 두번째 후기

곰곰
2022-02-23 14:44
167

르디플로 1월 두번째 시간이다. 이번에도 흥미로운 기사가 많다.  

 

  1. 사양길에 들어선 알파인 스키장. 알파인 스키에서 해방된 산.

 

바야흐로 동계올림픽 시즌이다. ‘시의성’에 진심인 우리가 동계 스포츠 관련 기사를 놓칠 순 없다. 그런데 스키가 알파인스키와 노르딕스키로 구분 된다는 거.. 다들 알고 계셨나요? 올림픽 경기를 통해 스키 종목들이야 알고 있었지만, 대중성은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우리나라에선 대부분 알파인스키, 즉 리프트 타고 높은 산에 올라가서 활강하는 스키만 타니까 외국 사람들도 그런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프랑스 전역에는 200여 개 노르딕 스키장이 있고 최근 5년 사이 매출이 50%이상 늘었다고 한다. 알파인스키는 소수의 특권층과 관광객만 누리는 스포츠가 되어가고, 이제 사람들은 적당한 적설량, 자연에서의 해방감, (알파인스키에 비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의 노르딕스키를 선호한단다. 필자는 지구 기온상승으로 고지대에 인공적으로 조성한 스키장의 폐해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으니 산을 ‘착취’하며 고수익 산업을 벌이던 행태는 그만둬야 한다고 지적한다. ‘팔기 위한’ 산이 아니라, ‘살기 위한’ 산을 위한 고심을 해야할 때가 아니냐는 그의 질문은 옳다.

그나저나 이번 베이징 올림픽만 해도 인공눈 100퍼센트라며 걱정의 목소리가 높았는데, 소치 때는 80퍼센트, 평창 때는 90퍼센트가 인공눈이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동계 올림픽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지 의문이다. 친환경까지는 기대하지 않더라도 너무 위험한 것은 아닌지, 그런데 올림픽이 없어지면 운동선수들은 다 어떻하지? 걱정이다.

 

2.  나홀로 사회.

현시점에서 세계 각국의 코로나 펜데믹에 대한 방역결과를 결산하기는 어렵지만, 예기치 못한 사회적 결과는 프랑스나 우리나 비슷한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나 보다. 처음에 우리나라 기사인 줄 알고 끝까지 다 읽었는데, 프랑스 사람이 쓴 글이 깜짝 놀랐다.

초기만 해도 정부의 온갖 칭송을 받았던 ‘펜데믹 속 영웅들’은 경제 질서라는 암흑 속에 방치되었다. 보건위기 속 금지된 대인 간 상호작용, 일상의 중요한 부분은 온라인으로 이전 가능하고 구현될 수 있다고 믿었고, 기술적으로도 실현 가능했기에 사회적 관계는 빠르게 디지털화 되었다. 더불어 공공생활의 일부분이기도 한 개인 디지털 플랫폼을 시장 법칙과 IT 대기업들의 손에 내맡겨 버렸기 때문에,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그들은 유일무이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필자는 실리콘밸리의 창업자들이 어떠한 사람들인지, IT개발자들의 일상이 원래 어떠했는지를 묘사하며 사회기반시설을 정말 그들에게 맡겨도 되는지 묻고 있는데, 새삼 섬뜩하다. 실제 사람을 만나기 보다, 외모 평가 어플 코드를 작성하면서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고, 얼굴을 마주하는 대화의 애매모호함 대신 정확하고 합리적인 ‘숫자’에서 심리적 안정을 느끼는 ‘공감 결여’의 사람들. 그러나 ‘관계성’이 수치화 될 수는 없으며 우정, 사랑, 관심, 호기심, 기쁨, 슬픔의 ‘감정’이 양적으로 평가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럼에도 그들의 정서와 정신 상태가 만든 디지털 상품은 ‘측정 가능’이 전제 조건이고, 가치에 계급을 매기고 ‘숫자’로 가치가 평가된다.

“문제는 측정이 아니라, 측정의 과도함이다. 지수가 아니라 지수에 대한 집착”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도 모든 것을 ‘수치화’하려는 광기를 목격한다. 보건 책임자는 매일 확진자 수, 입원, 백신 접종률, 사망자 수 등을 열거하며 발표한다. 대선 후보들의 지지율은 늘 수치로 보여지고 확신의 힘을 가진다. 지수들의 구성과 타당성은 기획자의 의도와 어긋나지 않은 한 논란이 되지 않는다. 이렇듯 통계에 도취한 사람들은, “이렇게 외관만 소개하는 것은 핵심을 덮는 일”이라는 말만 나오면 발끈한다. 병든 사회를 개선시켜야 하는 심각한 긴급상황에, 보건위기는 하나의 징조에 불과하겠지. 우리는 구독자든, 별이든, 작은 심장이든 수치에 목숨 거는 유튜버들과 익명성을 전제로 거칠고 노골적 댓글을 서슴치 않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하다 보니 걱정이 더 커졌다.

