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2 첫시간 <부분적인 연결들>1차시 후기

뚜버기
2023-09-06 12:28
155

약 한달 간의 휴식을 마치고 에프2 시즌2가 시작되었다. 첫번째 텍스트는 <부분적인 연결들>이었다. 

시즌1의 <적을수록 풍요롭다>에서 제이슨 히켈은 ““자본주의는 우리가 직면한 위기에 가장 근접한 동력일 뿐 기저의 실제 원인이 아니다. 더 깊은 곳에 놓인 무언가가 있다”라고 말한다. 그동안 우리의 마음마저 식민화해버린 ‘존재에 관한 이론’에 대한 투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실재인 이데아, 불변의 진리로서 존재가 따로 있다는 플라톤의 존재론에 기반한 서구사유체계에 대한 전복이 없이는 문제는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기 때문 아닐까.

 

1991년 쓰여진 <부분적인 연결들>은 21세기들어서 ‘인류학의 거대한 방향전환’이자 ‘존재론적인 전회’를 이끌어낸 책으로 재평가받았다고 한다. 에코프로젝트의 전신이랄 수 있는 예전 마을경제 세미나에서 이 책의 ‘초벌번역본’을 부분적으로 읽었던 적이 있다. 그때 너무 어려워서 동학들의 안색이 매우 어두웠던 기억이 있다. 이번엔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해제와 대담, 서문을 먼저 읽어보기로 했다. 본문을 읽지 않고 대담과 서문을 접하니 그 또한 눈감고 더듬는 것 같은 어려움이 있었다.

 

곰곰님은 권여선 단편 <전갱이의 맛>에서 주인공이 갑자기 말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겪게된 변화를 퍼스펙티브의 전환이라 볼수 있을까라는 글을 썼다. “묵언의 시간이라는 새로운 스케일”로의 이행이자 “완전히 다른 정보군”과의 만남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스트래선은 퍼스팩티브는 신체성에 결부되어 있다고 말한다. 신체성에 결부된 퍼스펙티브는 마음 먹는다고 바꿀 수 있는 관점이 아니다. 그렇기에 관찰자의 시점은 결코 세계를 재현할 수 없다. 하지만 상실된 것을 부여잡고 놓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것을 떠올릴 때 신체의 변화가 반드시 신체성의 전환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즉 신체의 변화와 퍼스펙티브의 전환이 곧 바로 결부되지 않을 수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트래선은 “지도는 존재하지 않고 만화경같이 한없이 뒤바뀌는 치환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문화를 쓴다>>(1986)을 필두로 하여 미국 인류학계에는 “민족지는 인류학자에 의한 현장 ‘재현’이 아니라, 독자를 ‘환기’시키는 작가적 장르”라고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흐름이 형성된다. 하지만 이 다원주의는 자기모순을 안고 있다. 

서구인류학자가 비서구 <문화를 쓴다>는 관점 자체가 그것을 총체적으로 재현할 수 있다는 전제 아래 있는 것이다. 비록 탈중심화와 파편화를 주제로 삼지만 전체론적으로 구상되고 창출된 문명의 사고로 쓰여진 텍스트는 자가당착이 예견되어 있음을 스트래선은 지적한다. “한때는 진짜 효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작동했던 형식이 이제는 작동하지 않는다.”

인류학의 현장조사에 있어서 실상은 서구와 비서구가 부분과 부분으로 만나는 것이며 인류학자는 그런 만남에서 틈을 내고 거기서 생성된 인류학을 쓸 따름이다. 이것이 ‘인류학을 쓴다’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인 것 같다. 

 

“나는 형식을 지지하지 과정을 지지하지 않는다.”

토토로도 띠우도 메모에서 이 구절을 중요하게 인용했다. 스트래선이 말하는 형식은 무엇일까. 대담에서 몇 구절 인용해보자. 

