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자본론-녹색자본론(9)

뚜버기
2018-10-03 23:27
242

 

그리스도교는 삼위일체구조로 스스로를 만들어 냄으로써, 일신교의 도그마에 사이버네틱스의 요소(‘성부성자에게 유전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는 메커니즘)와 부유하는 시니피앙의 요소(‘성령이 행하는 사랑과 의지로 충만해지는 증식의 메커니즘)를 짜넣었다. 전자는 화폐의 본질에, 후자는 상품과 자본의 본질에 연결되고 그것들이 보로메오의 고리처럼 결합하여 그리스도교적 서구는 사회의 부를 상품의 집적으로 낳는 자본주의를 발달시킨 것이다. “그리스도교도의 양의 성질이 신의 어린양과 동등성으로 나타난다고 하듯이, 거기서는 항상 상품에 내재하는 잉여 가치를 만들어 내려는 성질이 신의 삼위 일체와의 동등성으로 나타나게 된다. 게다가 상품으로 체화된 성령의 발동은 강렬한 것이다. 이렇게 자본주의 초기에 프로테스탄트의 자유영 운동이 보로메오의 고리로부터 성령의 해방을 가져왔던 것처럼, 이윤의 추구가 목적으로 된 사회에서는, 모든 시니피앙이 법과 현실세계와의 연결을 잃고 부유화해서는 결국은 무의미화하는 경향이 깊어지게 된다. 즉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가상화 되어간다.

이슬람이 그리스도교적 서구를 통렬히 비판하며 그것에 총력을 기울이여 반대해 온 심층에는 이런 일신교 내부에서의 심각한 원리상의 갈등이 도사리고 있다. 원리에서 이슬람은, 일신교 순정의 논리인 타우히드에 의해서 상징계와 실재계를 직접적으로 연결하고 상상계(이는 여성의 것이기도 하다)에서 일어나는 시니피앙의 장난을 상징계에 확실히 핀으로 고정함으로써, 이 현실 세계를 확실한 의미로 채우려 해왔다.

이슬람의 논리는 세계가 가상화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바람의 살랑거림과 빛의 반짝임도 그대로 알라이고마음에 떠오르는 끝없는 이미지도 알라의 의지의 현현이다이슬람은 자본주의를 혐오하고자신들의 세계에 그것이 침입하는 것을 중대한 악으로 취급한다원리적으로 이슬람은 이윤이 생겨나는 풍요로운 사회를 거부하고세계가 의미로 충만하여 있는 쪽을 선택하려 한다그 세계는 모든 것이 직접적이어서 자본주의의 눈으로 보면 뒤쳐진 가난한 사회로 보일지도 모르지만인간이 의미로 살아가는 동물인 한에서는 훨씬 더 풍요로운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스도교도 최대의 명절이 크리스마스이고 이슬람의 명절이 라마단인 것은 이런 의미에서 매우 상징적이다로마인의 농경축제인 사투르누스 축제를 그리스도의 탄생 기념일에 결부시킨 크리스마스는모든 의미에서 ‘증식을 축하하는 축제이다이 세상에 구세주만 출현한 것은 아니다한겨울이라는 시기를 택한 이 축제는, 여러 ‘이 들끓고 가장행렬과 함께 출현한 죽은 자들이 신령한 힘으로 가득한 ‘부유하는 시니피앙을 흩뿌리며 다음 해의 풍요를 약속한다그러므로 자본주의 시대가 되자 크리스마스가 그 자본주의 자체를 끓어오르게 하는 축제가 된 것은 당연하다이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산타크로스로 상징되는 ‘증여의 영이 배회한다어린이들의 머리맡에는 통 큰 증여의 정신으로 충만한 ‘성령이 내려온다메리 크리스마스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가 추구하는 것은 증식이고, ‘매일이 크리스마스인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꿈이다.

똑같이 겨울(이슬람력 9)에 이슬람은 라마단 달의 단식 의례를 축하한다.

 

인류을 위한 길잡이로 그리고 옳고 그름의 기준으로 라마단 달에 꾸란이 계시되었나니 그달에 임하는 너희 모두는 재계 하라. 그러나 병중이거나 여행 중일 경우는 다른 날로 대체하면 되니라.

