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숲]4번째 시간_<슬픈 열대> 3부 후기

르꾸
2024-04-11 20:38
89

막차 탄 후기입니다.

네번째 시간에는 《슬픈 열대》 3부와 4부에 대해 얘길 나눴고 시종일관 말이 끊이지 않았던지라

후기 작성의 효율성을 위해 낮달님과 콤비플레이에 의기투합해

전 3부에 대한 논의를 중심으로 후기를 작성했습니다.

 

3부 <신세계>에서 레비스트로스는 긴 여행 끝에 브라질에 첫 발을 들여놓는 과정으로 글을 시작한다.

그는 적도 부근을 지나며 과거 선조들의 식민지배의 여정을 성찰한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자신이 살던 서구의 ‘과거’로 위치지우며

원주민을 이성적 존재를 가진 동일한 인간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이를 레비스트로스는 유럽인의 ‘도덕적 혼란’과 관찰 능력이 부족한 ‘지적 결함’으로 제시한다.

레비스트로스는 이 책 곳곳에서

근대 서구 항해자/정복자들이 저지른 물질적·지적 ‘만행’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리우데자네이루를 거닐며 이 도시를 창설한 빌게뇽의 얘기를 들려주며

그 옛날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수천키로의 대서양을 건너온 한 프랑스인의 오만과 독재와 기이한 정신세계가

어떻게 파국을 맞았는지를 흥미롭게 제시한다.

한편 그는 자신이 열대지방에 있다는 것을 열대식물이 아니라

건축이나 생활방식을 통해 더 실감하게 되는데,

고도가 높은 곳에 사는 사람일수록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는 건축은

공간의 계급화 뿐 아니라 열대가 이국적이라기보다는 시간상 후퇴한 공간임을 각인시킨다.

레비스트로스트 3부에서 시종일관 신세계의 지리적·기후적 특성이

이들의 삶의 방식, 생활태도 등을 어떻게 조건짓고 있는가를 열심히 들려주고 있는데,

이는 구성원들의 행위의 토대로서 작동하는

구조로서의 지리적 환경을 얘기하고 싶어하는건가?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는 유럽의 도시들과 다르게 이곳의 도시들이 ‘새로움’은 부각되지 못하고

황폐의 속도만 빨라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지도 제작이 어려울 정도의 무분별한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상파울루의 즉흥성을 파리만국박람회에 비유한다.

그런데 이처럼 ‘도떼기시장’같은 상파울루의 대학에서

그와 동료들이 브라질의 청년들과 맺은 양가적인 관계 역시 흥미롭다.

학생들은 서구에서 날아온 이들 선생에게서 선진 지식을 전수받고자 하지만

이들을 브라질 민족주의의 걸림돌이 되는 코스코폴리탄 혹은 지배계급의 대변인으로 위치 지우며 거부한다.

선생의 입장에서 보면 다소 억울하고 괘씸할 수 있지만

브라질 학생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한테 필요한 지식은 받아들이되

자신의 정체성에 걸림돌이 되는 사상은 걸러겠다는 생존의 표명으로도 읽힌다.

제국의 지식이 자신을 가두지 않도록, 혹은 제국의 지식을 전수받다 자신도 제국의 시선을 가지게 될까

경계하는(우리의 식민지 경험은 이에 대해 TMI지 않은가?!^^) 그런 ‘결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이런 단상을 세미나 시간에 나누고 싶었지만 워낙에 많은 얘기들이 오고가 패쑤~

 

레비스트로스는 원주민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방하기 전 준비단계로

자신이 첫발을 디딘 리우데자네이루의 해안선을 따라 포르투칼 식민 제국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제국의 탐식이 금, 설탕, 커피로 변화함에 따라 이곳의 도시도 함께 변화했음을 제시하면서

제국의 흔적이 옅어지며 자연재생이 일어나고 있는 지금의 자연을

‘야생 그대로의 자연’으로 착각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외견상으로 본래 자연의 모습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고 방치하는 일련의 무의식적 연쇄행동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에 대해 심문할 것을 요구한다.

문화의 이항대립적 항목으로서의 자연 역시 이미 문화였던 것이다.

갑자기 심오한 철학적 사유를 내 보이는 레비 아저씨ㅋㅋㅋ

 

몇번의 세미나를 통해 레비스트로스의 글쓰기 스탈이 조금씩 세미나 구성원들에게도 ‘간파’되기 시작한 듯하다^^

그는 매우 치밀하고 꼼꼼하게 때론 지루하고 의아하게 어떤 장면을 길게 묘사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수사에 휘둘리다 보면 길을 잃기도 한다.

‘어, 이 얘기 왜 하는거지? 그래서 말하고 싶은 바가 뭐지??’ 하다가도,

중간중간 자신만의 관점, 철학적 사유를 훅 드러내기도 한다.

구체적 사실, 사건, 자연적 풍경을 관찰, 경험하면서

그는 구조주의자이자 인류학자이자 근대 서구의 시선에 비판적인 성찰자로서

자신을 조금씩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 원주민과 백인이 서로를 인식하는 방식이 달랐음에 주목한 것이었는데

세미나 시간에도 인상적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유럽인들은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해 원주민을 동물로 얘기한 반면

원주민들은 자연과학에 의지해 유럽인들이 신이 아닐거라고 의심하는 것으로 만족했다는 분석은

레비스트로스에게서 새로운 인류학의 시작과 분기를 보여주는 징후적 장면으로 읽힌다.

우리가 지금 왜 1950년대의 레비스트로스를 이렇게 꾸역꾸역 읽어 내고 있는가?

그건 아마 그에게서 이미 인류학의 또다른 가능성이 숨어있기 때문이고

우린 그것을 어떻게든 포착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댓글 5
  • 2024-04-11 23:24

    르꾸 x 낮달 꼴라보 후기
    이토록 성실하고 지적이고 유쾌한 후기라뇨~~
    그리고 금-설탕-커피에 이르는 식민자본은
    내 일상 그 자체잖아요.
    막상 읽을때는 지나쳐버렸는데,
    추출과 착취와 공모자로써 부끄럽습니다.

  • 2024-04-11 23:33

    함께 하지 못했지만
    지난 세미나의 분위기가 풍성히 느껴지네요.

    전 레비스트로스와 친해지기에는
    아직 너무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급한(?) 제 성격 탓일 수도.ㅋㅋ

    르꾸님 표현처럼 '꾸역 꾸역'
    현재론 이게 나의 최선. ㅍㅎㅎㅎ

  • 2024-04-18 02:07

    르꾸쌤의 핵심 요약 발제~ 짱이였어요^^

    배타고 가면서 묘사한 장면 지루해서 후루룩 대충 넘어갔다가, 셈나시간에 다시 읽고 완전히 반대로 읽었음을 깨달았던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후기에 다시 써주셨네요~ 감사!
    "‘야생 그대로의 자연’으로 착각하지 말 것을 경고한다.
    외견상으로 본래 자연의 모습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인간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개발하고 방치하는 일련의 무의식적 연쇄행동의 결과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에 대해 심문할 것을 요구한다."

  • 2024-04-22 21:28

    인류학의 또다른 가능성이 숨어있기 때문이고... 우린 그것을 어떻게든 포착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라고 하신 말씀..
    네 저는 그렇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어떤 공식을 찾아다니는데.. 그게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조금 들어요.

    • 2024-04-23 09:20

      낮달쌤이 찾아다니시는 '공식'이 무엇일까 궁금하네요. 다음 시간에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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