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를 맞춰요 874.6Hz 여기는 주술밥상(7회)

밥티스트
2016-04-01 23:51
732

 

시래기에 담긴 마음

 

 

*주술밥상의 연재가 시작됩니다.

  밥티스트들의 일지가 도시게릴라의 방식으로 간헐적으로 기습적으로 올라옵니다.

  파지사유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 같이 읽어주세요

 

3월 25일 금요일 고로께가 쓰기를

 

좁은 베란다 한 켠에 지난 겨울 내내 시댁에서 부모님이 말린 시래기를 담은 박스와 비닐이 쌓여 있었다. 한숨이 나왔다.

달랑 세 식구에 무슨 식탐이 그리 많아서 다 먹지도 못하는 걸 싸가지고 왔는지 미련퉁이가 따로 없다.

본가에 가면 어머니가 콩가루 묻힌 시래기 국을 자주해 주신다. 신랑이 좋아해서이다.

나는 그 맛을 잘 몰랐고 주시는 것도 귀찮아서 다 삶아진 것을 가져왔다.

혹 어쩌다 마른 것을 가져오면 게을림에 시기를 놓쳐 기어이 썩켜서 결국은 몰래 버렸다.

그런데 작년에는 가벼운 나의 말 한마디가 큰 사단을 만들었다.

한번은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부모님께 좋아한다고 하니, 아버님께서 큰애가 좋아하니 많이 하시겠다고 하셨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설 명절에 본가에 내려가서 마당을 보고 기함을 했다.

집 양 뒤편 벽면과 처마에 시래기가 엄청나게 널려 있었다. 그것도 가지런히 예쁘게도 서서 햇빛을 먹고 있었다.

누런 것은 단무지 시래기요. 퍼런 것은 조선무 시래기라고 하신다. 내가 무심코 맺은 말을 마음에 담아두셨다가

가을에 잊지 않고 두 분이 일일이 정성스럽게 어찌나 말끔하게 손질해 놓으셨는지, 그 수고로움을 생각하니

속에서 올라오는 울컥임과 죄스러운 마음에 할 말을 잃었다. 잘 먹겠습니다. 라는 말 밖에.

정말 내 욕심에 여러 날을 고생하신 부모님께 부끄러웠다. 그러고 보니 두 분은 항상 내 말을 귀담아 들어서 꼭 해주셨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안된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는 거 같다. 시래기는 거기에 들이는 시간과 정성이 만만치 않다.

가을부터 찬 겨울까지 말리고 또 하루 담가놓고 삶아서 그 다음 또 하루를 뜸 들인다.

 

이번에 주술밥상에서 단품으로 시래기 고등어조림을 하기로 하였다.

신청인이 많지 않아서 모두 넉넉하게 나누었고 점심 특식으로도 동학들과 함께 먹었다.

숨겨진 요리 고수 담쟁이님과 히말라야님과 함께 하였다.

재료를 다듬고 양념하고 더불어 수다를 곁들이면 점심 준비하는 시간이 빨리도 지나간다.

 

저녁에 문탁 샘과 동은이 오붓하게 셋이서 남은 잔반으로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를 하였다.

동은의 알바자리 그만 둔 것과 다시 시작하는 일. 그리고 올해 내가 만난 고전공방은 어떤지 등등.

한자를 몰라 사전 찾는 시간이 길어 한숨과 짜증이 많았던 시간들이 신기하게도 줄어들었다.

한자도 외국어인데 다만 어려서부터 접하여 너무 쉽게 생각하고 나는 자만에 빠졌다.

한 걸음에 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없다. 그러나 시간과 노력이 공부하는 맛을 알게 해준다.

눈에 한자가 들어오니 즐거워지는걸.

 

고전공방 세미나 시간은 주로 동학들의 말을 듣고 메모하는 수준인데도 그 열기에 기운이 다 빠진다.

올해 우리의 목표는 대학을 공부하여서 자기만의 번역서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고전입문 햇 병아리인 내겐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읽지도 못하는 데 번역서를 낸다고? !!!

그렇다고 포기해?! 그래 포기는 배추포기야. 첫 발을 들였으니 해보자 하는 심정이다.

먼저 대학의 내용을 잘 알기위해 세미나 시작 전에 대학 장구서 읽는다.

물론 한자 읽는 일이 전혀 안되는 나는 매시간 불통에서 두 번째는 반통 이제는 억지로 통과이다.

총 3 페이지 중에 한 페이지만 통과?.

담주엔 그 나머지를 읽어야 할지도. 자꾸 읽어 눈에 익히는 수 밖에 달리 방법도 없다. 그저 하는 것일뿐.

한글로 번역된 것을 읽고 다시 한문을 읽고 또 한글로 읽으니 차츰 한자를 읽는 것에 리듬이 생겼다.

물론 진달래 샘이 많이 도와주었고 동학들의 과한 칭찬이 더해져서이다.

 

그리고 아주 중요했던, 함께 밥 먹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집 식구들도 같이 식탁에 앉아 밥 먹는 횟수가 줄어든다.

모두 바쁘고 그리고 함께 사니 언제든 같이 먹을 수 있다는 마음 때문이다.

그러나 나도 곰곰이 횟수를 세어보니 일주일에 몇 번 없다.

함께 밥 먹는 소소하지만 중요한 일상의 한 때를 그냥 지나친다.

같이 동학들과 밥을 먹으며 마음을 나누고 주위의 이웃들을 돌아보아야 할 것 같다.

그 연결고리 역할을 주술밥상이, 우리가 한다는 것에 긴장된다.

낯가림하는 내가 어색함을 벗어버리고 다가갈 수 있을지.

밥 먹었어요? 이 한마디가 겉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묻고, 챙겨주고 함께 먹는 삶.

 

주술밥상로고축약1.JPG

 

댓글 1
  • 2016-05-01 18:05

    고로께님 시어머님 감사합니다

    시래기 저희가 다 먹었어요~~

     

    대신 저희가 고로께님 공부 많이 시킬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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