“사물이 과정 상에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얕은 물에서 노 젓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형식, 추정컨대 형식은 블랙박스입니다…서술과 설명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땅에는 구멍과 같은 저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글로 쓰는 것 중에 그렇게 하지 않으면 효과를 발휘하지 않는 것을 넣어두는 구멍 말입니다.”(312)

“나는 사물을 실체적인 감각으로 이해하지만, 미학적 감각 속에서 그것이 어떻게 인식되는지를 논합니다. 그래서 나는 형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형식이란 사물의 출현이며 가시화된 성질과 속성입니다. 그것은 하겐 사람들이 이론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사물이 왜 형식을 갖는지 설명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형식을 취하는 것이 그들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증거는 교섭할 수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증거로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담론의 과정이 아닙니다. 반면 우리에게는 담론의 과정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물의 이유를 끊임없이 탐구합니다. 우리의 모든 분류법과 식물학과 분류체계는 사물이 갖는 본질의 구체화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사물이란 그들 자신이 행동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313-314)

존재론이 바뀌게 되면 본질이 있고 그것을 재현하고 표상하는 것이 인식의 과정이 아니게 된다. 형식이 중요한 것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라는 이야기 들이 오고 갔지만… 앞으로 차차 이해해 보기로 했다.

와 닿았던 구절은 “X와 Y는 이런 식이로 문제를 제기하지만, 그에 대해 생각할 다른 것들이 있으므로 그것을이 생각하는 형식을 우리가 바꾸자”(306)는 말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한 부분이다. 그는 논의에 절대적이거나 본질적인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는 항상 논쟁을 위해 주장한다고 말한다. 

 

자누리쌤 메모는 번역자 차은정씨의 글들에서 <존재론적 전회>와 스트래선의 위상에 대한 부분들을 발췌해 왔다. 존재론적 전회를 이끄는 인류학자들은 퍼스펙티브가 사물 자체에 내재해 있다고 본다. 이들은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시대적 위기와 공명하면서 인류학을 넘어서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이론적인 틀을 제공한 것이 스트래선이었다고 볼 수 있다. 

스트래선은 해러웨이의 사이보그론(인공물에 의해 확장되는 신체성. 오직 부분적인 퍼스펙티브만이 객관적인 시야를 보증한다. 초월성의 차단)에 기초하여 부분적인 관점을 취하면서 닫힌 전체에서 열린 부분으로 나아간다. 그는 생물학 용어 메로블라스트를 가져와서 부분과 전체의 관계를 절단-균열-파생성장으로 그리는 메로그래피라는 용어를 창안한다(그에 대한 미주부분에 혼동을 일으킬 오타가 있었다-띠우발견). 스트래선의 방법은 비교분석을 통해 자기완결적인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틈이 생기고 그 절단 부분에 연결되어 새롭게 파생되는 낯선 세계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이 책 자체가 하나의 사이보그이다.”

<부분적인 연결들> 텍스트의 저술스타일 자체도 이런 방식(절단, 파생-성장, 연결의 자기복제)을 드러내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난 시즌에 읽은 <분해의 철학>도 저술 형식에서 그 철학을 구현하고 있다고 했는데 그 부분도 떠오르고 여러모로 다르지만 공유하는 맥락이 있어보였다. 앞으로 또 이야기 해보면 좋을 것 같다. 

 

달팽이가 메모한 구절 중에서 인상적이었으나 독해한 바가 서로 달랐던 구절이 있었다. 

