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320단어

주자일소
2015-12-17 19:20
341

p310

ほりさげる[掘(り)下げる] [하1단 타동사] 1.파내려 가다. 2.(사물을) 깊이 파고 들다

かしょ [箇所·個所] 개소; 장소.

あげる[挙げる] [하1단 타동사]1.팔을 쳐들다. 2.(예식 등을) 거행하다. 3.(예로서) 들다.

どうにゅう [導入]

なぜ[何故] [부사]왜; 어째서

ちょくれい [勅令] 칙령

むきあう[向(き)合う] [5단활용 자동사]마주 (바라) 보다[향하다]; 마주 대하다

ふえん[敷延·布衍·敷衍] [명사][ス타동사]부연.

 

 

왜냐하면 르장드르가 말한 대로 ‘우리가 준거하는 권력을 일단 <제3자>의 엠블럼화 현상으로 이해했지만, 이것은 분할원리를 표상하는 권력으로서도 깊이 파고들어가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아이들」의 이 개소에서 그가 이 분할원리에 따라 분할된 것으로 예를 드는 것이 세 가지 있다. 카테고리, 주체, 그리고 시간이다. 우선 <거울>인 엠블럼화된 제3자는 법의 말로서 ‘카테고리를 분할한다, 즉 분류한다.’ 그리고 이것과 ‘주체’와 ‘시간’이 분할된 것은 별개가 아니다. 즉, ‘분할하는 것은 다시, 주체가 인과성 안으로 도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보면 <금지>와 관계는 인과성의 논리와 관계를 의미하고...... <근거율>과 관계로서 표상되’는 것이므로.

 솔직히 말해 르장드르의 논지 안에서도 매우 중요하면서 곤란한 부분을 그가 능숙하게 전개해서 말할 수 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는 당연한 듯 이것을 말한다. 왜 항상 알아주지 않는가를 전혀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말투로. 중세 스콜라학의 텍스트나 교황의 칙령의 고문서와만 마주해온 남자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상당히 이해하기가 어려운 부분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다소 부연하고 가자. 우선 <거울> 장치의 일부분이었던 ‘이것은 너다’ 라는 분리, 소격을 생산하는 언명은 금지였다.

댓글 4
  • 2015-12-19 20:09

    p318 단어 띠우

     

    きょうかい [境界]

    せんじょう[線上]

    きはん [規範·軌範]규범; 모범; 궤범.

    けいしき [形式]

    びがく [美学]

    ちつじょ [秩序]질서.

    そしき[組織][명사][타동사]조직

    りつろん[立論][명사][자동사]입론; 의론의 순서·취지 등을 세움; , 그 의론.

    てんかい [展開]

    にそって[沿って][] 따라().

    しょうこ [証拠]

    おうじる[じる][1단 자동사](おうずる)응하다

    といかける[ける][1단 타동사]묻다.

    せいする[する]1.누르다.2.제압하다; , 얻다.3.억제하다; 제지하다.

    ふるう[]휘두르다

    しつよう [執拗]집요; 끈질김.

    うったえかける[えかけるける][1단 자타동사]호소하다; 어필하다.

    じゅんきょ [準拠]준거.

    じょうえん [上演]상연.

    あやうく[あやうく·うく][부사]1.가까스로; 겨우.2.잘못하면; 하마터면.

     

    318 해석 띠우

     

    게다가 사회의 수준과 주체의 수준이 구별된 그 경계선상에서. 르장드르는 이 보이는 작용을 정확하게 보이는 권력이라고 부른다. ‘이 나타내는 권력은 규범 시스템을 다양한 형식으로, <정치><미학>으로, 문화가 이룬 상징적인 질서를 그 궁극의 근거에 연결하는데 존립하고있고, ‘이 점, 사회와 주체가 분절된다는 점에 있어서야말로 보이는 권력은 의미를 지니고, 서양의 역사 시스템 속에서 <절대적 거울. 혹은 ,정초하는 이미지>──<신의 닮은 모습>의 언설로 조직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입론의 전개는 연극적 원리와 신화에 따라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유를, 원인을, 증거를, 근거를, ‘에 응하게 보이는. 질문을 두는 것, 묻는 것을 할 수 있는 시공을 두는 것. 게다가 이미지로도, 텍스트로도. 이것이 주체의 사명을 억제하는 것은 이미 분명하다. 사회로써의 <거울>은 표상으로서의 주체를 생산하는 장치였다. 그리고 이 <거울>이 휘두르는 권력이야말로 보이는 권력이었다. 그리고 이 <거울>은 이미지로서의 제3자였다. 즉 여기서는 ‘<3><근거율.에 실질을 부여하는 것이라는 것이 된다. 즉 전체 사회는 논리에 대해서, 즉 표상이나 인과성의 언설에 대해 집요하게 호소하지만, 그것은 삶이 살고 재생산할 수 있는 것처럼 되기 위해서이다.’ 3자는 근거율에 실질을 부여하는 것이고, 그것은 삶에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사회는 근거를 보여주어야 한다. <절대적 준거>, <성스러운 거울>을 상연해야만 한다. 한사람 한사람의 주체를 생산하기 위해서. 그 인형들이 가까스로 살 수 있기 위해.

