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틈을 만들어내는 비급(祕笈) - 22년 필름이다 5월 정기상영작 <스위스 아미 맨> 후기

청량리
2022-06-13 06:05
358

 

생각의 틈을 만들어내는 비급(祕笈)

 

 이 영화는 2022년도 동네영화배급사 필름이다 정기상영작 중 ‘B급 장르’의 첫 번째 영화다. 때문에 관객들은 이 영화가 어느 정도 'B급'이미지를 구현하고 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B급’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영화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처럼 정해진 답이 없다. 다만 흩어져있는 이미지들이 있을 뿐이다.

 

 

 그 중에서 가장 ‘B급’답게 하는 건 기존 질서와 통념(A)을 얼마나 엉뚱한 상상력으로 비(B)틀었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뤼미에르 형제의 리얼리즘으로 시작해서, 멜리에스의 상상력으로 확장되었기에, 그래서 영화의 비급(祕笈)은 B급 장르에서 찾아야 한다. 그래서 B급은 리얼리즘의 부재인 ‘병맛’과 구별되어야 하고, 과거의 감성을 반복하는 ‘복고’와도 다른 지점이 있다.

 

<최초의 영화라고 평가받는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

 

<필름에 상상력을 입혔다고 평가받는 조르주 멜리에스의 "달나라 여행" > 

 

 

 어느 해변가, 한 남자가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 한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웬 남자가 정신을 잃고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이봐요!!! 그러나 그는 이미 ‘죽어 보이는’ 시체였다. 다시 돌아와 자신의 목을 매다는 남자. 그때 갑자기 시체의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부룩, 부룩, 부루루룩. 관객들은 죽으려는 남자의 사정도, 이미 ‘죽어 보이는’ 또 다른 남자의 사정도 알 길이 없다. 별다른 정보 없이 던져진 상황에 조금은 답답했지만 뭐, 당황스럽진 않았다.

 

적어도 그들이 시체의 방귀를 이용해 무인도를 탈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영화 제목이 왜 <스위스 아미 맨 Swiss Army Man>(2016)일까?

주인공 맥가이버는 언제나 위기상황에 빠지지만 특별한 무기도 없이 탈출하는 데 성공한다. “할아버지는 내게 늘 말씀하셨지.” 맥가이버는 과거 할아버지의 말씀을 떠올리며 주머니에서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꺼내든다. 오직 다용도 칼 한 자루로 적들을 제압하는 <맥가이버>(1985)는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끈 드라마였다. 그리고 그가 사용하는 만능칼을 ‘맥가이버 칼’이라고 불렀다.

 

 

 

 시체 매니(다니엘 래드클리프)의 방귀로 무인도를 탈출하게 된 행크(폴 다노). 둘은 육지에 도착하게 되고 죽어서 혹은 스스로 추방당했던 사회로 함께 돌아가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매니는 맥가이버 칼과 같은 무한능력을 발견하고 사용하게 된다. ‘스위스 아미 나이프’가 아닌 ‘스위스 아미 맨’의 탄생!!

 

 영화는 둘이 핸드폰 바탕화면 속 사라(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의 집에 도착하면서 상황이 급하게 전개된다. 사회적 루저였던 행크는 그저 스토커였고, 매니는 부패한 신원미상의 시체일 뿐이었다. 결국 사회는 그 둘을 다시 추방하기로 한다. 그리고 매니는 처음 그랬던 것처럼 방귀로 탈출을 시도한다. 행크는 두 손이 수갑에 묶인 채 그런 매니를 감사와 사랑의 눈으로 떠나보낸다.

 

<행크역의 폴 다노(왼쪽)와 매니역의 다네일 래드클리프(오른쪽)>

 

신체와 능력에 대한 이야기, 우정과 환대에 대한 이야기, 배설과 욕망에 대한 이야기, 사회적 편견과 사소한 혁명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를 보고 남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을 이야기하든 영화적 상상력으로 가득한 영화 <스위스 아미 맨> 덕분에 우리는 기존 생각을 비(B)집고 들어오는 틈과 그로 인해 생기는 균열을 거부하지 말고 그대로 느낄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매니의 목구멍에서 쏟아지는 물을 받아 마시는 행크를 보며 원효대사의 깨달음으로 영화를 볼 수 있으리라. 캬아아~~~

 

 

 

 

 

 

댓글 2
  • 2022-06-13 09:22

    아니, 우리가 이런 비급을 본 것이로군요ㅋㅋㅋ

     

  • 2022-06-13 12:44

    그러게요.. 삐끕이었어요 ?  

    전 필름이다에서 본 영화 중 젤로 재밌었는데요...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다면 또 보겠어요.

    이 영화는 끝까지 봐야하는 영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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