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적인 연결들> 3차시 메모

띠우
2023-09-15 07:21
162

p130~131 기계는 인간의 경험을 복제하지 않는다. 해러웨이는 유기체가 기계를 모델로 삼고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이와 반대로 논점은 양자의 차이를 보는 법에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지고 재생산되며, 이 의미에서 다양한 기원들을 가지면서도 함께 작동하는 실체들 사이에서 어떤 종류의 연결이 그려지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녀는 커뮤니케이션 과학에 의거하여 정신, 신체, 도구가 매우 친밀한 사이가 될 수 있다고 서술한다...... 아마도 이 친밀한 세트 속에 이미지를 재도입할 수 있을 것이다. 해러웨이는 1985년 논문(사이보그선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의 선택지, 즉 여러 스타일 가운데 하나가 아니며 모더니즘이 예전에 그랬듯 실제로 찬송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오히려 우리는 사물을 달리 보게 만드는 맥락 속에 살고 있다. 확신의 상실을 대신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새로운 확신밖에 없다.

-스트래선은 해러웨이의 정치적 사이보그(p132)에 관심을 갖는다. 사이보그에는 서로가 서로에게 외부의 다른 존재로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의 연결망을 창출하는 것이고, 우리가 사회관계의 행위를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지에 관한 상상력의 물꼬를 터준다고 말이다. 이렇게 보면, 이때 이미지는 그야말로 재현(복제)에 머무는 것이 아닌 환기의 영역으로 보인다. 사이보그는 그러한 이미지의 환기에 의해 우리를 다른 상상으로, 다른 현실로 나아가게 할 것 같다.

 

댓글 5
  • 2023-09-15 07:41

    119p. 기계라는 말에서 그녀(해러웨이)가 의도하는 것은 신체화에 대한 이중의 참조다. 즉 인간의 신체와 그 조직 - 눈처럼 고도로 전문화된 장치를 포함하여 - 을 ‘기계적’ 성능과 가능성의 측면에서 인식하는 것, 그리고 우리가 다른 ‘지각의’ 번역 양상과 사물을 보는 시각에 도달할 수 있게 하는 기계를 인식하는 것이다. 신체와 기계는 각각 그 자체로 시스템이다.

    124p. 포괄할 수 없는 담론은, 외부의 차이(학문끼리의 차이)가 내부의 차이(어떤 종류의 페미니즘이 논제인지)와 연결되는 방식 때문.

    130p. 사이보그는 단일한 경계를 갖지 않으며, 그것의 부분들은 내부의 분리에서 이뤄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태초의 가족 혹은 에덴동산을 꿈꾸지 않을 것이다. “사이보그는 포스트젠더 세계의 피조물이다. 그것은 양성성, 오이디푸스 이전의 공생, 소외되지 않는 노동과 상대하지 않는다. 또는 부분들을 상위에서 통합해 그 전체의 힘을 최종적으로 전유하여 얻어지는 유기적 전체성을 향한 유혹을 상대하지 않는다”. 부분들로부터 전체성을 형성하는 관계성은 자기와 타자, 공과 사, 신체와 정신 같은 포섭하는 이원성에 의해 촉진되는 지배 및 위계의 관계성과 마찬가지로 의문의 여지를 남긴다. 무엇보다 “자연과 문화는 다시 제작된다. 그래서 한쪽은 다른 한쪽에 전유되거나 합병되기 위한 자원일 수 없다”. 예전의 지각은 분리와 이분법에 의해 구조화된 세계에 속했다. 그 속 사람들은 기계에서 자유로워지고자 분투하면서 기계에 의해 지배받고 있음을 스스로 깨달았다.

    141p. 나는 ‘관광객’을, 그녀/그 자신의 감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타문화들을 표본 추출하거나 소비함으로써 개인의 경험을 확장하려는 인격으로 본다. 이 관점에서 그녀/그는 소비자일 뿐이며 세계의 다양성을 포식하는 문화적인 탐식가일 뿐이다. 부풀어 오른 이미지는 확실히 불쾌하다. 그러나 또 다른 관점에서 관광객은 그 대신에 (자신이 머무는) 사회의 주인인 다른 인격들을 저도 모르게 확장하는 듯도 하다.

  • 2023-09-15 07:49

    소화가 덜 된 요약 올립니다.

  • 2023-09-15 08:17

    소화가 안 된 메모 올립니다.

