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 3차시 메모

띠우
2023-10-27 00:39
171

올립니다

댓글 5
  • 2023-10-27 07:18

    올려요

  • 2023-10-27 08:00

    퍼스펙티브주의에서 매력적인 것은 그것이 우리를 변환시키는 형이상학이라는 점이다. 퍼스펙티브주의에 근거해서 서구 인류학 혹은 근대 인류학을 다시 기술할 수 있는 반인류학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퍼스펙티브주의에는 자기-지시적인 성질이 있지만 - 그 자신을 기술할 수 있다 - 그것엔 인류학을 반분석할 수 있는 외실행적이며 외혼적인 성질이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퍼스펙티브주의는 정치적 대상이며 ‘사고의 식민화’에 대항하는 매우 유용한 정치적 무기이다. 그것은 사고의 영구적 탈식민화를 보조한다. 우리가 퍼스펙티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아니었다. 실제로 아마존에서조차 아무도 퍼스펙티브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 퍼스펙티브주의는 하나의 개념, 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 결과가 실재한다고 굳게 확신한다. 아마존 사람들과 여타 사람들 사이에서 그 결과가 전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모든 곳을 특권적인 장소로 간주한다는 점에서도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사실상 특권적인 장소가 전혀 없으므로 보편세계의 모든 장소나 지점은 주체가 될 수 있고 관점이 될 수 있다. 인간 넘어서, 활기 띤 것을 넘어서까지 관점을 일반화하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말하면 근본적으로 비군주적, 비민주적 세계를 당신에게 쥐어준다. 존재론적 아나키와 같다. 다른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초월적 관점이란 없다. 우주의 모든 지점, 존재, 나무, 동물, 식물이 주체이며 이런 의미에서 퍼스펙티즈주의적 관념으로서 인간은 우주의 기본상태라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성이 특권적인 위치에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인간이라면 인간이 특별하지 않다고도 말해야 한다. 모든 것이 우리와 같다. 199-201

    반인류학으로 다시 기술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외실행적이며 외혼적인 성질이란 무엇일까?
    퍼스펙티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존에도 없다? 하지만 그 결과는 실재한다?
    모든 곳이 특권적인 장소이지만 사실은 전혀 없다?
    비군주적이자 비민주적이라는 말?

  • 2023-10-27 08:40

    ‘퍼스펙티브주의’와 ‘애니미즘’ 사이의 관계 20231027 인디오 3번째 메모 달팽이

    타자성을 통해 우선은 퍼스펙티브주의를 탐구하게 되었고, 이 사람들이 지극히 지적으로 세련된 형이상학적 사변에 관여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 자기와 타자 사이에 이뤄지는 퍼스펙티브의 연행이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 죽은 사람들 등등에 적용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말하자면 우주의 모든 요소가 잠재적 초점, 곧 잠재적 관점-퍼스펙티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아메리카 전역의 원주민들이 가진 관념... 동물들은 실제로 사람들이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동물들은 우리를 동물처럼 보고 심지어 먹잇감으로 본다. 이 관념은 살인자와 포로가 상호교체 가능하다고 보는 투피남바 족의 관념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두 경우 모두에서 누가 어떤 상황에서 누구를 무엇으로 보느지가 중요합니다. ...아마존 사람들이 인간성을 우주의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존재론으로 인지하고 이해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182쪽)

    필리프는 아추아르족과 함께 연구를 수행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이 동물들과 사회적 관계를 맺는다고 했다고 합니다. 동물들과 함께 말입니다. ...자연이 이미 사회적이라는 관념, 동물과 식물이 인간 존재의 사회적 파트너라는 관념을 필리프는 ‘애니미즘’이라고 불렀습니다.(186쪽)

    근대인들에게 인간성은 뒤늦게 오는 것이자 가장 귀중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인간성이 존재의 기본상태라는 전제에서 시작한다면, 자연과 문화, 인간과 동물의 위치가 뒤바뀐 인류학에 다다르게 됩니다. 신체 곧 우리의 물질적 차원은 우리(근대인간들)와 우주의 나머지 부분을 연결하는 무엇입니다. ... 영은 사람에게 정체성을 부여하지만, 신체는 그자에게 유사성을 부여합니다. 그런데 아메리카 원주민의 형이상학에서 사상(事象)은 거꾸로 돌아갑니다. 혼은 언제 어디서나 똑같습니다. ...그들을 다르게 만드는 것은 그들의 물질적 장치로 구현된 다양한 역량과 능력입니다.(188쪽)

    필리프는 원주민들이 삼라만상에 혼이 있다-이것이 애니미즘이지요-고 생각한다는 깨달음에서 멈췄습니다. 하지만 사물과 혼의 차이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한 물음에 그는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내 대답은 차이가 신체로부터 왔다는 것이며, 나는 아마존의 민족지에서 수많은 퍼즐을 풀 수 있었습니다......원주민들은 스페인 사람들이 썩는지 보기 위하여 그들을 포획하거나 죽인 스페인 사람들의 신체를 물에 빠뜨렸습니다.
    스페인사람들은 원주민들이 혼을 가졌음을 배웠고, 원주민들은 스페인사람들이 신체를 가졌음을 배웠습니다.(189쪽)

    요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는데 그래서 애니미즘과 퍼스펙티브주의의 차이는 뭐라는 거죠? 같이 이야기 나누어보아요

