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339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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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9 16:25
351

338

 

 

む[無] [명사] 1.무. 2.없음.

たいしゃ[代謝] [명사][ス자동사]대사.

けいれつか [系列化]

じんい [人為]

げんそう [幻想]

ぞんぶん[存分] [부사]뜻대로; 생각대로; 마음껏; 흡족하게.

わ [輪] 1.(본디 環(かん)로도) 고리; 원형. 2.바퀴. 3.테; 테두리.=たが.

せきちゅう[せき柱·脊柱] [명사]척주; 등뼈

みぶん [身分]

かつれい [割礼]

こうぞう [構造]

びょうどう [平等]

 

 

 이 만능이므로 무인 ‘절대적인 섹스’에서 분리되고 분할된, 즉 정신분석의 불확실한 어휘를 사용하면 ‘거세’됨에 따라 우리는 ‘성별’을 지니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팔루스와의 동일화는 ‘살인적인 동일화’이고, ‘죽고 싶지 않으면 이 팔루스와의 관계를 대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므로. 이렇게 우리는 여성이 되고, 혹은 남성이 된다. 여, 남, 이라는 것은 문화에 따라 계열화된 법적 카테고리이고, 문화에 따라 그 의미내용도, 수조차도 다른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형식상, 그것은 몇 개로 분할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계보를 만들기 위해 자식을 만들기 위해. 여, 남, 이라는 법적 카테고리는 법적인 것인 이상, 인위적인 것으로, 자연적인 것이 아니다. 확실히 ‘여자다운 여자’ ‘남자다운 남자’는 물론 말하는 것도 바보스러울 만큼 환상이다, 마음껏 비판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성별’ 즉 ‘성의 분별’은 제도적이면서 법적인 필요성에서 생겨난 것이고, 자식을 만드는 사회의 재생산=번식의 고리를 돌리기 위해 불가결한 ‘제도상의 책략’이다. 결국 그것은 민법의 ‘척추를 이루는’ ‘신분법’ 즉 ‘가족법’에 있어 ‘부모자식 관계의 몽타주’의 한 부분이다. 이것은 여성차별일까, ‘남녀의 구별’ 이라는 이름에 있어 ‘차별’을 허용하는 것일까, 아니다. 남녀는 평등하다. 남성할례의 예를 들면서 르장드르가 말한 것은 ‘거세를 앞둔 두 성의 구조적 평등성’ 이다. 중요한 것이므로 몇 번이나 반복하는데, 어떤 인간도 팔루스라는 <절대적 섹스> ‘가 아니고’ 그것을 ‘가지지도 않는다’ 는 점에서 분할되고 부화한 성은 ‘절대적으로’ 평등하다. 어떤 인간이라도 <절대적 섹스>인 팔루스가 아니라, 순결한 권력, 전능한 성적권력이 아니다. 그것을 갖는 것조차 있을 수 없다.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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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10 00:37

    p.336~337 단어

     

    にじみでる[にじみ·] 1.스며 나오다; 배어 나오다. 2.자연히 드러나다.

    きゅういんりょく [吸引力]

    きゅうでん [宮殿]

    せんとう [尖塔]

    こうでい[拘泥] 구애, 집착

    まずもって[] 우선 (무엇보다)

    さそう[] 1.꾀다. 2.()하다.

    みちびく[] 인도하다; 이끌다.

