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운 자연에 기대어> 첫시간 후기

곰곰
2023-03-08 01:04
138

에코프로젝트2 첫 시간입니다. 후기는 메모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합니다. 

 

여기,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무 편의 짧고 아름다운 글들이 있다. 19세기 미국 사상가, 랠프 월도 에머슨의 책 <자연>에서 시작된 이 책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저마다 묻고 답한, 자연에 관한 사유의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

 

“자연은 하나의 언어다. 나는 이 언어를 배우고 싶으며,

이는 새로운 문법을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언어로 쓰인 위대한 책을 읽기 위해서다”

- 에머슨의 강연 중에서

 

레이첼 카슨은 “자연이란 인간이 만들지 않은 부분”이라 말한다. 인간이 만들지 않았으므로 신비로우면서도 두려운,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 만든 지식의 오만에 빠지는 바람에 자연에서도 자리를 빼내어 버렸다. 그럼에도 자연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건다. 인간은 자연이기 때문에 자연의 말을 들을 수 있다. 자연은 어떤 식으로 말하고, 우리는 어떻게 귀 기울이는가? 

 

감성이 메마른 탓인지, 에머슨을 몰라서인지, 얼마전 <타자들의 생태학>을 잘못 읽은 탓인지 일부 에세이들에 공감이 되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고백하신 뚜버기샘의 감성을 건드린 에세이를 얘기해 보면 좋을 듯하다. (물론 다른 분들도 ‘픽’해주신 이야기) 

 

해먹에 누워 밤하늘을 감상하던 킴벌리 리들리는 대부분의 맹금이 과열과 탈수를 방지하기 위해 밤에 이동하고 철새들이 별자리의 움직임을 비행 보조물로 삼는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 주었다. 이 에세이는 토토로샘의 생태감성 기르기 프로젝트 이야기로 이어졌다. 토토로샘은 평소와 다르게 낮 시간에, 이어폰 없이, 느린 걸음으로 하천을 걷곤 하는데, 이렇게 걷기 패턴을 바꾸니 가장 먼저 다르게 다가온 것이 소리, 특히 새소리였다고 한다. 하지만 몇 년새 더욱 우렁차게 노래하는(?) 까마귀 소리는 아직 귀에 거슬린다. 그런데 우리가 만든 아열대 기후 때문에 개체수가 갑자기 늘어난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죄없는 까마귀에게 부질없이 짜증부린 것 같아 미안해졌다고... 하천에서 오리멍을 때리고 나무 위 새집을 찾아보면서 자연을 만나는 시간을 만들고 계신 토토로샘을 상상하니 괜시리 미소가...ㅋ

 

<로키산의 노장들, 브리슬콘소나무를 찾아서>가 시간에 대해 말하는 부분 역시 인상적이다. 브리슬콘소나무는 긴 시간을 산다. 가장 늙은 고목은 2100살은 먹었고, ‘젊은’ 나무들도 17세기, 18세기에 태어났다. 어떻게 이렇게 오래 살까? 대개 곰팡이의 공격을 받지 않고 자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브리슬콘소나무 자체의 리듬도 장수를 가능하게 한다. 모든 잎이 15년은 산다. 묘목이 작은 나무로 자라는 데 한 세기는 걸린다. 작가는 이 나무들은 ‘긴 시간’이 아니라 ‘다른 시간’을 산다고 말한다. 뚜버기샘은 시간이 동질적이지 않고 정량적이지 않다고 문제제기하는 어떤 철학책보다도 설득력 있게 와 닿았다 했다. 

 

 

이 외에도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땀 움막에서 이루어지는 정화의식을 통해서는 어머니 대지의 무한한 사랑과 자연의 생명력을, 여행 작가가 전하는 프리다이빙을 통해서는 심해에서 오직 나뿐인 아찔하고도 생생한 망각의 자유를, 도심을 벗어나 산책하며 인종차별의 상처를 달래는 저널리스트를 통해서는 어느 편도 들지 않는 자연의 무심함이 주는 위로를, 하루 14시간씩 흙에서 일하는 농부와 우연히 날아든 우는비둘기 통해 도깨비산토끼꽃의 치유력을 발견하는 약초 재배자의 이야기는 자연과 하나된 삶의 기쁨을 고스란히 전한다. 

