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선물의 노래 - 이상하고도 낯선

도라지
2019-11-10 15:11
456

#내겐 아직은 이상하고도 낯선...

문탁에서 같이 세미나를 하고, 오며 가며 말도 섞고, 때론 함께 밥도 짓고, 에세이 쓸때면 서로 눈물 콧물 닦아주기도 하는 나의 쌤들을. 문탁이 아닌 곳에서 만나면, 나는 그만 어색하고 가끔은 못 알아보고 지나치기도 한다.  그래도 동천동에서 만나면, 금방 제정신이 들어 "어머! 반가워요!" 인사하지만, 언제가 2001아울렛에서 유를 만났을 때. 우리는 마치 서로 못 볼 곳에서 마주친 것 마냥. 얼굴이 벌게지기까지 했었다.

또 내가 이상한 느낌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주방에서 밥당번으로 새털쌤과 요요쌤을 마주했을 때다. 뭐랄까? 일종의 증강현실을 경험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텍스트와 노트북이 아닌, 앞치마에 부엌칼을 든 쌤들의 모습. 나는 그 모습이 영 쉽지 않다. 쌤들은 주방에서도 책을 보실 것 같은데 말이다. 심지어 새털쌤은 나보다 오이를 더 후딱 맛나게 무치기까지 한다. 지난번에 요요쌤은 양념장을 만들며 물어보셨다. "도라지~ 간장과 다른 양념의 비율을 말해줘~"라고. 아...어색해. 요요쌤이 모르는 것도 있네! ㅋ

이상하고 낯선 건 또 있다. 바로 주방으로 흘러들어오는 선물의 정체! 나는 주방에서 매니저로 일하면서부터 선물 뒤에 숨은 문탁쌤들의 낯선 매력들을 알아가는 중이다.

주방으로 오는 선물들은 다음과 같은 형태를 띤다.  1.한가득 자세한 설명과 같이 오는 선물 2.무심히 툭하고 들어온 선물 3.마치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채워지는 선물. 물론 투명한 선물을 원하는 나는 첫번째 선물의 경우를 추천하고 싶지만,  두번째와  세번째 선물 또한 그 온도면에선 후끈한 선물들이다. 왜?

우선 선물2의 경우는 보따리로 오는 경우가 많다. 텃밭 농사를 직접했거나, 지인의 텃밭에서 훑어 바로 문탁주방으로 보내 오는 선물들이기 때문이다. 아는척에 잘난척까지 조금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노지에서 농사지은 텃밭 작물들은 냄새부터 다르다. 슈퍼에서 파는 잉큐베이터 호박들은 썰어보면 살짝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데(나는 그 냄새를 석유냄새라고 표현하곤 한다.), 여름 지나 텃밭에서 찬바람 살짝 맞고 도마 위에 오른 호박에서는  군고구마 향이 난다.  그 펄떡펄떡하는 호박들을 우리는 10월 내내 지져먹었고(볶아 먹는다고 하면 좀 맛이 덜한 느낌!ㅋ) 숨벙 숨벙 잘라 된장 넣고 끓여 먹을수 있었다. 꼬부라져 못생겼어도 단맛이 강한 텃밭 가지도, 맵고 진한 맛의 텃밭 고추도, 주방 냉장고를 열 때마다 그 선물들은 나에겐 10월의 보험 같았다.  아! 잊지말아야지. 곡성에서 신상환쌤이 보내주신 여주, 오크라, 부추도 있다. (올 가을 문탁에서 여주를 못 먹어본 사람들은 반성하며 문탁에 밥 먹으러 더 많이 올지어다~~~ )

이제 3번 선물의 경우를 잠깐 이야기 하자. 그것은 이를테면 주방의 국물멸치 같은 때로는 다시마 같은 그리고 쌀 같은 것. "앗! 쌀이 없네요~"하면 주방에 들어와 앉았고, "멸치가 떨어져 가네..."하면 냉동실에 채워진 멸치 박스 같은 것. 이 무슨 오병이어의 기적도 아닌, 선물로 확인하는 이상하고도 낯선... 아직은 그게 바로 '우정'이야!라고 내 입으로 말하기는... 쫌 약간 쑥스러운 그런 3번 선물의 이야기를 끝으로 10월 선물의 노래를 마친다!

                        "여러분들의 선물이 주방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11월도 싱싱하게 잘 부탁드립니다~"
                         이상은 뻔뻔하게도 선물을 대놓고 밝히는 도라지가 부른 선물의 노래였습니다! ㅎ^^


번외.

#고로케와 고들빼기 김치

고로케쌤의 김치는 뭔가 입에 착 붙는 양념의 비결이 있다고 할까? 나는 전부터 그것이! 많이 궁금했었다. 언제가 고로케쌤과 밥당번을 하는데, 고로케쌤이 말씀하시는 거다. "도라지 나랑 고들빼기 김치 담글까?" 나는 지극히 수동형 인간이다.  그러나 누가 뭐 하자고 꼬시면 금방 쫄래쫄래  따라 나서는 적극적인 수동형 인간이기에 나는 고로케쌤의 제안을 덥썩 물었다. "그래요 쌤~ 고로케 쌤이랑 함께 하는 거면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가을 고들빼기는 김치로 담그면 밥도둑인데. 비싼 걸 떠나 최소 이틀 이상 소금물에 우려내야( 안 그럼 너무 쓰다::) 먹을 수 있는 손 많이가는 김치다. 그런데... 고로케 쌤이 그 힘든걸 혼자 다 해서 들고 오셨다. 다듬고 쓴물 빼고... 다 해온거다. 그러고도 일하는 내내 고로케 쌤은 "음~  너무 맛있을 거야~ 어머 너무 맛있어~~~"를 연발하며 일을 한다.  물론 결론적으로 맛있기는 했다. ㅎㅎ
유쾌한 고들빼기 김치 선물해준 고로케쌤~ 그리고 그 옆에서 같이 즐겁게 일해주신 여여쌤 감사했습니다.^^

댓글 4
  • 2019-11-10 16:25

    이제 은방울키친도 데이터 분석에 들어갔네요. 뭔가 경영합리화프로젝트가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2019년도 후딱 지나갔네요. 올해도 감사합니다!!

  • 2019-11-11 10:07

    저는 10월에 유님과 함께 한 점심준비가 기억에 남습니다.
    몸푼지 100일 지난 산모인데도 역쉬, 몸사리지 않는 유님의 에너지, 활기를 느꼈어요.
    혼자서 30인분이 넘는 잡채를 척척 장만해내어서 존경스럽기까지 했답니다.
    이문서당 회원들을 비롯하여 문탁 식구들에게 밥한끼 차려 먹이고 싶었던 그 마음을 확실히 느꼈답니다.^^

    • 2019-11-13 11:12

      저는 요요샘의 내공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마음만 앞서 일을 벌려놓고... 잡채에 쩔쩔매느라 다른 반찬 준비 못했는데 후딱 하시는 것을 보고...역시 짬밥?^^;의 내공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감사했습니다~ 오랜만에 문탁나가섲좋았구요^____^

  • 2019-11-13 23:47

    고로께!
    음식재료들과 종종 대화를 나눕니다.
    처음엔 놀랐지만 이제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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