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절 p240~241 단어와 해석 올립니다

띠우
2015-07-30 20:20
623

p240~241 단어

 

じく []

いたる[·][5단활용 자동사]

のぞむ[][5단활용 자동사]()하다; 향하다.(중요장면) ()하다.만나다; 당면하다; 즈음하다.

ぎょうし [凝視]

そうご [相互]

こうかい [公開]

たえず[えず][연어]; 끊임없이.(=동의어いつも·不断)

さいなん [災難]

しょうち[承知][명사][타동사]알아들음.(소망이나 요구) 들어줌; 동의; 승낙.용서.

えんせき[遠戚][명사]원척; 친척.

みけん[未見][명사]미견; 아직 보지 못함; 만나 보지 못함

ものごと[物事][명사]물건과 일; 일체사물.

とくしょく[特色]

めだつ[目立][5단활용 자동사]눈에 띄다; 두드러지다

せけん[世間][명사]세간; 세상.사회; 세상; 세상 사람; .

そなえる[える][1단 자·타동사]준비하다; 대비하다.갖추다

ようい[用意][명사][·타동사]용의; 준비; 대비; 주의.(=동의어用心·支度)

もらす[らす·らす][5단활용 타동사]새게 하다.흘러 나오게 하다.누설하다; 입밖에 내다.

しゅし [趣旨]취지.(=동의어趣意

とうぶん[当分][명사][부사]당분간; 잠시 동안

ひとごと[ひと·人事·他人事][명사]남의 일.

おおいかくす[·][5단활용 타동사]덮어 가리다; 덮어 숨기다.

 

p240~241 해석

 

오래도록, 철학사에도, 죽음은 주체 속에 있어서 축을 이루는 것이었다. 헤겔이나 니체, 그리고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이 정신의 삶을 보다 강화한 것이었다고 계속 말해져왔다. 여기서는 하이데거의 말을 가져오자. 존재와 시간의 제 2편 제 1, 현존재의 가능성인 전체존재와, 죽음에 임한 존재의 분석이다. 누구라도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안다. 자신도 그 중의 한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일상의 하루하루 속에서 응시할까. 인용하자.

 

일상적인 상호존재의 공개성은, 죽음을, 끊임없이 발생하는 재난으로써, 사망사례로써 알고 있다. 이래저래 가까운 친척이나 먼 친척이 죽는다. 아직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매일 매시간, 죽어간다. 죽음은 세계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것으로써, 그것은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물의 특색을 이룬 두드러짐 안에 머무르고 있다. 그리고 세상은 역시 이 일에 대비해서, 이미 하나의 해석을 준비한다. 죽음에 대해 말하고, 혹은 대부분은 말을 꺼리는 것처럼, 세상이 누설하는말의 취지는 사람은 언젠가는 분명 죽는다, 그러나 당분간은, 자신의 순서는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렇다, 이 직후에 그는 계속해서 「《사람은 죽는다라는 말투는, 죽음은 말하자면 세상 사람의 신상에 있어서 남의 일이라는 의견을 널리 퍼지게 한다. 그야 사람은 죽겠지, 그런 거지 그리고 우리들은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죽음은 어떠한 순간에도 가능하다는 것을 덮어버린다.

댓글 9
  • 2015-08-01 12:26

    p.239-240 단어올립니다.

