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야전과 영원 1부 제23절 「다른」향락

썰매
2015-05-14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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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여성의 향락, 대타자의 향락 ― 정신분석의 임계점


제23절 「다른」향락

    하나만 미리 말해 둔다. 여성의 향락, 그것은 대타자의 향락이다. 이 여성의 향락=대타자의 향락은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꼼짝 못하고, 무서워 몸을 피하는 향락이다. 우리는 방금그렇게 말했다. 실은 라캉도 예외일 수 없다. 그가 이것을 잘라 말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또한, 주의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지금까지도 몇 번인가 인용해 왔고, 또 앞으로 제2부에서 길게 논하게 될 피에르 르장드르의 관점을 미리 말하자면, 이 사회를 창출해 가는 향락을 「여성의 향락」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신을「남성」화 한 그리스도교 영향을 받은 사회에서만 통용되는「하나의 버전」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상관없다. 여기에서는 라캉의 논리에 집중해서 다시 시작해 보자.

    우선, 인용을 계속하겠다. 라캉은 1972년 12월 19일의 세미나『앙코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에 강조했던 것처럼 향락이라는 것은 사랑의 표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팔루스의 향락을 지탱해주려는 것이고, 우리를 팔루스 향락의 수준으로 향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확실히 대타자의 향락(La jouissance de l’Autre)이라고 부르는 것, 이것은 여기에서는 상징화된 것이지만, 완전히 별개의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체가 아니(pas-tout)」라는 것이죠. 이것에 대해서 이제부터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또, 73년 2월 13일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다음은, 여성 쪽에 있는 하나의 방식에 대해 말해볼까 합니다 ―이「여성(La femme)」정관사 la에는 사선이 그어져야만 합니다만 ― 이것은 성적관계가 없다는 것을 보충해 온 대상a와는 다른 것입니다.


    다른 향락이 있다. 팔루스의 향락도, 대상 a의 향락도 아닌 「여성 쪽에 있는」 대타자의 향락이. 그러나 이 「정관사에 사선이 그어진」 「전체가 아닌」 여성이란 무엇일까. 그는 말한다. 「여성(La femme)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전칭으로 나타내도록 정의되는 관사입니다.」 「그 본질부터도 그녀는 『전체가 아닌』 것입니다.」 정관사로 나타내어지는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여성은 .......이다」라는 명제는 성립하지 않고, 「모든 여성」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전체」로는 이해되지 않는 무엇인가가 여성이고 그의 향락이다. 라캉은 계속한다. 여성(La femme)에 붙어있는 「이 la는 시니피앙이다.」라고. 라캉은 또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예측되는 오해를 사전에 피하기 위해 이렇게 말을 잇는다. 「그렇다고 해서,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그녀가 배제된다는 것은 아니지요. 확실히 전체가 아니라는 것에서, 그녀는 팔루스적인 기능으로 보이는 향락에 비해, 초과하는 듯한 향락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를 부탁드리는 바는, 저는 초과적(supplémentaire)이라고 말하는 것이지 그것의 보완(complémentaire)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부가 향락하는 것은 「전체 여성」이었다. 따라서 그는 신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이 세계에 나오면 모든 여성을 향락하려고 분주하고, 농락한 여성을 의기양양하게 열거하는 돈 후앙의 모습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기도이다. 여성은 전체가 아니고 전부인 여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므로. 따라서 그의 모습은 약간은 가엽고 조금은 우스꽝스럽다. 그렇다, 라캉도 확실히 서술하고 있듯이 그는 어디까지나 「셀 수 있는」여성만 상대한다. 트레유네르를 꿰뚫을 수 있는, 1로 세어질 수 있는, 동일성이라는 전체성으로 제약되는, La라는 시니피앙을 갖춘 여성만 상대한다. 요약하면, 그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시니피앙이고 그 뿐이다. 물론 그도 여러 여성의 관능적인 자태나 풍성한 머리카락이나 보조개나 애교점이나 입술이나 속눈썹이나 뒷모습에 관하여, 상세히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몹시 감미로운 추억으로. 그러나 그것도 재차 환유의 구조 속에 있는 것에 불과하다. 실제, 우리가 편력해 온 논지는 모두「전체」에 따라붙는 것이었다. 자기 이미지는「전체상」이었다. 시니피앙 전체는「시니피앙의 보고」인 대타자에게 얻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상상적 팔루스는 어머니와 자식 간에는「전부」였다. 상징적 팔루스는 성행위에서 중심이고「전부」였다. 대상a도 신체에서 어떤 것이 빠진 무엇이며,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스스로의 전체성을,「전부」를 추구하는 것과 동일했다. 전부를 손에 넣고 싶고 전체이고 싶다. 우리의 욕망은 1로 세어지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집합의「전체」, 통일된「전부」를 찾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단순하게 부정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은「전체는 아니다」. 여성은 전부가 아닌 향락에 열려있다. 다른 향락이 있다. 물론 모든 여성이 그 향락에 열려 있을 리는 없다. 모든 여성이 「전체가 아닌 여성」은 아니다. 라캉은, 팔루스적인「부르주아 여성」을 예로 들어「그녀는 그 점에서는『전부가 아닌』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그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지금 말한 바와 같은 욕망에 동요되는 여성은 얼마든지 있다. 팔루스적 향락으로, 잉여 행락으로 「충분한」여성이 있다고 해서 누가 그것을 책망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애초부터 그러한 「전체가 아닌」여성이 존재할 리 없다는 의심마저 끓어 올 것이다. 그렇지만 라캉은 단호히 이어간다. 「그러나, 그 이상의 무엇이 있습니다.」「팔루스 저쪽에 있는 향락이」

