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야전과영원 1부3장20절

바람~
2015-04-12 10:35
544

20절 두 개의 팔루스의 향락, 기관과 왕의 지팡이 - 향락의 레귤레이터1)(조절기)(1)

 

이리하여 문제는 이렇게 된다. 이 팔루스의 향락이란 무엇인가. 애당초 팔루스란 무엇인가. 그러나 그렇게까지 성가신 질문은 아니다. 페니스와 엄격하게 구별되는 팔루스는, 대부분 우리가 앞장에서 고찰했던 라캉 논리를 그 개념이 불균질하고 장황할 때마다 전부 거기에 집어 넣고는 실재계를 주입한듯한 개념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래 성의 향락과 강하게 연결된 이 개념은 라캉을, 아니 정신분석 전체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좋은 구실이 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어쨌든 아무리 페니스와 구별한다고 해도 원래 시초인 프로이트부터가 그것은 유아어인 고추(pipi)의 고찰에서 비롯된 것은 틀림없는 것으로, 남자아이의 두려움고추가 없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렇다면 나도 고추가 떼어질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부터 꼬이기 시작한 그 묘하게 유치한논리는 언뜻 봐서는 아주 어리석게도 보이고, 게다가 여성 남성을 불문하고 유아기의 기억, 그 통점(痛点)을 미세하게 찌를 듯한 여운을 어쨋든 갖게 한다. 그래서 그 초조함과 더불어 굳어지는 조소를 부추긴다. 또한 팔루스라는 개념의 기묘한 난해함을, 그리고 라캉이 팔루스의 향락과는 다른 향락이 있다고 집요하게 주장한 것을 잘못 본다면, 정신분석은 팔루스 중심주의라는 비판도 감수해야 될 것이다. 그럼에도 신체의 일부이기도 하고 이미지이기도 하며, 시니피앙이기도 한 그 개념의 역설적인 불균질성으로, 이 개념은 많은 철학적 고찰도 도발해 왔다. 애당초 이미 인용한 들뢰즈의 의미의 논리학의 적어도 그 일부는 팔루스 논리학이라고도 불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것은 좋다. 어쨌든 본 장()의 논리는 실재계에 속한다. 말하기 어려운 것은 처음부터 당연한 것이므로. 번거로운 주석이나 그다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도식이나 은어는 생략하고, 우리는 간결하고 명석하게 가보자. 그리고 다시 이렇게 물어보자. 팔루스란 무엇인가. 다름 아닌 팔루스, 이 생물학적인 남성만이 아닌 우리의 향략이 당연히 집중할 무엇인가가, 향락을 통제하는」 「조절기라는 것은, 대체 어떤 것일까. 우선 팔루스가 그런 레귤레이터(조절기)가 되어가는 과정을 좇아보자.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팔루스에 있어서도 일의 순서는 우리가 논해왔던 논리와 일치한다. 우선 상상적인 팔루스가 있고, 거기에서 상징적인 팔루스로 전환이 일어난다. 라캉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세 단계로 그려낸 과정을 복습해보자. 먼저 갓 태어난 아이에게 팔루스는 어머니-아이-팔루스라는 그 자체, ()오이디푸스적상상적인 세 쌍의 관계 안에 있다. , 유아는 최초의 타자인 엄마를 욕망한다. 하지만 유아는 엄마도 무엇인가를 결여하고 있어서, 무엇인가를 욕망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결여된 무엇을 라캉은 상상적인 팔루스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아이는 어머니 한 사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머니는 한편으로는 상상적인 평면에서 결여인 팔루스에 이어져 있습니다.그러면 유아는 무엇를 욕망하고 있는 엄마를 욕망하게 되고, 욕망은 이중화된다. 엄마가 욕망하는 무엇이고 싶다, 상상적인 팔루스이고 싶다는 욕망이 유아에게 싹트게 된다. 이를테면 이 원시적인 팔루스기에 있어 주체는 엄마의 욕망의 대상에게 거울상적으로 동일화하는 것(s’identifie en miroir)입니다. 팔루스로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to be or not to be). 상상적인 평면에서 주체에게는 팔루스일까 아닐까라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여기에서 유아의 욕망은 어머기가 결여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욕망하는 팔루스에 상상적으로 동일화하는 것, 팔루스가 되는것이다.

