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후기

곰곰
2023-06-08 21:28
149

김종철 선생께서 10년간 여기저기서 했던 주요한 발언들을 추려서 2019년에 한 권으로 묶은 책,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를 읽었다. 우리는 3부. 성장시대의 종언과 기본소득 부분을 함께 읽고 만났다.  

 

바야흐로 세계는 번영의 시대가 끝나고 경제성장의 종언을 알리는 징후가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 부의 불평등, 민주주의의 후퇴 등 인류가 공통으로 심각한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 있다. 선생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이러한 삶의 고통들의 근본 뿌리로, 근대 자본주의 산업문명과 자유경쟁시장, 무한 경제성장을 꼽는다. 근대 자본주의 산업화는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분리, 공동체로부터 개인의 분리, 인격체로부터 노동력의 분리, 농촌으로부터 도시의 분리를 내포하는데, 이 분리는 강제적이고 폭력적인 과정이었다. 선생은 우리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 후진국의 빈곤이 아니라, 선진국의 번영이라는 인식을 똑똑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선진국의 번영이라는 게 몇백 년에 걸친 약탈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개인은 노동력의 상품화를 통해 임금을 벌어 생활한다. 사람들은 에너지를 온통 소득과 소비 경쟁에 쏟아 부으며 살아간다. 이러한 산업문화는 인류사에서 극히 예외적인 생존방식이다. 자유경쟁시장은 말이 좋아 자유주의 경제이지, 약육강식, 우승열패, 빈익빈 부익부의 현실을 은폐하고 합리화하는,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게다가 자원과 에너지의 고갈, 프론티어의 소멸, 기후위기 등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더이상 실물경제 그 자체로는 원만한 자기증식이 되지 않자, 새로운 이윤공간으로서 금융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금융업은 거품 내지 사기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무한성장의 신화는 결국 무한 거품에 불과한 것. 그동안 이러한 위기의 징후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어떤 조치도 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선생의 우려는 절박하다. 방향전환이 더 늦는다면 아예 문명 자체가 존속 불가능할 수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성장, 그 너머를 고민해야만 한다.

 

선생은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에 주목한다. 기본소득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모든 개인에게 조건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소득을 뜻한다. 그러다보니 일을 하지 않고, 일할 의사도 없는 사람한테까지 왜 기본소득을 주며, 부자들에게도 기본소득을 줘야 하는지 의문이 들게 마련이다. 그러한 질문에 대한 합리적 답변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수혜 대상자 선별에 따르는 과다한 행정비용을 줄일 수 있다거나, 자격심사 과정에서 생기는 낙인효과를 방지할 수 있고 현행의 국가 복지 프로그램에서 생기는 소위 ‘복지의 덫’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밖에 일상적으로 겪고 있는 노예노동으로부터의 해방,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이 생활고에 대한 위협없이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는 점, 현행 교육시스템의 불합리에 기인한 학교 지옥으로부터의 해방, 혹은 작은 정부의 실현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합리적 설명들로써도 기본소득의 ‘무조건성’에 대한 의구심을 완전히 잠재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기본소득을 단지 새로운 형태의 복지 프로그램이 아닌 사회 구성원 전원이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로 간주한다면? 즉, 기본소득을 ‘시민배당금’으로 정의하는 것이다. 실제로 알래스카에서 지난 30년 동안 해온 방식이고, 남미의 에콰도르도 미흡한대로 기본소득의 일종인 현금 급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예전에 ‘더북’ 세미나에서 기본소득에 대해 ‘디저트 뉴스’를 진행한 적이 있어 그 자료를 다시 찾아보았다. 알래스카는 최소 6개월 이상 공식 거주한 모든 주민에게 조건없이 매년 이익의 일부를 배당하고 있다고 한다. 평균지급액은 1,000달러 정도로 알래스카 주 1인당 국민소득의 4-5%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뚜렷한 분배개선 효과를 보여 주었는데, 미국의 부자가구 평균소득이 26% 증가할때, 알래스카는 7%, 미국의 가난한 가구 평균소득이 12% 증가할때, 알래스카에서는 28%나 증가했다. 총소득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배당만으로, 알래스카 주는 미국에서 가장 평등한 주가 된 것이다.

 

이쯤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럼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까에 대한 걱정이 생긴다. 우선 증세를 떠올리겠지만, 기본소득의 재원을 세금에서 찾는 것보다 더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금융시스템의 공공화 내지는 은행의 공유화다. 정치적 의지의 문제로 귀결되는 셈이다. 

