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의 영화철학에 대한 질문들 | 1강 후기 메모

청량리
2023-06-11 07:19
219

| 들뢰즈의 영화철학에 대한 질문들 |

 

제1강 <들뢰즈 영화철학 : 이미지를 통한 사유>

 

“영화 그 자체의 본질이란, 더 고양된 목표로서 오로지 사유와 그 작용 이외의 어떤 것도 갖지 않는다.” (들뢰즈)

 

 들뢰즈의 영화철학은 영화에 대한 분석이나 비평이 아니다. 들뢰즈에게 철학이란 개념들을 창조하는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이다. 벌써부터 개념이나 창조, 사유가 무언지를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대략의 뉘앙스는 감지된다. 여하튼 들뢰즈의 영화철학은 그래서, 영화에 대한 기존의 통념들을 새롭게 창조하는 방식을 통해 우리의 삶을 사유하길 권하고 있다. 결국 『시네마』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영화’지만, 감독이 아니라 철학자들이 좋아할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는 듯하다. 

 

 들뢰즈가 영화를 사유의 대상을 삼는 이유는,

영화이미지를 단순히 재현된 허상이 아니라 실재의 부분으로 보기 때문이다. 부분으로서의 영화이미지가 실재(전체)를 더 많이 포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더 잘 사유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실재란, 물질적 우주, 무한으로서의 카오스이며, 스피노자의 개념에 따르면 신, 즉 자연인 셈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실재를 더 잘 포착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재, 즉 물질적 우주에서 ‘물질’이 곧 운동-이미지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며, 영화는 그러한 운동-이미지를 담기에 최적화된 매체이기 때문이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이미지는 물질이자 의식이고 운동이며 지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실재, 물질적 우주는 운동-이미지가 내재된 무한한 평면이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인간의 지각 너머 운동-이미지를 포착할 수 있다. 영화는 카메라를 통해 세상을 그저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기 때문에 태생 자체가 탈중심적이고 비인간적이다. 이러한 영화의 방향성은 들뢰즈의 탈영토화와도 연계된다. 물질이 지금, 여기에 존재하기 위해서는 운동-이미지 너머의 ‘시간’에 대한 사유가 필요하고, 들뢰즈는 『시네마 2 : 시간-이미지』에서 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댓글 2
  • 2023-06-11 12:41

    들뢰즈는 예술의 특성이란 “무한을 되찾고 복원하기 위해 유한을 거쳐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유한’의 한 방법으로 들뢰즈는 영화에 많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인간의 지각은 선택적이지만 카메라가 포착하는 것은 우주의 일부분을 베어내어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따라서 실재에 대한 사유를 좀 더 정확하게 보여주고, 객관적일 수 있는 것이 영화라고 말한다. (나는 이 부분에서 살짝 딴지를 걸고 싶었다. 결국, 카메라를 움직이게 하는 감독의 의도와 시선, 편집, 촬영 감독의 눈, 영화가 ‘상영’까지 갈 수 있는 상업적 한계 등. 이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영화는 가능하지 않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 주는 다큐멘터리라 해도 말이다. 어떤 것을 포착하느냐, 어떤 현실을 담아내고자 하느냐에 따라 영화 역시 인간이 의도한, 또는 의도하지 않은 선택적 지각을 가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들뢰즈가 말하는 영화에서의 ‘탈영토화’는 유기적 재현 시스템으로서의 감각-운동 도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들뢰즈 표현대로라면 ‘영토화’된, ‘고정된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이 고정된 시스템은 우리에게 익숙한 서사, 이미지와 사운드의 환상적인 결합, 적절한 감정의 기승전결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들뢰즈는 영화를 즐기는 대상이 아닌,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 ‘뻔하고 그럴 듯한’ 영화를 감상하는 것 말고,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시간과 사유를 통해서 보이는 것 너머의 더 깊은 생명의 직관으로부터 솟구치는 거대한 힘들을 포착하는” 것이 영화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영화를 통해 삶에 대한 또 다른 사유를 권하는 들뢰즈. 니체도 모르고 스피노자도 모르지만 강의는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들뢰즈의 <시네마>까지 가기 위해서는 피곤한 나의 몸을 ‘탈영토화’ 해야 한다.

  • 2023-06-12 19:04

    “우리에게 물질은 '이미지'들의 총체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지라는 말로 의미하는 것은 관념론자가 표상이라고 부른 것 이상의 존재, 그리고 실재론자가 사물이라고 부른 것보다는 덜한 존재, 즉 사물과 표상 사이의 중간 길에 위치한 존재다.” - 베르그손

    전통적으로 서양철학은 관념론과 경험론의 구도 안에서 반복되어 왔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그 전제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을 한다. 생각해보면, 나에게 이미지는 어떤 면에서는 관념적이고 어떤 의미에서는 경험론적인 실재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미지를 관념적이라고만 보기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측면이 분명 있고, 경험론자들이 구체적으로 드는 물질적 예들과는 다른 면도 있다. 베르그손의 이미지는 이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 즉, 우주의 모든 사물들의 존재방식으로 설명되는 개념이다. 그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을 '이미지'라 부른다.

    들뢰즈는 인간이 눈으로 지각할 수 있는 것보다 카메라가 더 많은 것을 포착하는 것에 주목한다. 같은 자연환경을 보더라도 내 옆에 있는 사람과 다른 장면을 기억할 때가 있는데, 적어도 카메라는 눈앞에 보이는 장면은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감독의 시선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카메라 기법은 이미 그 자체로 어떤 목적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들뢰즈는 주관적인 인간-눈과 객관적 키노-아이의 전제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주목한다고 여겨진다. 이렇게 카메라의 눈으로 바라본 세계의 이미지는 인간이 지각하지 않더라도 존재하는 이미지를 낳는다. 고전영화에서 현대영화로 오면서 영화는 초기 감각-운동 도식의 분류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는 운동-이미지에서 시간-이미지로 이행되는 과정과 방향을 같이 한다. 이미지는 인간지각에서 벗어나 탈중심화되고, 그로 인해 비인간화의 경향으로 나아갔다.

    탈중심화와 비인간화는 탈영토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탈영토와 운동은 언제나 재영토화와의 관계속에서 긍정적/부정적으로 구분되며, 관계되는 영역이 잠재적/현실태적인가에 따라 절대적/상대적 탈영토화 운동으로 구분된다.” 이런 구분에서 좋은 영화는 절대적이면서 긍정적 탈영토화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고 정리된다. 각 구분별로 구체적인 예를 떠올리면 좋겠는데 정리가 잘 안된다. 영화 그냥 보면 되지, 우린 왜 이러고 있을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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