알라는 너희로 하여금 고충을 원치 않으시니 그 일정을 채우고 너희로 하여금 편의를 원하시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복음을 주신 알라께 경배하며 감사하라.(꾸란 알 바까라 185)

 

(……) 아부 후라이라에 따르면 신의 사도가 말했다. ‘단식은 방패와 같다. 단식을 행하는 자는 음탕하고 무례한 일을 하지마라. 만일 다른 사람이 그를 습격하거나 상처 입히려 할 때 나는 단식 중이다, 라고 두 번 말하라. 내 혼이 그 수중에 있는 알라에게 머물게 하고 단식하는 자의 입냄새는 알라에게 있어서 사향의 향보다 좋다. 알라가 말하길 그는 나를 위해 먹는 것, 마시는 것, 그리고 모든 욕망을 끊었다. 따라서 나는 그의 선행에 대해 10배의 보상을 하겠다.”’ (하디스 2 단식의 서)

 

여기에서는 증식의 반대가 칭송되고 있다. 욕망을 끊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더라도 욕망을 줄이는 일이 신을 기쁘게 한다. “이는 너희가 정해진 기간의 단식을 완수해서 가르침에 알라를 경배하기 위함이고, 필시 너희는 신에게 감사할 것이다.” 이때 단식하는 자는 알라의 임재를 똑똑히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의지가 티끌이나 먼지에 이르기까지 이 세계를 구성하는 모든 존재자의 신체에 침투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만일 다른 사람이 그를 습격하거나 상처 입히려 할 때 나는 단식 중이다 라고 두 번 말하라.” 이번에도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따라서 자신들을 덮치려고 하는 자들을 향해 두 번 아니 세 번 네 번이나 나는 단식 중이다 라고 호소했는데도, 크리스마스축제 준비를 앞둔 (자칭) 그리스도교도들은 전혀 폭격의 기세를 늦추려 하지 않았다.

 

에필로그 : 수크에서

 

 잘 오셨습니다. 여기 한할릴리의 수크는 카이로에서도 유수한 수크입니다. 특히 이 일대는 향수상들이 가게를 나란히 하고 있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 일본인 손님도 자주 오십니다. 어떤 향수를 찾고 계십니까? 저희 가게에는 온갖 종류의 향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말로 모든 종류입니다. 그것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향수를 만들어 드립니다. 아주 조금, 1 밀리그램 분량의 차이만으로 전혀 다른 향수가 생겨납니다. 기성품 같은 것이요? 그런 것은 두지 않습니다. 손님 한 사람 한 사람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본래 같은 상품을 다른 사람에게 판매지도 않습니다. 저희는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과 기호를 여쭙고 그런 다음에, 뭐라고 할까요 상인의 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손님이 그리는 향에 딱 맞는 향수를 이곳에서 조합합니다

 이 근방의 분들은 카이로 중심부 근처의 아메리카화된 분들과는 달라서 절대로 타인과 같은 복장은 하지 않고, 같은 향수도 뿌리지 않고, 하물며 뭐가 유행한다고 해서 다른 사람과 같은 유행품을 몸에 걸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른 욕망을 품고 있습니다. 알라는 진실로 위대한 분이라서 자신을 하나로서 같은 것으로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욕망은 천차만별입니다. 그 천차만별한 욕망을 맞이하여 각각을 만족시키는 상품을 준비해 두는 것이 우리 상인의 임무입니다

