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수정본 4월6일) 제20절 두 개의 팔루스의 향락, 기관과 왕의 지팡이 - 향락의 레귤레이터(조절기)(1)

건달바
2015-04-07 09:07
495

앞부분은 바람~님이 올려주실거에요~~

그리고 맥에서 주석 표시 하는 법을 몰라서 결국 *로 표시했는데 혹시 하실수 있다면 고쳐주셔요~~

   팔루스에 의한 향락, 그것은 성행위의 방해가 되어 성교가 되지 않게 한다. 얼핏 보면 상당히 기묘한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이 부분의 라캉 논리는 명쾌하고도 선명하여 오해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결국 저 「성적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와 관계된다. 이것은 67년 『환상의 논리』에서 「대타자에게는 대타자가 없다」와 마찬가지로 「정신분석의 커다란 비밀」이라고 서두를 시작하면서 「성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il n’y a pas d’actes sexuel.)」는 식으로 운을 떼고, 「성적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il n’y a pas de rapport sexuel)」로 바꿔 말하게 된 이후로 끊임없이 되풀이 된 정식이다. 「대타자에게는 대타자가 없다」와 중첩되는 듯한 이 문언은, 여러 가지 의미를 덧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는 단적으로 이렇게 말해보자. 성적관계가 존재하지 않는 까닭은, 팔루스를 갖거나 갖지 않기 때문이라고. 63년의 세미나 『불안』의 단계에서도, 라캉은 남녀간의 성교에서는 거세가 기능할 수 있게 하는 것은 팔루스이고, 이 팔루스가 의의 깊은 까닭은 「그 탈락=실패 (chute)」이고 「실패한 대상 (objet chu)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다시 한 번 인용을 거듭해보자. 『앵콜』에서 라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들이 Φ로 표시하는 팔루스에 대해서는, 이것은 시니피에를 갖지 않은 시니피앙이라고 자세히 말했었지요. 그것은, 남성의 팔루스의 향락에서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실천 중에서 무게를 차지하는 자위가 백치의 향락이라는 것을 두드러지게 하지 않는다면.

 

  또, 나중에 진술할 논지를 앞지르지 않으면 완전히 설명할 수 없고, 이 자체는 그다지 유익하지 않아 간단히 언급하는 데 그치지만, 같은 세미나 73년 3월 13일 첫머리에 실린 도표에서도, 사선이 그어진 남성 주체는 여성의 대상 a 를 향하고, 정관사 La 에 사선이 그어진 여성은 「사선이 그어진 대타자의 시니피앙」과 남성의 「팔루스」를 향하고 있고, 남녀 사이에는 향락을 구하며 향하는 벡터가 결정적으로 어긋나 있음을 것은 간단히 알아챌 수 있다. 남녀의 욕망의 벡터는 영원히 어긋나고 엇갈린 채이다. 그러나「성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란 정말 이런 의미밖에 없는 것일까. 혹시 이 문장이 이런 의미밖에 없다면, 성행위의 향락은 자위적이라든가, 남녀는 영원히 어긋나고 참으로 「하나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든가, 결국 누구나 알고 있는 단순한 것을 왜 이런 번거로운 갖춤새로 과장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좀 더 다른 의미가 있진 않을까. 아니, 아직 그걸 말해야 할 때는 아니다. 우리는 팔루스의 향락에서 멈추자. 계속한다.

  성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팔루스에 의해. 팔루스는 성적 관계를 방해하고, 그것을 팔루스의 향락으로, 「자위의 백치적인 향락」을 닮은 무엇인가로 바꾸어버린다. 이것은 어찌된 일일까.

