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적인 연결들> 4차시 메모

띠우
2023-09-22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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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인 연결들-문화들> 메모 2023년 9월 23일 띠우

p202~203 나무와 피리의 유사성을 암시하는 내레이션은 동떨어진 대응관계들을 차례로 이어붙이고 발동시켰다... 유사성이 인위적으로 보이는 것은 그것이 내러티브를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멜라네시아인이 상동성이나 유사성-사물들 간의 관계들-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행하는 것들을 내러티브는 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사성을 배경에 깔아두는 ‘인간 행위의 도덕적 기반’은 그들에게는 차이를 만드는 구별짓기가 된다. 이 변환과 차이화의 시퀀스를 모방함으로써 형식이 특정한 연쇄 속에서 나타나는 그 모습을 전면에 드러낸다면, 앞서 살펴본 대응관계들의 자의적인 성격은 해소될 것이다.

내가 환기한 완토아트와 파숨의 피규어들은 가면에 씌인 채 형상화되는 수많은 형식 가운데 일부다... 이것들은 식별가능한 시퀀스 속에서 차이화의 효과를 일으킨다...이때 인류학자의 과업은 그러한 이미지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동하는 특정한 환기여야 한다. 그녀/그는 사람들이 명시적으로 만드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어떤 순간이나 형식은 다른 순간이나 형식을 발생시키거나 그에 의해 대체된다... 우리는 말하자면 이미지가 어떻게 이미지를 창출하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이미지가 “그것들 모두를 내포하거나 도출하고, 여기서 필요한 것은 이미지 자체를 보유하는 것일 뿐이다” 만약 내포된 것이 도출되거나 환기된 것을 통해 알려지게 된다면, 의미의 해명은 그 이미지의 사용법에 적용된다.

행위자의 연행이나 시간의 흐름을 갖는 연행의 시퀀스는 이미지 자체의 창조성을 위한 유비유추의 틀을 제공한다... 유비유추를 드러내는 것, 다시 말해 유사성과 차이간의 내적인 관계를 드러내는 것은 직전 위치인 대체된 피규어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인류학자가 그 경로를 밟다가 따라가게 되는 것은 실천의 시퀀스 안에서 일어나는 주도면밀한 대체다... 나의 목적중 하나는 인류학자들의 활동이 그들 스스로 ‘잔여’를 끊임없이 양산하면서 얼핏보기에 새롭지만 전혀 독자적이지 않은 차원을 위한 출발점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다.

-- 이것은 시네마를 향한 영화예술인들이 추구하는 바와 연결되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았고, 이런 방식으로 작품을 해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분2 커뮤니케이션에 나오는 '시퀀스(분석자의 발견 여행에 적절한 이미지)'를 스트래선이 말하는 형식으로 이해하려는 나의 마음ㅋ

댓글 5
  • 2023-09-22 08:15

    203-204
    행위자의 연행과 시간의 흐름을 갖는 연행의 시퀀스는 이미지 자체의 창조성을 위한 유비유추의 틀을 제공한다. 가령 행위자는 약혼선물에서 신부대를 거쳐 아기 출산을 위한 지불에 이르기까지 생식을 둘러싼 일련의 흐름 속에서, 혹은 의례적 교환에서 파트너들이 돌아가며 기증자가 되는 상호왕복 속에서 연행과 그 시퀀스를 창출하고, 그에 따라 유비유추의 틀이 마련된다. 성장과 이행의 감각은 하나의 가치 세트가 그 다음의 가치 세트를 ‘생산함’(나타나게 함)과 동시에 그에 대체되는 방식으로 생겨난다. (…) 유비유추를 드러내는 것, 다시 말해 유사성과 차이 간의 내적인 간격을 드러내는 것은 직전 위치인 대체된 피규어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인류학자가 그 경로를 밟다가 따라가게 되는 것은 실천의 시퀀스 안에서 일어나는 주도면밀한 대체다. (…) 멜라네시아인들은 인격들 간의 움직임을 통해 그들 자신의 세계를 더 작게 분해한다.