    물론 여기에서는, 그 언제나 정신분석에 따라붙는 속된 언설과는 일체 상관없는 것이 논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요컨대, 여성은 성행위에서 남성「이상의」향락을 얻는다는 저속한 남자들의 저질스러운 잡담에 불과한 이야기를 말 한다. 이런 근거 없는 이야기를 라캉이 말하는 여성의 향락에 중첩시켜 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어렵다. 이런 유언비어의 준거가 되는 신화가 있다는 것은 두루 알고 있을 것이다. 오비디우스가 쓴 테이레시아스의 신화, 주술에 의해 여성으로도 남성으로도 된 적이 있는 그가 여성의 향락이 우월했다고 말한 신화이다. 그러나 「레투르디」에서 그 신화에 대하여 언급한 뒤, 라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어떤 여성은 전체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이 신화가 우리에게 어떤 여성이란 유일무이 성교에서 오는 향락을 초월한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라고. 결국 테이레시아스 신화를 들어서까지 라캉은 잡담에 지나지 않는 저속한 이해를 멀리하려 했다. 테이레시아스가 「더욱 우월한 」향락이라고 말했던 것은 팔루스를 넘은「전체가 아닌 」여성의 향락인 것이다. 그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그렇다면, 이 여성의 향락이란 어떤 향락인가.「전체는 아닌」「어떤 여성」의 향락, 「대타자」의 향락, 신이라 불렸던 대타자의 향락이기도 한 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향락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도, 사선으로 그어져 결여를 지적당하고도 신으로 명확히 불린 시니피앙의 보고라 할 수 있는 대타자가「향락」하는, 더구나 그것이「어떤 여성」의 향락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나치게 난해하여, 이 「대타자의 향락(Jouissance de l'Autre)의 Autre 는「대타자」가 아니라 「다른 성」이고, 결국 이것은 여성의 향락이라는 의미만 갖는다고 역설하는 사람도 끊이지 않는다. 전전긍긍한 소행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라캉의 의견은 분명하고 오해의 여지가 전혀 없다. 사선이 그어진 대타자인 시니피앙, 결여를 지적받고 에코로 전락한 대타자를 가리킨 후, 그는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이 대타자인 시니피앙과 관계(rapport)를 갖습니다. 이 대타자는, 항상 대타자로 있을 수 밖에 없는 대타자로서의 대타자입니다. 내가 대타자에게는 대타자가 없다고 말했던 것을 떠올려주십시오. 여기에서 그것을 전제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시니피앙이 분절될 수 있는 모든 것이 써넣어진 자리인  이 대타자는, 그 근거부터 근원적으로 대타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니피앙은 사선이 그어진 대타자를 괄호에 넣은 시니피앙입니다.


    어떤 여성은, 전체는 아닌 여성은, 대타자 시니피앙에 「관계를 갖는다.」 이 「관계」가 어떤 의미였는지 상기해보자. 그것은 「성적 관계는 없다」에서의「관계」와 같은 말, 같은 어휘인 것이다. 이 관계가 여성의 향락이고, 대타자의 향락이다. 대타자가 없는 대타자, 근원적인 대타자의 향락이다.「대타자란 그저 진리가 우물우물 읊조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여성이 근본적으로 관계를 갖는 무언가를 표상한다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한다. 「이 『사선을 그은 대타자의 시니피앙』은 여성의 향락 이외에 어떤 것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부분에서 제가 지적하는 바는 <신>은 아직 퇴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라고. 게다가 그것이「시니피앙」으로 불리고 있는 이상, 이 향락은 말이 될 지도 모른다. 된다.「이 『사선을 그은 대타자의 시니피앙』은 여성의 향락 이외에 어떤 것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부분에서 제가 지적하는 바는 <신>은 아직 퇴장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말한 직후에 그는 청중에게 이렇게 말을 붙였다. 「여기에는, 조금이나마 여러분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제가 쓴 것이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무엇을 썼을까요.―조금이라도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유일한 것, 그것은 연문=사랑의 문자입니다.」그는 여기서 사선을 그은 대타자의 시니피앙, 혹은 그것과의 「관계」를 명확히 「사랑의 문자=연문」에 견주고 있다. 그리고 라캉은 이렇게 말한다.

성적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체로 붙잡힌 대타자의 향락이 언제나 부적절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한편에는 도착(倒錯)이 있습니다. 대타자가 대상a로 환원되어버리면, 그것은 도착이 됩니다. 다른 한편에는 수수께끼 같은 광기가 있다고 해봅시다. 이것은, 사랑이 시련 받는 이 막다른 골목, 실제계가 정의된 이 불가능성에 직면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상대에게는, 사랑은 우리가 일종의 시로 부르는 것만으로 현실화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해합니다, 피하기 어려운 운명에 향하는 용기를.


    그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 대타자의 욕망은 대상a의 욕망으로 완전히 변환되어버렸던 것은 아니었던가. 그는 그렇게 단언했던 것은 아닌가. 그것이 도착에 지나지 않고, 다른 것이 있다느니.「수수께끼같은 광기」가 있다는 등.「사랑」,「시」,「용기」라고. 그는, 라캉은 어떤 요행으로 어떻게 해버린 것은 아닌가. 그렇지 않다. 그럴 수 없다. 그는 아주 명석하다. 그리고 그 명석함대로 이렇게 잇따라 말했던 것이다.「존재의 향락이 있습니다.」「지고한 존재의 향락, 즉 신의 향락입니다.」「한마디로 말하면, 신을 사랑하는 것으로써, 우리는 우리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우리는 신에게 오마쥬를 바칩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반문한다. 「왜 대타자의 얼굴을, 신의 얼굴을, 여성의 향락으로 지탱해주는 것이라 해석하면 안 되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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