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절 수정해석

토용
2017-04-09 14:36
215

184~186쪽 수정해석

댓글 5
  • 2017-04-16 20:04

    180-181수정해석

  • 2017-04-19 09:44

    183-184 수정해석

      그 부분에서 바로 인종주의가 개입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전 이 시대에 인종주의가 발명되었다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실제로 오랫동안 존재했으니까요. 그러나 여기서 인종주의는 다른 모습으로 기능한다고 생각합니다. 생명권력이 출현하면서 국가 메커니즘에 인종주의가 편입됐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인종주의가 권력의 근본적인 메커니즘으로 편입됐습니다. 실제로 그것이 근대국가 속에서 행사됐듯이 말이죠. 그리고 이 메커니즘 탓에, 그리고 근대국가가 기능할 무렵에, 어떤 순간을 취해도, 어떤 한계에서도, 어떤 조건에서도 인종주의를 피할 수 있었던 적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인종주의란 무엇일까요? 그건 우선 권력이 받아들인 생명 영역에 단절을 가져온 수단입니다. 살아야 하는 자와 죽어야 하는 자 사이에 단절입니다. 인류의 생물학적인 ‘연속체’에 다양한 인종이 출현하고, 구별이 생기고, 인종의 서열이 정해지고, 어떤 인종은 좋은 것이 되고, 다른 인종은 열등한 것이 되는 평가가 이루어졌는데, 이런 모든 것이 권력이 받아들인 생물학적 영역을 세분화하는 방법이 됐습니다.

      규율권력의 ‘투쟁하는 굉음’을 추구하고 주권권력의 평화를 비판하고, 법으로부터 도주극을 펼쳐 온 푸코는, 그 ‘투쟁’이 그대로 ‘인종주의’가 되는 장면에 맞닥뜨리게 됐다. 그렇다. 생명권력의 등장 이후, 주권권력은 인종주의를 규준으로 그 인종의 ‘인구’를 통째로 죽이게 된다. ‘개체’를 만드는 것을 일로 삼는 규율권력과 구별되는 생명권력은 ‘인구’라는 ‘생’ 그 자체의 ‘연속체’를 ‘조정’할 수 있게 했다. 인종주의는 ‘세분화’한다. 생물학적 연속체 사이에 ‘단절’을 도입한다. 그 ‘생물학적’인 ‘연속체’에 단절을 가져오고, 경계선을 가져오고, 인종 사이에 ‘구별’을 도입하고, 안심하고 그 ‘열등’이라 간주된 인종의 ‘인구’를 죽일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학살이. ‘죽게 둔다’가 기묘하게 ‘죽게 하다=죽인다’와 유착하고, 그대로 폭주한다. 

  • 2017-05-28 15:42

    181-182 수정해석

  • 2017-05-28 23:41

    p 186~188 수정해석

      생명정치에서 ‘오래된 죽이는 권력’을 작용시키려 한다면 그것은 ‘반드시 인종주의를 통해서 나와야만 한다’. 역으로 주권권력이 스스로의 살인을 행하는 권력을 생명정치의 테크놀로지 속에서 휘두르려고 한다면 그것 또한 인종주의를 통하여 나와야만 한다. 푸코가 이 시점에서 말하는 것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이런 표현을 해보자. 인종주의란 주권권력과 생명권력을—소격없이—직접 접속하는 합선회로이다.

      푸코는 이 ‘살인’을 직접 죽이는 것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죽음에 유기하는 것’, ‘죽음의 위험을 증대시키는 것’ ‘정치적인 죽음’ ‘추방’ ‘배척’ 등, 이 살인은 다양한 형태를 취할 것이다. 또한 범죄도 인종주의의 용어로 여겨지게 된다. 범죄자, 광인, 비정상인을 죽음에 이르게 하여 추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은 ‘인종주의’ 즉 ‘생물학적’인 요소라는 회로를 통해서이다. 여기에서 인종주의는 이데올로기나 프로파간다로 되돌아가게 된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긍정적인’ 생물학적 실체성을 갖는 것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언가 의심은 지울 수 없다. 먼저 하나의 의문을 두자. 규율권력은 어떻게 된걸까 라고. 물론 그것은 생명권력과 ‘병존’하는 것이고, ‘규격화’라는 점에서는 교착하는 것이라고 그는 기술했다. 그러나 그 생명권력의 살인—‘학살’ 혹은 ‘생물학적 배제’—에서 규율권력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이 강의는 명확하게 주권권력에 반한 규율권력, 거기에서 울려 퍼지는 전쟁의 굉음라는, 『감시와 처벌』에서 결정적으로 제출되었던 구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 ‘전쟁’는 뜻밖에 규율에서 분리되고 주권권력의 사회계약론에 반하는 전쟁의 담론으로 되어 인종 전쟁으로 전락해 가고, 그리고 그 인종주의는 ‘국가화’되어 주권과 직접 접속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다면 저 『감시와 처벌』의 최후의 한 문장, 외침과도 닮은 절구—‘전쟁의 굉음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중에 떠버린 것은 아닐까. 그 대항 싸움, 몸 싸움은 단지 ‘죽음 속에 유기’ 당하는 것으로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규율권력은 생명권력과 완전히 양립가능한 한편, ‘주권의 관계와는 절대로 호환가능성이 없는(absolument imcompatible)’ ‘완전히 새로운 도구, 극히 다른 장비’ ‘이 새로운 권력의 메카니크(기계)’이고, ‘주권론의 용어로는 기술하는 것도 불가능하고 정통화하는 것도 불가능한 근본적으로 이질적인, 본래라면 주권론의 저 거대한 법체계의 소멸자체를 초래할 터였던 권력’이라고 이 강의의 최초에 그는 공공연하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규율권력을 ‘넘어서’ 거기에서 일탈해 가게 하여 출현했던 생명권력과 인종주의는 기묘하게 주권권력과 사이 좋은 모양을 보이고 있다. 주권권력의 비판에서 나온 인종주의, 이것이 생명권력과 주권권력의 접합이라고 하기보다는 오히려 ‘용해’를 도출하고 그것이 끊임없이 생물학적인 실체성에서 사람을 계속 죽이는 것이다. 규율권력은 주권권력의 소멸을 초래할 터였다. 그렇게 푸코는 분명히 말했다고 하는데. 이 시점의 논지를 정리하면서 바꿔 말하면, 주권권력은 인종주의를 개재하여 생명권력과 합선한다. 생명권력과 규율권력은 규격화를 통해서 양립가능하다. 그러나 여전히 규율권력과 주권권력은 양립 불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이 기묘한 합선과 양립불가능성의 모순은 이 강의의 최후에서 통째로 모든 것이 유착하여 정점에 도달한다. 거기에서 논해지는 것은 물론 나치이다.


  • 2017-05-30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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