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절 수정해석본

인디언
2015-12-06 08:33
275

299-300쪽

제35절 ‘도그마’의 의미-몽타쥬로서의 엠블럼, <사회적거울>

   도그마, 도그마틱. 르장드르가 스스로 말한 바대로, 이것은 「미움받는 말」이다. 이것은 일종의 매도하는 말로만 사용된다. 르장드르는 유쾌하리만치 여유로운 비웃음을 느끼게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핀셋으로라도 그것에 닿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증오는 언제나 무지와 결부되어 있다’. 그러면, 도그마란 본래 어떤 의미였을까? 도그마라는 그리스어는 본래 보이는 것, 드러난 것, 그렇게 보이는 것, 그렇게 보이게 하는 것, 더 나아가 겉모습을 의미한다. 거기서부터 파생해온 의미는 기본이 되는 공리, 원리 내지 결정이고 명예, 미화, 장식이라는 의미도 있다. 용법으로서는 꿈이나 환각을, 의견이나 결의, 그리고 채택을 말하기 위해 사용되는 말이다.

   르장드르가 왜 자신의 일의 최고봉으로 ‘도그마’라는, 이 ‘미움받는 말’을 고른 것인가, 이미 명백할 것이다. 도그마란, 이 상징적이자 상상적인 <거울>의 작용, 즉, ‘보이는 것이 원리로서 결정한다’ 라는 이 작동을, 그 의미의 풍요함으로 분명하게 가리키는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말의 의미에는 그것 자체에서는 인과성도 근거도 설명도 없지만 거기서부터 인과성과 근거와 설명이 시작되는 무언가라는 함의가 포개져 있기까지 하다. 그 어휘를 쓰는 것으로 우리는 일거에 가족이나 심리학, 정신분석의 밀실에서 해방된다. 그렇다, 명백하게 도그마란 사회적인 것에, 권력에, 정치에, 예술에, 종교에 관계된 어휘 이외의 무엇도 아니다. 따라서 그의 이론은 정신분석의 단순한 ‘응용’은 전혀 아니다. 반대다. 정신분석은 중세신학이나 교회법, 로마법이, 그의 언어로 말하면 ‘서양기독교 규범공간’이, 끝없이 계속해온 질문을 이어받은 방식중 하나의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 그 갱신의 힘은 의심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댓글 4
  • 2015-12-07 15:57

    p.301 ~ 302


    따라서 그것은 몽타주의 효과이고 그것 자체가 이미지와 표상의 몽타주 작용이다. 여러 가지 장면에서 거론되는 저 고명한 ‘우상숭배의 금지’, 출애굽기 20장 4절 ‘우상을 만들지 말라’에서 개시되어 고대 중세 근대에 거쳐 몇 번이고 논의되면서 조금씩 개정되어 온 방대한 내력을 가진 이 금지도, 르장드르에게는 ‘부정성을 규제하는 하나의 방책’이라는 유럽의 하나의 버전에 지나지 않는 것이 된다. 즉 우상숭배의 금지란 <거울>이 말하는 ‘너는 이것이 아니다’라는 언명 안에 있는 ‘아니다’를, 즉 ‘부정’을, 즉 금지와 소격과 한계의 통고를 가능하게 하는 ‘부정어’라는 언명을 조절하는 수법이라는 유대 그리스도교의 하나의 버전이었던 것이다. 이 <거울>이라는 장치를 정치하게 짜 올려 섬세하게 조절하는 ‘규제’의 ‘책략’에 의해서야말로, 역으로 저 풍요롭기 짝이 없는 유대-그리스도교의 엠블럼, 심벌, 회화, 초상, 이미지의 역사가 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말과 이미지와 향락이 교착하는 <거울>이 즉 도그마가, 하나하나 구체화된 것을 르장드르는 총칭해서 ‘엠블럼’이라고 부른다. 깃발, 엠블럼, 배지, 로고, 마크. 이런 것들의 이미지와 말의 중간에 있을 법한 것들이야말로 바로 <거울>이 구체화된 것이다. 왜냐하면 ‘엠블럼은 우리 앞으로 보내져 우리가 그 엠블럼을 보면, 보고 있는 우리를 보기’ 때문에. 예를 들어, 풋볼팀의 서포터를 생각해보자. 그들은 개개의 선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자기 팀의 멋진 선수를 칭찬하고 사랑도 할 것이다.

  • 2015-12-09 17:37

    p304  수정해석

     

    그렇다. 이미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 사이에서 우리는 이미지이다.’라는 문언을 인용했지만,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우리는 거기에 표상의 대상처럼 심어져 있다. 우리는 우선 형태를 취하는 것, 엠블럼, 준거된 대상, 준거의 창설자로 현실에 존재한다.’라고. 우리가 <거울>에서 표상으로 제조된 것인 이상, 이미지이고, 텍스트이고, 그리고 엠블럼이기도 하다. 이렇게 르장드르는 <사회적 거울>과 <엠블럼> 의 개념을 제출함으로써 마이크로적 수준과 마크로적 수준을 구별하는 작용 자체를 질문한다. 그러므로 그는 그 수준의 분리를 전제로 그것을 접합하기 위해 온갖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 그 일로 그는 최선을 다해 논리적인 경신을 이룰 필요가 없는 것이다. 거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 그 자체 준거된 대상인 다양한 마이크로적 수준의 엠블럼이 최종적으로 준거하는 마크로적 수준의 엠블럼을 우리가 <절대적 엠블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일까? 그것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문언을 인용해보겠다.

     

     <절대적 엠블럼>이 거울로 취급된다면, <절대적 엠블럼>은 다양한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아이덴티티의 사회적이면서 주체적인 절차가 이 <제3자>를 지탱하는 셈이 된다. 다시 말하면 아이덴티티를 가능하게 하는 이미지는 원리적으로 ‘거울에 의한’ 분할의 현전 양태에 속해있는 것이다. 이처럼 <텍스트>의 중계를 통해, 즉(<토라>, <복음서>, <꾸란> 등의) <텍스트>의 언설 속에 있는 ‘미리 말해진 주체’의 이미지를 통해서야만, 주체는 이 수수께끼스러운 형식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것과 동시에 타자와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 즉 유대인이고, 그리스도 신도이고, 무슬림이다, 라고.

  • 2015-12-10 13:10

    303-304 수정해석

  • 2015-12-12 12:41

    p.303 수정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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