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영화인문학> 1주차 : 내.신.평.가. #1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띠우
2023-10-04 10:21
214

1주차 : 내.신.평.가. #1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의 빠른 속도와 현란한 이미지를 따라가느라 급급하던 차에 느닷없이 찾아온 적막함과 느림. 혼돈 속에서의 정적은 내가 보고 있는 영화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에 대한 환기를 순식간에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어지는 이야기는 웨이먼드가 디어드리와 대화를 통해 시간을 벌어놓았다. 에블린이 보기에 늘 나약하고 무능력했던 웨이먼드가 말이다.

다정함이 세상을 구한다고? 그럴까. 소통을 위한 시도는 생각보다 자주 서로를 빗겨가곤 한다. 우리가 늘 직면하는 현실 속에서 확인하듯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미 벌어져버린 일에 대해 원인과 결과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방식은 누군가의 책임을 묻게 된다. 얼마 전 '923기후정의행진'에 문탁 식구들과 함께 나갔다. 뒤풀이 자리에서 이러고 들어가면 함께 했던 기쁨만큼 갑자기 무기력해진다는 말이 나왔다. 나도 자주 느끼는 바다. 그리고 이어지는 분노도 짐작할 수 있다. 현재를 직면하는 일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하는 것이 나의 삶을 불행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것에 동의했다. 

내가 뽑은 장면은 돌멩이가 된 에블린이 조이에게 다가가는 장면이다. 그들은 추락한다. 각성이 일어난 에블린은 다가가지만, 조이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잠깐의 기쁨이나 행복은 다시 혼돈으로 이어져 허무해질 뿐이라고. 갑작스런 다정함이 통할 리가 없다. 하지만 다정함을 거절하고 떨어진 돌멩이들은 깨어진 존재가 될 것이다. 이 영화는 잘 싸우는 법이 무엇인지를 알게 한다. 구글 아이를 장착한 에블린도 기존의 자기가 가진 눈과 다른 눈을 장착하게 된다. 인물들에게 달라붙는 구글 아이들,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기를 손에 쥔 것 같다. 이런 눈이 여러 개 달릴수록 삶이 지금보다 조금은, 아주 조금은 나아질 것 같다. 그리고 이때의 다정함에는 어떤 힘이 실려 있지 않을까 싶다.

댓글 3
  • 2023-10-05 16:46

    “그냥 얘기만 했어.”
    “남편에게 이혼 신청을 받았을 때가 떠올랐어요.”

    내가 뽑은 장면은 세탁소의 모든 것이 압류에 들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웨이먼드가 디어드리에게 뭔가 말을 하고, 그 얘기를 들은 디어드리가 1주일의 유예기간을 주고 에블린을 풀어주는 장면이다. 도대체 웨이먼드는 어떤 마법을 부렸기에 엄청난 위기를 막을 수 있었을까.

    사실 ‘그냥 얘기’는 없다. 상대방의 경험과 생각을 알지 못했겠지만 웨이먼드는 자신의 진심을 담았을 것이다. 평소 자신이 싸우는 방식인 ‘다정함’을 장착한 채. 지금의 상황과 아내의 불안정한 심리, 이혼서류 때문에 그들이 겪고 있는 솔직한 어려움을 설명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몇 마디에 실어서 아주 짧게. 그런데 하필이면 이 얘기를 들은 국세청 직원이 이혼 경험이 있었고, 남편에게 분노했던 과거가 생각났기 때문에, 언젠가의 자신처럼 분노에 날뛰고 있는 에블린에게 공감을 느낀 것이다. 그래서 한 장면만 뽑을 수 없었다.

    “미친 사람이 미친 사람을 알아 본다.”
    둘은 언젠가 또 다른 우주 속에서 서로의 많은 것을 사랑했다. 그것을 알아챌 때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아주 짧은 ‘그냥 얘기’를 통해 서로를 이해했다. 얘기, 또는 대화는 그만큼 어렵지만 소중하다. 점점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진심을 담아도, 애정을 쏟아도, 자꾸 빗나가는 경험도 있다. 그래서 차라리 입을 꾹 다물기도 하고, 마음 속으로 혼자 이런 저런 대화를 한다.

    그래도 결국은 나와 닮은 ‘미침’을 원하고, 나와 비슷한 ‘미친 사람’을 찾고, 그 사람과 공감하면서 살고 싶다. 우리 ‘그냥 얘기’나 할까? ^^

  • 2023-10-05 21:53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나의 경험으로 볼 때)가장 기발나고, 엉뚱하고, 황당하고, 재치있는 것 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영화. 온갖 호평과 트로피를 거머쥐었고, 문탁에서까지도 여러번 회자되었다. 다소 진부한 주제를 아주 기막힌 호소력으로 풀어놓은 점에 큰 박수 보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찬 일색일 테니, 나는 삐딱선 정신에 입각하여 딴지를 거는 메모를 쓰고자 한다.

