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절 252p

요요
2015-08-11 12:16
484

야전과 영원 252p

ついきゅう [追求]

こころみる [試みる]

さんか [惨禍]

あやうい[危うい]

どうてい [道程]

しんゆう [親友]

こうする[抗する]

こうせん[抗戦]

ぶんり[分離]

つなげる[繫げる]

びしょう [微笑]

つつむ[包む·裏む] 1.싸다; 포장하다; 두르다. 2.감추다; 숨기다. 3.에워싸다; 포위하다.

はじ[恥·羞·辱]

はじらい[恥じらい·羞じらい]

みちる[満ちる·充ちる]

かいにん [懐妊]

----------------

여기에서 유감이지만 나는─적어도 이 시점의 블랑쇼, 『문학공간』에 있는 블랑쇼에게─아니라고 말해야만 한다. 그곳에는 사랑이 충분하지 않다. 왜, 블랑쇼는 이것을 「예술가」만의 일이라고 말해버린 것일까. 그는 분명하게 말한다. 「예술은 그것 자신의 현존이 되어야만 한다. 예술이 확증하려고 하는 것, 그것은 예술이다. 그것이 추구하고, 그것이 달성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정확히 예술의 본질이다.」 블랑쇼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고 말했다. 이것을 예술을 위한 예술에 한정하고 있다. 국가의 예술화라고도 불리는 나치즘, 모든 의미에서 그 참화 속으로 말려들어가고, 그 위태로운 도정에서 그럼에도 친구 레비나스와 함께 하이데거에 저항했던 그가, 예술과 정치를 분리하려고 강하게 바랐던 것은 충분히 이해한다. 68년 5월 혁명에서, 그가 쓴 것을 다시 정치적인 것과 연결시킨 것도 안다. 그러나 바로 이 『문학공간』에서야말로 그것은 법의, 정치의 공간이라고 말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용기를 내어 말해야만 한다─작품은 통상적인 의미로는 죽음이 아니고, 그것은 예술가만의 체험은 아니다 라고. 「전부는 아닌」 「여성의 향락」에서만 쓰고 그리는 것은 끝나지 않고 멈출 수 없는 무엇인가가 된다. 그리고 그것은 그대로 연애이고, 구체적인 투쟁이고, 정치적인 저항이었다. 평온한 미소에 감싸인, 수줍음으로 가득한, 죽음을 건 투쟁이었다. 신에게 안겨, 신을 낳는 것. 개념화하고 개념을 낳는 것. 결국 회임하고 자식을 낳는 것.

댓글 6
  • 2015-08-11 22:25

    야전과 영원 258~259/요요

    そうれい [葬礼]

    みがわり [身代(わ)り·身替(わ)り] 대신, 대역

    たいやく [大役]

    かかげる[掲げる]

    うきぼり[浮(き)彫り]

    きつりつ[屹立]

    おう[王]/ つえ[杖]

    ほうむる[葬る]

    いきいきと 생생하게, 활기차게, 싱싱하게

    やくたい[益体] [~(も)ない] 쓸모없다; 변변치 못하다.

    わな [罠] 1 올가미 2.덫; 올무.(=わさ) 3.함정; 술책; 계략.

    きゅうしゅう [吸収]

    すりつぶす[磨り潰す·擂り潰す] 1.갈아서 으깨다; 갈아[비벼] 뭉개다. 2.닳아 없애다. 3.(재산 등을) 탕진하다.

    けずる[削る] 1.깎다. 2.(날붙이로) 깎아내다. 3.줄이다; 삭감하다.

    はつる[削る] 1.깎아 내다. 2.이익의 일부를 가로채다.

    かす[滓] 1.앙금. 2.찌꺼기; 찌끼.

    なめる[嘗める·舐める]1.핥다.(=ねぶる) 2.(불길이 혀로 핥듯이) 불태우다. 3.맛보다.

    かんき [歓喜]

    すえる[据える] 1.붙박다; 설치하다. 2.(눈길 따위를) 쏟다. 3.차려 놓다.

    きえさる[消え去る] 사라져 없어지다

    …せよ. 終声しゅうせいのない動詞どうしの語幹ごかんについて, 命令めいれいの意いを表あらわす終結語尾しゅうけつごび

    공부해라 勉強べんきょうせよ

    けいそつ [軽率]

    やから [輩]

    ぞくじょう[俗情]

    ぬれる[濡れる] 젖다, 정을 통하다;정사를 하다

    ふもう [不毛]

    やごう [野合]

    じもんじとう [自問自答]

    しゅうそ[愁訴] 괴로움·슬픔을 호소함.

    とじこめる[閉じ込める] 가두다; 감금하다.

