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절 수정해석

주자일소
2016-10-31 18:28
183

46-47

  여기에 기묘한 어긋남이 있다. 분량이 한쪽을 조금 넘는 원고 안에서 이 어긋남은 너무나도 드러난다. 감옥은 정말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제거만 한다─그렇게 단언하자마자, 감옥은 배제만 하진 않는다. 거기에는 긍정적인 작용이 있다고 말해버리는 이 두 문언 사이에서 생기는 어긋남, 그리고 ‘제거’와 ‘배제’라는, 다른 정의가 주어진다고 생각할 근거가 전혀 없는 두 어휘 사이에서 흔들리는 뭔가에, 바로 전기 푸코와 후기 푸코를 절단하는 분할선이 있다. 다만 아직 위험한 파선으로서. 무리도 아니다. 그는 이 시점에서는 ‘부정하고 배제하는 권력’이 아닌 권력, ‘포지티브한’ 권력 형태에 정확한 호칭을 주는 데 이르진 않았으므로. 그것이 주어진 데는 어디인가? 이는 틀림없이 2003년 출판된 『정신의학의 권력』인 1973년 1월 14일 강의이다. 여기에 ‘규율권력’이라는 명명과 그 정의가 극명한 형태로 나타난다. 이 책이 출판되기 이전에 이 분할선을 평정하는 커다란 표지를 찾아보자면, 1973년 5월 하순 리오데자네이루 주교대학에서 5일간에 걸쳐 이루어진 연속강연의 기록을 바탕으로, 74년 6월 잡지에 실린 ‘진리와 재판형태’가 될 것이다. 이 후자의 강연은 굉장히 명쾌하고, 게다가 70년대 초 푸코의 다양한 문제계가 일거에 응축되어 눈부시단 말밖에 할 수가 없다. 담론의 언어학적 이해와 담론의 전략 게임이라는 대치. 그가 수없이 논급해온 니체의 ‘기원의 발명’에 대해 문제계를 재검토, 즉 ‘부끄러운 기원’에 관한 열정적인 언급. 그리스에서 앎과 권력의 연관을 해체한 것으로부터 중세에 형사재판을 둘러싼 두 가지 지식 형태의 대결에 대한 명철한 기술(記述). 그리고 들뤼즈=과타리의 공저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촉발되어, 만년 그리스에 대한 관심을 예고하는 듯한 소포클레스의『오이디푸스』원전에 대해 치밀한 독해작업. 거기에서, 거기에선 근친상간은 거의 언급되지 않고 오히려 문제가 되는 것은 진리를 획정하기 위한 사법적 절차 조치라서, ‘차라리 근친상간에 대한 욕망의 상연이라기보다는 그리스 법의 일종인 연극화된 역사’라고, 즉 정신분석적인 독해 따위 별것도 아니라고 추적해 보인 부분이 더욱 눈에 띄고, 강연 후 청중과 한 대화에서도 정신분석에 따른 가족주의적인 오이디푸스 신화해석을 유머조차 느껴지는 여유 있는 말투로 끝없이 비웃은 끝에 “제가 정말 지겨운 놈이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 옳습니다. 전 지겨운 놈입니다. 오이디푸스 따위 몰라요”라고 함부로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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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05 01:02

    48~49쪽 수정해석

  • 2016-11-07 00:53

    45-46(인디언)

    당신은 배제의 프로세스를 일종의 추상적 개념으로서 연구해왔기 때문에 병원의 내부에 대해서는 몇 가지 제도 내부와 마찬가지로 잘 알고 계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티가와 같은 곳을 방문하고 -- 실제로 그곳에 들어가보고 라는 것입니다만--배제의 프로세스에 관한 당신의 태도에 감정 면에서의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돌아보고 나서 배제에 관한 당신의 생각을 더욱 더 강고히 하게 되었을 뿐입니까?