    첫째, 철 없는 남편의 행동.
    온갖 물건들, 심지어 세탁소 매장에 쌓인 고객님들 물건에까지 구글 아이를 붙이며, 세상 위트 있고 여유 있으며, 친절한 남자인 것처럼 표현되다니!
    고단한 현실에 찌든 부인에게 이혼 조정서류를 내밀고, Be Kind, 다정함을 말하는 남편이, 아니 감독이 얄밉다. 서류는 어쩌면 부인이 내밀었어야 한다. 책임감이 부족한 남편에게.
    또한 아빠로서 딸에 대한 입장도 모호하다. 딸의 반항적인 행동, 동성연애, 거친 언사에 대해 어떠한 리액션이 없다.(방관자처럼) 따라서 엄마만 나쁜 사람오로, 딸을 절대 악당으로 만든 사람으로 상정되어있다. 딸과 엄마는 대립과 화해, 아빠의 역활은 친절하지만 소극적인 뒷배경. 이런 점이 상당히 아쉽다. 아이의 양육과 독립, 가족간의 갈등과 성숙의 과정에서 아빠의 역활이 너무 빈약하게 그려져있다.

    둘째, 투 머치!!
    영화 내내 무엇을 예상하든 그 이상이었다.(주제는 예외였지만)
    평소엔 하지 않는 어뚱한 짓을 해야 다른 유니버스에 있는 또 다른 자아와 연결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하는 엽기, 변태, 혐오, 유머 가득한 행동들은 정말 상상 이상이었다. 돌멩이 씬하고, 소세지 손가락 손 씬은 허를 찌르는것이었다!
    하지만 그 엉뚱함들은 투 머치. 지나치게 현란하고, 요란맞고, 과장, 과잉이여서 나로 하여금 재미와 피곤함을 동시에 유발시켰다.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멀티 유니버스를 컨셉으로 잡은 영화들이 대체적으로 정신이 없긴 하다만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압도적이다.)
    나는 항상 과잉속에서 살다보니 가끔 덜어내고 싶다. 내 몸속의 콜레스테롤을, 집안의 물건을, 넘치는 영상과 정보를....
    그래서 이 영화는 재밌으면서도 꽤 피곤하다.

    셋째, 맘에 안들면서 찡 해지고 빠져드는 씬.
    엄마와 딸의 대화장면.
    눈물 줄줄 흘리며 자신의 힘듦을 토로하느 딸, 그리고 결국 떠나는 딸, 그런 딸을 쿨하게 보낼 수 밖에 없는 엄마. 조금은 신파적이면서, 익숙한 장면이지만 그래도 같이 마음이 울컥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영화의 메모를 쓰면서 그동안 가족에게 다정하지 못했던 것, 자식에게 바름을 요구한 것, 내 기준으로 자식의 도덕성을 판단한 것 등등에 대한 어설픈 반성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영화를 보지 않았어도 이미 나는 충분히 찔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 2023-10-06 01:02

    내가 늘 세상을 밝게만 보는 건 순진해서가 아냐.
    전략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지.
    난 그런 방법으로 살아남았어.

    당신은 자신을 투사로 여기잖아.
    나도 나를 그렇게 생각해.
    이게 내가 싸우는 방식이야.

    술에 취해 세탁소에서 난동을 부리던 에블린이 체포되고, 아무 일도 해결 못하리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국세청 조사관과 대화로 여유 시간을 벌어온다. 그 때, 다른 우주의 웨이먼드는 에블린에게 말한다. 바쁘게 살아야 하는 걸 모르는 게 아니라, 밝게 사는 것이 자신의 방식이라고. 웨이먼드는 다정함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웨이먼드는 개인적으로 가장 이입해서 보게 되는 캐릭터였다. 웨이먼드는 정신없이 바쁠 때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로 에블린을 답답하게 만들다가 한바탕 소동이 지나간 후, 적당히 두루뭉술한 해결을 하고 엄청난 일을 해낸 듯이 돌아온다. 극장에서도, 이번에 다시 보면서도, 참 심란했다. 아오~ 인간아~!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웨이먼드를 마주해야 해서 괴로웠다.
    나는 만화를 그리면서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도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이 봤을 때는 놀고 있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사실 불안감은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 해서가 아니라 걱정하는 사람들을 빨리 안심시키고 싶다는 마음에서 나오는 게 크다. 우울한 감정이 들어도 오래 빠져 있지 않으려 한다. 최대한 빨리 털어내고 작업에 임하는 편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걱정만 한다고 일이 풀리나. 하고 싶은 일을 오래 하려면 조금 이기적이고 비겁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가끔은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싶어진다.
    긴 시간동안 휘몰아치는 영화에 넋 놓고 빠져 있다가 이 장면과 마주하고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웨이먼드의 대사가 훅 들어오면서 ‘지금처럼 그냥 해도 돼!!’ 처럼 들렸다.
    그래~! 어차피 만화 아니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어~!!
    덤벼라 세상아. 이게 내가 싸우는 방식이야. 아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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