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절 해석 수정

인디언
2015-02-25 10:42
352

20절 해석 수정(인디언)

167-168

오늘은 상징적인 아버지라는 개념에 조금 더 정확성을 부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상징적인) 아버지는 하나의 은유일 뿐입니다. ……은유는 다른 시니피앙의 자리에서 찾아온 하나의 시니피앙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의 아버지라고 나는 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상징적인) 아버지는 다른 시니피앙 대신에 바꿔놓은(대치된) 하나의 시니피앙일 뿐입니다. 여기에 아버지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안으로 개입해온 그 원동력, 본질적인, 독특한 원동력이 있습니다. 부성결여는 이 수준에서 찾지 않으면(생각하지 않으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가닥을 잡지 못할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상징화 과정에서 도입된 최초의 시니피앙, 즉 모성시니피앙에 대치된(대신하여 바꿔놓은) 하나의 시니피앙이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분께 은유의 정식으로서 한번 설명한 적이 있는 표현법에 따르면, 아버지는 어머니의 자리에 〔어머니 대신〕찾아온 것입니다.

177-178

즉, 권력의 표상으로서 수립된 입상이고, 탑이고, 성곽과 궁전이고, 그 <우뚝 솟은> 모습인 것에 대해서.

또, 1년 전의 세미나 <대상관계>에서도, <시니피앙 안에 집어넣어진 신체>는 <최초의 문장=구족(갖춰진 군대)을 손에 넣었다고 전제하고, 그것을 확실하게 <팔루스적인> 것이라고, <순수한 건립=발기>라고 결부시켜 이렇게 말했다.

<석주가 그 하나의 예가 될 것이고, 우뚝 솟은 물건인 한에서 인간신체라는 관념도 또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이런 일련의 요소는 모두, 단지 신체의 산 경험에 결부된 것만은 아니고, 신체의 신장(키)에 결부되어 있는 것입니다>

즉, 우뚝 솟은 것으로서의 인간신체=석주다.

그리고, 같은 세미나에서 레비스트로스를 끌어오면서 짧지만 흥미깊은 고찰을 더하고 있다. 즉, 여성이 아닌 남성을, 즉 팔루스를 교환하는 것같은 질서는 있을 수 있을까? 라고.

레비스트로스가 <친족의 기본구조>에서 근친상간 금지의 존재이유를 <여성>의 교환에서 찾았던 것과는 반대로, <팔루스를 가진 소년을 낳아주었으니 팔루스를 가진 남자를 보내라>고 말하는 모권적 권력의 질서는 생각할 수 있을까. 라고.

라깡은 여기에서 <모권제사회에서도 정치권력은 남성(웅성)중심적>으로 <표상>되었다고 말한다. 즉, <왕의 지팡이와 팔루스가 혼동된 시니피앙의 질서>가 거기에 있다. 즉, 왕의 지팡이를 가진 여왕이다.

다시 상기해보자. 그는 애초에 팔루스는 시니피앙이라고 단언했던 <에크리>의 1절 직전에 <프로이트가, 팔루스가 고대인에게 어떤 것이었던가. 그것을 나타내는 이미지에 관해 언급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라고 말했던 것을.

또 시간을 경과하여 1971년의 세미나 <가장이 아닐지도 모르는 하나의 언설에 대하여>에서도 성적관계가 픽션의 구조의 가치를 가진 왕과 여왕의 모습으로 육화하는 것이라는 <성적관계의 국가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댓글 7
  • 2015-02-27 01:13

    p.169~171 해석

     

    3단계는 이렇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욕망하는 것을 줄 수 있고, 그것은 아버지가 그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즉 여기에서는 성기적인 의미에서의 능력이 관계하고 있죠. , 아버지란 그 능력이 있는 아버지라고 말해둡시다. 여기에서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관계는 현실적인 평면으로 다시 이행합니다.

     

    여기에서 다시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개념은 침투하기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페니스도 클리토리스도 아니면, 욕망의 상상적인 이미지로부터 단절된 욕망의 상징적인 시니피앙이고 환유라고 역설되어 온 팔루스가, 구체적인 성기적 능력을 가진 페니스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런 것에 덧대어진 무엇인 것이 명백하게 된다. 게다가 법을 참고 견딘 자이고, 약속을 지켜야만 하는, 전능을 잃어버린 오이디푸스 제3단계의 아버지에서 처음으로 팔루스는 성적으로 향락하는 것이 된다. 그렇다, 여기에서야말로 팔루스는 향락의 조절기가 되고, 향락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떻게 해서인가. 그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우리는 두 개의 팔루스적 향락을 구별하자. 1의 팔루스의 향락2의 팔루스의 향락으로.