    けつじょ [欠如·缺如·闕如]

    --------

    표상은 시체의 인형이다. 장례에서 사용된 시체의 대용물이고 이미 죽었기 때문에 불사인 「대역」이다. 장례, 장의에서 사람은 사진을 건다. 이 사진이라는 시체를 닮은 표상을. 아니, 애당초 우리의 논리에 따르면 <거울>에 의해 산출된 「주체」는 이미지로도 시니피앙으로도 어떻게 해도 「죽음의 그림자」이고 「자동인형」이었다. 라캉은 말했다. 「부조」라고. 그렇다. 우뚝솟은 모습으로 권력의 시니피앙인 왕의 홀은 팔루스였다. 즉 상상적이면서 상징적인 「표상」이었다. <거울>에서 산출된 주체도 또 어디까지나 「표상」이었다. 그대로다. 처음부터 라캉과 함께 우리는 몇 번이나 반복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처음부터 향락하는 시체인 사람모습이고 인형이다. 그리고 죽어서 시체를 처리한 뒤에 또 그 시체의 인형=표상을 놓는다. 표상으로 살고, 표상으로 장사지낸다. 시체의 인형으로 살고 시체의 인형으로 장사지낸다. 표상으로서의 삶. 이것이 사람의 삶이다. 이제 이것은 니힐리즘은 아니다. 「생생하게」 살고 싶다는 등 쓸데없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표상으로 사는 것이 「소외」가 된다. 생생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얼마나 향락의 레귤레타의 올가미에 흡수되고 마모되어 착취당하기 쉬운지 우리는 보아오지 않았는가. 처음부터 우리는 시체의 인형이고, 시체의 인형의 잔재를 맛보고, 시체의 인형에 붙은 작은 팔루스에 기뻐하고, 시체가 되자마자 자신을 매우 닮은 시체의 인형을 놓고 이 인형의 세계에서 사라진 것이다. 무엇인가 여기에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 있을까. 표상을 비판하라, 이미지를 비판하라, 현실로, 현실의 방향으로 라고 말하는 경솔한 무리는 끊이지 않지만 한번이라도 자신이 「생생하게 살고싶다」라는 세속의 향락에 젖어들어 말을 내뱉은 적은 없는가. 그것이 저 불모의 절대적인 향락과 야합한 것은 아니었던가, 자문자답하여 보는 것이 좋다. 이 시체의 인형으로서의 삶, 자동인형으로서의 삶에 무엇인가 이지러진, 결여된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을 소외와 슬픔을 호소하는 올가미에 가두는 것이다.

  • 2015-08-15 09:40

    p.254-255 단어와 해석입니다.

    8월 31에 뵈어요..TT

  • 2015-08-16 01:54

    29절 p.253 과 30절 p.259~260 입니다.

  • 2015-08-16 16:02

    p 256

    きい[奇異]

    こんせき [痕跡]

    りょうかい [量塊] mass 덩어리, 양괴

    にんしょう [認証] 인증

    ぎれい [儀礼] 의례

    とりおこなう[執り行(な)う] [5단활용 타동사](식·제사 따위를) 지내다; 거행하다; 집행하다

    さしあたって[差し当たって] [부사]당장; 우선

    げんぜん [現前]

    みち [未知]

    どうじ [同時]

    あいとう [哀悼]

    ししゃ [死者]

    ひっしょく [筆触]

    おきかえる[置(き)換える] [하1단 타동사]1.옮겨 놓다. 2.(딴 것과) 바꿔 놓다.

     

     

     

      이 사체는 무엇인가. 죽은 그녀나 그도 아니고, 물건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다. 블랑쇼는 그 기이함을 이렇게 말했다. 「사체는 여기에는 없고, 또 다른 곳에도 없다. 하지만 이때 어디에도 없는 장소가 즉 여기인 것이다.」 저 불확정한 죽음, 누구의 것도 아닌 죽음이 거기에 흔적을 남기고, 덩어리로 「있다.」 기이한 패러독스다. 게다가 여기서 번거로운 일이 생긴다. 이 사체 자체는 죽은 그녀도 그도 아니다. 그것을 그녀다, 그다, 라고 인증하는 의례를 이제부터 거행하는 것이니까. 우선 「이것」은 그녀나 그는 「아니다」그러나 「사체의 현전이 우리 앞에 미지의 인간의 현전인 듯한 순간, 그러한 순간과 동시에 애도되니 그 사자는 그 자신을 닮기 시작한 것이다」「나는 안다. 그것이 완벽하게 그 자신과 닮았는지 그것은 자기와 닮았다. 사체는 사체 자신의 이미지인 것이다.」 사체는 사체와 닮았다. 그녀 자신과 그 자신과 닮았다. 무슨 놀라움이 있겠는가. 우리의 논리에서는 원래 자기 이미지는 「죽음의 필촉」의 「죽음의 그림자」였다. 그 의미는 다시 여기서 명확해진다. 사체야말로 자신과 가장 꼭 닮은 것. 자신과 가장 아주 비슷하지만 자신은 아닌 것, 자신이 「진실로는」 볼 수 없는 무언가, 이다. 자신의 사체를 본 적 있는 인간 따위 없다. 그래서 자신의 사체와 꼭 「닮은」것을 보려고 생각한다면 거울을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 그래서 사체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이고, 자기 자신의 거울에 비친 이미지는 무언가 사체스러운 것이다. 위에 인용한 블랑쇼 문구의 「사체」부분을 라캉의 「거울상」으로 바꿔 놓아보면 된다. 의미가 완전히 통한다. 그것은 이상할 정도로 같은 것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리라. 그래서 거울상은 죽어 있고, 그것은 어디에도 없는 무언가이다.

