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게 도착한 부고, 그리고 아홉번째 맞는 3.11

요요
2020-03-05 18:39
457

2월말에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서 보낸 소식지가 메일로 도착했습니다.

뒤늦게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얼른 열어보다 잠시 숨을 삼켰습니다.

송전탑반대싸움의 과정에서 만난 김말해 어르신의 부고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말해 할매를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밀양을 만난 이래 말해 할매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2014년 메르스 시국에도 불구하고 모여서 북콘서트를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던 책,

<문탁네트워크가 사랑한 책들>에도 포함될 정도로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남긴 책,

<밀양을 살다>에서 우리는 말해할매의 굴곡진 이야기를 읽고 무언가 복받쳐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할매는 젊디 젊은 날 남편을 보도연맹으로 잃고, 아들 둘을 홀로 키웠습니다. 

그렇게 키운 아들이 월남전에 참전하여 허리를 다쳐 돌아오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지요.

할매는 그 책에서 대동아전쟁도 겪고 6.25도 겪었지만 당신의 인생에서 밀양의 전쟁이 제일 큰 전쟁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2014년 한겨레신문: 이진순의 김말해인터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45517.html

 

밀양에 송전탑이 다 세워진 뒤에 파지사유에서 함께 본 영화 <밀양아리랑>에도 말해할매가 나옵니다.

그 영화에서 말해 할매는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부터 신전탑은 무너져도 공든 탑은 안 무너진다 카더만, 
내 고향 안 뺏길라고 이렇게 발버둥쳤구만, 
와 내 끝이 이래 돼뿟노 싶어서 참말로 죽겠어!”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와 말해할매와의 인연은 더 깊습니다.

말해 할매의 생평은 2015년 문탁 인문학축제에서 공연된 시극 <백년 동안의 바느질>의 모티브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작은 물방울이 말해할매역을 맡았었지요.(우록샘이 대본을 썼고, 다인님이 남편역을, 우현이가 아들역이었습니다.)

할매의 인생 이야기가 끝났을 때, 모두들 박수를 치지도 못하고 한참을 숙연히 앉아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할매와의 인연을 되돌아 보며 말해 할매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결코 작지 않음을 느낍니다.

너무 늦게 우리에게 말해할매의 부고가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부고는 늦게 도착했지만 그럼에도 오래오래 김말해 어르신의 삶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말해할매를 추모하고 밀양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아홉번째 3.11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칩니다.

만일 우리가 밀양을 만나지 않았다면 김말해 할매의 삶도 몰랐겠지만

더불어 3.11 후쿠시마 핵사고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의 의미와 무게를 그렇게 크게 느끼지는 못했겠지요.

우리가 왜 그렇게 열심히 탈핵 활동을 열심히 했었나, 그런 활동들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코로나사태에도 정신줄 놓지말고 차분하게 이런 저런 생각을 나누어 보고 싶어지는군요.

 

 

 

댓글 2
  • 2020-03-06 09:24

    아......................그런 일이 있었군요.
    삼가 김말해 할머니의 명복을 빕니다.

    더불어 밀양에 계시는 우리의 모든 친구분들도 잘 지내시길~~~

  • 2020-03-06 22:48

    아이고...댓글을 달기 어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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