     

    1. 1의 팔루스의 향락, 시니피앙으로서의 팔루스의 향락. 먼저 팔루스의 향락이라고 말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신체의 소타자, 이성의 소타자이다라고 라캉은 말한다. 따라서 여기에서 팔루스의 향락이라는 것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구체적인 성행위에서의 향락이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성행위에서 팔루스가 향유하고 팔루스에 의해 향유되는 향락이다. 여기에서는 대부분 이 팔루스는 페니스로 불려져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래도 여기에서 묻게 되는 것은 팔루스이고, 따라서 이 팔루스는 시니피앙이다. 이 팔루스는 거세의 결과로서, 즉 만능으로 되지 못한 것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고, 상징계에 속할 뿐이다. 그것은 빼앗긴 것에 지나지 않는다. 라캉은 명쾌하게 말한다. 주체로부터 빼앗긴 무엇이 시니피앙으로서의 팔루스라고.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팔루스의 향락은 남자가 여자의 신체를 향락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 된다. 왜냐하면 그가 향락하고 있는 것은 기관의 향락이기 때문에. 게다가 라캉은 되풀이한다. 거세된 남자, 즉 여기에서 말하는 팔루스를 가진 남자는 여성의 신체를 향락할 어떤 기회도 없습니다. 바꿔 말하면, 성교할 기회는 없습니다


     

    p.179~181 해석

     

    왕의 지팡이를 가질 수 있을 뿐이다. 아버지로부터 건네어지고, 자식에게 건네주지 않으면 안되는 한순간의 대리인으로서, 그것을 한 때 가진것이 가능했을 뿐이다. 그리고 제1의 팔루스적 향락, 일상의 평온한 성의 기쁨의 향락과 같이 이 제2의 팔루스적 향락도 평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권력의 시니피앙=이미지인 상상적이면서 상징적인 팔루스에 홀린 인간 따위는 신문과 텔레비전에 눈길 한 번 줄 것도 없이 얼마든지 주위에서 그 모습을 또렷이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중에는 여성도 있을 것이다. 팔루스적인 여성이 있다는 것, 누구라도 알고 있지요, 라고 라깡은 왕의 지팡이를 가진 모권제의 여왕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 때문에. 물론 반복을 꺼리지 않고 말하자. 어디에나 있어서 평범하다고 해도, 2의 팔루스의 향락의 말하자면 위험성1의 팔루스의 향락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전제군주의 죽여라라고 명령하는 향락으로의, 희미한 도입으로 될 수 있는 향락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러나 그래도 이것은 합법적인 향락에 지나지 않는다. 혹은 권력의 계단을 끝까지 올라가는 향락은 그 자체로는, 녀석을 지금 바로 죽이는 향락과 자신과 피를 나눈 딸을 강간하는 향락보다도, 훨씬 얌전한」 「익숙해진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좋다. 그래야만 좋다. 그렇기 때문에야말로 일상의 성 행위처럼 일상의 권력욕의 행위를 평범하게 계속할 수 있다. 부장이 되고 싶다, 사장이 되고 싶다, 장관이 되고 싶다, 한 단계 위의생활을 향유하고 싶다, 유명하게 되고 싶다훌륭하지 않은가. 소박한 소원이다. 정신분석학파끼리의 권력투쟁을 참고 살아가던 라깡이, 이 향락을 부정할 리도 없다. 2의 팔루스도 역시 향락의 조절기였다. 가능한한 전거를 모아서 인용을 거듭할 생각이었지만, 라깡은 이 2의 팔루스의 향락상상적이면서 상징적인 팔루스의 향락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고찰만 남기고 있다. 분명히 말하면 이것은 라깡의 힘에 부치는 일이다. 이것을 받아들여 가는 사람의 논리에 대해서는, 2부에서 상세하게 논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제1의 향락의 조절기를 쫓아가는 동안에 그것이 두 대 있었음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직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2의 향락의 조절기, 대상a의 잉여향락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무엇도 말하고 있지 않다. 다시 계속하자. 또 하나의 이 향락의 조절기는 어떤 것인가. 우선 이렇게 묻자. 대상a란 무엇인가.