  • 2015-12-20 22:03

    야전과 영원 321/요요

     

    あわせて[()せて] 1.합해서; 모두. 2.[せて](接続詞적으로도) 겸해서; 아울러; 동시에.

    てつづき [手続()] 수속; 절차.

    おのれ[()] 그 자신; 자기 자신.

    せいなる[なる] 1.거룩한; 성스러운; 신성한.(せい()) 2.깨끗한.

    くうきょ [空虚]

    しめる[める] 1.차지하다. 2.자리 잡다; 영유[점유]하다.(=占有する) 3.얻다.

    せいしき [正式]

    こうりょ [考慮]

    たえまない[間無] 끊임없다

     

    -------------------

    그것으로 주체는 <거울>에서, ’ ‘만능에서 분리된다. 이 분리의 작용이야말로 최초의 시니피앙을 도입한 트레 유네르였던 것을 생각해보자. 그리고 그것이 분류와 관계된 것으로 우리는 이미 이 개념은 제자 르장드르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 아닐까라고 서술해 두었다. 트레 유네르의 개념이 교조적인 것이라고 라캉 자신 말했던 것도 동시에 생각해 보자. 그렇다. 이미지와의 금지에 의한 소격, 분리는 ()’을 세는 것을, ‘하나의 항을 분리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여기에는 이미 라캉을 인용할 필요는 없다. 르장드르의 말을 인용해보자.

     

    동일화는 언설에 의한 분리의 절차로서 이해해야 한다. 분할된 인간은 이미지의 분화와 그 자신의 이미지와의 분화를 통하여 인과성의 표상 가운데 참입한다. 문화라는 규모에서 <금지.란 무엇인가. 그것은 <상징적 절대타자>의 상연을 통하여 주체에 인과성과 분화가 생기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서양의 경우, <거룩한 거울>이다.

     

    계산하기(숫자를 세기) 위해서는 하나의 공허한 장소가 필요하다. 전체적인 땅은 이 장소를 점하고, 그 장소에서 절대적 준거 혹은 신화적 준거로 불리는 형식 아래에서 정식 자체가 된다. 세고 계산하는 것, 그것은 우선 그 공허한 장소를 고려에 넣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세계 속에서 정치기술이 끊임없이 이루어 가는 것이다

  • 2015-12-20 23:38

    p.319 / 건달바



    せいごう[整合] 정합, 이론에 모순이 없음.


    たもつ [保つ] 가지다, 지니다, 지키다.


    せいき [生起] 생기, 일어남(한문투의 말씨)->生起する일어나다.


    じしょう[事象]사상; 사실과 현상(現象).=できごと·物事.


    じめい[自明]


    いっきょ[一挙]


    みゃくらく[脈絡]



      제38절 분할 원리- ‘하나로 셀 수 있는 것’과 ‘증거가 되는 텍스트’ 


      이상의 논지의 정합성을 갖기 위해, 확인해두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한 가지는 ‘분할 원리’이고, 한 가지는 ‘증거가 되는 문서’의 특이한 상태(상황)에 대하여이다. 먼저 분할 원리부터 말해가보자. 


      일, 분할 원리. 당연하지만 인과율이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근거율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사상(사건)’과 ‘그 이유’와의 ‘관계’를 설정한다. 즉 ‘왜’와 ‘왜’란 물음에 답해야 할 ‘증거’와의 ‘관계’를. 그러나 이것은 자명한 것은 아니다. 이 원인과 결과, 사상(사건)과 이유, 왜와 증거와의 관계가 맺어지려면,  각자가 카테고리로서 분할되고 독립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인과율과 근거율은 각자의 항이 분할되어 카테고리로서 독립해 있는 것을 전제하여 성립한다. 더 말하면 이 ‘관계성’과 ‘독립성’은 일거에 서로가 서로를 전제로 한 것으로서만 제기된다. 물론 ‘분할’에 의해서. 그리고 무론(물론) 인과율과 근거율이 자명한 것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말했다. 이 두 가지 항이 분할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그것이 <거울>로서 상연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맥락이 닿아 있다.


  • 2015-12-2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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