    푸코 : 아니오. 이번 방문으로 오히려 동요한 것 같습니다. 어쨌든 문제가 명확해졌습니다. 그것은 이전에 내가 고찰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아마 돌아보았다고 해서 결정적인 변화가 생기지는 않았겠습니다만 변화가 촉진된 것은 확실합니다. 지금까지 나는 사회의 배제를 일반적이고, 조금은 추상적인 작용 같은 것이라고 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같은 작용을, 말하자면 사회의 구성요소처럼 생각하는 것을--어떤 사회도, 일정수의 멤버가 거기로부터 배제된다는 조건하에서만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선호했습니다. .... 즉, 사회가 기능하기 시작할 수 있으려면 어떤 배제시스템을 통해야 하는가, 누구를 배제해야 하는 것인가, 어떤 분할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인가. 어떤 부정과 거절의 움직임을 통해서인가 라는 문제에 흥미를 갖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것과는 반대의 입장에서 문제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즉 감옥은 매우 복잡한 조직이므로 감옥을 배제라는 단순한 네거티브한 작용으로 귀착시킬 수는 없다고. 그 비용, 그 중요성, 감옥을 운영하기 위해 쏟는 정성, 감옥에 부여하려고 시도해보는 여러 가지 정당화, 그런 것 모두가 감옥에 포지티브한 작용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2016-11-07 08:41

    54~55

    먼저 첫 번째 처벌 권력인 신체형이 바란 광경은 다음과 같다. 1장 서두에 출현한 175732일의 대역죄 주범 다미엥의 사형집행 장면을 인용해 보자. 그의 유죄 판결문은 이렇다. ‘손에 무거운 2리부르의 뜨거운 밀납 횃불을 들고 속옷 차림으로’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의 정문 앞으로 호송용 마차로 데리고 와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대중에게 사죄할 것’. ‘그레브 광장으로 이송해서, 거기에 설치된 처형대 앞에서 가슴, , 넓적다리, 장딴지를 달아오른 집게로 문책하고 그의 오른손은 국왕을 시해하려던 단도를 쥔 채로 유황불에 태워야 한다. 계속해서 집게로 태운 곳에 녹인 납, 끓는 기름, 끓는 송진, 밀랍과 유황 녹은 것을 붓고 다시 몸은 네 마리의 말로 네 개로 찢게 한 후에 수족과 몸은 재가 될 때까지 태워서 그 재는 들판에 버려야 한다.’ 많은 구경꾼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 판결문은 그대로 집행되었다. 작열하는 쇠붙이는 판결문이 지정한 순서대로 눌러졌다. 다미엥은 극도의 고통 때문에 예수님, 도와주소서라고 반복한다. 옆의 주임사제의 당당한 행동거지는 구경꾼들에게 감명을 준다. 한편, 집행인은 새빨갛게 달궈진 집게로 집은 생살을 비틀어 자르느라 애를 쓰고 두 번 세 번 그것을 반복한다. 쇠국자로 끓는 액체를 상처에 끼얹자 다미엥은 온갖 고통을 맛보면서도 대담하게도 그는 가끔 머리를 들어 자신의 몸을 보았다’. 그러나 판결의 신속한 집행은 여기에서 멈춘다. 가장 중요한 사지 찢기가 잘 되지 않는 것이다. 네 마리의 말로는 찢어지지 않았고, 6마리를 사용해서도 우람하고 튼튼한 다미엥의 사지를 찢어 자르기에는 부족했다. 방법이 없다고 우왕좌왕하는 집행인들을 투덜대지 말고 자신의 임무를 다하시오, 당신들을 탓하지 않소.’라고 질타하는 것은 아미엥 본인이었다. 할 수 없다. 그대로 끌어 찢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사지에 베인 상처를 만들어 넣지 않으면 안 된다. ‘근육을 자르고 관절을 쪼개야 했던것이다. 단도를 가지고 나와서 뼈에 닿을 때까지살을 잘라서 겨우 찢겨져 사지를 잃은 다미엥은 장작더미에 던져질 때에도 살아 있었다.’ ‘판결의 집행에 의해 모든 것은 재로 돌아갔다... 살덩이와 몸통은 대략 4시간 동안 계속 불탔다.’ ‘다음 날, 그 화장장이 있었던 들판에는 한 마리의 개가 자고 있었다. 몇 번이고 쫓아버렸지만 여전히 그곳으로 되돌아왔다. 이 일로부터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 듯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 2016-11-19 20:38