    • 2015-02-27 01:15

      인용문은 고딕체였는데, 그렇게 안보이네요.

  • 2015-02-27 11:25

    p.161~162,  p.171~172 수정해석 올려요~

  • 2015-03-01 13:53

     162-163

      그러나 뭐 아무래도 좋다. 어쨌든 본 장(障)의 논리는 실재계에 속한다. 말하기 어려운 건 처음부터 당연한 거니까. 번거로운 주석이나 그다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 도식, 은어는 생략하고, 우리 간결하고 또 명석하게 가보자. 그리고 다시 이렇게 물어보자. 팔루스란 무엇인가. 다름아닌 팔루스, 이 생물학적인 남성만이 아니라 우리들의 향략이 집중할 터인 무언가가, 향락을 통어하는 ‘조절기’라는 건, 대체 다 어찌된 일일까. 우선 팔루스가 이런 ‘레귤레이터’가 되어가는 과정을 따라가 보자.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남근에 있어서도 “일의 순서”는 우리가 논해왔던 논리와 일치한다. 우선 상상적인 남근이 있고, 거기에서 상징적인 남근으로 전환이 일어난다. 라캉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세 단계’로 그려낸 과정을 복습해보자. 먼저 갓 태어난 아이에게 팔루스는 ‘어머니-아이-팔루스’라는 ‘그 자체, 전(前)오이디푸스적’인 ‘상상적인 세 쌍’의 관계 안에 있다. 즉, 유아는 최초의 타자인 엄마를 ‘욕망’한다. 그러나 유아는 엄마도 무언가 결여되어 있어,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결여된 무언가를 라캉은 상징적인 남근이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아이는 어머니 한 사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한편으로는 상상적인 평면상에서 결여됨으로 남근에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유아는 ’무언가‘를 욕망하는 어머니를 욕망하게 되고, 욕망은 이중화된다. 그 ‘엄마가 욕망하는 무언가’이고 싶다, 상상적인 팔루스가 되고 싶다, 는 욕망이 유아에게 싹튼다. 이를테면 이 ‘원시적인 팔루스기’에 있어 ‘주체는 어머니의 욕망의 대상에게 거울상으로 동일화 합니다’ ‘팔루스 “인가, 그렇지 않은가”(to be or not to be). 상상적인 평면에서는 주체에게 팔루스일까 아닐까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기서 유아의 욕망은 ‘모친이 결핍되어 있으므로 욕망하고 있을 터인 팔루스’에 상상적으로 동일화하는 것, 즉 ‘팔루스가 되는’ 것이다.

     

    172-173

     

      또 나중에 진술할 논지를 앞지르지 않으면 완전히 설명할 수 없고, 이 자체는 그다지 유익하다고도 생각되지 않아 간단히 언급하는 데 그치지만, 같은 세미나 73년 3월 13일 첫머리에 실린 도표에서도, 남성에 사선을 그은 주체는 여성 대상 a 를 향하고, 정관사 La 에 사선을 그은 여성은 ‘사선을 그은 대타자의 시니피앙’과 남성의 ‘팔루스’를 향하고 있고, 남녀 사이에서는 향락을 요구해 마주보는 벡터가 결정적으로 벗어나 있다는 건 간단히 알 수 있다. 남녀 욕망의 벡터는 영원히 어긋나고 엇갈린 채이다. 그러나 ‘성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란 정말 이런 의미밖에 지니지 않는 걸까. 정말 이 구절이 이런 의미밖에 가지지 않는다면, 성행위의 향락은 자위적이라든가, 남녀는 영원히 어긋나는 참으로 ‘하나가 됨’은 불가능하다든가, 결국 누구나 알고 있는 단순함을 왜 이런 번거로운 갖춤새로 과장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그걸 모르게 된다. 이 구절은 좀 더 다른 의미가 있진 않을까. 아니 아직 그걸 말할 때는 아니다. 우리 팔루스의 향락에서 멈추자. 계속한다.

      성적인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팔루스에 따라. 팔루스는 성적 관계를 방해하고, 그것을 팔루스의 향락으로, ‘자위의 백치적인 향락’을 닮은 무언가로 바꾸어버린다. 이것은 어찌된 일일까.