  • 2015-08-16 22:40

    29절 뒷부분과 30절 전체

    p252~260단어편집본입니다.

  • 2015-08-16 22:40

    257 해석/ 띠우

     

    그러나, 번거루운 것이 하나더 있다. 왜냐하면 거울상과 달리, 이 사체는 부패하기 때문이다. 차츰 변질하고, 변색하고, 액체가 스며나오고, 썩어간다. 그것은 곤란하다모든 문화에서, 이 썩어 짓무른 것에 대해 처치가 이루어졌다. 그 대신에 놓인 것은 무엇인가. 그것이 표상이다.

    이탈리아의 역사학자 카를로 긴즈부르그는 피노키오의 눈3장에서 근래의 표상문화론이라던가 하는 그러한 것에 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라는 그다운 여유있는 빈정거림을 풍기면서 하나의 질문을 둔다. 애초에 표상이란 무엇인가. 여기서부터 그는 연이어 박식을 드러낸다. 1690년에 출판된 후유르테이에르의 대사전에 따르면 표상이란 프랑스왕이나 영국왕의 장례식에서 관을 일시 안치하는 받침틀에 태워진 밀랍, 목재, 가죽제 인형이고, 혹은 그보다 이전에 죽은 국왕을 표현하던, 사망자용의 시트에 덮여진 텅빈 장의용 침대이다. 1291년 국왕 알폰소3세를 표상하는관을 둘러싸고 있던 유대인이 아랍인에게 습격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영국에서는 1327년의 에드워드2세의 붕어, 프랑스에서는 1422년 샤를르6세의 붕어땡에 인형이 사용되었다고 하는 기록이 남아있다. 칸토로부치는, 이 인형이 국왕의 이중의 신체라는 법리론을 생생한 형태로 표현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긴스부르구는 다음과같은 등식을 보여준다. 영원의 신체=인형=국가 체제, 순간의 신체=유체. 애초에, 라고 그는 말을 계속한다. 2세기와 3세기에 로마황제의 장례식에 사용되어진 납 제품의 상이 천년 후의 같은 상황에서 전시된 영국과 프랑스왕의 밀랍, 목재, 피혁재의 상과 아주 많이 닮아있다고. 그리고 그는 봔베니스토를 인용해서 콜로서스= 조각상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렇게 단정한다.이것이 언어의 진정한 의미이다. 장례식의 상, 의례의 대역, 부재의 것에 지상에 계속 존재하는 대역,이다.이것에 표상이라고 덧붙이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70
제 31절 해석 수정본 (6)
주자일소 | 2015.10.28 | 조회 337
주자일소 2015.10.28 337
569
p.279-280 단어 (5)
썰매 | 2015.10.25 | 조회 471
썰매 2015.10.25 471
568
p.269 단어 (4)
썰매 | 2015.10.18 | 조회 441
썰매 2015.10.18 441
567
<전원일기>#3~6 정리 (2)
띠우 | 2015.10.14 | 조회 258
띠우 2015.10.14 258
566
야영 1부 전체 교정본 1차 (25)
토용 | 2015.10.11 | 조회 421
토용 2015.10.11 421
565
제2부 르장드르 단어 올립니다 (6)
토용 | 2015.10.11 | 조회 758
토용 2015.10.11 758
564
북앤톡 초초초안 (11)
건달바 | 2015.09.30 | 조회 337
건달바 2015.09.30 337
563
욕망의 전복 10장 (2)
썰매 | 2015.09.06 | 조회 260
썰매 2015.09.06 260
562
욕망의 전복 5장
건달바 | 2015.08.31 | 조회 217
건달바 2015.08.31 217
561
욕망의 전복 제4장 주체 (1)
요요 | 2015.08.30 | 조회 396
요요 2015.08.30 396
560
해석교정본 <서문~30절> 묶음 (1)
띠우 | 2015.08.28 | 조회 258
띠우 2015.08.28 258
559
<교정>제28절 죽음, 죽음, 죽음-하이데거와 라캉, 죽음의 진리
뚜버기 | 2015.08.26 | 조회 313
뚜버기 2015.08.26 313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