    • 2015-08-11 16:24

      <수정 해석>

      p.239-240


      괄호 표상과 사체-하이데거. 블랑쇼. 긴즈브르그

      제28절 죽음,죽음,죽음-하이데거와 라캉, 죽음의 진리

      죽음, 죽음이다. 우리는 라캉의 논리를 횡단해 왔다. 그 길 위에서 언제나 조우해 왔다. 「죽음의 필촉」으로, 「죽음의 이미지」로, 「죽음의 그림자」로. 라캉의 논리인 「전부」가, 무엇인가 죽음의 냄새를 씻어낼 수 없었다. 죽음에서 불어와 얼어붙은 바람, 그것은 사체의 썪은 냄새로 중복되어 왔다. 언제나 거기에 나타나는 것은 무엇인가가 결여되어 있고, 무엇인가가 죽어있으며 응결되어 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언제나 「자동인형」이고 존재의 「울분」이었다. 팔루스조차 어딘가 죽어있던 것이었다. 무엇인가 누락된 기관으로만 그 향락을 완수하는 것이었다. 거기서부터 유출되어 온 대상a도 확실하게 「죽어 있는」것이었다. 상상계도 죽음, 상징계도 죽음, 현실계도 죽음. 죽음, 죽음, 죽음. 정신분석은 허무주의 궁극의 한 형태는 아닌가. 그렇다. 이미 말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신분석에 한정된 것일까. 사람은 죽는다. 죽게 된다.「모든」사람에게 적용되는 유일한 진리, 유일한 사실이 있다면 그것은「죽음」이라는 것이다. 「모든」사람이 죽는다. 「전체」라는 것은 「죽음」인 것인가. 모든 사람은 죽는다. 이것을 쓰고 있는 나도, 이것을 읽고 있는 당신도. 「사람은 죽는다. 반드시 죽는다. 절대적으로 죽는다. 죽음은 피할 수 없다」431. 이것은 아사하라 쇼코의 말이기도 하다는 것을 떠올려 보자. 죽음, 죽음의 공포에 대한 선동. 언제 죽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죽는 것만은 진리이고 사실이며 누구나 죽는다. 따라서-, 이 「따라서」뒤에 어떤 문구가 올 지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죽음의 선동」이, 「죽음을 망각하는 것」과 연결을 만들어, 참사를 불러오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의 일상도 이 죽음의 망각과 죽음의 선동 속에 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거기서 눈을 돌리고, 그리고 도피했던 앞의 향락 속에서도 어렴풋이 죽음의 내음을 맡는다. 「모든」사람은 죽는다. 이것이 「진리」다. 죽음은 거역할 수 없다. 라캉이 말했던 것처럼 「죽음, 이 절대적 주인」의 노예로, 얼만 안 되는 향락에 매달리고 그 나머지 향락을 착취하며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죽음이야말로 죽음만이 절대적인 진리이며 절대적인 왕인 것이다. 다른 모든 가능성을 가능하지 않게 하는 가능성으로서의 죽음. 이 무미건조한 자명성을 근본으로, 세계의 전부는 돌고 있다. 당신은 죽는다. 그리고 나도.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주431)

      에가와쇼우코 『「옴진리교」추적 2200일』문예춘추, 1995년,381쪽. 이것은「 바르도의 인도」라는 출가를 강제하기 위한 비디오 작품으로, 잇달아 연속으로 사체의 영상과 함께 에가와 자신의 목소리로 되풀이되는 말이다. 죽음이라는「자명한 이치」를 진리로 하는 체제인 옴진리교에 대해서는 니부야타카시 「돼지의 전쟁」『이마고(IMAGO)』1995년 8월 임시증간호, 靑土社, 1995년에 간결하게 정밀한 소묘로 묘사되어 있다.

  • 2015-08-02 00:03

    p.244 단어

     

    すわる[わる] 1.자리 잡고 움직이지 않다; 침착해지다 2.(도장이) 찍히다

    える 각오하다

    覚悟わる[きまる] 각오가 서다

    ぎょうし [凝視]

    のぞむ[] 1.()하다; 향하다 2.(중요한 장면에) ()하다 3.만나다; 당면하다; 즈음하다

    せっぱく [切迫]

    さいり [犀利] 서리; 두뇌가 명석하고 말이 정곡(正鵠)을 찌름[날카로움]

    そういない[相違無] (‘ない의 꼴로) 틀림없이 이다

    かんじとる[] 감득[감지]하다; 마음에 느끼어 이해하다

    かかと[] 1.발뒤꿈치.(=きびす·くびす) 2.신뒤축

    めをそらす[らす] 1.시선을 딴 데로 돌리다 2.외면하다

    ぎゃくてん [逆転]

    そしる[··] 비난하다; 비방하다; 나쁘게 말하다; 욕하다

     

  • 2015-08-02 16:51

    242p

    こゆう [固有]

    ありがた[有り形] (그 물건의) 현재의 모양·모습. 본래의 모양·모습.

    はりあげる[張(り)上げる][하1단 타동사] (소리를) 지르다; 외치다. 높이 펼쳐 치다.

    のぞむ[臨む][5단활용 자동사] 면(面)하다; 향하다. (중요한 장면에) 임(臨)하다. 만나다; 당면하다; 즈음하다.

    きわだつ[際立] [5단활용 자동사]뛰어나다; 두드러지다; 눈에 띄다.

    ぜつえん[絶縁] 절연

    あらわす[露わす] 드러나다

    ぼうぜん[呆然·茫然] [トタル]망연; 어리둥절함; 멍함; 어이없어함.

    よびたてる[呼(び)立てる][하1단 타동사]소리 높여 부르다. 일부러 불러내다.

    せんく [先駆]

    りょうかい[了解·諒解]

    けいるい [係累·繫累]계루. 이어서 얽맴. 신변에 얽매인 누(累).

    はいりょ [配慮]

    ものごと[物事]물건과 일; 일체의 사물.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비본래적인」현존재의 모습이다. 다르다, 라고 하이데거는 외친다. 「당신은 죽는 것이다」죽음은, 「이 나」에게 일어난다. 그러기는커녕, 죽음은 죽음만이는 「이 나」고유의 것이다. 그는 말한다.