  우선, 이 「성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우의 「관계」는 프랑스어로는 rapport이고, 단지 관계만은 아닌, 예를 들면 조화나 균형이나 이윤 등의 의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항목 사이에 「비(比), 비율(比率), 비교(割合)*」라는 의미가 있다. 성적인 두 항목 사이의 「올바른 관계 = 비(rapport)」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표현도 라캉은 하고 있다. 어떤 불어사전을 찾아봐도 「비(ratio)」의 동의어가 되는 「비(rapport)」를 필요로 한다, 공통의 척도가 성적인 것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도 있기는 하고, 그 이해는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왜 팔루스로 방해받는 것일까. 라캉은 다른 곳에서 이렇게 말했다. 팔루스는 「대타자의 욕망의 비율 = 비교 = 이성(raison)」이라고. 어원을 「비(ratio)」에 둔 이 「비율 = 비교 = 이성(raison)」의 단어를 여기에 놓았던 것은, 틀림없이 우연은 아니다. 새롭게 순수한 관계=비(rapport=ratio )를 거기에 맺으려고 해도, 거기에는 이미 이성=비율(raison=ratio)이 장애로서 미리 기입되어 있다. 따라서 팔루스에 의해서 성적인 관계는 이미 규제되고, 통제되고,「죽은 것」이 되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라캉의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동조하고, 단적으로 말하자. 법을 따르는 아버지의 자리, 「오이디푸스의 제3단계」에서 거세의 효과로서 산출되는 팔루스는, 「하나의 기관」에 멈춘다. 라캉은 이렇게 말했다, 「말하는 자들의 신체는, 모든 기관으로 분할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이 모든 기관은 스스로의 기능을  충분히 지니고 있다」고. 물론 그 「분할」의 예로 들수있는 것은 「할례」를 당한 「포피」이고, 「외과」에서 드러내진 「돌기물」이다. 「그리고 어떤 기관은 시니피앙이 됩니다」라고. 그렇다, 팔루스는 「분할」되고 「외과적」인 조작으로 노출됨에 따라서야말로, 즉 「거세」 「할례」로써 「기관」이 되고, 그리고 「하나의 기관」이 됨에 따라 「시니피앙」이 된다. 우리가 제2장에서 더듬어 온 논리 중에도 몇번인가 나왔던 「정형외과적」인 조작은, 이것과 다르지 않다. 시니피앙과 이미지는, 외과수술을 행하고 주체를 꿰매어 잇는다. 그것은 이미 확인해온 대로다.

 이렇게 팔루스는 하나의 기관으로, 하나의 시니피앙으로 만들어진다. 남녀가 성행위를 할 때에 향락은 그 「하나의 기관」에 불과한 팔루스에 「집중」한다. 그것을 가진 자도, 갖지 않은 자도. 결국 여성도. 라캉은 여성이 팔루스 기능에 정통한 것은 불가능한 것도 어떤것도 아니라고 말했고, 팔루스적인 여성들이 있다는 것 누구나 알고 있지요, 라고 다소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성행위는 하나의 기관에 불과한 팔루스를 매개로, 하나의 시니피앙에 불과한 팔루스라는 매개를 중심으로 행해진다.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을 버리고라도, 저 「융합적인 카니발리즘」과도 닮은 다양한 가능성을 버리고라도, 많은 사람은 팔루스에 집착하고, 그 향락이야말로 성적인 향락의 「중심」이고 「전부」라고 믿고 있다. 이 하나의 시니피앙에 불과하지만 「비할 데 없는 시니피앙」이고, 욕망의 시니피앙인 팔루스에. 그러므로 팔루스에 있어서 「기관에 의해 국소화되지 않은 순수한 성적 관계」라는 것은 소실된다. 저 비참하기조차 한 하나의 기관만을, 하나의 시니피앙만을 둘러싸고 성적관계를 자아내고 있다. 그렇기때문에 라캉은 팔루스에 있어서 성적관계는 없다고 말하고, 우리는 팔루스야말로 향락을 「통제하는」「조절기」라고 말했던 것이다. 향락이 저 가공할 절대적 향락으로 되지 않기 위해, 규제하고 조절하고 변압(変圧)하고 변환하고 치수(治水)하는 것이라고. 팔루스의 향락은 길들여져 익숙해진 것이고 합법적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좋다. 그래야만 좋다. 라캉은 팔루스의 향락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규제로 비로소 인간의 성행위는, 무엇인가를 빼앗겨 어딘가 죽은 것으로서 그 평온한 향락을 기분좋게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일상의 성의 다정함, 그 격렬하지만 평온한 기쁨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미묘한 괴로움의 호소 따위 문제가 아니다. 팔루스가 시니피앙이라는 의미는 이러한 것이고, 그것이 빼앗겨 어딘가 죽은 것, 거세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 논해왔다. 반복하지 않겠다. 다음이다.

 2, 제2의 팔루스의 향락, 「이미지=시니피앙」으로서 팔루스의 향락. 그러나 우리 논리로 말하면, 시니피앙은 이미지 쪽으로 당연히 녹아들 것이었다. 상징계는 상상계로 보강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팔루스가 시니피앙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팔루스는 이미지에 스며든다. 이것을 「완전히 거세할 수 없었던 것」으로 생각하면, 대상a에 대해 말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이 이미지와 시니피앙의 상호침투에서 팔루스는 그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럼 이것은 어떤 것일까 - 불균질성과 침투에 대하여 일관되게 논해 온 이상, 이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라캉도 이것을 알아차리고 있다.