 

3.  자본이 강탈하는 ‘자유 소프트웨어’의 가치

 

 

카피라이트 아니고 <카피레프트>

 

30년 전만 해도, ‘소유자가 있는’ 소프트웨어에 대항하여 그와 경쟁할만한 소프트웨어 개발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이들이 있었다. 자유(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그들은 기쁨, 배움, 명성과 같은 비금전적 가치와 도덕적 이유를 중요시 했으므로, 상품의 독점권을 포기했고 코드의 자유로운 사용, 복사, 수정, 배포를 허가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안타깝게도 실리콘밸리의 거대기업들(GAFAM-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마이크로소프트)이 자유 소프트웨어를 회수하고 흡수하여 동화시켰고, 지금은 자유 소프트웨어가 IT경제 중심에 있을 정도라 한다. 무상으로 협력한 자원봉사자들 덕분에 성공했지만, 기업과 함께하는 공동 프로젝트는 ‘커뮤니티’, ‘합작’, ‘오픈’ 이라는 긍정적 용어 아래 정작 결정권을 다 빼앗겼다. 대중들은 이러한 문제에 관심이 없었고, 거대기업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편리에 중독 되었다. 개발자들 일부가 대기업 직원으로 높은 대우를 받고 가면서 혁신이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정도로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기업에 맞설 기세는 점차 약해져 가고 있다. ‘자유’ 세상의 생존 여부는, 이 싸움에 걸려있는데 말이다. 아,, 또 걱정이다.

 

4. 아리스토텔레스가 저커버그에게 존재론을 가르치는 이유.

대선주자들이 자신들의 유세 버스차량을 일컬어 ‘매타버스’(매일 타는 버스)라고 말하고, 언론에서도 후보들의 매타버스를 자주 언급한다고 한다. 꼰대들의 ‘아재급’ 유머지만, 5G 상용화와 비대면 추세가 가속화 되면서 현실 세계(Universe)를 가상 공간으로 확장한 초월적(Meta) 세계를 뜻하는 ‘메타버스’가 요즘 가장 핫한 키워드임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현실 세계에도 살고, 메타버스에서도 살아가기 시작했다. 현실에서도 다중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지만, 메타버스에서는 더더욱 다중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다. 현실 세계에서만 돈을 벌고 인간관계 쌓는 것이 아니라, 가상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익명도 가능하며 자신이 그리고 싶은 세계관으로 만들어진 자아도 가능해진다. ‘부캐’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유재석은 <놀면 뭐하니>에서 트로트 가수 유산슬이 되기도 하고, 혼성 그룹 싹쓰리의 유두래곤, 프로듀서 지미유나 유야호가 되는데, 우리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잘 받아들인다. 유재석이 새로운 캐릭터로 세계관을 만들어내는 족족 몰입해 준다. 아무리 진지하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해도 상관없다. 그렇다고 세계관 놀이가 연예인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시작은 예능 콘텐츠였지만, 그것을 받아 주고 더 확산시킨 것은 대중(특히 10-20대)이다. 솔직히 진짜 현실은 별로라서, 현실이 팍팍하고 재미 없을 때, 현실을 잊을 새로운 가상 세계가 필요한 것은 같기도 하다. 특히 10-20대는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문화에 이미 익숙하다. 그들이 메타버스 공간에서 주도적인 것은 새로운 공간과 문화에 대한 접근성이 높은 이유도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쉽사리 가질 수 없는 주도권을 그곳에서만큼은 가질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설령 그것이 판타지일지라도 사람들은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하니까. 메타버스의 매력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현실에 종속될 필요가 없다. 그곳에서 무한 자유를 얻으리라~

이쯤에서 우리는 또 걱정이 시작된다. 메타버스에서 성폭행과 같은 범죄가 생겼다는 얘기까지 들리자 절정에 이른다. 현실의 재미없음을 극복하는 계기로서 메타버스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는가, 거기서의 자유가 가치가 있을까, 그럴수록 현실에서의 미묘함과는 더욱 멀어질테고, 디지털 산업제국의 지배는 더욱 공고해지지 않을까, 등등.

기사로 돌아가자면, 내용은 페이스북이 사명을 ‘메타’로 변경한 것에 비롯되었다. ‘메타’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자연학(피지카)을 학습한 다음에, 모든 존재의 근본원리를 고구하는 학문을 형이상학(메타피키자)라 했다. 동양에서는, 형이상자를 ‘도’라고 한다는 <주역>의 말과 중국 성서의 내용을 연결해 ‘도=하나님=형이상자’로 말할 수 있고, 형이상학과 신학이 등가를 이룬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IT업계의 공룡에서 ‘메타’라는 이름으로 명명되기를 바란다니.. 우리는 또 슬퍼진다. 인간을 신과 더 가까운 존재로 만들까, 아니면 또 다른 바벨탑 쌓기에 불과할까. 그럼에도 필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리며 ‘자연’이라는 단어를 상기한다. 메타버스의 세상이 도래하더라도 그래도 근본은 인간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가 형이상학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고 존재론이라 한 것처럼, 이 시점에서 메타버스의 핵심 또한 유니버스(현실세계)일 것이다.

 

걱정이 너무 글로벌해져서 걱정일 때쯤, 마지막에 얘기한 <K-웹툰, 콘텐츠의 꽃이 되다> 덕분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거기서도 걱정할 거리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었지만, 만화라면 그냥 좋지 않은가. 아직은 페이퍼 만화가 익숙한 옛날 사람이지만 이번에 언급된 웹툰들 리스트만으로도 앞으로 한참은 재미있을 것 같아 든든해졌다.

 

이렇게 르몽드1월호는 마치고 다음 시간에는 새로운 잡지 <바람과 물>3호를 86페이지까지 읽고 자유로운 생태토크를 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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