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 감독 인터뷰

청량리
2016-10-27 14:45
910



동네영화 배급사 '필름이다'입니다..


내일(10월 28일 금요일) 오후 7시에 시네마 드 파지에서


'잡식가족의 딜레마'  영화 상영이 있습니다.


일반 극 영화가 아니라서 이번 다큐를 만든 감독에 대해 생소하신 분들도 있을 줄로 압니다.

그래서 필름이다에서는 황윤 감독과 미리 (서면)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황윤-프로필2.jpg

<황윤 감독>




다큐 영화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황 :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는데 졸업 후 통신회사 영업부에 취직. 적성에 전혀 맞지 않았고,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틀 속에서 하나뿐인 인생을 지겹게 살 자신이 없었다. 출근길 콩나무시루 같은 버스도 견디기 힘들었다. 대책없이 11개월만에 사표를 냈다. 인생 최대의 승부수이자, 살면서 가장 잘한 결정이었다. 내 인생은 그것을 기점으로 나뉘는 지도 모르겠다. 사회가 제시한 틀 속에서 살던 그 전 시기와, 내 내면의 목소리가 시키는대로 살아온 그 이후 시기. 나는 뭘 하면서 이번 생을 살건가 하는 탐색을 아주 늦게 시작한 셈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인디포럼 등 영화제에서 몇 편의 다큐멘터리영화를 보고, 문화충격을 받았다. 특히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를 보고 충격 받았다. 이토록 중요한 역사를 여자학교 10년을 다니면서 단 한번도 배운 적이 없다니. 다큐멘터리의 형식에 대해서도 놀랐다. 설명과 계몽 위주의 TV 방송 다큐와는 전혀 다르게, 감독의 뚜렷한 관점이 보였다. 다큐멘터리가 객관적 장르가 아니라 매우 주관적인 장르라는 것, 그리고 만드는 사람의 스타일이 녹아나는 영화의 한 장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현실의 기록, 나열이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감독의 현실 해석, 재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렇게 다큐멘터리에 매력을 느껴 시작하게 됐다  

    

 

변영주 감독은 다큐로 시작했다가 최근엔 극영화를 찍고 있는데 혹시 극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황 : 다큐멘터리는 분명 힘든 장르이다. 극영화보다 훨씬 힘든 장르인 것 같다. 내 스케줄에 촬영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가 촬영하는 대상에게 내 인생의 스케줄을 맞춰야 한다. 길에서 이동하며,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를 무작정 기다리며 보내는 시간도 많다. 독립 장편 다큐영화는 제작기간이 2-3년은 보통이고, 4-5년 가는 경우도 많다. 물론 그 이상도. 인내심과의 싸움이다. 그 긴 시간 동안 많은 스텝의 인건비를 해결하기엔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대개 감독이 몸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촬영, 편집에서 많은 부분을 감독이 직접 해야 한다. 독립다큐만 갖고 생계를 꾸려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생계비도 따로 벌어야 한다.


무거운 장비 이고지고 들고 새벽길을 나서면서, 너무 힘들다, 내가 이 짓을 왜 하고 있나 싶을 때도 많다. 그러나 또 하고, 또 한다. 이 일만큼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처음 배우던 시기에 극영화 제작집단에 있었다. 재미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가 훨씬 재밌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현실의 파편을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다시 해석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사실, 극영화와 다르지 않다. , 전통적인 의미의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구분이나 경계도 많이 사라지고 있다. 서로의 형식을 넘나든다. 우리는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할 뿐이다.  

    

 

다큐를 찍을 때 여러가지 위험에 노출되지 않나요? 위험을 피하는 노하우는?

황 : 로드킬을 소재로 했던 <어느 날 그 길에서>는 갓길이나 도로 한복판에 들어가서 촬영한 경우가 많았고 교통사고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주황색 야광조끼가 유일한 안전장치였다. <잡식가족의 딜레마> 찍을 때는 공장식축산 촬영 다니다가 피부병에 걸리기도 했다. 촬영에 호의적이지 않은 적대적인 현장을 찍어야만 하는 경우도 많다. 살처분 현장, 공장식축산, 동물을 착취하는 쇼 비지니스, 무자비한 토목 개발 현장 등...


위험을 피하는 노하우? 그런 건 별로 없는 것 같다. 찍어야 하니까 찍는 거다. 겁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사실 겁이 아주 많은 편이다. 그리고 아이엄마가 되고 나선, 더욱 내 안전에 조심하는 편이다. 돌봐야 될 아이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약자중의 약자인 비인간 동물들과 사회적 약자들, 생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카메라이고 싶다. 그 마음이 내게 가장 큰 무기인 것 같다.


3.jpg

<황윤 감독의 전작인 '어느날 그 길에서'와 '작별'은 꼭 한 번 보길 바란다. 축산동물의 상황과 야생동물의 위기 중 어느 것이 중요하냐는 것은 어리석은 이야기다. 우리는 전방위적으로 싸워야 한다. >

    

 

주당으로 알려지셨습니다. 고기는 안 드시면서 술은 양껏 드시는 이유는?

황 : 이런 질문은 좀 당혹스럽다. ㅎㅎ 고기를 안 먹는다고 술까지 안 먹어야 할 이유가? 고기는 적게잡아 108가지 이유에서 끊었고 (동물에게, 특히 여성 농장동물들에게 극단적인 고통을 주는 시스템에 가담하고 싶지 않다,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축산업에 보이콧하고 싶다, 가축 사료재배를 위해 열대우림과 야생 서식지가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공장식축산에서 고통받는 노동자들 때문에, 건강과 미모에 채식이 월등히 도움이 된다 등등) 술은 원래 좋아하고 센 편인데, 이번 영화 만들면서 좀 더 많이 마시게 됐다. (축산 현실을 알고 너무 속상해서 + 육아와 작업을 겸해야 하는데서 오는 스트레스 등),  이명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지는 10년 동안 술을 끊고 싶어도 도저히 끊을 수 없기도 했고. 줄이려 노력 중이긴 하다.