 다른 욕망을 품고 어딘가의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완전히 똑같은 상품을 수크에 오는 손님에게 강요하는 것은 상인의 도에 벗어난 저속한 행위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런 것이라면 상인이 존재하는 의미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상인은 단지 화폐를 자신의 호주머니에 담고 축재하고 싶을 뿐이므로 손님도 상품도 한 번도 진심으로 생각한 적 없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아니 저뿐만 아니라 이 부근 가게의 주인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저는 상인이란, 하나로 같아지지 않는 손님 쪽의 욕망과 그것에 대응하여 이쪽도 천차만별의 차이를 가진 상품을 만나게 하여 쌍방이 , 이것은 좋은 만남이었다라고 기쁘게 상품을 사주는, 그런 만남을 실수 없이 준비해 보이는 인간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정가 표시는 어디에 있냐고요그런 것은 없습니다손님과 상품의 만남은차례로 얼굴을 변화시킵니다어떤 만남도 미묘하게 변화해갑니다그러한 변화를 품는 것에 ‘상관없는 인간이 멋대로 정가 등을 붙인다면 어떻게 될까요아시겠습니까수크의 쇼핑이란 제비뽑기나 게임같은 것입니다그 때 그 때 차례로 새로운 국면이 열려지고어디에 겨우 다다를지를 미리 결정해둘 수 없는 게임입니다잘 되지 않으면 손님은 못 사고 가버릴 것이고잘 되면 손님은 기뻐하며 교섭의 결과 정해진 값을 지불하고 마음에 든 상품을 가지고 돌아가게 될 것이지요어떠세요재미있지요조금은 품과 시간은 들지만그것이 인간이 품은 욕망과 상품과의 매우 정직하고 좋은 만남 방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까아아긴 이야기를 했네요손님이 어떤 향수를 바랬던지 생각해 낼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이제 주문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우선 이 향기를 맡아봐 주십시오······.

 

이슬람은 오랜 역사를 거쳐 인간이 사는 세계의 구석구석까지 일관된 원리를 침투시키려고 했는데그것이 가장 인상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전통적인 수크에서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상업의 방식인 것이다이슬람은 일신교의 원리에 충실하게, 화폐와 상품 속에서 설치되어 시니피앙 부분을 ‘마술적으로 조작하고 거기에서 부당한 이윤을 획득하는 것을 엄하게 금지해왔다특히 그것은, ‘20마의 아마포=한 벌의 저고리라고 하는상품교환의 가장 원초적인 장면에서 아무렇지 않게 작동을 시작하여 상품으로써의 화폐를 생산할 뿐만 아니라 그 화폐가 화폐를 낳도록 해서 가치증식의 과정이 시작되었다고 하는심연 미묘한 경제학적 분석을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선 이 원초적 장면에서 자본주의로 향하는 길을 굳게 닫으려고 해왔던 것이다

마르크스가 분석한 “20마의 아마포 = 한 벌의 저고리에는, 매혹적인 상품인 저고리가 등가형태로서 상대적 가치형태인 아마포의 가치를 표현하는 것의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맹아를 만들어내는 최소단위의 세포였다. 이슬람의 원리는 이 세포에 개입하여 잉여가치 발생의 프로세스를 최소상황으로 조절하려고 해 왔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마포와 저고리가 일체의 마술적인 부풀림을 배제한 상태로 완전히 대등한 입장에서 마주 향한 상황이 만들어져야만 할 것이다. 즉 욕망과 상품이 대등하게 마주 향한 상태가 시장의 최소단위인 손님과 상인의 마주침의 장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자본주의와 다른 이슬람 경제의 실재라는 것들은 단지 환상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릴 것이다.

이슬람 전통경제의 장소인 수크는 실제로 그것이 행해지고 있었고 지금도 행해지고 있다. 수크에서 행해지는 상업의 실태 연구를 훌륭하게 거듭해온 쿠로다 토시오는 스피노자적 사고를 정교하게 이용하여 수크 상업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간단히 수크의 특징을 일별해보자. 좁은 통로 양쪽에는 협소한 입구를 가진 상점들이 시끌벅적하게 어울려서 동일한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의류품 시장에는 같은 종류의 상품을 취급하는 작은 가게들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데 자본의 규모가 크든 작든 가게 넓이는 거의 일정하다. 광고와 선전류는 일절 없고 여기에는 박리다매의 대량 생산은 통용되지 않는다. 상품의 규격화획일화라는 일물일가(一物一價)의 정가제 거래를 성립시켜 사람으로부터 상행위를 유리비약시키게 만드는 계기는 당연히 배제된다. 여기서 사는 쪽은 심급이 다른 무한히 차이나는 욕구를 가지고 나타나며 상품 쪽도 그에 응하기 위해 똑같이 차이성을 갖추고 나타난다. 사려는 쪽의 한없이 차이나는 욕구와 상품을 연결시키는 데는 그저 가격을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이 복잡한 관계를 적확하게 결합시키는 사람으로서의 숙달된 상인의 존재가 필요하다. 다양한 심급에 속하는 이질적인 상품이 나타나는 장소에서는 (……) 무엇보다도 상인에 대한 신용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신용을 기대하게 하는 전통경제에서 상인들은 거기에 어울리게 살며 자신의 직업에 대해 흔들림없는 자부심을 품고 있다. “시장에 상품을 가져오는 자는 신에게 상을 받는다.” 여기서는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는 차이나는, 다른 종류의 이슬람의 가치관이 그들의 일상을 아래로부터 강하게 지탱하고 있다. (……) 대량생산, 대형유통기구, 상품의 규격화, 정가제 판매, 인위적인 욕망의 창출. 이슬람의 전통경제는, 근대 자본주의에 특유한 이런 종류의, ‘사람의 단위성을 초월한 기능적 발전을 엄격히 거부하기를 계속해 왔다.(이슬람 경제론해제)