 

이렇듯 자연에서의 경이로운 경험으로부터 정신이 일깨워짐을 느끼기도 하지만, 우리 세대는 데이터에 근거해 자연을 보기 일쑤다. 기온은 얼마인지, 미세먼지는 어느 수준인지… 그러나 데이터는 자연의 언어가 아니기에 자연은 생명력 잃는다. 데이터로 자연의 아픔을 온전히 알기는 어렵다.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건 감정이기 때문에, 감수성의 필터 없이는 지구의 위기를 개인의 위기로 이어지게 만들기 어렵다. 우리가 처한 가장 심각한 위기가 바로 이것이다. 지구가 아픈 만큼 말들도 병들었다. 삶과 죽음이 갈마드는 자연의 언어는 사라지고 개발의 언어, 비자연적 언어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비자연적 언어란, 삶 또는 죽음, 둘 중 하나만 있게 하는 언어다.

 

벳시 숄은 ‘바다가 깨진 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소용돌이 모양 내부를 들어낸 앵무조개, 민무늬 백합의 자줏빛 파편들, 소금물에 절은 유리…  그렇지만 깨진 관계, 죽음, 슬픔, 불편 등에 대해 말하기를 꺼리는 우리의 언어는 자연의 언어와 달리 너무나 빈약해 안타깝다는 얘기를 나누었다. 띠우샘 역시 슬프고 우울한 모습은 애써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며 일상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끝없이 타자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은 늘 혼자다”라는 진은영의 시 구절을 떠올리셨다 한다. 

 

에머슨은 '자연은 디서플린discipline'이라 했다.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앨리슨 호손 데밍은 “제자들disciples에게 주는 가르침”으로 풀었다. 우리의 감각은 데이터와 의혹으로 너무나 많이 손상되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생성의 에너지가 나무들을 타고 흐르듯 우리에게도 흐르며 이런 것들은 하나의 경이로서 대대로 전해질 것이라 한다. 삶의 순환을 이해하려 하고, 서로가 연결되어 변화하는 자연에 기대어 살아간다는 것을 알면 알수록 좀더 구체적으로 다가올까? 자연의 언어. 이번 시즌동안 이것을 우리의 언어로 번역하는 일이 조금이라도 가닿기를 바란다.

 

다음엔 <적을수록 풍요롭다>를 세번에 걸쳐 읽습니다. 이번주는  1,2장을 읽고 옵니다. 발제는 자누리샘 입니다.  

댓글 5
  • 2023-03-08 19:24

    브리슬콘소나무가 저렇게 생겄군요.
    영적인 느낌이 드네요.
    차원이 다른 시간을 사는 나무!
    하루살이의 시간도 다른 차원이라는 말도 기억에 남네요.

    저는 이번 책 좋았어요.
    (전 오히려 <향모를 땋으며>가 감흥이 없었어요^^;;;; )
    이번 책은 짧은데, 머릿속에 이미지가 그려졌어요. 집 밖을 나가면 펼쳐지는 야생! 부러웠어요.

    • 2023-03-09 21:30

      영적인 느낌 동감
      마치 구도자의 자세같은 그런 느낌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듯한

      브리콘솔 나무 이파리들이 15년을 산다는 사실이 아직도 놀라워요
      다른 시간을 산다고밖에 다르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요

  • 2023-03-08 23:05

    뭔가 자연에 대해 솔직하게 말한다는 느낌이 드는 책이었어요
    우리는 주로 책으로 배워서인지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라 자연에 솔직할 수 없다고 느끼나봐요.
    도시에서 자연의 언어를 배우기, 이게 생각보다 어렵네요...

  • 2023-03-10 10:48

    전 소로 글 쓸 때 애머슨을 읽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란 뭘까?....늘 어렵습니다. ㅎㅎ

    국어,산수,사회,자연 할 때 자연?
    노자가 말하는 도즉자연?
    장자에 나오는 天(자연)과 人(인위)의 구별에서의 천? (요즘 장자 강의하는데, 계속 '자연'이 뭐지? 라는 생각을 해요)
    해러웨이는 자연과 문화를 나눌 수 없다고 하면서 늘 '자연문화'하고 말하잖아요?

    <철학의 자연>도 그래서 읽어보고 싶었는데 너무 바빠서... 아직 읽지 못했다는.

    며칠 전엔 이런 생각도 했어요.
    내년엔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그리스 자연철학, 동양의 주역과 노장에서 시작해서 19세기 '자연' 개념의 발명과 나아가 최근의 신유물론까지 아우르는 커리를 짜서 공부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
    혹시 관심있는 분?

  • 2023-03-11 19:58

    결국 ‘자연의 언어’를 우리가 기호화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미나에서 읽는 책들은 알기 쉽게 쓰여있는데
    돌아서 생각하면 실제 삶에서 그 실재를 담을 길이 막막..
    하다보면.. 뭔가 잡히려나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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