엄마가 욕망하고 있는 팔루스가 되는. 이 근친상간적인 욕망에 대해, 아버지가, 거세가 개입한다. 거세로 제정된 상징적 부채 중에서 문제시 될 수 있는 것상상적 대상, 즉 팔루스입니다. 유아와 엄마의 상상적 양자관계에서 결여된 욕망의 대상으로 존재했던 상상적 팔루스는, 거세된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제2단계에서 아버지가 등장하고, 그는 자식에게 선고한다. 너는 엄마가 욕망하는 팔루스 수 없다, 엄마가 욕망하고 있는 것은 팔루스를 가진 , 즉 아버지다, 라고. 여기에서 최초의 타자, 최초의 대타자였던 엄마의 타자, 즉 다음 단계의 대타자인 아버지로서의 대타자가 등장한다. 유아인 주체는 여기에서 대타자의 대타자, 즉 대타자 자신의 법과 마주친다. 실로 이 단계의 아버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거세하는 아버지는 전능한 아버지이고, 자식으로부터 엄마를, 엄마로부터 자식을 박탈하고, 상상적으로 팔루스인 것을 절단하고 금지한다. 너는 팔루스일 수 없다. 팔루스는 가지고 있는가 가지고 있지 않는가 이지, 그것 수는 없다, 라고. 라캉은 말한다, 인간은, 자신이 팔루스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 이상, 남자든 여자든 팔루스를 가지고 있는 것, 또 팔루스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된다. 에크리중 한 논문 정신병의 모든 가능한 치료에 관한 전제적 문제에 대하여에서아버지의 이름에서 엄마의 욕망, 대문자 M이 삭제된 아버지의 이름과 시니피앙인 팔루스가 남는다고 적힌 식은, 이것을 가리키고 있다. , 욕망하는 대타자는 욕망하는 상상적 엄마인 것을 그만두고, 욕망하는 상징적 아버지로 변환된다. 이것이 아버지의 이름의 개입이고, 거세이다. 이 거세로 인한 팔루스이다에서 팔루스를 가진다로의 이행은, 우리가 봐온 것처럼 상상계로부터 상징계로의 이행, 에메에 대한 법의 일격과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이렇게 해서 그것으로 존재하는상상적인 팔루스의 거세에 의해, 그것을 가진상징적인 팔루스가 출현한다. 그러므로 라캉은, 팔루스는 하나의 시니피앙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것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는 데까지 이미 와 있다. 상징적인 팔루스, 그것은 하나의 시니피앙이다. 그러므로 물론, 그것이 있는없는, 0인가 1인가가 문제가 된다. 라캉은 확실히 상징적 대상인 팔루스를 부재인 동시에 현전하는 무엇이라고 서술하고, 그것은 일종의 근본적인 교대 안에서 만들어집니다. 어떤 점에서 나타나고, 사라지고, 또 어떤 점에서 나타납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순환하고, 자신이 도달한 점에, 스스로의 뒤에 그 부재의 기호를 남깁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팔루스의 상징적 기능입니다. 특별히 그것이 거기에 있다 혹은 거기에 없다 라는 것에 성별의 상징적 문화는 기초하고 있습니다라고 결론짓는다. 그리고 또, 시니피앙 안에서는, 팔루스는 이렇게 자리매김하면 충분합니다이것은 환유적 대상입니다라고도 말한다. 요약하면 상징적 팔루스란, 우리가 보아온 저 시니피앙 그 자체이다. 현전과 부재의 교대, 즉 누군가는 갖고 있지만 누군가는 갖지 않은, 하나하나의 현전과 부재의 교대로 나타나는, 환유에 의해 구동하는 시니피앙 연쇄, 그 효과로 성별을 가진 주체를 생산하는 상징적 결정. 시니피앙 연쇄에 의한 상징적 동일화분류를 가능하게 하는 이상, 이 주체가 성별이라는 근본적 분류를 이미 뒤집어쓴 채 생산된 것은 알기 쉬운 이치다. 이에 대해 우리는 상세히 논해왔다. 더이상 반복하지 않겠다. 이리하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거세, 즉 상상적 팔루스에서 상징적 팔루스로 이행이 이루어졌다.

여기까지가 이른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던 시대에는 이 아버지의 전능성이 해악을 준다고 생각했습니다만이라고 라깡은 57~58년의 세미나 무의식의 형성물에서 말을 이어 간다. 다음 단계가 있습니다라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제3단계에서 이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향해 이렇게 증언한다. 나는 너에게 상상적인 팔루스를 대신하여 상징적인 팔루스의 현전 혹은 부재를 초래했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내가 법의 지지자=법을 참고 견디는 자(supporter)이고, 그러한 한에서 일 뿐이다, 라고. 즉 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제3단계에서 아버지는 만능인 아버지가 아니다. 상상적으로 이미지 팔루스인 자가 아니고 상징적 시니피앙인 팔루스, 이기도 한 팔루스를 가진 일 뿐이다. 만능인 아버지가 아니라 상징적인 아버지인 이상 즉 법을 준수하고 맹세를 하는 자로서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 아이와의 약속을 어겨서는 안되고, 약속을 깨는 등 위법을 저지르면 안된다. 여기에서 아버지는 이제 만능인 원부(原父)가 아니고 아이와 함께 법에 복종하고, 법 아래 엎드리는 누군가이다. 아버지는 은유가 된다. 상상적인 것이고, 아직 거울상 이전에 있는 무엇의 그림자를 두른 엄마의 욕망, 대문자 M이 삭제되어 아버지의 이름과 시니피앙으로서의 팔루스가 남는다고 써진 식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했지만, 라캉은 이것으로 아버지는 은유가 된다고 말했다. 더 말하면 은유에 불과한 것으로. 이를테면 엄마의 욕망 M의 삭제는 은유의 성공하는 조건이다. 라캉은 이것에 부연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은 상징적인 아버지라는 개념에 조금 더 정확성을 부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아버지란 하나의 은유입니다. ……은유란 다른 시니피앙의 자리에 도달한 하나의 시니피앙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아버지라고 나는 말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란 다른 시니피앙을 대신하여 놓인 하나의 시니피앙입니다. 여기에 아버지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안으로 개입해온 그 원동력, 본질적인 독특한 원동력이 있습니다. 부성결여는 이 수준에서 찾지 않으면 다른 어느 곳에서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아버지의 역할이란 상징화 내부에 도입된 최초의 시니피앙, 즉 모성시니피앙 대신 치환된 하나의 시니피앙입니다. 여러분께 은유의 정식(定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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