    2장 푸코의 전회’ - ‘아티카 형무소에 관하여진리와 재판형태


    54절 배제에서 생산으로, 규율권력의 방향으로

    우선 확인한다. 후기 푸코라고 말했다. 그렇다, 푸코는 처음부터 이러한 권력의 이해를 비판한 것은 아니다. 61광기의 역사단계에서는, 아니 71담론의 질서에 이르기까지, 언어의 부정성에 입각해 공동체로부터 배제를 행하는 법이라고 하는 개념화에 머물러 있었다. 즉 그 때의 그의 논지는, 스스로 후에 비판하게 되는 법적·주권적 권력의 이해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본인도 여러 곳에서 인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만년의 푸코가 스스로의 일을 회고하면서, 광기의 역사를 위치지었던 문언이 있다. 말하자면, 유럽의 사회학이나 사상사에서는, 부정이나 배제, 금지가 실정적인 현상으로서만 취급되어졌지만, 레비스트로스 이후 그것이 부정적인 구조와의 관련에 의해 생각되어지는 것처럼 되었다. 자신의 광기의 역사에 관한 일은 이것을 사상사에 응용했던 것이다, 라고. 법에 의한 위대한 금지, 경계선의 선언, 거기에 의해 분할된 안과 밖, 그리고 행해진 광인의 배제, 폐기, 부인, 억압이라고 말하면, 너무나도 이 시대의 푸코다운 구도이다. 그밖에도 어떤 인터뷰에서는 담론의 질서에 이르기까지 권력을 법적인 메커니즘이라고, 배제, 제거, 방해, 부인, 은폐, 그렇게 부정적 작용을 미치게 하면서 안 돼를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인정하고, 그 후에 거기로부터는 탈출했다고 말하고 있다. 확실히 담론의 질서에 있어서도, ‘정신분석이 명확히 해주었던 것처럼이라고 전제하면서 언설, 금지, 욕망과의 사이에 결정적인 관계를 인정하는 발언, 즉 여기에서 법적·주권적 권력이해라고 불렀던 것의 적어도 일부분을 긍정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광기의 역사부터 담론의 질서에 이르는 초기 푸코와 감시와 처벌부터 앎의 의지를 거쳐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후기 푸코와는 단절이 있다. 거기에는 선명하게 두 개의 시기를 나누는 실선을 볼 수 있다.

  • 2017-01-04 09:42

    43~44 수정

    감옥이란 무엇인가, 효율적으로 고결한 인간 같은 것을 생산한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감옥은 그런 것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행정 쪽에서도 그것을 완전히 자각하고 있습니다. 감옥은 아무것도 전혀 생산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터무니없는 속임수이고, 순환적인 제거라는 완전히 기묘한 메커니즘이라고. 결국 사회는 사람들을 감옥에 보내어 제거하고, 감옥은 그들을 때려 부수고, 눌러 으깨어, 물리적으로 제거합니다.

    그들이 때려 부수어지면 감옥은 그들을 석방하고 사회에 돌려보내는 방식으로 제거한다. 감옥에서의 생활과 대우를 참고 견디어 그들이 벗어난 경우, 그 모든 것을 이유로 사회는 반드시 그들을 제거하고, 다시 감옥으로 돌려보내고, 감옥은······ 등처럼 궁리를 짜낸다. 아티카는 제거하기 위한 기계, 일종의 거대한 위장입니다. 흡수하고, 파괴하고, 부수고, 그리고 내쫓는다이미 제거된 자를 제거하기 위하여 흡수하는 신장입니다.

     

    감옥은 제거한다. 제거하기 위하여 제거한다. 물론 여기에는 법이나 언어는 거론되지 않고, 감시와 처벌의 논지에 연결되는 감옥에서 비행자의 순환의 예고 같은 것도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이 곳의 그에게 감옥의 기능은, 오로지 제거한다라는, 거의 이상할 정도로 되풀이되는 이 동사로 표시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한 마디로 말하면 그는 아직 감옥을 부정적인 것, 네거티브한 작용을 미치는 것으로서 보고 있다. 수년 후 감시와 처벌에서 서술한 것과는 전혀 반대로, ‘그것은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그런데 같은 인터뷰에서 다음의 문장을 인용해보자. 원전에서는 같은 페이지 안에 있다.

     

     

  • 2017-01-09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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