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반복 노동에 대해

청량리
2010-05-14 23:37
3007

 

단순반복 노동에 대해

 

글 : 황대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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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농장에서 하는 일의 대부분은 단순반복 노동이다. 풀매기에서 시작하여, 밭 만들기, 씨앗 심기,

 

퇴비 만들기, 수확하기힘을 많이 쓰는 것은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지루한 단순반복 노동이 하나 있는데

 

바로 나물 다듬기이다. 산야를 다니면서 나물을 채취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뜯어온 나물을 일일이 다듬어 요리하는 일은 극도의 인내심을 요구한다. 이런 일은 대부분 여자들이

 

감당하기 마련이라서 먹기만 하는 남자들은 그 고통과 인내를 알지 못한다.

 

식당이나 남의 집에 놀러가서 밥상에 맛있는 나물반찬이 나오면 무조건 주인에게 두 번 인사해야 한다.

 

한 번은 밥 잘 먹었다는 것이고, 또 한 번은 나물이 참 맛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대여섯 시간 동안 쭈그리고 앉아서 만들어 놓았는데 단 몇 분만에 먹어치우고는

 

아무런 반응도 없이 나가버릴 때 주인이 느껴야 할 허탈감을.

 

도시에 살다가 귀농을 결심한 이들에게 가장 큰 두려움은

 

이러한 단순반복 노동을 어떻게 극복하는 가이다.

 

투입된 시간에 비해 얼마나 많은 결과를 만들어 내었느냐 하는 성과 위주의 삶에

 

익숙한 도시인이 시골에 내려와 물 쓰듯 시간을 쓰며 하는 단순반복 노동에 절망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Back from the Land>라는 책을 쓴 한 미국 여인의 경우도 그렇다.

 

쉬운 우리말로 하면 '귀농실패자의 체험담'쯤인 책인데, 이 여인은 어느 날 토마토케쳡 한 병을 만들기 위해

 

하루 낮을 다 소진하다가 문득 여기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한다. 어찌 이런 일이 미국에서만 있는 일이겠나.

 

돈 몇 천 원이면 마트에 가서 한순간에 끝낼 일을 며칠을 두고 고민학 노력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현실을

 

'즐겁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귀농은 결국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마음에 그어 놓은 경계선만 살짝 넘으면 얼마든지 '편한' 삶이 가능한 시대인지라

 

특별한 철학이나 의지가 없으면 끊임없는 갈등에 휩싸이게 마련이다. 다시 이농을 결심하는 이들에게 단순반복 노동은

 

단지 그렇게(이농을) 결행하게 된 계기일 뿐 근본 이유는 아닐 수 있다.

 

귀농의 첫째 이유가 모든 게 상품을 처리되는 번잡한 도시 생활을 떠나 '단순소박'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고,

 

단순소박한 삶의 뿌리는 단순반복 노동이다. 그러므로 단순반복 노동에 대한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삶이 고단하고 지루해진다.

 

그러나 보수 때문에 노동의 단조로움을 견디는 것은 도시 노동자도 똑같다. 시골에서의 단순반복 노동은 노동 그 자체를

 

정신적 차원으로 승화시키는가 문제이다.

 

굳이 반복을 통해 일종의 무아지경(트랜스)상태에 빠지지 않더라도 대자연 속에서, 또는 공동체 속에서 반복되는

 

단순노동을 통해 세상이 만들어준 '거짓 나'가 소멸되는 느낌을 확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만약 이 '느낌'을 언제라도 느낄 수 있다면 '먹고 사는' 노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구식 현대교육을 받은 오늘의 젊은이들은 무슨 일을 하든 일을 기획하고 준비하고 주어진 기간 안에 마치기 위해

 

효율성 있는 작업을 해야만 제대로 일한 것으로 안다. 이 과정에서 노동은 단지 일의 성과를 내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는 노동이나 실험적인 노동, 혹은 쓸모없어 보이는 노동은 모두

 

기피 대상이 된다. 노동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도구로 인식되는 현대의 조건에서 당연한 일이겠으나

 

 '하고 또 하는 가운데 묘한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옛 사람의 말을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이것은 관념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말이다. 실제로 하고 또 해 봐야 과연 묘한 이치가 있는 지 없는 지 알게 된다.

 

어쩌면 하고 또 해 보아도 묘한 이치가 없을 수도 있다.

 

아, 그러나 어쩌랴, 없다고 확인하는 그 다음 순간에 묘한 이치가 기다리고 있으니!

  

 

 

 

- 위 글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2010년 5월 푸른달호에 실린 황대권 선생님의 글 '단순반복 노동에 대해'를 부분 발췌, 옮겨 적은 것입니다.

 

 

 

댓글 1
  • 2010-06-28 20:01

    이 글을 접하니 옆지기가 제게 속삭이는 말같네요 ... 벌써  11년전 일인것 같아요 ...녹색평론  민들레를 접하면서  귀농을 하자고했던 제게 ...지금은 미래를 위해  할수 있는것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사니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그때 시골삶에 목말라하던 차에 시댁에서 돌된  아이를 데리고 생활하던 중 ..아이가 가와사키로 인해 고통받을때 의원에서 하는 일은 고작 좌약을 항문에 넣는 일과  아주대 병원을 찾았을때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식중독이라 판명을 ..근데 옆지기가 아는 지인에게 물었더니 가와사키같다고 해서 제가 흘린 말로 다시 교정진단하는 시츄에이션이란 ...부모로서 아이에게 해 줄수 있는거란 처방전에 맞춰 약을 먹이는 일과 어렵게 입원을 시키는 일 외엔 ..또 스테로이드제가 듬뿍 함유된 약물을 손등에 주사를 삽입해 주입하는데 ..간호사의 실수로 여러번 이 곳 저 곳을 찌르는 모습을 걍 물끄러미 바라만 볼 뿐 아무런 대책이없는 무력한 존재임을 뼈저리게 느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요 ..큰아인 언제나 부모에겐 마루타같은 존재일 수 밖에...그래서 결국 대체의료를 접하고 침뜸세계에 진입할 수 있었으니 감사할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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