    だんこん [男根]

    こうてい [肯定]

    けいふ [系譜]


    p.336~337 해석

     

    상징적=상상적 팔루스. 그것은 권력의 왕홀로서, 권력을 갖는것이 권력것에 스며 나오는 순간이기도 하다. 건립되어 우뚝 솟아있는 직립상에 대한 상상적인 동일화를 흡인력으로써, 어떤 상징적인 위치를 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권력의 향락. 이것이 팔루스적 향락의 전체였다. 그것도 이미 보았다. 르장드르도 그 초기 저작에서 직립 자세의미를 정초하는 시니피앙이고 직립한 인간을 다루어서, 그것을 나아가게 하는 것은 <보편적인 성>의 신화적 언설 속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권력이 세워진 표상인 궁전, 첨탑, 입상. 이들 직립상, 그것에의 동일화가 권력에의 동일화이고, 그 관계는 성적인 것, 향락에 관계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정신분석은 그것을 팔루스라고 부르는 것에 집착한다. 더 말해보자. <국가>라는 말의 어원 중 하나에 라틴어의 스타투스(Status)’가 있다. 프랑스어로는 에타(État)’ 영어로는 스테이트(state)’에 계승되고 있는 이 말은 우선 라틴어 동사 stare ‘서다의 완료분사에서 온다. 즉 국가란 애당초 세워진 것’ ‘서있는 것이다. 국가, 이 권력이 우뚝 선 모습인 시니피앙, 팔루스인 국가. 무한히 상상적인 동일화를 꾀함으로써 상징적인 위치결정으로 이끄는 건립된 것.’ 사람은 그 전체상에 동일화하고자 함으로써 어떤 권력것은 불가능하고, 어느 새인가 어떤 상징적인 위치를 점하는 것에 의해 권력을 갖는것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이미 보아온 논리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 또 여기에서 말을 던져놓으면 국가의 남근주의를 긍정하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요컨대 왜 이러한 상징적이면서 상상적인 팔루스자식을 낳는 일, 계보원리에 관련되는 것인가. 그것을 보자. 르장드르에게 있어서 팔루스란 왜, 그것은 어떤 도그마틱한 역할을 가지는가. 지극히 명쾌한 부분을 인용하자.

  • 2016-01-10 09:28

    338(인디언)

    ね [値] あたい[値] 값어치, 가치, 값

    値(ね)をつける 값을 매기다

    たもつ[保つ] 가지다, 지니다, 지키다

    ゆるす[許す] 허가하다, 허락하다, 허용하다

    しげきてき [刺激的·刺戟的]

    みじめ[惨め] 미참함, 참혹함

    じゅんすい [純粋]

    揮 음독き/훈독ふるう 휘두르다

    ふるう[振るう] 2.(揮う로도) 휘두르다.

     초월하는 신화적 대상, 그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상상적인 가치를 갖고, 그 무의식의 지위를 유지한다. 이 대상을, 아카데믹하게 되어버린 이름으로 불러보자. 팔루스 혹은 절대적 섹스라고.

    따라서 상징적이면서 상상적인 팔루스란 ‘절대적인 섹스’이다. 즉, ‘완전한’ ‘만능인’ ‘절대적인’ 섹스, 즉 ‘성별을 초월한’ 성이다. ‘있을 수 없는’ ‘존재할 수 없는’ 섹스이다. 이 절대적인 섹스에서는 ‘아니다’라는 것에 의해, 아니 그것을 ‘갖는다’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는 것에 의해 우리는 상징적인, 어떤 자극적이지만 비참한 기관에 지나지 않는 구체적인 팔루스를 가졌다가 갖지 않았다가 하게 된다. 바로 이런 ‘상징적-상상적’인 팔루스, 즉 ‘초월하는 신화적 대상’이 ‘권력의 시니피앙’이기도 하다면, 이것은 ‘순수상태의 권력’ 만능의 권력이다. 그러나 이 ‘팔루스’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순수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르장드르는 말하고 있다. 팔루스라는 순수권력에 있어서는 ‘“권력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란 무엇인가? 답해보자. 무다’라고. 

  • 2016-01-10 13:18

    p.335-336 / 건달바



    ちょうえつ[超越] 


    くりぬく[くり抜く、刳り貫く] 도려내다; 도려내어 구멍을 뚫다.


    あくまで[飽く迄]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끝까지.


    きりつめる[切(り)詰める] 1.줄이다; 일부를 잘라 내어 작게[짧게]하다. 2. 바싹 깎다; 조리차하다; 절약하다. 