     

     

     죽음은, 현존재 자신의 가장 고유한 [남의 일이 아닌(eigenste)]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에 당면한 존재는, 그래서 현존재의 존재 바로 그것을 걸 수 있을 듯한, 현존재 자신의 고유의 [남의 일이 아닌] 존재 가능을 현존재에 개시하는 것이다. 그 존재 안에서 현존재에는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뛰어난 가능성에 있어 세간에서 절연된 것이 드러날 수 있다.

     

     

     죽음은 각자 현존재에 그저 막연히 「소속되어 있지」만은 않다. 죽음은 현존재를 개별적 현존재로서 불러내는 것이다. 선구 안에서 양해되는 죽음의 관련 없음은, 현존재를 자기 자신에 고독화시킨다. 이 고독화는 실존을 향해 「현」이 개시되는 모습이다. 거기는 남의 일이 아닌 자기 존재 가능성을 걸 수 있을 때는 우리가 배려하고 있는 모든 일 아래에서의 존재와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 존재가 전부인 것을 말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현존재가 본래적으로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이렇듯 가능하면 다잡는 것에 따른 것이다.

    • 2015-08-16 20:24

      242 수정

       

        이것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비본래적인」현존재의 모습이다. 다르다, 라고 하이데거는 외친다. 「당신은 죽는 것이다」죽음은, 「이 나」에게 일어난다. 그러기는커녕, 죽음은 죽음만이는 「이 나」고유의 것이다. 그는 말한다.

       

       

       죽음은, 현존재 자신의 가장 고유한 [남의 일이 아닌(eigenste)] 가능성이다. 이 가능성에 당면한 존재는, 그래서 현존재의 존재 바로 그것을 걸 수 있을 듯한, 현존재 자신의 고유의 [남의 일이 아닌] 존재 가능을 현존재에 개시하는 것이다. 그 존재 안에서 현존재에는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뛰어난 가능성에 있어 세간에서 절연된 것이 드러날 수 있다.

       

       

      죽음은 각자 현존재에 그저 막연히 「소속되어 있지」만은 않다. 죽음은 현존재를 개별적 현존재로서 불러내는 것이다. 선구 안에서 양해되는 죽음의 관련 없음은, 현존재를 자기 자신에 고독화시킨다. 이 고독화는 실존을 향해 「현」이 개시되는 모습이다. 거기는 남의 일이 아닌 자기 존재 가능성을 걸 수 있을 때는 우리가 배려하고 있는 모든 일 아래에서의 존재와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 존재가 전체인 것을 말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현존재가 본래적으로 자기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자신을 이렇듯 가능하면 다잡는 것에 따른 것이다.

      - 이 날 제가 안 나와서 모르는 부분이 있습니다.

  • 2015-08-02 21:00

    야전과 영원245p/요요

    かける (動詞의 連用形, 助動詞 ‘(さ)せる’ ‘(ら)れる’의 連用形에 붙어서)

    1.…하기 시작하다.

    観客かんきゃくが席せきを立たち掛かける 관객이 자리를 뜨기 시작하다

    2.아직[미처] 못 끝내다; …하다 말다.

    読よみ掛かけた本ほん 아직 다 못 읽은 책

    建たて掛かけた家いえ 짓다 만 집

    仕事しごとをやり掛かけたままにしておく 일을 하다 만 채로 두다

    3.막 …하려 하다.

    消きえ掛かける 막 꺼지려 하다; 꺼져 가고 있다

    倒たおれ掛かけている垣かき 쓰러져 가는 담

    じさつ [自殺]

    くわだてる[企てる]

    とうき[投企] 기투(현재를 초월하여 미래에로 자기를 내던지는 실존의 존재 방식).

    みかけ[見掛け] 외관; 겉보기.(=うわべ)

    みかけは当あてにならない 외관은 믿을 게 못 된다

    ねらう[狙う] 1.겨누다; 겨냥하다. 2.노리다. 3.엿보다.

    とうずる[投ずる] 1.던지다.(=なげる) 2.집어넣다.(=なげこむ)

    ふかひ [不可避]

    ちかづく[近づく·近付く] 1.접근하다. 2.가까이 가다; 다가오다.

    しんえん [深淵]

    ひやく [飛躍]

    なしおえる 감당 (勘當)하다

    ちゅうせい [中性]

    えいえん [永遠]

    にんしょう [人称]

    • 2015-08-11 12:46

      245p 해석입니다.

      제29절 죽음의 비-진리, <바깥>과 <밤>

      그러나 정말로 그런 것일까?─사람은 죽는 것일까, 모리스 블랑쇼는 조용히 그리고 불온하게 말하기 시작한다. 정말로 당신은 죽는가? 「나」는 죽는 것이 「가능」한가? 나는 진리인가. 자기의 진리를 열어 보이는 것인가. 블랑쇼는 말한다.