 

우리 사회가 치열한 정치적 논쟁을 거쳐 현재의 민간 사립은행을

다시 국민 전체의 공유재산으로 만들어 공립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기본소득에 대한 재원은 아무 걱정할 게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283)

 

통화제도의 발본적 개혁과 배당경제학의 실현이라는 아이디어가 기본소득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있다. 선생은 성장에 대한 강박관념보다 오히려 살만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민주주의지, 더 많은 경제성장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정치’라는 결론을 여기서 다시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자본주의의 어리석은 탐욕에 맞서고 기후변화가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고

다수 민중의 삶을 보호하고 자연세계를 보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은 ‘합리적인 정치’다.

그리고 현 단계에서 합리적인 정치란 온전한 의미의 민주정치뿐이다. 민주주의야말로 유일한 대안이다.(217)

 

 

노라샘은 지난 에코실험실 회의를 돌이켜보니 자신이 무언가를 병적으로 많이 만들어 많이 팔아야 하는 강박에 빠진 사람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시며 적게 생산하고 적게 소비해야 한다는 선생의 말씀에 반성했다고 하셨다. 자누리샘은 ‘먹고 살기 바빠서’ 기후위기에 꿈쩍 않는 사람들, ‘무역 아니면 살길이 없는’ 나라니 시장개방을 하자는 논리, ‘환경문제나 사회문제에 비교적 잘 대응하고 있는 사회는 선진국이니 우리도 먼저 경제를 발전시켜 선진국이 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메모해 오셨다. 자본주의의 혜택을 받은 수효는 실제로 지구 인구의 15%를 넘은 적이 없는데 우리 대부분은 나머지 85%에 속하면서 이상하게도 15%의 혜택을 누리는 착시현상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도. 그리고 희년은행에 다녀와서인지 은행의 공유화에 관심이 많이 간다고 하셨다. 느티샘은 시골살이를 결심하면서 운전 면허시험을 공부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자동차의 편리함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라는 말로 정당화하고 핑계 삼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메모해 주셨다. 띠우샘은 기본소득이 ‘시민배당’으로 불릴 때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씀하셨다. 기본소득은 불로소득이나 게으름의 양산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는 반면, 시민배당은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에 대한 긍정적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고. 한 나라의 부를 그 나라 혹은 공동체 전체의 문화적 공통유산이라고 본다면 모든 구성원은 그 부를 나누어 가질 당연한 권리가 있기에 배당받을 자격이 있다. 그러나 배워서 안다고 해도 내 것을 나누는 것조차 쉽지 않다며 정치의 역할을 얘기하셨다. 참샘은 게으름의 찬양으로 <프레드릭>이라는 동화책의 내용을 공유해 주셨다. 다른 들쥐들이 밤낮없이 열심히 일할 때 햇살을 모으고, 색깔을 모으고, 이야기를 모으며 춥고 어두운 겨울날을 준비하는 프레드릭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다음시간부터는 강의 준비에 들어간다. 올 시즌 읽은 책 중에서 <적을수록 풍요롭다>와 <분해의 철학>을 중점으로 하기로 했다. <적을수록 풍요>팀에는 노라, 뚜버기, 달팽이, 곰곰, 느티가, <분해의 철학>팀에는 자누리, 띠우, 참, 토토로, 블랙이 있다. 

댓글 3
  • 2023-06-08 21:57

    시민배당과 금융의 공공화, 그래서 김종철선생님께서 인간적인 국가를 기대한다고 말씀하셨었나봅니다
    정치가 실종된 사회에서 희망은 결국 정치에 있으니 이거 참 쉽지가않네요

  • 2023-06-08 22:29

    꽤 오래전에 쓰신 글인데도 여전히 울림이 있네요.
    변하게 별로 없어서인가?

  • 2023-06-09 01:10

    깔끔한 후기로 환기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곰샘^^
    오늘 서울에 가려고 동천역으로 내려갔는데,
    역앞 도서관 책 홍보에 !!!
    < 기본소득, 복지에서 권리로 >라고 찐하게 써있었어요. 헙!
    오래고 또한 새로운 이야기를 마음의 움직임으로 이끌어내는
    묘수는 어디에 있을까요? ?? 빈 벽에? 공공장소의 담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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