    

 

총선 이후 녹색당의 하승수 전 대표는 이제 선거제도개혁운동에 뛰어 드셨습니다. 비례대표 2번이었던 이계삼 샘은 신고리 5,6호기 승인 이후 외부활동을 끊고 칩거 중이십니다. 비례대표 1번이었던 황윤감독께서는 총선 이후 어떻게 녹색당 활동을 하고 계시는지요?

황 : 정치인 활동은 통신회사 영업사원의 100배쯤 내 적성과 거리가 먼 일이다. 총선후보 출마는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이고, 현실적으로도 여건상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제 학교에 입학하는 어린 아이가 있고, 집도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아이 돌보며 짬짬이 작업하기에도 너무 벅찬 일상이었다. 출마 제안 받았을 때 한사코 거절했으나 당의 강한 권유로 나가게 됐다. 결국 녹색당 당원으로서, 당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내 역할이 이번에 그것이어야 한다면 하겠다는 태도로 나갔었다. 어쨌든 총선은 끝났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선거 끝나고보니, 5-6개월이 휙 지나가 있더라. 그동안 뒤로 밀린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쌓였던 일들 뒤늦게 처리하고, 다시 일상의 모드로 돌아오는데 몇 개월 걸렸다. 지금은 다음 작품 시작하고, <잡식가족의 딜레마> 공동체상영 다니고, 책 쓰고, 아이 돌보고, 그렇게 하루하루 바쁘다.


녹색당에서 동물권 의제모임 활동을 이끌어달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못한다고 했다. 나는 영화를 열심히 만드는 게 내 역할이라 생각한다. 녹색당에서 어떤 역할을 맡지 않아도, 당원으로서 열심히 활동한다. 새만금이 방조제 공사로 막힌지 10년 되는 해이다사람들은 다 죽었다고 생각하는 새만금 안쪽에 수라갯벌이라는 작은 갯벌이 남아있고 여기에 저어새, 도요새들이 아직 찾아온다. 멸종위기 새들에게 너무너무 중요한 최후의 보루이다. 그런데 최근 새만금개발청에서 이곳 3공구 공사를 시작했다. 방송다큐 혹은 영화로 찍기 위해 현장에 자주 가고 있고, 녹색당원으로서 피켓팅에 동참하는 한편 어떻게 하면 전국적인 캠페인을 벌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새만금 싸움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아직 새들이 찾아오기때문에 희망이 있음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

    

녹색당_황윤.jpg

 


다음 영화에 대해 귀뜸을 주세요.

황 : 위에 말한 것과 그리고 동물 쇼, 비인간 인격체에 대한 영화도 구상중이다. 꼭 만들고 싶어서 목록에 적어둔 영화가 10개는 넘는 것 같다.

 

소도시에서 살고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단도직입으로, 소도시에서의 삶, 만족하시나요? 아니면 불편하신가요?

황 : 수도권에서 대부분의 인생을 살다가, 탈 수도권한지 6-7년째 되고, 더 남쪽으로 내려온지는 2년쯤 됐다. 귀촌이나 귀농은 아니었고, 남편 직장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려온 것인데. 지역 소도시에서의 삶. 좋기도 하고 안좋기도 한데 좋은게 더 많은 것 같다. 소도시에서도 시내에 살다가 아이 학교 입학하면서 농촌마을로 옮겼다.


시골에서 좋은 점 많다. 한적하고, 봄에는 각종 새 소리, 밤에는 부엉이 소리 들리고.. 별도 더 많이 보이고... 멋진 숲도 집 가까이 있고. 단점은 서울에서 멀고 다른 지역 다닐 때 교통이 좀 불편한 점인데 고속버스를 사무실화, 개인 침대화 해서 살아가고 있다작품 구상도 하고,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이동에 많은 시간을 쓰지만, 체력이 좋아 버틴다. 내가 육식을 했다면 못 버텼을 것이다. 농담이 아니라. 채식이 정말 체력에 도움이 된다. 감기도 잘 안걸린다. 다른 단점이라면, 수도권에 비해 문화, 예술, 인문학 향유기회가 적다는 점. 문탁 같은 친구들이 가까이 없다는 점. 그래서 혼술을 많이 하게 된다는 점

댓글 3
  • 2016-10-27 17:10

    <어느날 그 길에서>를 동네에서 공동체 상영하면서

    황윤감독을 모셨을 때는 훌륭한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인터뷰를 읽으니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음.. 술이 세다고 하시니.. 술도 체력도 딸리는 저는 좀 두렵긴합니다.^^

    센 분들 내일 뒤풀이 책임지세요~~

    토용이 내일 뒤풀이에 쓰라고 가져다 준 가양주가 있으니

    아마 즐거워 하시겠지요?

  • 2016-10-27 21:16

    오늘 파지 주방 흰냉장고가 맛이 가버려서 할 수 없이 치우다 다량의 술을 확보하게 되었어요.

    내일 다 풀어야 겠네요. ㅎㅎ

    그나저나 곰댄스 막판에 술판이 들어오네요 ㅠㅠ

    아~~~~~~~~~~~~~~~~~~~~~~~~~~~~~~~~~~~~ 

    • 2016-10-28 01:17

      그야말로 '댄스 댄스 댄스 all right ~~~'

      혹시 글이 술술  써질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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