      나는 나 자신으로 죽는가. 어쩌면 나는 항상 타자로서 죽는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정확하게는 나는 죽지 않는다고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죽는 것이 가능한가. 나는 죽을 수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가?


      사람은 자살을 「기획하는 것[기투하는 것, projeter]」이 가능하지 않다. 이 외관 상의 기획은 결코 적중하는 일 없는 무엇인가를 향하여, 겨냥할 수 없는 목표를 향하여 던져진다. 또, 그 결과도 결코 결과로는 간주될 수 없다.


      그것은 불가피하지만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이다. 현재의 심연이다. 나와 어떤 관계도 없는, 현재가 아닌 때이다. 나는 그것을 향하여 비약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이 죽음 속에서 나는 죽지 않고, 죽을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였기 때문이다. 이 죽음 속에서는 사람(on)이 죽는다. 죽는 것을 그만둘 수 없고, 죽음을 감당할 수도 없다. 나는 결코 죽지 않고 「사람이 죽는」 것이며, 사람은 언제나 자기와는 다른 사람으로, 중성으로, 영원히 「그것」인 비인칭으로 죽는 것이다.

  • 2015-08-11 13:34

    243p  해석(건달바님 부분 해석 올립니다)


    너는 죽는다. 죽는 것은 「그대 자신」이다. 언젠가 그 「나」는 죽는다. 「나」는 죽는다. 「내」가 죽는 것만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고유」한, 남의 일이 아닌 사건이다. 죽음에서 오직 한 사람 너는 고독하게 「세상으로부터 절연」되고, 「다른 사람과의 공동존재」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죽는다.주1)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본래적으로 그 자신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가능성」그것이라고 한다면.

    누가 누구라도 좋다. 누가 누구로 바뀌어도 된다. 환유적인 욕망을 부채질하는 것을 갖추고 있다면 누구라도 좋다. 이 같은 향락의 조절기에 관계된 이 세계에서 나는 무엇이 나인지를 상실한다. 「나는 이것이다」의 「이것」은 없었다. 베어버린 대타자의 공허한 대답은 「너는 죽는다」였다. 그것은 이미 기술했다. 하이데거는 이것을 역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아무리 누가 누구로 바뀌어도 상관없는 이 세계에서도 나의 죽음만은 내가 받아들여야만 한다. 나의 죽음은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디. 그 가능성, 즉 다른 가능성 모두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가능성, 특권적인 「죽음의 가능성」으로 나는 「본래의 자기」로 회귀할 수 있다. 나의 죽음을 죽는 것은 누구라도 좋은 누가 아닌, 바로 나다. 본래의 나다. 「본래의 나」는 죽음에서 나타난다.

    주1)(원주 438)주의하기 바란다. 「너는 죽는다」에서 시작한 이 묘사가 어떤 의미에서 꽤 「위험한」 것임을 필자는 자각하고 있다. 정확하게는 하이데거 및 블랑쇼의 철학적으로 정치한, 그러므로 어떤 종류의 모놀로그임을 면할 수 없는 사고의 구조에서는 「너는 죽는다」라는 「내용」의 메시지가 이같이 「연극적으로」타자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전달되지는 않는다. 이 어떤 종류의 연극성은 모든 사회분야에서 직접적 · 간접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역시 거기에서도 「위험함」은 불식되지 않는다. 그러나 다소 비약이 있음에도 본고의 과제는 블랑쇼의 「죽음」의 개념을 정신 분석(라캉) 및 정치적인 투쟁이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장소에서의 지(知)(킨즈버그)에 접속하는 것이다. 철학적인 「죽음의 분석」에서 정신분석적 · 역사적인 「죽음의 분석 혹은 시체라는 표상의 분석」으로. 물론 여기에는 단절이 있다. 이 묘사는 이 단절을 조금이나마 넘어서기 위해, 정신분석의 연극적인 것을 면할 수 없는 (그러므로 「위험함」을 면할 수 없는) 치료적 다이알로그나 죽음을 ─혹은 「운명」「진리」를─통달한 사회분야에서 역사상 허구인 주체의 설정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블랑쇼의 매우 중요한 「죽음」의 개념을 연결하여 생각해 보기 위한 조치라고 이해해주기 바란다.

  • 2015-08-15 00:23

    아, 이럴수가.! 243쪽 열심히 해서 올리려고 들어왔더니 이미 요요샘께서 올리셨군요.

    제가 하기로 했던거 잊으셨나봐요. ㅎㅎ 진작 알려주시지....

    어쨌든 제가 맡은 부분이 바로 그 뒷 페이지라 다시 편집하기도 귀찮으니 그냥 올립니다.

    후기 쓰시는 분이 알아서 하시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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