 

이러한 경제세계에서는 약육강식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경제행위의 장소에서도 상징계와 실재계의 직접적인 일치의 원칙이 지켜지고 있기 때문에 현실보다 훨씬 비대한 이미지를 조작하여(상상계의 부풀린 조작) 유행을 만들어 소비자의 욕망의 콧등을 끌고 돌아다니는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거대자본이 제공하는 규격화제품에 사람들의 욕망이 빨려 들어가는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 전통적인 수크가 기능하고 있는 곳에서는 상인들이 평화공존하고 있으며 근처에 거대자본의 수퍼마켓이 진출하는 사태를 단호히 허용하지 않는다. (쿠로다, 앞의 논문)

 

수크의 상인과 그것을 지지하는 소비자들은 지역공동체의 원리에 의지하여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별종의 경제 시스템을 지키려는 것은 아니다. 이슬람에서는, 자기증식을 행하려는 것에 맞서는 일신교적 비판의 원리라는 이슬람 세계 공통의 사고가 그 생활윤리를 지탱하고 있다. 그 사고의 소립자 수준에 이르기까지의 일관성에 대해 부여된 이름이 타우히드이고 알라에 대한 신앙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자연적 지성이 만들어낸 세계에 대한 하나의 투철한 비판 시스템의 작동을 볼 수 있다. 이슬람이란 그 존재 자체가 하나의 경제학 비판이다. 원리로서의 이슬람은 거대한 한 권의 살아있는 녹색 자본론이다. 자본주의에서의 타자는 이 지구상에 분명히 실재한다. 이슬람은 우리 세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거울이다.

댓글 0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074
p196~200단어 (4)
띠우 | 2023.02.03 | 조회 209
띠우 2023.02.03 209
1073
人新世の⌈資本論⌋ p.187~189 단어 (5)
꼭지 | 2023.01.29 | 조회 200
꼭지 2023.01.29 200
1072
『はじめてのスピノザ(처음 만나는 스피노자)』번역 교정 올립니다. (1)
겨울 | 2023.01.15 | 조회 258
겨울 2023.01.15 258
1071
人新世の⌈資本論⌋ p.172~175 단어 (4)
꼭지 | 2023.01.15 | 조회 252
꼭지 2023.01.15 252
1070
人新世の⌈資本論⌋ p.160~162 단어 (4)
꼭지 | 2023.01.08 | 조회 206
꼭지 2023.01.08 206
1069
人新世の⌈資本論⌋ p.148~150 단어 (4)
꼭지 | 2022.12.10 | 조회 196
꼭지 2022.12.10 196
1068
人新世の⌈資本論⌋ p.137~138 (4)
꼭지 | 2022.12.03 | 조회 254
꼭지 2022.12.03 254
1067
人新世の⌈資本論⌋ p.124~126 단어 (4)
꼭지 | 2022.11.27 | 조회 191
꼭지 2022.11.27 191
1066
人新世の⌈資本論⌋ p.107~110 단어 (4)
꼭지 | 2022.11.20 | 조회 204
꼭지 2022.11.20 204
1065
人新世の⌈資本論⌋ p.107~109 단어 (3)
꼭지 | 2022.11.12 | 조회 188
꼭지 2022.11.12 188
1064
인신세의 <자본론> p86~88 단어 (4)
띠우 | 2022.11.06 | 조회 168
띠우 2022.11.06 168
1063
인신세의 <자본론> p80~81 단어 (2)
초빈 | 2022.10.30 | 조회 178
초빈 2022.10.30 17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