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6회차 후기- Green Rose의 싹을 틔우기까지

프리다
2024-01-14 18:54
825

소설의 시작은 아버지가 아기를 바라보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준다. 스티븐의 아기 때 기억을 잠시 보여주고 대여섯살쯤의 기억으로 넘어간다. 그가 개신교도 집안인 아일린과 결혼하겠다고 하자 가톨릭신자인 단테는 독수리가 “눈알을 뽑아갈거야”라고 위협한다.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에서도 단편마다 집요하리 만치 인물들의 창밖 너머의 시선과 눈에 비친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한다. 왜 그토록 인물들의 눈과 시선을 좇는 걸까?

 

   1.왜 눈인가

프로이트는 호프만의 소설<모래 사나이>를 설명하면서 ‘아이의 눈알이 뽑힌다’는 모티프에 주목한다. 독일에서는 떼쓰는 아이들에게 ‘모래 사나이가 온다’고 말하곤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된 설화에 따르면, 모래 사나이가 와서 아이들의 눈에 모래를 뿌리면 피투성이 된 눈알이 빠져나오고, 그 눈알들을 자루에 담아 자기 자식들에게 먹이로 갖다 준다.

프로이트는 눈알이 뽑히는 모티프를 거세 불안과 연관시킨다. 트라우마는 어떤 사건이 남긴 상처인데, 이것은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를 동반한다. 처음 아기의 눈, 시선에는 목적성이 없다. 탯줄을 끊고 나온 아기는 여전히 엄마와 분리되지 못하고 완전한 하나의 존재인줄 안다.그러다 어느 시기에 무엇을 보면서 분리 충격을 경험하는데 이것이 첫 번째 시선의 체험인 아버지의 존재다. 이때 비로소 아기는 대상과 분리된다. 어머니와 나, 그 중간에 아버지로. 아버지를 인식하면서 아이는 엄마에 대한 소유 욕망이 생기는 한편, 아버지가 자신의 욕망을 용서하지 않고 거세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긴다. 이 유년의 트라우마는 망각되었다가 비슷한 사건이 벌어지면 이 두려움이 낯설게 ‘섬뜩함(Das Unheimliche)’의 효과로 나타난다. 이것이 ‘친숙한 낯섦’이라는 프로이트 개념이다.  억압에 의해 낯선 것이 되었지만, 자신이 겪었던 상처의 흔적만 의식으로 올라와 친숙하면서도 낯설게 되살아나는 것이다.  최초의 트라우마(거세불안)를 의식하지 못한 채 기묘한 불안으로 나타난다.

Once upon a time... His father told him that story: his father looked at him through a glass: he had a hairy face. He was baby tuckoo... O, the wild rose blossoms On the little green place.
He sang that song. That was his song. O, the green wothe botheth.

스티븐의 ‘나’로 분리된 시선의 첫 체험 장면이다. 수염이 덥수룩한 얼굴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그가 살아온 기존 질서의 길을 따라 살기를 원한다. 외알 안경 너머로 그를 바라보는 이성의 눈은 감시자의 눈이다. 나와 대상의 차이를 이해하기보다는 아버지 자신과 대상을 동일화하려는 눈. 이 권력의 응시가 드러나는 것이 문장의 ‘그(He)’가 아버지인지 스티븐인지 모호하게 칭한다. 카톨릭신자인 단테의 응시도 감시자의 눈으로 독수리가 “눈알을 뽑아 갈거야 Pull out his eyes” 위협하며 순응을 강요한다. 스티븐은 식탁 밑으로 몸을 숨긴다.

Pull out his eyes, Apologize, Apologize, Pull out his eyes.

 

   2. 친숙한 낯섦- 운하임리히(Das Unheimliche)

조이스는 스티븐을 통해  자신의 성장기에서 느꼈던 친숙하면서 낯선 감각에 고정시켜 놓는다. 그러한 순간마다 나와 다른 외부세계를 인식한다. 그에게 친숙한 감각이, 외부세계에선 낯선 감각으로 기묘함(queer)을 느낀다.

- 스티븐이 침대에 오줌을 적실 때마다 엄마는 차가워진 것을 얼른 치우고 기묘한(queer)한 냄새가 나는 oilsheet를 갈아준다.

- 학교에서 suck이란 단어를 알게 된다. 아첨꾼이라는 아이들 사이의 은어인데 그는 이 말이 이상하다(queer)며 자신이 알고 있는 세면대의 suck소리와 비교한다.

- 수도꼭지에 새겨진 명칭에 따라 차가움과 뜨거움을 구별하는 것이 기묘(queer)하게 느낀다.