  • 2023-09-15 08:39

    올려요

  • 2023-09-21 16:34

    부분적인 연결들 세 번째 메모. 참

    *스스로 만드는 차이
    민족지적 진실의 부분적인 성격이 인류학자의 현장 만남으로부터 파생된다는 이 관념은 따라서 각기 다른 입장에서 서로에게 말을 걸었던 페미니스트의 방식 속에서 선취되었다. 그들을 부분적인 인격들로 만든 것은 차이를 드러내는 저 입장들이다. 페미니스트라면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는 감각이 있다. 따라서 페미니즘은 자신의 정체성의 또 다른 측면에 대해 ‘스스로 만드는 차이’에 존재한다.P 123
    -----다른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는 감각은 P112의 신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하게 만드는 감각과 대응하는 것으로 보이며 ‘스스로 만드는 차이’는 P108의 ‘즉 유사성의 관념은 모두가 서로 어떻게 다르며 다른 장소들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한 관념이다’의 의미와 또한 연결된다. 신체성과 위치성(인류학 연구자 또는 페미니스트의 젠더, 계층, 인종, 장소등의 각 층위의 위치)이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하스트르프는 민족지는 항상 비-모던했으며 항상 위계적이였다고 말한다. 담론 수준의 타자는 텍스트상에 고정되고, 텍스트에 부재하는(서구가 보았을 때 가시적인 퍼스펙티브를 갖지 못한 퍼스펙티브가 될 수도) 사람들은 그 외의 다른 문화를 구현하고 있다고 인식된다.
    스트래선은 타일러의 미학 형식-여행자에서 해러웨이의 미학 형식-사이보그로 대체되는 인류학자의 글쓰기가 서로의 확장으로 작동하는 부분들 사이에서 일종의 집적회로를 형성한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그 회로는 인류학자의 인지수단에 초점을 맞추는 듯하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앞에서 말한(P149) 타자들 사이의 내적인 차이로서 우리가 지각하는 것을 어떻게 다룰 것 인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는 것 같다.
    그 질문은 P77현장 연구자-작가-저자 사이의 ‘중간 생략’- P79 외부 정신 사이의 잠재적인 중간 생략-P 143 외부자의 존재로 생기는 ‘빈자리를 차지한 ’조롱‘-P 159 관계성이라는 가상의 선들이 가로지르는 별들 사이의 ’진공의 이미지‘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대한 질문과 이어지는 건지 도 모르겠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39
시즌3 <루쉰, 혁명의 문학> 8회차 공지입니다 (5)
노라 | 2023.10.15 | 조회 260
노라 2023.10.15 260
938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1회차 메모와 발제 (8)
토토로 | 2023.10.12 | 조회 159
토토로 2023.10.12 159
937
시즌3 <루쉰, 혁명의 문학> 7회차 후기 (1)
| 2023.10.11 | 조회 241
2023.10.11 241
936
시즌3 <루쉰, 혁명의 문학> 7회차 공지입니다 (5)
토토로 | 2023.10.09 | 조회 241
토토로 2023.10.09 241
935
<부분적인 연결들> 4차시 후기 (8)
| 2023.10.05 | 조회 164
2023.10.05 164
934
시즌3 <루쉰, 혁명의 문학> 6회차 후기 (3)
새봄 | 2023.10.04 | 조회 245
새봄 2023.10.04 245
933
시즌 3 <루쉰, 혁명의 문학> 6회차 공지입니다 (7)
노라 | 2023.09.27 | 조회 271
노라 2023.09.27 271
932
<부분적인 연결들> 4차시 메모 (5)
띠우 | 2023.09.22 | 조회 213
띠우 2023.09.22 213
931
시즌3 <루쉰, 혁명의 문학> 5회차 후기 (2)
블랙커피 | 2023.09.20 | 조회 278
블랙커피 2023.09.20 278
930
<부분적인 연결들> 3차시 <정치> 후기
뚜버기 | 2023.09.20 | 조회 186
뚜버기 2023.09.20 186
929
시즌 3 <루쉰, 혁명의 문학> 5회차 공지입니다 (7)
토토로 | 2023.09.18 | 조회 327
토토로 2023.09.18 327
928
<부분적인 연결들> 3차시 메모 (5)
띠우 | 2023.09.15 | 조회 162
띠우 2023.09.15 16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