      우선, 이 ‘성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우의 ‘관계’는 프랑스어로는 rapport이고, 단지 관계만은 아닌, 예를 들면 조화와 균형, 이윤 따위라고 말한 의미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항목 사이에 ‘비, 비율(比率), 비율(割合)’이라는 의미가 있다. 성적인 두 항목 사이의 ‘올바른 관계 = 비(rapport)'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표현도 라캉은 하고 있다. 어떤 불어사전을 찾아봐도 ’비(ratio)'의 동의어가 되는 ‘비(rapport)'를 필요로 한다, 공통의 척도가 성적인 것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말도 있기는 하고, 그 이해는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왜 팔루스에 따라 방해받는 걸까. 라캉은 다른 데서 이렇게 말했다. 팔루스는 ’대타자의 욕망의 비율(比率) = 비율(割合) = 이성(理性:raison)이라고.

  • 2015-03-01 23:16

    166~167

    여기까지가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생각되던 시대에는 이 아버지의 전능함이 해악을 준다고 생각되었습니다만--이라고 라깡은 57~58년의 세미나 『무의식의 형성물』에서 말을 이어 간다.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라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제3단계에서 이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향해 이렇게 「증언한다」. 나는 너에게 상상적인 팔루스를 대신하여 상징적인 팔루스의 현전 혹은 부재를 초래했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법의 지지자=법을 참고 견디는 자」인 한에서 일 뿐이다. 즉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제3단계에서 아버지는 만능인 아버지가 아니다. 상상적 이미지인 팔루스가 아니고 상징적 시니피앙인 팔루스, 즉 「언어」이기도 한 팔루스를 가진 자일 수밖에 없다. 만능인 아버지가 아니라 상징적인 아버지인 이상 곧 법을 준수하고 맹세를 하는 자로서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아이와의 약속을 어겨서는 안되고, 약속을 깨는 「위법」을 저지르면 안된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이제 만능인 「원초적 아버지」가 아니고 아들과 함께 법에 복종하고, 법 아래에 엎드리는 누군가이다. 아버지는 「은유」가 된다. 상상적인 것이고, 아직 거울상 이전인 「무엇인가」의 그림자를 얽어매던 「어머니의 욕망, 대문자 M」이 삭제되어 아버지의 이름과 시니피앙으로서의 팔루스가 남는다고 쓰여진 식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지만 라캉은 이것으로 아버지는 「은유」가 된다고 말했다. 더 말하면 「은유」에 불과한 것으로. 말하자면 「어머니의 욕망 M」의 삭제는 「은유가 성공하는 조건이다」. 라캉은 이것을 부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76~177

    2. 제2의 팔루스의 향락, 「이미지=시니피앙」으로서의 팔루스의 향락. 그러나 우리의 논리로 말하면 시니피앙은 이미지 쪽으로 스며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상징계는 상상계로 보강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었다. 그런데 팔루스가 시니피앙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팔루스는 이미지에 스며들어 있다. 이것을 아마 「거세되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대상a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이미지와 시니피앙의 상호침투에서의 팔루스는 그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것은 어떤 것일까? 불균질성과 침투에 대하여 일관되게 논해 온 이상, 이 질문을 피해갈 수는 없다. 물론 라캉도 이것을 알아차렸다.

    시니피앙이지만 그런 까닭에 이미지에 스며든 팔루스, 그리고 그 향락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상세히 논하기 위해서는 피에르 르장드르의 이론에 기대야 하겠지만 라캉의 말만으로 말할 수 있는 만큼 논해보자. 팔루스의 향락, 이미지 쪽으로 스며든 팔루스의 향락.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상상적인 것도 지워지지 않은 채 거기에 있는 팔루스의 향락.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권력의 향락」이다.

    거듭 인용해보자. 라캉은 세미나 『무의식의 형성물』의 58년 3월 12일 모임에서 팔루스를 「권력의 시니피앙」으로, 「왕의 지팡이」라고 말하고 있다. 6월 25일에는 「팔루스를 숭배의 대상으로 있는 것」, 「건립=발기(érection) 그것을 시니피앙으로 하여」「우뚝 서있는 석상이 가장 오래된 문화 속에서 지닌, 인간집단의 단결에 있어서 시니피앙으로서 준 영향」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 2015-03-03 21:45

    165~166 수정해석

     