  시니피앙이므로 이미지에 스며든 팔루스 그리고 그 향락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상세히 논하기 위해서는 피에르 르장드르의 이론을 기대해야겠지만, 라캉의 문장만으로 말할 수 있는 데까지 논해보자. 팔루스의 향락, 이미지 쪽으로 스며든 팔루스의 향락.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상상적인 것도 완전히 지우지 못하고 거기에 있는 팔루스의 그 향락.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권력의 향락」이다.

  거듭 인용해보자. 라캉은 세미나 『무의식의 형성물』의 58년 3월 12일 모임에서, 팔루스를 「권력의 시니피앙」이자 「왕의 지팡이」라고 말하고,  6월 25일에는 「팔루스를 숭배의 대상으로 하는 것」, 「건립=발기(érection) 그 자체를 시니피앙으로 하여」 「세워진 석상이, 가장 오래된 문화 속에서 지닌 인간집단의 단결에 있어 시니피앙으로서 준 영향」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즉 권력의 상징으로 세워진 입상이고, 탑이고, 성곽과 궁전이고, 그 「치솟은」모습에 대해서. 또 1년 전 세미나 『대상관계』에서도, 「시니피앙 안에 집어넣어진 신체」는 「최초의 문장(紋章)=구족**(armes)」을 손에 넣은 것이라고 서두를 말하고, 그것을 확실하게 「팔루스적인」것과 「순수한 건립=발기(érection)」를 결부시켜 이렇게 말한다. 「석주(pierre dressée)가 그 하나의 예가 되고, 세워진 것이라는 범위에서 인간신체라는 관념도, 또 하나의 예가 되겠지요」 「이런 일련의 요소는 모두, 단지 신체의 살아온 경험에 결부된 것만은 아니고, 신체의 높이(stature)에 결부되어 있습니다」. 즉 우뚝 솟은 것으로서 인간신체=석주이다. 그리고 같은 세미나에서 레비-스트로스를 인용하면서 짧지만 흥미로운 고찰을 더하고 있다. 즉 여성이 아닌 남성을 즉 팔루스를 교환하는 질서는 있을 수 있을까? 라고. 레비-스트로스가 『친족의 기본구조』에서 근친상간 금지의 존재이유를 「여성」의 교환에서 찾았던 것과는 반대로, 「팔루스를 가진 소년을 낳아주었으니 팔루스를 가진 남자를 내놓아라」고 말하는 모권적 권력의 질서는 생각할 수 있을까, 라고. 라캉은 여기에서 「모권제사회에서도 정치권력은 웅성중심적(androcentrique)」으로 「표상」되고 있다고 말한다. 즉 「왕의 지팡이와 팔루스가 혼동된 시니피앙의 질서」가 거기에 있다. 즉 왕의 지팡이를 가진 여왕이다. 다시 상기해보자, 그는 애초에 팔루스는 시니피앙이라고 단언했던 『에크리』의 1절 직전에, 「프로이트가, 팔루스가 고대인에게 어떤 것이었던가, 그것을 나타내는 이미지에 대해 언급했던 것은 이유가 있다」라고 말했던 것을. 또 시간이 지나 1971년 세미나 「겉치레가 아닐지도 모르는 하나의 언설에 대대해」에서도, 성적관계가 픽션 구조의 가치를 지닌 왕과 여왕의 모습으로 육화한다는 「성적관계의 국가화」에 대해 말했다.