    <최무영의 물리학 강의> 중 복잡계/프랙탈 부분 공부할 때 후기 중 일부를 발췌합니다. 참고가 될 수 있을까요.. 더 복잡해지기만 할까요 ㅋ
    사실 ‘복잡계’, 또는 ‘복잡성’을 엄밀히 정의하기란 어렵다. 다수가 동의하는 적절한 토대가 없다. 책에서는 복잡성을 완전히 질서정연하지도, 완전히 무질서하지도 않은 중간적인 경우를 말하면서 ‘변이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영어로는 complex로 표현하며 무질서 따위의 ‘단순한’ 복잡함이나 번거로움을 나타내는 complicated와 구분된다. 예컨대 물에서 얼음이 되는 상전이 현상은 구성 분자 하나하나와는 직접 관련이 없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 집단의 성질이 생겨난다. 이를 떠오름(창발)이라 하며, 전(물)과 후(얼음) 상태가 완전히 달라지고, 질서(얼음)와 무질서(물) 사이, 경계의 특성을 지닌다고 하여 고비성(임계성)이라 부른다. 모래더미에 계속해서 모래를 뿌리면 모래더미의 물매가 커지다가 어느 한계에 이르면 무너져 내리고 더는 커지지 않는 모습에서 모래더미의 무너짐 크기나 시간 따위가 고비성을 지닌 상태라 할 수 있다.
    고비성은 공간에서는 ‘스스로 닮음’(self-similarity) 구조인 프랙탈로 나타나는데, 어느 한 부분을 확대해 보면 전체 모양이 비슷하게 들어 있는 눈금불변성을 지닌다. 예로는 해안선, 구름의 모양, 단백질구조, 신경망 같은 것이 있고, 이러한 복잡한 구조는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함이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신호에서도 복잡성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소리의 진동수가 하나(질서)일 때 지겹게 느끼고, 고르게 섞여 있는 경우(무질서)에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느낀다. 대체로 진동수가 낮은 성분이 많고 높은 성분이 적은 1/f 신호일 때, 시간에 대해 눈금불변성을 지니고 적당히 복잡한데, 이러한 소리를 듣기 좋다고 느낀다. 고전음악이 그러한 예로, 이는 자연스러운 우리의 지각 패턴과 잘 맞아서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저자 최무영교수는 시공간에서 고비성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스스로 짜인 고비성’으로 설명한다. 복잡성을 지닌 상태가 끌개(attractor)가 되어 고비성을 스스로 짜나간다는 생각인데, 처음에는 복잡하지 않은 계도 시간이 지나면서 복잡성을 지닌 상태로 변해나간다는 것이다.

  • 2023-09-22 08:43

    메모-달팽이
    ‘다른 방향’의 탐색은 고지대 여러 사회들을 비교할 수 있는 실체가 단 하나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감각을 남긴다........... 있는 그대로 말해서 연결은 부분적이다. 그리고 연결이 부분적인 이유는 피리를 사용하는 방식에서 유비유추에 대한 (일관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환기를 탐색해야 할까? ....... 모든 사례를 아우를 수 있는 맥락 혹은 수준의 독립적인 조합을 추상화할 수 없다면, 그때 우리는 우리가 인식하는 유비유추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 ....... 진짜 문제는 필시 인류학자가 상정하는 분석의 맥락과 수준이 그 자체로 종종 그녀/그가 그것을 통해 조직하려는 현상의 일부이면서 그와 동시에 일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데에 있다. 분석의 맥락과 수준을 설정하는 퍼스펙티브의 횡단적인 성질 탓에 하나의 퍼스펙티브에는 또 다른 퍼스펙티브에 잡아먹힐 가능성이 늘 따라 붙는다. ...... 외부의 어떤 기준도 현지의 의미에 오염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것’을 만든 목적과 분리해서 단독의 실체로 인식할 수 없는 만큼 그것의 속성들을 모두 다 헤아려서 가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그래서 스트래선의 관심은 인류학적 설명의 확신을 유지시키는 균형에 있다. 단위들에서 자동적으로 발생되는 스케일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 인류학자는 스케일을 창출해야만 하는 존재다. 여기에서 중요한 부분은 인류학자가 유비유추를 어떻게 조절하고 통제하는가가 아니라 행위자들이 그것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이다.(194~196)

  • 2023-09-22 09:02

    복사해 주세요~~~

  • 2023-09-22 09:09

    카누는 복수의 인격으로 채워져서 항해를 떠나는데 외부의 시선에 그것은 단일한 인격으로 변환되어 나타난다. 지난 시간에 하나는 너무 적고 둘은 너무 많다라는 말이 아리송했는데 퍼스펙티브에 따라 다르게 인식될 수 있으며 형식 내부에 수 많은 형식이 담겨있다는 설명으로 좀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사회학자 퇴니스는 공동체와 근대사회를 구분지어 설명한다. 공동체는 구성원들을 나뭇가지로 하는 나무로 비유한다. 인격들은 공동체에 깃들어 존재한다. 반면 근대사회는 뿔뿔히 흩어진 원자적 개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기에 이들이 어떻게 함께 살게 되었을까, 혹은 서로 잡아먹지 않고 함께 살 수 있을까, 의문을 품게 된다. 그 의문들이 사회학이라는 학문의 탄생 계기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가와섬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들은 밭/작물의 관계와 출계집단/성원의 관계를 유비유추하여 그린다. 즉 출계집단은 성원들은 그곳에 심겨진 것이라고 이해한다. 성원들 간의 유대는 땅과 피에 의해 이루지며 각 성원은 집단을 담고 있다. 동시에 확장과 연결을 만들어내는 능력 면에서 각 성원은 잠재적으로 방사상으로 뻗어가는 관계의 매트릭스에 속한다는 것이다. 공동체냐 개인이냐로 구분지어 사고 할 때 ‘억압 아니면 자유’ 혹은 ‘연대 아니면 고립’으로 뚝 잘라진 이미지가 되어 버린다. 하지만 확장과 연결의 방식에서는 달리 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2023-09-22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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