    이렇게 해서 그런 까닭에 있는상징적인 팔루스의 거세에 의해서, 그것을 가진상상적인 팔루스가 출현한다. 그러므로 라캉은, 팔루스는 하나의 시니피앙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했다. 우리들은 이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지 이미 와 있다. 상징적인 팔루스, 그것은 하나의 시니피앙이다. 그러므로 물론, 그것이 있는없는, 0인가 1인가가 문제가 된다. 라캉은 확실히 상징적 대상으로서의 팔루스를 부재인 동시에 현전하는 무언가라고 기술하고, 그것은 일종의 근본적인 교대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어떤 점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고, 또 어떤 점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순환하고, 자신이 도달한 점에서, 스스로의 뒤에 그 부재의 기호를 남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팔루스의 상징적 기능입니다. 특별히 그것이 거기에 있는, 혹은 거기에 없는, 이라고 말하는 것에 있어서야말로, 성별의 상징적 문화는 기초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그리고 또, 시니피앙 안에서는, 팔루스는 이렇게 자리매김해 두면 충분합니다이것은 환유적 대상인 것입니다라고도 말하고 있다. 요약하면 상징적 팔루스라는 것은, 우리들이 보아온 저 시니피앙 그것이다. 현전과 부재의 교대, 즉 누군가는 갖고 있지만 누군가는 갖지 않았다고 하는 하나하나의 현전과 부재의 교대에 의해서 나타나는, 환유에 의해서 구동하는 시니피앙 연쇄, 그 효과로써 성별을 가진 주체를 생산하는 상징적 결정. 시니피앙 연쇄에 의한 상징적 동일화분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인 이상, 이 주체가 성별이라고 하는 근본적 분류를 이미 뒤집어썼던 것으로써 생산된 이것은 알기 쉬운 이치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우리들은 상론해왔다. 이제 반복하지 않겠다. 이렇게 하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거세, 즉 상상적 팔루스로부터 상징적 팔루스로의 이행은 행해졌다.



    174~176  수정 해석

     

    이렇게 팔루스는 하나의 기관으로서, 하나의 시니피앙으로서 만들어진다. 남녀가 성행위를 행할 때에, 향락은 그 하나의 기관에 불과한 팔루스에 집중한다. 그것을 가진 것도, 갖지 않은 것도. 결국 여성도. 라캉은 여성이 팔루스 기능에 정통한 것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고, 팔루스적인 여성들이 있는 것, 누구라도 알고 있지요, 라고 다소 농담같은 말투로 말하기도 했다. 성행위는, 하나의 기관에 불과한 팔루스를 매개로 해서, 하나의 시니피앙에 불과한 팔루스라고 하는 매개를 중심으로 해서 행해진다. 다른 여러 가지 가능성을 잘라버려도, 융합적인 카니발리즘과도 닮은 다양한 가능성을 잘라버려도, 많은 사람은 팔루스에 집착하고, 그 향락이야말로 성적인 향락의 중심이고 전부이다고 생각한다. 이 하나의 시니피앙에 불과함이 비할 데 없는 시니피앙이고, 욕망의 시니피앙인 팔루스에. 그러므로, 팔루스에 있어서 기관에 따라 국소화되지 않은 순연한 성적 관계라고 하는 것은 소실하고 있다. 저 참혹하기조차 한 하나의 기관만을, 하나의 시니피앙만을 돌아서 성적관계는 실을 잣는 것이다. 따라서, 라캉은 팔루스에 있어서 성적관계는 없다고 말하고, 우리들은 팔루스야말로 향락을 통제하는」 「조절기라고 말했던 것이다. 향락이, 저 무서운 절대적 향락으로 되지 않기 위해서, 규제하고 조절하고 압력을 바꾸고 변환하고 치수하는 것이라고. 팔루스의 향락은 길들여져 익숙해진 것이고, 합법적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이야말로 충분하다. 라캉은 팔루스의 향락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규제에 있어서야말로, 인간의 성의 행위는, 무언가를 빼앗겨 어딘가 죽은 것으로써 그 평온한 향락을 기분좋게 살아가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성의 다정함, 그 격렬함이 평온한 기쁨을, 누가 부정하겠는가. 미묘한 괴로움의 호소 따위 문제 밖의 일이다. 팔루스가 시니피앙이라는 의미는 이러한 것이고, 그것이 빼앗겨 어딘가 죽은 것, 거세된 것이라는 것에 의해서는 이미 오래 논한 것이다. 반복하지 않겠다. 다음이다.

