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적인 연결들> 2차시 후기

띠우
2023-09-1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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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적인 연결들> 두 번째 시간이었다. 이날은 ‘인류학을 쓴다’ 중에서 미학 부분을 공부했다. 김씨도 아니고 이씨... 어렵다ㅠㅠ 먼저 ‘환기로서의 민족지’에서 재현과 환기의 개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일러에 따르면 민족지는 작가의 반응과 같을 수 없는 독자의 반응을 환기시킴으로써 작용한다. 인류학을 둘러싼 그의 주장은 이 환기를 “포스트모던 세계의 담론”으로 개념화하고 민족지를 그 전형으로 보는 사고에 기초한다.

 

이때 재현과 환기가 어떻게 다르냐에 대해 우리의 공부하는 방식을 떠올려보았다. 재현이 텍스트를 읽어나가면서 그 안의 내용을 수동적으로 복제하는 것에 멈추는 것이라면, 독자로서 그 속에 참여하여 해석해가는 방식이 환기이라고 말이다. 이때 텍스트는 하나의 완결된 작품이 아니라 환기에 의해 계속해서 변형해 나아간다. 어찌보면 재현되었다고 하는 민족지학자의 글 역시 이미 그 안에는 환기의 방식이 내재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통상적인 민족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모더니즘(근대성)은 통합된 문화나 사회 그 자체였다. 여기서 현장인구자는 오랫동안 사회의 내적 연결과 외적 연결 모두를 관리했고, 이 인물상은 하나의 미학형식으로 작동해왔다. 이러한 현장연구자의 죽음은 근대적 주체(개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각 문화의 유일성과 그로 인한 다원성에 대한 모더니즘적 이해를 대신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오직 다른 문화들의 변이로서 이해될 수 있는 문화들을 채택한다. 타일러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반-미학 속으로 스스로 들어간다. 비교분석의 발판은 사라지고 계속해서 텍스트들의 치환이 있을 뿐이다.

 

타일러가 말하는 환기란 민족지 읽기가 ‘떠남과 귀환’의 과정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인류학자가 어떤 장소에 다녀와 글을 쓴다. 작가가 마침표를 찍고 독자가 그 글을 다 읽고 덮는 그 순간에 형식에 관한 한 반-미학적인 포스트모던 민족지는 통합의 관념으로 되돌아오는 귀환이 일어난다. “포스트모던 민족지는 상식의 세계와의 단절을 일으키고 미학적인 통합을 환기한다. 그리고 통합의 치료적인 결과는 상식의 세계의 갱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작가가 쓰고 독자가 읽는 가운데 환기는 발생하고 다성성의 세계도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타일러는 우리가 경험과 맥락의 무제한적인 배열을 상상하도록 하지 않는다. 그는 작가와 독자가 그들 자신의 세계들로 귀환하는 재귀적인 활동을 상상하며 특정형식이나 파스티슈를 거부한다. 그 순간 타일러는 포스트모더니즘과 결별한다. 그러한 귀환을 통해 책을 덮은 사람들은 관광객이나 소비자같은 형태가 된다고 볼 수 있겠다. 갑자기 나는 떠나기는 한 것일까? 이 책을 읽다가 이도 저도 아닌 자리에 있다는 생각에 두렵다. 아, 친구들과 연결되어야 한다^^:;

 

스트래선이 포스트모더니즘의 파스티슈나 콜라주를 지향하는 것이냐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나왔는데, 스트레선이 타일러를 계속 가져오는 이유 중에 타일러가 포스트모더니즘과 결별한 지점에서 어떤 의미를 보아야하나 싶어졌다.

 

아메리카 문화다원주의의 스테레오타입과 영국의 사회다원성의 스테레오타입을 딱 대조해서 보여주는 이야기는 뭘 의미하는가? 다원주의의 형식이 제각각임을 보여주는 예로, 두 지역이 모두 영어라는 공통분모를 갖는 것으로 통합될 수 있다. 그러나 다문화적 성격을 지닌 미국의 경우에는 모국어로 영어를 써왔던 영국과는 문화다원주의적인 성격을 갖는다. 영어가 모국어인 영국에서 이질적인 영어의 사용은 사회의 소속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기서 다원성이 그 자신의 배치를 갖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형식이란 사물의 출현이며 가시화된 성질과 속성입니다. 그것은 하겐 사람들이 이론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물이 왜 형식을 갖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형식을 취하는 것이 그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대담 중)” 그럼 지난 시간에 과정이 아닌 형식에 초점을 맞춘다는 스트래선의 형식은 이러한 배치 속에 순간 나타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잘 모르겠다).

 

또 자기 집에서 서구사회의 어떤 측면들을 연구하는 서구인류학자가 직면한 특별한 종류의 가로막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혈혈단신으로 찾아간 곳이 아닌, 영국인이 영국에서 조사하면서 얼마나 타자들의 사회적 현존에 괴로워하는지는 타자와 관계성의 인식을 위한 또 하나의 차원을 드러낸다. 이는 열린 귀와 천체망원경 이야기로 이어졌다. 천체망원경으로 멀리 보는 것만큼이나 가까이에서도 뭔가 들리는 것이 있다. 타일러가 통합으로 정리하는 것과 다르게 코즈모폴리탄은 파편화로 나아간다. 서문에서 보았던 불규칙한 해안선과 같이 사람들은 연결된 것으로 보이고 자기를 끊임없이 개입에 응할 수 있어 보인다.

 

맥락이 바뀌면 ‘역할’도 바뀐다. 인격을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여러 역할들의 성좌의 중심으로서 사고하거나(사회중심적) 혹은 인격을 다양한 견해들의 주축이나 교차점(자아중심적)으로 본다면, 이 두 가정을 한데 연결하는 것은 개인으로 상상되는 인격이다. 이 형상은 배치의 맥락에 따라 파편화 혹은 통합된 것으로 나타난다.

 

스트래선은 사람들이 인격이나 장소 등에 갖는 관념들을 통해 다원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그 관념들을 사용하는 각각의 방식들 간의 연결이 갖는 부분적인 성격을 개념화하려는 것 같다. 우리가 마주한 양자택일의 기로를 넘어 오히려 부분적인 연결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라고 제안한다. 난처한 존재가 된 우리들에게 반갑게도 스트레선은 하나의 답을 제시해준다.

 

바로 도나 해러웨이다. 연결과 관계에 관해 숙고하기 위한 상상적인 장치, 이것이 타일러의 미학형식을 통해 스트래선이 이야기하려고 했던 내용으로 보인다. 제대로 이해한 것이 얼마나 될지 후기를 쓰면서도 오락가락이지만 연결 속에서 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겠지ㅋ. 다음 시간에는 ‘정치’ 부분을 읽는다. 아자아자!!

 

댓글 1
  • 2023-09-14 18:23

    고생하셨어요.
    이 어려운 책을 읽고, 발제를 하고, 후기끼지.
    해내셨습니다! 대단하다고 말할 수 밖에.

    어려워서 책 내용 댓글은 차마 못 쓰고 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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