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 |
620 |
p395~396 단어와 해석
(6)
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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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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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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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 2016.04.21 | 428 |
619 |
44절 수정해석
(5)
주자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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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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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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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일소 | 2016.04.20 | 256 |
618 |
야전과 영원 390쪽부터
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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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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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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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 2016.04.18 | 363 |
617 |
39절~43절 수정 묶음
(1)
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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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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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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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 2016.04.10 | 227 |
616 |
382-383단어
(8)
주자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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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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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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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자일소 | 2016.04.09 | 366 |
615 |
[해석] 제43절 도박꾼인 재판관─근친상간 · 살인 · 원리주의
(1)
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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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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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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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 2016.03.19 | 677 |
614 |
[해석]제42절 닮은 것의 제조와 인과율의 상연-텍스트, 이미지, 엠블렘
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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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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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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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 2016.03.16 | 245 |
613 |
[해석]제41절 아버지란 무엇인가──법인으로서의 아버지, 유배된 아버지
뚜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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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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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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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버기 | 2016.03.14 | 327 |
612 |
380-381 단어
(6)
건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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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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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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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바 | 2016.03.11 | 411 |
611 |
370-371 단어
(5)
건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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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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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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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바 | 2016.03.02 | 301 |
610 |
43절 수정해석
(6)
건달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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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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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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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바 | 2016.03.02 | 255 |
609 |
[해석] 제40절 ‘초월하는 신화적 대상’으로서의 팔루스
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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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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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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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용 | 2016.02.28 | 277 |
44절 수정해서 올립니다
384, 386쪽 수정해석입니다.
인디언샘것도 같이 올립니다.
p381수정해석.hwp
379쪽 수정해석
저는 조교를 모두 조련으로 바꾸었습니다.
훈련 보다 조련이 더 적확한 것 같아서요..
380-381쪽 해석
해석자가 전문적인 작업을 할 때, 즉 학문상의 주석을 단다거나 사법상의 판단을 내릴 때에, (중세든, 근대든) 해석자나 재판관은 한사람 한사람 자신의 직무에 따라 개개 텍스트의 문면(文面)=문자(lettre)에 직면한다. 내가 <텍스트>라고 부른 총체 속에 위치하는 개개 텍스트의 문면에 말이다. 부채를 갚고 또 갚는 것에 의해 규칙화 되는 이러한 반복 속에는 어떤 숭배=제례(culte)가 포함되어 있다. 이 경우, 해석 시스템이 어떠한 것이든 그것은 ‘문자의 숭배(culte de la lettre)’이다. 바꿔 말하면 부채를 반제한다는 것은 의례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즉 <텍스트>는 그 신화라는 본성으로부터 의례적으로만 기능하는 것이다.
텍스트에 준거하고 그것을 전거로 해 인용하는 것. 그것은 그 텍스트의 문자 그 자체에 ‘부채’를 갚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반복 자체가 의례이고 숭배 그 자체이다. 텍스트를 읽고 주석하고 준거하여 인용하는 것은 의례이다. 블랑쇼는 말했다, ‘읽는 것은 묘비와의 즐거운, 열광적인 댄스이다’라고. 바로 이 댄스는 하나의 의례이고 따라서 르장드르는 ‘정치에 관한 학문의 학생들은 블랑쇼를 읽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단언했다. 텍스트, 숭배, 의례, 댄스. 이 연관을 말한 이상, 두 가지를 기술해 두어야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