  • 2023-10-27 09:29

    인디오의 변덕스러운 혼_세번째 메모_참

    나와 너는 같은 혼, 다른 몸

    카스트루가 이름붙인 ‘원주민 엿먹이기’ 게임처럼, 우리는 늘~ 우리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는 것을 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영속적인 탈식민화, 최종적인 탈시민화는 없다>는 카스트루의 거창해 보이는 주장은 사실 일상의 삶에 딱 붙어있다. 사고 자체가 나와 타자의 사고 사이의 위계적 관계화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타자를 안다고 착각하지 않음으로써 타자의 삶을 그대로 두라는 카스트루의 말은 나와 같은 혼을 가진 다른 몸의 사람이라는 생각과 언 듯 다른 결의 말로 들린다. 따로 떼서 들으면 알 것 같던 말들도 대응선을 잇기가 쉽지 않다. 자, 정신을 바짝 차려보자. 모든 존재들의 기본 질료가 ‘인간’일 때 인간의 위상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다. ‘나의 적’은 노래하는 나자신이라는 연극에서 서로의 역할을 끊임없이 바꾸는 ‘복수의 끝없는 순환’은 ‘영속적인 탈시민화’와 이어진다. 스트래선이 줄곧 연구자와 연구대상 사이의 관계에 주목했던 것도 연구자의 나르시즘에 빠지지 않기 위함이였다.
    해방적 장애학 연구에서 김도현샘이 말씀하신 장애학자와 장애인 대중의 콜라보레이터, 공동작업의 필요성도 이 맥락과 닿아있는 것 같다.
    ‘구조는 잊고 변환에 집중하라!!’ 카스트루는 미미카라는 인류학자의 말을 통해 레비스트로스가 엄청난 형태학적 상상력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앞으로 인류학이 레비스트로스를 읽어낼 때 중요한 것은 ‘이중 비틀기’를 통한 무수한 변이 형태들, <변환>이라고 말한다. 아마존의 형이상학에서는 모든 것이 인간(제 1질료라고 카스트루가 표현했는데 그럼, 스트래선의 ‘소재’개념과 어떻게 다른 걸까??)이고 동물, 식물, 무기물 모두가 그것의 변형이다. 나는 수많은 타자의 존재 양식 중 하나의 형식이고, 아라웨테족에게 ‘식인’은 타자가 되는 또 하나의 방식이다. 레비스트로스를 설명하는 부분에 등장하는 왜곡과 변형의 회화 양식인 데포르마시옹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그림을 떠올리게 한다. 여러 삼면화 시리즈로 알려진 베이컨의 그림에서 몸은 가장 중요한 주제다. 비틀어진 몸은 식육점의 고기, 비명이 지르는 개, 참을수 없는 고통으로 변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일상에서 끊임없이 나와 너의 위계를 내려놓는 것, 너를 안다고 착각하지 않는 것, 너를 배제하지 않는 것, 너로 변환하는 것일까?

  • 2023-10-27 09:42

    우리 자신을 ‘변환’하는 형이상학
    인류학의 정치적 중요성은 비교분석을 할 때 우리 자신이 변형과 변환에 노출된다는 점에 있다. 지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한 자리에 계속 남아 머물고자 한다면 비교는 엄밀히 말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는 레비스트로스를 통해 모든 변환에는 잔여가 있으며 그렇기에 비틀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변환은 불연속적인 변환(토템적)이 아니라 연속적이고 위상학적 변환이다.
    퍼스펙티브주의는 타자에 의해서 나를 규정한다(나는 너가 아닌 무엇이다). 식인의례에서 살인을 행한 자가 불렀다는 “살인자의 노래”에서 노래의 화자는 살해당한 적이다. 노래의 ‘나’는 타자이고, 타자는 노래하는 몸이 된다. 카스트루는 이를 “타자의 한 형식으로서 정의된” 나라고 말한다.(180) 이처럼 퍼스펙티브주의는 우리를 변환시키는 형이상학이다. 그것은 외실행적이며 외혼적인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강력한 정치적 힘을 가진다.
    퍼스펙티브주의가 전개될 때 모든 지점이 주체가 될 수 있고 모든 곳이 특권적 장소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인간, 활기를 가진 것을 넘어서까지 관점을 확장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 비군주적이며 비민주적인 세계를 우리에게 쥐여준다. 그것은 존재론적 아니키이다. 초월적 관점이 없기 때문에 우주의 모든 지점은 주체가 될 수 있다. 퍼스펙티브주의에서 우주의 기본상태를 일컫는 말은 ‘인간’이다. 모든 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이와 같은 존재론 아래에서 그렇다면 어떻게 존재들 사이에 구별을 형성할 수 있을까? 원주민들의 세계에서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된다.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이미 너무 많이 연관되어 있기에 과업은 비관계성을 위한 공간의 확립이다. 주체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분투가 매일매일 벌어지는 세계인 것이다. 타자와 만나고 타자의 사고를 만나고 그 사이에서 위계적 관계화는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그렇기때문에 영속적인 탈식민화가 행해지지 않는다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계이다. 이 말은 결코 개인으로 개별화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타자에 의해 규정된 자기를 어떻게 위치지을까, 타자는 누구이며 우리는 누구인지 매일매일 사고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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