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 제3장 근거율과 분할원리──‘왜’라는 물음 제36절 근거율이란 무엇인가

건달바
2016-01-05 22:34
455

제3장 근거율과 분할원리──‘왜’라는 물음



제36절 근거율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렇게 말했다. <거울> 자체에는 근거도 인과성도 설명도 없다. 그것은 ‘미쳐’있고, ‘도그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신화의 원리’이고, 그 자체는 근거도 인과성도 설명도 없기 때문에 거기서부터 근거나 인과성이나 설명이 시작되는 무엇이라고. 말하자면 ‘신화는 세계의 설명이 아니다.’ 이미 인용한 부분에서 르장드르는, ‘<사회적 거울>의 문제’는 ‘요컨대 상연되는 근거에 대한, 인과성의 근거의 표상에 대한 질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거울>에 있어서 상연되는 ‘근거’란 도대체 무엇인가. 여기에서 무엇을 묻고 있는가.


  우선 르장드르의 문장에서 자주 나오고, 그가 극히 중요시하는 ‘근거율 = 이성원리 (principe de Raison)’에 대해서 말해야만 한다. 먼저 어의에 관계된 번잡함부터 풀고 가보자. 이것은 원래 라틴어로는 Ratio의 원리 (principium rationis)라고 불린다. Ratio는 ‘관계’, ‘비(比)’ 등 여러 가지 의미가 있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이유’ 그리고 ‘이성’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것은 ‘이유의 원리’이기도 하다. 하이데거가 말한 대로 18세기에 이 ‘이성 원리 (principium rationis)’가 독일어로 번역될 때에 선택된 번역어는 ‘근거율 = 근거의 명제 (Der Satz vom Grund)’이고, ‘근거율’이란 그것을 다시 일본어로 번역한 것이다. Grund에는 이성, 근거, 이유라는 의미와 함께 단단한 ‘대지’라는 함의가 있지만, Ratio나 Raison에는 그러한 함의는 없다. 하이데거도 이 번역에는 무리가 있다고 인정한다(그러나 또한 거기에서 언제나처럼 그는 깊은 의의를 길어 내려한 것이다). 르장드르가 이 개념을 사용할 때에 분명히 하이데거의 분석을 전제로 말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르장드르의 principe de Raison에 ‘근거율’이란 번역어를 적용시키기로 한다. 


  하이데거는 말한다. 이 근거율은 ‘어떤 것도 근거 없이는 없다 (Nihil est sine ratione)’라는 형태로 표현된다. 이것은 ‘어떤 것이 있는 곳에는 근거가 있다’라는 말과는 다르고, 이 ‘없이는 - 없다 (Nicht ohne)’라는 말, 이 기묘한 절실함을 느끼게 하는 말에 하이데거는 어떤 ‘필연성’을 본다. 그리고 하이데거는 통상 근거율 보다도 상위에 있는 동일률조차 ‘근거율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하고, 근거율은 동일률·구별률·모순률·배중률 가운데서도 ‘모든 제1의 근본명제 중 최상위의 근본명제이다’라고 단언한다. 그리고 근거율에 대해서 두 개의 가능성을 보여준 후, 그는 최초로 보여준 가능성을 선택한다. 이렇다.  


  


  근거율이란 그 명제가 말하고 있는 것, 즉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은 어떤 것이든 필연적으로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것이 타당하지 않은 유일한 명제이고, 일반적으로 말하면 그것이 타당하지 않은 유일한 어떤 것이다. 이 경우에는 더할나위 없이 이상한 것이 생겨나게 될 것이다. 즉 그것은 틀림없이 근거의 명제가──더구나 이 명제만이──이 명제자신의 타당한 범위에서 벗어나 버리는 것이 되고, 근거의 명제는 근거없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근거율은 ‘어떤 것도 근거=이유 없이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어떤 것도 근거=이유 없이는 없다’는 것 자체에는 근거가 없다. 그러므로 거기에서는 근거(Grund)에 제거, 격리, 부정, 소멸의 의미를 갖는 접두사 ab-를 붙인 ‘파멸의 심연, 무-근거(Abgrund)’가 출현하게 된다. 근거율은 근거를 부여한다. 하지만 그것 자체는 무근거이고, 파멸적인 심연이다. 그러므로 이 무근거성은 표상 불가능이지만, 그렇다해도 ‘사고불가능’인 것은 아니라고 하이데거는 단언한다. 여기에서 그의 논지는 구불거리기 시작하는데, 예를 들어 토착성의 박탈이라든가 예술의 비대상적인 것으로의 변용이라든가를 근거율에 관련시켜 말하는 부분 등은 얻는 바가 크고, 또한 그 결론도 매우 자극적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곧바로 우리의 논리를 관통하자. 그는 라이프니츠가 근거율과 인과성, 혹은 인과율을 등치하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즉 ‘어떠한 것도 근거 없이 없고, 또는 어떠한 결과도 원인 없이는 없다(Nihil est sine ratione seu nullus effectus sine causa).’ 즉 ‘인과율은 근거율의 세력권 내에 속해 있다.’ 또 그는 근거율이 ‘어떠한 것도 원인 없이는 없다(Nihil est sine causa)라고 표현되어온 것을 거듭해서 지적하고, 키케로의 ‘원인이라고 내가 이름붙인 것은 작동의 근거이고, 결과라고 이름붙여진 것은 작동에 의해 야기된 것이다(Causam appello rationem efficiendi, eventum id quod est effectum)’라는 문언을 인용해 방증하고 있다. 그리고 최후에 그는 근거율을 ‘왜’라는 질문과 연결 짓게 된다. 



  왜라는 것 안에서 우리는 근거를 묻고 있다. 따라서 ‘어떤 것도 세워 전달된 근거 없이는 없다’라는 근거 명제의 엄밀한 체재는 다음과 같은 형식 속에 초래될 수 있다. 즉, 어떠한 것도 왜 없이는 없다(Nichts ist ohne Warum)라고.



  결국 이렇게 된다. 근거율은 ‘어떤것도 근거 없이는, 이유 없이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 나아가서 우리의 표상으로서의 삶은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서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 없이는 없다’. 현재에 이르러서도, 어떤 언설에도 ‘근거’나 ‘이유’, ‘원인’이, 법학적으로 말하면 ‘증거’가 그리고 좀 더 요새 말투로 한다면 ‘소스’가 끝 없이, 한 없이 요구되는 것은 우리가 지금도 이 근거율에 기초하지 않고는 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거율 그 자체는 전혀 근거 없는 ‘단언’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과율과 같은 것이다. 즉 ‘원인 없이는 결과는 없다’, ‘어떤 결과가 있는 이상, 원인이 없으면 안 된다’라는 인과율과 같다. 근거율은 ‘어떤것도 원인 없이는 없다’이기도 하다. 그리고 근거를 요구하는 것은 ‘왜’라고 묻고 있는 것이고, 따라서 근거율은 ‘어떠한 것도 왜 없이는 없다’라고도 표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역시 그것 자체에는 근거는 없다. 그렇다. ‘사실은’ 결과가 있기 때문에 원인이 있다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원인을 특정할 수 있다고 할 수 없다. 왜에 대답 따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명제는 아니다. 따라서 지금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근거율을 전제로 말하고 있다. 반복한다. 그것 자체에 근거는 없지만, 거기에서만 근거가, 이성이, 이유가, 원인과 결과의 연쇄가, 즉 인과성이 ‘왜’라는 물음과 그 답이 시작되는 흘수선. 이것이 근거율이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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