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해의 철학 3,4장 후기

뚜버기
2023-05-25 12:24
128

이번 시간엔 <분해의 철학> 3, 4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3장은 차페크(1890-1938)의 미래소설들 수편을 줄거리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로봇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이 차페크의 소설 [로봇:R.U.R]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로봇이 우리가 생각하는 기계장치가 아니라 피와 살로 이루어진 육체, 불완전한 인간이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인간의 상상에 미치지 못하는 기술적 한계로 유기체 로봇이 아닌 기계로봇이 먼저 만들어진 것 아닐까, 라는 생각과 더불어 한계를 두지않으려는 기술의 욕망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분명히 유기체 로봇 노예를 만들고도 남을 것이라는생각도 들었다.

그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줄거리 파악에 지칠 때 쯤 되자 도대체 차페크 미래소설들은 분해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부패 속에서도 번식하고 잘린 사족이 재생가능한 도룡뇽의 놀라운 재생산능력을 분해력으로 파악하며 분해력이 약해진 인간에 대비 한 정도가 분해와 연관된다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소개된 소설들은 조금씩 분별되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 자누리쌤의 분석이었다. 로봇 이야기까지는 그래도 로봇이 인간과 혼성이 가능한 대체제 였다. 그러나 인간과 혼종이 불가능한 도룡뇽이 대체제가 되자 도룡뇽은 그 분해력으로 세상을 정복한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분해, 다음 단계의 분해자들이 분해할 것을 남기지 않은 파괴적인 분해, 새로운 전체를 짤 수 있는 부분조차 남기지 않는 분해는 회복불가능하다는 것을 차페크는 이야기 한다.

5장에서는 넝마주이의 세계를 다룬다. 저자는 넝마주의 작업은 훔치는 것과 줍는 것, 법과 일상의 애매한 경계 영역에 있는 것이라 말한다. 즉 상품세계에서 하강해 온 것들을 다시 상품세계로 되돌리기까지의 사이 공간, 즉 소유권 제도의 공백지대를 치고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양아치에 새로운 지위를 부여하는 호시노와 나카나의 관점이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계급과 구별지어 양아치들을 룸펜프로레아트들을 쓰레기라고 경멸했지만 호시노와는 이들을 생산수단(리어카)를 지닌 자유로운 경제활동자로 격상시켜 사회의 훌륭한 일원으로 여겼다.

“양아치들은 그 존재 자체가 혁명가들에게도 가시화되기 어렵고 잠복적이다. 상황을 완전히 역전시키는 넝마주이의 힘은 마르크스와 그 지지자들이 상상하는 혁명의 담당자로부터 빠져나가버린 덕분에, 아직 세계의 가치의 역전에 활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있다. 그런 의미에서 분해의 철학은 마르크스와 자본주의가 공통으로 ‘누락시킨 것’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가치의 진정한 역전은 세계를 분쇄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세계를 비옥하게 하는 일에 존재한다.” (217)

양아치라는 단어를 선택한 번역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양아치를 넝마주이로 연상하기보다는 빈둥대고 기생하면서 사기도 칠 것 같은 사람들에게 부정적으로 사용하는 데 적절한 번역일까?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와 책에 나온 사례들은 좀 다르게도 보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결국은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번역자가 인용한 장석만씨의 ‘양아치’론을 읽어보면 역사적으로도 같은 맥락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https://mrelinhuman.tistory.com/21 ) 그렇다면 양아치들은 <제국>에서 개념화한 다중의 일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다중은 네트워크기반의 게릴라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분해자의 면모가 중요한 양아치는 촛점을 맞추는 부분이 다르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들이 오갔다. 3장에서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차페크의 작품들을 샅샅히 훑었고 4장에서도 지나칠 정도로 개미촌과 동자협 그리고 연관 인물들의 인생역정을 세세히 다룬다. 왜 그렇게까지 자세히 써내려가는 걸까, 또한 재활용, 넝마주이가 분해자인가, 이런 의문들이 스쳐갔다. 책을 끝까지 읽은 블랙커피에 의하면 분해자를 이론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5장에서 나오는데 3, 4장의 호흡을 같이 해야 5장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양아치는 혁명을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양아치 세계의 작용과 구조는 혁명과는 다른 세상의 변화 방식을 태내에 갖추고 있다. 각개인의 부끄러움을 넘어선 흥분과 망아가 모임으로써 각 개체의 의도나 목적과는 다른 전체적인 움직임이 산출되고 그것이 각 개인의 행위를 근저에서 지켜보며 돕는 것이다.”(252)

메모에서 달팽이는 차페크의 정원가로서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글을 발췌해서 소개해 주었다. 또 집안 울타리역할을 하는 나무에 붙은 깍지벌레로 고민이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정원가로서 정원의 꽃나무와 벌레들까지 함께 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느티쌤은 넝마주이의 분해이야기를 읽으면서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와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르면서 울컥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누리쌤의 메모는 지금껏 우리가 순환되는 것에 가치를 부여해 왔던 것을 다시 생각해보면서 분해자 없는 순환이 아니라 썩는 것의 다단계 분해에 주목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답은 암웨이에 있는 것인가^^. 토토로는 탈성장에 꼭 필요한 능력은 생산력이 아닌 분해력이라는 정답!을 말해주었다. 그리고 문탁의 넝마주이들과 함께 유쾌한 양아치되기를 실천하자고 했다. 나는 4장을 읽으면서 사라져가는 엿장수, 넝마주이들이 그리고 줍고 발견하는 기쁨을 알게 해준 반짝 이어가게가 떠올랐다. 지금은 쓰레기들 마저 단조로워지고 있어서 쓰레기가 과연 분해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얘기가 오갔다. 단지 발행부수를 올리기 위해 인쇄되어 고물상으로 직행하는 신문쓰레기들도 있다니 경악스러운 일이다.

댓글 1
  • 2023-05-25 15:47

    세미나시간예 중요하게 나온 사항들이 후기에 다 적혀있네요.
    저는 벌써 반은 까먹어가고 있었는데..

    덕분에 복습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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