    よろこび[悦び、喜び]


    にくよく[肉欲·肉慾]


    いんとう[淫蕩]


    しょさ[所作] 1.행위; 소행; 태도; 몸짓; (배우의) 연기. 2.춤.


    くりひろげる[繰(り)広げる] 차례차례펴다[펼치다]; 전개하다; 벌이다.


    はくめい[薄明]박명; 해뜨기 전, 해진 뒤의 어스레한 무렵


    ゆうがとう[誘蛾灯]유아등; 살충등 -> 나방 따위의 해충의 피해를 막기 위하여 논밭에 켜는 등불. 벌레가 날아들어 타 죽거나, 등 밑에 있는 물그릇에 빠져 죽게 한다. ‘벌레잡이 등’으로 순화.


    ひたる[浸る·漬る]1.잠기다. 2.물에 잠기다; 침수하다. 3.(다른 일을 잊을 정도로 …상태에) 빠져들다; 젖다.


    にんむ [任務]


    まっとうする[全うする]완수하다; 다하다.


    しみだす[染み出す·滲み出す]밖으로 스며나오다; 배어나오다.


    りんかく[輪郭·輪廓]윤곽.


    ほお[頬]


    にゅうぼう[乳房]


    まるみ[丸み] 둥그스름한 모양[느낌]; 원만[온화]한 느낌


    ばいかい[媒介]


    おぼれる[溺れる] 빠지다, 물에 빠지다, 탐닉하다.


    ルアー(lure) 루어; 가짜 미끼 낚싯바늘.


    ゆだねる [委ねる]맡기다; 위임[일임]하다 ; (되는대로) 내맡기다.




      제40절 ‘초월하는 신화적 대상’으로서의 팔루스


      


      우리는 라캉 이론의 흐트러짐의 두번째로 <상징적이면서 상상적인 팔루스>를 들었다. 상징적인 팔루스, 그것은 이미 거세되고 기관으로서 도려내져 ‘성적관계’를 ‘없는’것으로 하는 것이었다. 그 향략은 어디까지나 평온한 일상의 영위이고 무엇도 위험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조절기에 걸려서 기관으로까지  잘려서 줄어든 팔루스의 향락이고, 그 안온한 기쁨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육욕의 작음’에 생각이 이르르면서도 그래도 끝없이 음탕한 맥동을 치는 행위가 벌어지는 바닥의 박명을 유아등처럼 하여 성의 향락으로 빠져들고, 때로는 그 행위로부터 아이를 낳게 된다. 상징적 팔루스는 요건대 이러한 것이고 이러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리고 그러한 것에 의해서야말로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향락의, 육욕의 유아등, 팔루스. 


      그러나 상징계는 상상계에 스며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 상징적인 팔루스가 상상적인 팔루스와 겹쳐 적히는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어떤 전체를 가진 형상에의, ‘선(세워진) 모습’에의 애정으로, 그 향락으로서 출현한다. 어떤 사람의 모습에의 애정(사랑), 그 아름다운 윤곽에의 욕망이다. 그리고 또한 그 ‘전체상’으로부터 새어나온듯한 부분에의 애정이다. 다리, 눈빛, 볼선, 유방, 어떤 어깨나 허리의 윤곽의 둥그스런 모양에의 욕망이다. 따라서 성행위 그것 자체는 이 ‘전체적인 모습’이라는 상상적인 팔루스에 대한 애정을 상징적인 팔루스의 매개에 의해 행하는 것이기도 하고 또 거기에서 새어 나온 부분적인 대상a들에의 잉여향락에 빠진다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것들도 마치 가짜 미끼 낚시바늘처럼 하여 사람은 성적인 향락에 몸을 맡기고 그리고 때로는 아이를 낳는다. 이상의 것은 제1부의 복습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다음이다.







  • 2016-01-11 07:04

    p.335~339 단어편집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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