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기획전 - 정치특집 -을 잘 마쳤습니다

이다
2016-04-18 07:23
447

어제 <청년 링컨>을 마지막으로 [필름이다]의 첫번째 기획전 <정치의 계절에 정치를 묻다>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보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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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업자이지만,  매번 술과 안주를 준비해주신 건달바님과

고급&수제 비스켓과 카스테라 등으로 <씨네마 드 파지>의 격조를 높여주신 담쟁이님께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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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마지막 영화는, 그리고 질문은,  앞으로 [필름이다]에서 상영할 다음 영화의 시작이기도 하고, 계속 가져갈 질문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이 영화를 보고 즐기는 '천만 관객'시대에 '영화 보기'란 무엇인지, 문탁의 씨네필들과 함께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각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제 마지막 영화 <청년 링컨>의 토론을 위해 준비한 주최측의 짧은 메모(어제 나눠드린 것을 살짝 고쳤습니다^^)를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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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포드!

 

-<3인의 악인>으로 대작 서부극의 길을 처음 닦았습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찍었습니까.
  “카메라로”
-당신의 웨스턴은 뒤로 갈수록 비애감이 깊어집니다. 예를 들어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를 <웨건 마스터>에 비교하면 그런 느낌이 듭니다. 당신도 이 변화를 의식합니까.
  “아니”
-이 문제에 대해 다른 할 말은 없나요.
  “무슨 얘기 하는지 모르겠소”
-처음부터 서부극의 어떤 특별한 요소에 이끌렸나요.
  “모르겠소”
-<아파치 요새>에 나타난 것처럼 개인보다 군의 전통이 더 중요하다는 데 동의합니까.
  “컷”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다큐멘터리 < Directed by John Ford >(1971)의 한 장면)

 

 

 청년 링컨!

 

  영화선정에 관한 이야기부터 좀 해야겠다. [필름이다] 창립기념 <정치의 계절에 정치를 묻다>의 마지막 영화로 무엇을 선정할 것인가는 기획 단계부터 골치 아픈 문제였다. 총선의 결과가 너무 뻔해 보였기 때문에 너무 무거운 영화도 부담스러웠고 너무 낙관적인 영화도 피해야했다. 아니 문제는 무겁다, 가볍다가 아닐지도 모른다.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이미 답을 가지고 있는 영화라면 우리가 영화를 본다는 것은 이미 가지고 있는(감독과 우리가 함께 공모하는) 표상을 승인하고 감정적인 카타르시스를 하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변호인>, <암살>, <베테랑>, <내부자들> 같은 영화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물론 류승환의 액션을 여전히 사랑하기는 하지만^^) 총선 이후에 봐야 하는 영화가 총선을 (익숙한 표상들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총선을 (새로운 감응과 질문을 통해) 넘어가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건 동네 구멍가게 배급사가 고민할 수 있는 수준이 처음부터 아닐런지도 모른다. 그래도 골라야 했다. 난 사장이니까^^ 그러다가 우연히 딸아이가 <청년 링컨>을 소개해줬다. 학교 수업시간에 본 영화인데 교수가 엄청난 찬사를 쏟아놓았다고 했다. 재밌는 것은 그 교수는 우리 딸이 제일 싫어하는 캐릭터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자기가 싫어하는 교수가 좋아하는 영화를 추천하는 그 모순된 맥락이 재밌어서 난 그 영화를 보게 되었고, 이렇게 어이없고 사적이고 우연적인 과정을 통해 <청년 링컨>은 [필름이다] 창립 기획전의 마지막 영화로 선정되기에 이르렀다.

 

  다시 4주 전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의 첫 영화는 <스미스씨 워싱톤에 가다>였다. 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워싱톤에 있는 압도적인 링컨동상이었다. 그 영화는 미국의 이상, 자유 민주주의의 토대를 구축한 링컨대통령에 대한 프랑크 카프라의 변함없는 존경과 경외를 표현하고 있었다. 우리는 안다. 프랑크 카프라가 링컨이었고, 그가 영화 속에서 구축한 스미스라는 평범한 위인 역시 링컨이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역시 안다. 그런 링컨은, 그런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은 프랑크 카프라의 머리 속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4주 전  우리는 그 소박하고 단순하고 명쾌한 링컨에 기꺼이 박수를 쳐주었다.

  우리의 마지막 영화 역시 링컨이다. 그러나 이번에 만나는 청년 링컨은 카프라의 링컨과는 다르다. 청년 링컨은 위대한 링컨으로 가기 위한 중간단계가 아니다. 어쩌면 그는 ‘위대한 대통령’같은 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링컨은 진짜로 ‘위대한 대통령’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또 ‘진짜’란 뭔가? 스필버그의 <링컨>은 혹시 이 질문 아니었을까?) 만약 죽은 애인 앞에서 미래를 점치고자 했던 막대기가 자기 쪽으로 넘어졌다면. 그렇지만 막대기가 죽은 애인 쪽으로 넘어간 운명은 “내가 네 쪽으로 살짝 밀었”을 지도 모를 의지와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운명과 의지가 구별되지 않는 영화 처음 부분의 그 장면은 영화 내내 지속되는 모호하고 느리고 침울한 링컨에 달아 붙어있다. 정치가로 연설하는 것은 운명인가 의지인가? 살인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운명인가 의지인가? 매번 망설이는 듯한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그의 표정은 사건 앞으로 달려가는(운명 속으로 기꺼이 달려가는) 한 인간의, 그의 드러나고 쓰여진 자서전의 쓰여지지 않은 이면이고 공백이다. 

  솔직히 말하면 난 이 소품 같은 영화의 어떤 이미지와 정조에 사로잡혔다. 그것은 ‘정치가’ 혹은 ‘링컨’이라는 어떤 익숙한 표상을 흔든다. 그렇다고 다른 대안적 표상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다만 말할 수 없는 어떤 비애감 그러나 감상주의나 허무주의로는 결코 빠질 수는 없는, 그런 ‘삶-그 자체’에 대해 환기한다. 나는 [필름이다]의 사장으로서, 이 영화를 ‘총선 이후’와 연결시켜서 설명/비평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의무감에 잠시 사로잡혔지만, 이미 내가 읽은 이 영화에 대한 훌륭한 비평들과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쓸 자신은 도무지 없어 그만둔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나도 뭐라도 쓰고 싶기는 하다.

 

  마지막으로 평론가 허문영의 이 말을  맺는 말로 대신한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당시도 <젊은 날의 링컨>을 보고 뭔가 써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런 영화는 권위 있는 최종적 견해라는 걸 도무지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전문가도 보지 못한 걸 당신이 볼 수 있으며 어떤 전문가도 쓰지 못한 것을 쓸 수 있다. 태그 갤러거는 < JOHN FORD - The man and His movies> (1986) 을 2006년에 고쳐 쓰면서 ‘<젊은 날의 링컨>을 지금까지 50번 넘게 봤지만, 아직도 새롭게 발견하는 장면이 있다’고 말했다.”

 

댓글 2
  • 2016-04-18 07:46

    우리동네 배급사 영화가 이렇게 좋을 줄이야..... 감탄 또 감탄입니다.

    원래 영화 마니아도 아니고 기승전결 너무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훈계하는 영화에 질려서 영화관도 잘 안갔는데,

    파지에서 이렇게 재미있고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다니요!

    '필름이다' 흥해라!!animate_emoticon%20(36).gif

  • 2016-04-20 06:31

    아이가 생긴 후 영화랑은 거의 담을 쌓고 살아왔는데 일요일마다 좋은 영화를 보다니 이게 왠 호강입니까^^

    다음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다 사장님, 건달바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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