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게릴라세미나] 모스의 <몸테크닉> 후기

뚜버기
2024-01-2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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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게릴라 세미나 첫번째 책은 마르셀 모스의 <몸테크닉>. 정말 게릴라로 결성되어 어쩌다 보니 첫시간은 지나가 버렸다. 뒷북 공지에 반가운 손님^^이 오셨으니 바로 방학때만 만날 수 있는 르꾸후크 선생님~~.

르쿠후크 쌤 덕분에 세미나가 삼천포로(에코실험실 회의 분위기로?) 빠지지 않고 중심을 잡고 가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몸테크닉>은 마르셀 모스 선집으로 기획된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다. 1924년과 1934년 프랑스 심리학회에서 행한 강연문들 네 편이 엮여 있다. 당시는 뒤르켐이라는 영웅적 창설자에 의해 등장한 사회학이 신생 학문으로서 막 자리잡던 때였다. 사회학만의 고유한 연구대상을 확립하여 자신만의 영역을 확보하는 것이 사회학의 과제였을 터이다. 따라서 심리학이나 생리학처럼 인간을 탐구하는 다른 학문과 오히려 경계를 긋는 것이 중요시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모스의 심리학회 강연문들은, 학문들 사이의 단단한 벽을 허물어야 하며 서로의 연구 결과들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권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이 최종적인 연구목표인 “인간의 특정 능력을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하고 구체적인 인간을 고찰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스가 보기에 개인의 의식영역도 집합체의 집단표상, 집합의식도 서로 구획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란 개인의 의식, 집단표상 그리고 생리학적 메커니즘인 충동(본능) 등의 사회학적이고 심리학적이며 생리학적인 것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린 총체성의 존재이다.

“모스는 총체적 인간이라는 개념을 사회학의 일반 범주에서 벗어난 잡동사니 같은 사실들 속에서 찾아냈다. 눈물로 인사하기, 리듬에 맞춰 울부짖기, 저주의 말 한마디로 인한 죽음, 걷고 뛰고 헤엄치는 몸 테크닉 등이 바로 당시 사회학의 가장자리에 밀려나있던 잔여물에 해당한다. 모스는 이런 사실들 상당부분을 ‘군인으로의 자기체험’과 ‘멀리떨어진 곳의 민족지’로부터 발견하여 ‘지금의 사회학’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자료로 가다듬었다. 그는 비유럽 사회의 한 부족에게 유효한 것이 유럽 사회의 구성원들에게도 유효한 지를 주의 깊게 논했고 이런 비교가 진화론적 해석으로 치닫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해설)

모스는 이미 분절화된 서구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보다 광범위한 집단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심리적-생리적-사회적 복합체인 총체적 인간을 발견했고 동료 학자들에게도 그 방법론을 제시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정말 앞서나간 혹은 과감한 주장이 아니었을까? 일차대전에 참전하여 극심한 공포를 체험했으며 또 가까운 동료들을 죽음을 여러 차례 겪어야 했던 모스. 이차대전 발발 이후 유태인 근무정지 조치로 그의 학문활동은 중단되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가 쓴 노년의 모스에 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만일 파시즘이, 전쟁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라는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전쟁이 그치지 않는 현실을 떠올리면 더욱 참담한 마음이 든다. 

모스는 또한 애도의 의무에서 개인의 심리적-생리적-사회적 차원이 맺는 특별한 관계에 주목한다. 

"웃음, 눈물, 장례식의 애가, 의례적 감정분출은 의무적으로 표현해야 할 몸짓이자 기호이면서 동시에 생리적 반응"(136)이라고 말한다.  애도를 극히 사적인 일로 분리시키고 예를 갖추는 법을 외면하려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문탁이 사랑한 책들 가운데에서도 거의 첫손가락 꼽히는 책인 모스의 <증여론>(1924)도 당시의 저술이다. <증여론>에서도 사회는 ‘총체적 사회적 사실’이며 선물이 그 총체성을 직조하는 중요한 요소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증여론>외의 번역본이 전무하다시피 했기 때문에 2차서적을 통해 모스의 의중(?)을 더듬는 듯한 막연함도 있었다. 이번에 읽으면서, 평범한 인간들의 몸과 마음을 구체적으로보다 염두에 두고 모스가 이야기하고 있었구나라는 점이 크게 와닿았다. 그렇기에 문탁네트워크에 강력한 영향을 줄 정도로 증여론이 “무질서한 페이지들이 가진 놀라운 힘”을 가졌던 것같다.

셈나를 하면서 백년전의 글이라고 하기엔 놀라울 정도라는 이야기가 많이 오갔다. 모스의 감정 연구와 몸에 대한 관심은 오늘날 우리가 문제로 삼는 주제들(정동, 신유물론 등등)과도 맞닿아 있으며 아마 그런 흐름 덕분에 비로소 번역출판이 가능해 지고 있는 것 같다.  기획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새로운 번역물들이 속속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만이 우리 정신 속에 존재하거나 혹은 존재했던 유일한범주가 아니며, 반드시 연구해야 할 범주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가능한 한 빠짐없는 완전한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인간이 사용했다고 알려진 온갖 범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성의 창공에 빛이 없는 달, 희미한 달, 어두운 달이 여럿 떠 있고 지금도 여전히 떠 있을 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174)

댓글 1
  • 2024-02-04 15:15

    후기를 보니 휘발되었던 기억이 다시 돌아오네요^^

    오붓하게 4명이서 속닥속닥하다가도 자신의 평소 관심과 맞닿은 지점에서는 흥분과 논쟁도 오고가는,
    저희들 모두 느긋, 느림의 기운을 서로에게 전파하며 우리들만의 시간 속에서 읽고, 토론하고, 후기 쓰고 댓글을 다는 듯 합니다ㅋㅋㅋ

    무엇보다 전 <증여론>>으로만 알고 있던 모스의 다른 글들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좋았습니다.
    당대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고자 치열하게 '경쟁(?)'했던 심리학과 사회학을 넘나들며
    각각의 학문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며 열린 자세를 취했던,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인식론적 전환을 꾀한 모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도 뚜버기 샘이 적어주신,
    '총체적인 심리-생리학적 복합체'로서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 사회학의 역할이며
    그 때의 사회는 상징이라는 범주가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었는지 역사적 관점을 견지할 것을 강조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모스 선집도 쭈욱 읽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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