- 웰스가 스티븐에게 자기 전 엄마와 키스하는지 묻자 옳은지, 그른지 혼란에 빠진다. 웃음거리가 된 그는 변소 배수구에 떠밀린 기억이 떠오르며 차갑고 끈적한 오물이 뒤덮힌 듯하다.

- 학교 친구들의 부모가 다 다른 것이 기묘하다고 생각하며, 멋들어지게 노래 부르던 아버지가 치안 판사가 아닌 것이 서운해진다.

- 벽에 비친 벽난로 불빛에서 파도의 일렁임과 바다의 소리를 듣는다.

- 똑똑한 단테가 옳은지 아빠가 옳은지 혼란스러워한다.

- 학교 선배가 성찬용 포도주를 몰래 마신 사건을 듣고 두려움에 속이 메스꺼워지면서 맥이 빠진다.

스티븐은 학교라는 세계에 진입하면서 언어의 의미와 이미지가 가진 일반화의 폭력에 기이함을 느끼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혼란스러워한다.

  3.  '인 것'과 '아닌 것'을 통해 자기 되기 

그러던 어느 날 스티븐은 아이들이 전보다 몸집이 작아진 것처럼 보인다. 안경이 깨져 자신의 맨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자신만의 감각을 찾아 나간다.

- 기도문의 성모마리아가 ‘상아의 탑’이 아니라 아일린의 차갑고 부드럽고 길고 하얀 손의 체험이 "상아의 탑"이라 재정의한다.

-글리슨 선생의 손과 회초리에서에서 쾌와 불쾌의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잔인하리만치 긴 손톱, 회초리의 휘파람 소리, 셔츠 자락의 한기와 두려움에 몸이 떨리면서 깨끗하고 통통한 흰 손을 떠올리자, 기묘하게 평온한 쾌감'을 느낀다.

-선배들이 성광을 훔친 '끔찍하고 낯선 죄를 생각하며 경외심과 전율'을 느낀다. 이전의 포도주 사건은 죄이지만, '끔찍하지도 기이하지도 않'게 느낀다. 얼마 전 와인 도난사건을 들으며 두려움에 떨었던 예전의 스티븐이 아니다.

-아널 신부의 화내는 모습을 보며 저것은 죄일까? 의심하기 시작한다.

- 돌런 신부에게 부당한 체벌을 받은 스티븐은 교장에게 항의하기로 결심한다. 절대적인 선에 대해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4. Green Rose의 싹을 틔우기까지

“ZEAL WITHOUT PRUDENCE IS LIKE A SHIP ADRIFT. But the lines of the letters were like fine invisible threads and it was only by closing his right eye tight and staring out of the left eye that he could make out the full curves of the capital.”(46)  스티븐이 안경이 깨져 약한 시력으로 뚫어져라 책의 제목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자세히 보기를 바라는 조이스의 아포리즘이다. “ZEAL WITHOUT PRUDENCE IS LIKE A SHIP ADRIFT. 분별없는 열정은 표류하는 배와 같다.”

단테의 맹목적인 신앙의 열정과 케이시의 과도한 민족주의의 열정으로 아일랜드는 극심한 분열로 위태로운 상태다. 이들의 열정은 진정 자신이 원하는 열정일까? 강요된 권력의 응시로 타자의 욕망이 내면화 된 것은 아닐까? 어릴 때부터 길들여진 나의 감각은 내 것과 내 것이 아닌 감각들로 혼재돼 있다. 스티븐이 학교에서 내내 느끼는 차갑고 축축함의 불쾌감은 유년기 침대에서 차가워지면 얼른 oilsheet로 갈아준 감각이 그를 불쾌하게 만든 건 아닐까? 스티븐이 학교에서 잘 마시는 따뜻한 홍차는 어떤 친구에겐 ‘꿀꿀이 죽’이라 먹을 수 없다며 부모가 사다 준 코코아만 마신다.  나만의 고유한 미각이라 생각하는 감각도 길들여진 건 아닐까?  엄마의 욕망에 따라 식성을 따르면서 마치 나의 식성으로 착각하는 건 아닐까? 남편의 식성도 변하지 않는가. 아내와 살면서 처음엔 간이 싱겁다 하다가 어느 순간 어머니의 음식이 짜다하지 않던가! 그러면 도대체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이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타자의 것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To live, to err, to fall, to triumph, to recreate life out of life.  살고 , 실수하고, 타락하고, 승리하고, 삶에서 삶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의  스티븐 디덜러스의 결의로,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   타자가 선(善)이라고 원하는 것을 자신도 선이라고 욕망한다면, 이 경우 선은 진정한 선이 아니라 위선일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위선임을 알기 위해선 나 자신이 악(惡)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경계를 뛰어 넘어보는 것이다. 즉 실수하고, 타락을 실천할 수 있을 때,  기존의  삶 위에서 새로운 삶을 재창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경이 깨진 후 어느 날, 스티븐은 어릴 때부터 맹목적으로 외웠던 기도문  ‘상아의 탑’의 은유를 재창조한다. 성모마리아의 순수함을 상징하는 은유다. 그러나 진정한 상아의 탑은  '아이린의 손' 이라며 자신의 감각으로 재창조한다.  비로소 그가 바라던 green rose의 싹을 틔우기 시작한다. 