“사회성의 일반화된 상념에 대한 유사물이 문화에 대해 말하자면 복제의 개념이 될 것이고, 당신이 복제의 한계에 다다른 곳에서 사물들은 더이상 복제될 수 없으며 다시 나타나기를 멈출 것이고, 그때 당신은 다른 곳에 있게 되겠죠…”라고 스트래선은 말한다. 그 앞에서 스트래선은 사회성은 그들(멜라네시아)의 개념적 보편세계의 구성요소가 아니라고(302) 말하며 문화성에 대해서도 문제제기한다. 문화성은 무엇인가. 문화는 우리가 그것을 내부에서 탈구축해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과도하게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문제다. 그것은 거대화, 과잉에 속하는 문제, 어디에나 사용되어서 문제다. “한 세트의 배치를 다른 세트의 배치와 구별해주는 것은, 서로 다른 영역들이 친숙해지기 위해 형식들 사이에 특정한 결합들과 관계들이 재현되는 정도입니다.” 예를 들어 시장관계와 비시장관계가 구별된다는 상념(notion)을 법에서도, 가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사회성에 대한 내용(위의 인용)을 이야기 한 것이다. 책 내용으로 들어갔을 때 다시 이야기 나누어 보고 싶다.

 

그밖에도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특히 서문은 메모가 전무했을 정도였다. 원래 서문은 저자가 마지막에 쓰는 것 아닌가. 어떤 키워드들이 중요한지 감은 잡았다고 보고 책 전체를 독해한 후 마지막 시간에 다시 한번 읽고 이야기 나누어 보기로 했다. 그때는 우리에게도 ‘전회’가 일어났기를 바라면서….

이후 4차시에 걸쳐 두개 파트씩 세미나를 진행하기로 했다. 발제는 띠우(미학), 뚜버기(정치), 참(문화들), 자누리(사회들) 순서이다. 

댓글 2
  • 2023-09-09 15:18

    함께 하고 싶었으나 밥벌이의 일상으로
    이렇게 후기라도 쫓아가고 싶어 들어와 봅니다.
    <트라블과 함께하기> 읽으면서 난해하지만 흥분됐던 기억이 여기서도 소환되고 있네요^^
    우리가 관심가지는 생태인류학자들은 왤캐 다 어려운가요?!:)

    • 2023-09-11 06:54

      아~쌤! 댓글 감사드려요^^ 함께 했으면 좋았을텐데요,, 겨울방학에 또 다른 (어려운? 안 어려운?) 텍스트로 만나뵙기를~~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939
시즌3 <루쉰, 혁명의 문학> 8회차 공지입니다 (5)
노라 | 2023.10.15 | 조회 260
노라 2023.10.15 260
938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1회차 메모와 발제 (8)
토토로 | 2023.10.12 | 조회 159
토토로 2023.10.12 159
937
시즌3 <루쉰, 혁명의 문학> 7회차 후기 (1)
| 2023.10.11 | 조회 242
2023.10.11 242
936
시즌3 <루쉰, 혁명의 문학> 7회차 공지입니다 (5)
토토로 | 2023.10.09 | 조회 242
토토로 2023.10.09 242
935
<부분적인 연결들> 4차시 후기 (8)
| 2023.10.05 | 조회 164
2023.10.05 164
934
시즌3 <루쉰, 혁명의 문학> 6회차 후기 (3)
새봄 | 2023.10.04 | 조회 245
새봄 2023.10.04 245
933
시즌 3 <루쉰, 혁명의 문학> 6회차 공지입니다 (7)
노라 | 2023.09.27 | 조회 271
노라 2023.09.27 271
932
<부분적인 연결들> 4차시 메모 (5)
띠우 | 2023.09.22 | 조회 213
띠우 2023.09.22 213
931
시즌3 <루쉰, 혁명의 문학> 5회차 후기 (2)
블랙커피 | 2023.09.20 | 조회 279
블랙커피 2023.09.20 279
930
<부분적인 연결들> 3차시 <정치> 후기
뚜버기 | 2023.09.20 | 조회 186
뚜버기 2023.09.20 186
929
시즌 3 <루쉰, 혁명의 문학> 5회차 공지입니다 (7)
토토로 | 2023.09.18 | 조회 327
토토로 2023.09.18 327
928
<부분적인 연결들> 3차시 메모 (5)
띠우 | 2023.09.15 | 조회 162
띠우 2023.09.15 16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