 여기에서는 상상적 팔루스의 모습이 상징적인 권력의 시니피앙에 중첩되어 있다. 어머니가 욕망했던 상상적인 팔루스의 발기한 모습과, <거울> 속에 선 자신의 모습, 그 환희와 함께 받아들여지는 신체의 윤곽이 「거울상적으로 동일화한다」라고 라캉은 이미 말했다. 그것이 상징적인 팔루스가 되어도, 이 상상적 팔루스는 계속 남아있다. 「권력의 시니피앙」으로서, 즉 이미지쪽으로 스며들어가는 「권력의 시니피앙=이미지」로서. 우뚝 솟아 있는, 건립하는, 치솟아 있는, 자립하는 권력을 과시하는 다양한 건조물들, 우리 일상생활까지도 둘러싸는 저 탑, 저 기념비, 저 궁전들이, 이것을 반복한다. 즉 「수직으로 우뚝 솟아 있는 모습」으로 우뚝 선 권력의 시니피앙=이미지에 동일화 하고자하는 것, 권력으로 동일화 하고자 하는 것. 그 향락. 이것이 「제2의 팔루스적 향락」이다. 상상적이며 상징적인 팔루스에 동일화하는 향락이고, 권력의 향락이다. 그렇다, 권력을 구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권력을 갖는 것」이다. 상징적인 권력의 시니피앙을 「가지는」 것이다.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 것, 어떤 상징적인 위치결정에 있어 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상징적 팔루스의 향락. 하지만 그것이 은밀하게「권력」 것과 이중으로 되어 있다면. 그 권력의 시니피앙을 「가지려고」 하는 욕망이, 권력의 시니피앙「이려고」 하는 욕망으로 오염되어 있다면. 권력의 순수한 모습 향락으로도 향해 있다면. 권력의 향락은, 팔루스적 향락이다. 상상적 팔루스「인」 향락이고, 동시에 상징적 팔루스를「가진」 향락이다 – 확실히 위험하고, 위태로운 이야기다. 상징적일뿐인 팔루스의 향락과 비교해서, 그것은 무서운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것은 어디에나 있고, 합법적인 향락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권력이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어느 사이엔가 거세되어「권력을 갖고 싶다」는 욕망으로 변환되어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왕이 될 수 있어도 왕의 지팡 수는 없다. 그것을 가진 자를 왕으로 하는, 이 왕의 지팡일 수는 없다. 왕의 지팡이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아버지로부터 건네받고, 자식에게 건네주지 않으면 안되는「한 순간의 대리인」으로서, 그것을 한 때 「갖는」 것이 가능했을 뿐이다. 그리고, 제1의 팔루스적 향락, 일상에서 평온한 성의 기쁨을 누리는 향락과 같이 이 제2의 팔루스적 향락도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의 시니피앙=이미지인 상상적이면서 상징적인 팔루스에 홀린 인간 등,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아도, 얼마든지 주위에서 그 모습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팔루스적인 여성이 있다는 것, 누구나 알고 있지요, 라고 라캉은 말하며,「왕의 지팡이를 가진 모권제의 여왕」에 대해서 그는 말했기 때문에. 물론 반복을 꺼리지 말고 말하자. 어디에나 있어서 평범하다고 해도, 이 「제2의 팔루스의 향락」의 말하자면 「위험성」은 「제1의 팔루스의 향락」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전제군주가「죽여라」라고 명령하는 향락으로, 미미한 도입이 될 수 있는 향락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러나, 그래도 이것은 합법적인 향락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권력의 계단 끝까지 올라가는 향락은, 그 자체로는, 저놈을 지금 바로 죽이는 향락이나 자신의 피를 나눈 딸을 강간하는 향락보다도, 훨씬 「얌전한」「길들여져 익숙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좋다. 그래야만 좋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일상의 성 행위처럼, 일상의 권력욕의 행위를 평범하게 계속할 수 있다. 부장이 되고 싶다, 사장이 되고 싶다, 장관이 되고 싶다, 「한 단계 위의」 생활을 향유하고 싶다, 유명해지고 싶다─ 훌륭하지 않은가. 소박한 소원이다. 정신분석학파끼리의 권력투쟁을 참고 살아가던 라캉이, 이 향락을 부정할 리도 없다. 제2의 팔루스도 역시 향락의 조절기였던 것이다. 가능한한 전거를 모아서 인용을 거듭할 생각이었지만, 라캉은 이 「제2의 팔루스의 향락」 즉 「상상적이면서 상징적인 팔루스의 향락」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고찰만 남기고 있다. 분명히 말하면 이것은 라캉의 힘에 부치는 일이다. 이것의 뒤를 잇는 자의 논리에 대해서는, 제2부에서 상세하게 논할 것이다.

  우리는 제1의 향락의 조절기를 좇아가는 동안에, 그것이 두 대 있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제2의 향락의 조절기, 「대상a의 잉여향락」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무엇도 말하고 있지 않다. 다시 계속하자. 또 하나의 이 향락의 조절기는 어떤 것인가. 우선 이렇게 묻자. 대상a란 무엇인가.

*역주1) 割合은 비율로 보통 번역되나 比率과 구별하여 비교로 번역함.

**역주2) 갑옷과 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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