     

     

  • 2015-03-03 21:58

    야영해석 수정_20절


    168~169

     

    그러니 이렇게 말해보자. 오이디푸스의 제3단계, 여기서 아버지는 상징화되고, 만능, 원부(原父, 은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상징적인 아버지는 은유된 대타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이미 법이다는 불가능하다. 법을 가진것이 가능할 뿐, 아니 아이와 함께 법에 복종하는 것이 가능할 뿐이다...라고. 그리고 하나 더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있다. 아마도 모성적 시니피앙이라고 여기서 불리고 있는 이상, 아이가 그 욕망을 욕망하는 뭔가가 엄마라 불리고 있는 것은 이 시니피앙의 도입에서 소급적으로 그렇게 불리고 있는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래서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구체적으로 생물학적인 아버지나 어머니가 아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시니피앙으로서의 팔루스라 불리는 것은 패니스도 크리토리스도 아니다. 있다」 「없다안에서 성별을 결정하는 성의 단위뭔가이고, 그것이 상상적인 것에서 상징적인 것으로 이행한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상징계로 이행한 이 시점에서는 아버지는 은유이고, 팔루스는 환유이다. 우리 이론으로 말한다면 전자는 아이의 경우 <거울>에 비친 전체상으로서 아버지에로의 사랑」 「상징적동일화의 대상이고, 후자는 그 세부의 클로즈업이다. 우리의 보로메오를 한번 더 보자. 팔루스의 향락의 장소는 상징계의 고리 안에 있고, 상상계의 밖에 있다. 그래서 그것은 상징적 팔루스의 향락인 것이다. 여기까지는 별로 어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 문제는 다음이다.

    그러면 팔루스의 향락은 무엇인가. 팔루스가 향락에 관련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실재계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실은 우리가 세밀하게 인용해온 57~58년 세미나 무의식의 형성물의 시점에서 라캉은 이를 이미 알아챈 듯한 발언을 하고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제3단계를 한창 지적하면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178~179


    여기서는 상상적 팔루스의 모습이, 상징적인 권력의 시니피앙에 겹쳐 씌여 있다. 어머니가 욕망하고 있던 상상적인 팔루스의 발기한 모습과 자신의 <거울> 속에 선 모습, 그 환희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신체의 윤곽이 거울상적으로 동일화 한다라고 라캉은 이미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상징적인 팔루스가 되어도, 이 상상적 팔루스는 계속 남아있다. 권력의 시니피앙으로서, 즉 이미지쪽으로 스며들어가는 권력의 시니피앙=이미지로서. 우뚝 서있고, 똑바로 서있고, 치솟아 있고, 자립하는 권력을 과시하는 다양한 건조물들, 우리 일상생활도 둘러싸는 저 탑, 저 기념비, 저 궁전들이 이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수직으로 우뚝 서있는 모습으로 우뚝 선 권력의 시니피앙=이미지에 동일화 하고자하는 것, 권력으로 동일화 하고자하는 것. 그 향락. 이것이 2의 팔루스적 향락이다. 상상적이며 상징적인 팔루스에 동일화하는 향락이고, 권력의 향락이다. 그렇다, 권력을 구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권력을 갖는 이다. 상징적인 권력의 시니피앙을 가지는것이다. 어떤 지위를 차지하는 것, 어떤 상징적인 위치결정에 있어서 그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상징적 팔루스의 향락. 하지만 그것이 조용히 권력것이라고 이중으로 돼버리고 있다면. 그 권력의 시니피앙을 가지려고하는 욕망이, 권력의 시니피앙이려고하는 욕망으로 오염되어버리고 있다면. 권력의 순전한 모습 향락으로도 향해질 수 있다고 한다면. 권력의 향락은 팔루스적 향락이다. 상상적 팔루스향락이고, 동시에 상징적 팔루스를 가진향락이다 확실히 위험하고 위태로운 이야기다. 상징적일뿐인 팔루스의 향락과 비교해서, 그것은 무서운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것은 흔하고 합리적인 향락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권력이고 싶다고 하는 욕망은 결국은 어느 사이엔가 거세되는 권력을 갖고 싶다고 하는 욕망으로 바뀌어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왕이 될 수 있어도 왕의 지팡이가 될수는 없다. 그것을 가진 사람을 왕이 되게 하고, 이 왕의 지팡이가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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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수정본) 22절 향락의 조절기, 그 너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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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수정본 4월6일) 제20절 두 개의 팔루스의 향락, 기관과 왕의 지팡이 - 향락의 레귤레이터(조절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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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수정본 3월23일) 19절 향락이란 무엇인가-마리알라콕의 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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