우리는 이 싹을 틔우기까지 스티븐이 응시한 시선을 따라왔다. 트라우마의 흔적이 의식으로 올라오는 친숙하고도 낯선 섬뜩함, 감정의 쾌와 불쾌를 알 수 없는 기묘함(queer), 자명하다고 믿었던 이분법 경계 너머의 세계를, 언어가 가진 폭력성을.    그러면서 자신만의 유일한 '상아의 탑'을 창조한 날 스티븐은 말한다. 자명하다고 믿고 있는 세계를  "깊이 생각함으로써 그 의미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By thinking of things you could understand them."

2장부터 실수와 타락을 양분 삼아  피어오를 스티븐 디덜러스의 Green Rose가 기대된다.

 

 

댓글 7
  • 2024-01-15 22:11

    롱 타임 어고우~, When I was a middle school student, 저두 고약한 샘으로 부터 스티븐처럼 억울한 일을 당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부들부들...
    스티븐이 겪은 부당하고 잔인한 일 부분을 읽으면서, 저의 경험이 오버랩 되었어요.

    스티븐의 억울한 이야기에 관한 후기가 올라오면 나도 나의 억울함도 슬쩍 성토해야지 하고 있었는데, 프리다샘은 후기에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군요. 헤헤

    프리다샘은 성심을 다해 후기를 낳으셨습니다!ㅋㅋㅋ

  • 2024-01-16 15:05

    우리는 타자없는 '나'란 애초에 불가능한 존재이다.
    타자의 욕망속에서 나의 욕망이 무엇인지 알아내고, 자신만의 고유한 욕망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필요할뿐.
    To live, to err, to fall, to triumph, to recreate life out of life. 하면서..

    • 2024-01-23 10:42

      '타자없는 '나'란 애초에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렇지요. 우리는 모두 자기 아닌 것을 통해 비로소 '자기'가 된다고 하지요.
      존재하는 것은 자기 아닌 상대와의 모순과 반대를 통해 '자기'로 성립되어 지는 것인데,
      인간은 자기 아닌 것들과 동일한 존재가 되려는 데서 비극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 2024-01-17 21:24

    By thinking of things you could understand them.
    그런데, 잘, 깊이 생각하는 일이 어려워요. 쉽게 관습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후회하고. 그러네요.

    오늘 <보리밭에 부는 바람> 이라는 아일랜드의 독립운동과 내전을 배경으로 다룬 영화를 보고 왔어요.
    세미나 친구들도 시간될때 한번 보시길...

    정성스런 후기 잘 읽었습니다.

    • 2024-01-23 11:29

      사소하고 우연하게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잘, 깊이 생각하는 일' 을 실천해 볼 수 있겠어요.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불쾌한 감각들이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우린 습관처럼 '불쾌한 건 나쁜 것'이란 생각으로 습관처럼 화내거나 깊이 생각 않고 외면해버리죠.
      불교에선 우리의 감정들이 무의식에서 나오는 습관화된 반응이라고 하죠.

      대상에서 좋고 나쁨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내면에 새겨진 훈육된 감정 때문인지,
      진정으로 나에게 불쾌한 것인지 잘, 깊이 생각하길 바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보리밭에 부는 바람> 벌써 상영이 끝나버렸네요.
      켄 로치 감독 <나,다니엘 블레이크> 인상깊게 봤어서 보고싶었는데 안타깝네요.

  • 2024-01-21 21:52

    인간의 감정중에서 성숙하기 위한, 변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느끼는 감정은 '수치'라고 합니다.
    회심은 수치를 통해 내면 깊숙히 찌르며 들어옵니다.
    '면목없는 놈'이라는 말이 가장 큰 욕이라는데.....
    수치를 모르는 '그 부부'는 ‘아이의 눈알이 뽑힌다’를 해야하나요!!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라는데.....
    각성을 해야 할 사람들이 각성하지 않는 세태에
    조이스는 참 낭만적인 열정으로 인생을 불살랐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후기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번 정리가 됩니다.

  • 2024-01-23 11:37

    조이스 전기를 간간히 읽고 있는데 그의 평탄치 못한 삶 속에서도 낭만적이고 재치가 넘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어요.
    우리가 소설을 너무 진지하고 어둡게만 읽어서 숨겨진 위트를 놓쳤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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