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로스의 숲]네 번째 메모와 발제

2024-04-04 11:02
109

내일은

3부. 신세계 / 4부. 대지와 인간

이야기로 이어지네요.

발제와 메모를 여기에 올려주세요. 

이번 일주일이 왠일로 길게 느껴지는 건

우리 세미나 친구들을 빨리 보고싶어서겠죠? 

우헤헤~~

댓글 10
  • 2024-04-04 15:31

    3부 신세계와 4부 대지와 인간은 그가 브라질과 인도 남아시아쪽을 여행하며 본 여러 장면들에 대한 일지들이다. 읽으면서 계속 ‘왜 이걸 쓴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 과학 전통에 대한 그리움과 후배들에 대한 안타까움?(234) 원주민들의 부락과 오늘날의 도시를 비교하며 공간에 대한 고민들(248) 오늘날 미신에서 보이는 광기(266), 서구문화가 확산되면서 희생당하는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안타까움(283)을 거쳐서 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뭘 알고 싶은지.. 뭘 보았는지에 대한 나열이었던 걸까? 재밌게 읽긴 했는데... 그의 안목을 따라가기 힘들어서인건지 뭘 말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 ㅜ 그가 바라본 것들이 쌓여가는 과정으로 읽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 별표를 친 곳은 미신부분. “인간 경험의 진정한 조건”이란 무엇일까?

    그는 마지막에 카스트 제도에서 인간의 한계에 대해서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으로서 인지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인간은 또 상대방이 자기와 동등한 인간적 자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를 거부해가면서도, 또 그렇게 함으로써 서로 종속관계를 만들어가면서도 공존해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도의 대 실책이며 인간은 지리적, 사회적, 지적 공간 안에서 답답해졌을 때 인간이라는 종의 일부에게 인간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게 만들고 만다며 비판한다. 이것이 어쩌면 우리의 미래상일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장을 마친다.

  • 2024-04-04 22:35

    267) 도시는 자주 교향곡과 시에 비유되어왔으며 ᆢ 도시란 그 생물학적 역사를 도시의 경계 안에 가두고 있는 동물의 협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이 피조물의 입장에서 사고하고자 하는 모든 의도에 의해 도시는 빚어지고 있다. 도시는 그것의 유래와 형태에 의함과 동시에 생물학적 출산, 유기적 진화 및 미적 창조의 요소를 소유하게 된다. 도시는 자연의 대상인 동시에 문화적 주제이니 개인임과 동시에 단체, 체험된 것임과 동시에 꿈꾸어지는 것이며, 인간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다.
    282) 인도의 토지구획 방식은, 작은 단위로 무수히 분할돼 있고, 남긴 데 없이 구석구석이 경작돼 있는 이 토지를 보는 유럽인들은 먼저 친밀감부터 갖게 된다. 그러나 이 혼란스러운 색조며, 논과 밭의 끊임없이 새로이 그어지는 불규칙적인 윤곽선이며, 다시 고친 듯이 보이는 희미한 논두렁 등을 보면 틀림없이 유럽과 같은 융단 그림일 것이지만, 유럽 전원의 보다 명쾌한 형식이나 색조와 비교해본다면, 같은 융단을 이면에서 비추어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2024-04-04 22:41

    식민자들에게 원주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고 그들이 동물이나 악마의 후예들이 아닌 진짜 인간이라고 확실히 여겨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p195 "원주민들의 손자 대에 가서나 자립생활이 가능할지 몰라도, 현재의 원주민들은 악덕에 깊이 물들어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그 증거로 그들은 에스파냐 사람들을 회피하려고 하며, 보수없이 일하기를 거부하지만 때로는 그들 자신의 소유물들을 남에게 모두 주어버리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의 귀를 잘라버렸을 때도 그들은 그 친구들을 버리는 법이 없다." 그리고 식민자들은 "원주민들이 자유로운 동물로서 남아있기보다는 인간의 노예가 되는 편이 더 낫다"라고 한결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었다.
    -->자립생활의 불가능에 대한 증거로 들고 있는 이유들이 내겐 인간적인 면모로 느껴지는데, 식민자들에겐 다르게 해석되었다는 사실에 뜨악하다.
    p196 같은 시기에 이웃 섬에서는 원주민들이 수시로 백인들을 잡아들였고, 그 생포한 백인들을 물 속에 던져 죽인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죽은 시체가 부패하는지 않는지를 보기 위하여 익사체의 주위에 몇 주일씩이나 지키고 앉아 있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의 상이한 조사를 비교함으로써 두 가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즉 백인들은 사회과학에, 원주민들은 자연과학에 의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인들은 원주민들이 동물이기를 바랐지만,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신들은 아닐 거라고 의심하는 것으로 만족하였다. 양편이 모두 마찬가지로 무지하였으나, 그래도 원주민들 생각이 보다 인간적인 가치를 지녔다.
    -->원주민들의 시체 부패 실험의 기발함!

    • 2024-04-05 08:39

      이 구절, 매우 인상적이지요~ 브라질 인류학자 비베이루스 지 카스트루는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이 부분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어요.
      예전에 정리했던 부분 참고삼아 덧붙입니다.
      --
      레비-스트로스는 이 우화를 두 번 인용하는 데 두 번의 해석이 서로 다르다. 처음 인용(<인종과 역사>>,1952)했을 때 주목한 점은 두 인간 집단의 유사성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고유성을 설명하는 특성들(영혼, 신체)를 다른 종으로 확장하는 것에 “인색”하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또한 타자의 인간성을 손상시켜(타자는 영혼이 없을 것, 타자는 우리와 다를 것) 자신들의 인간성을 우위에 두고자 한다는 점에서 역설적으로 타자와 근본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인용(<슬픈 열대>>,1955)는 차이를 지적하면서 이전 논의를 보충한다. 타자의 인간성을 조사하는 데 있어서 유럽인들의 인류학이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했다면 원주민들은 자연과학을 보다 신뢰했다. 그 결과 유럽인들은 원주민을 동물로 선언한 반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을 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만족했다. 이에 대해 레비-스트로스는 무지에 있어서는 두 집단이 마찬가지였으나 원주민의 태도가 훨씬 인간으로써 마땅한 것이었다고 평한다. 요컨대 타자의 타자와 동일자의 타자가 정확히 동일하지는 않았음을 지적함으로써 첫 번째 논의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고 있다.
      저자는 비평형적인 두 번째 성찰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유럽인은 동물들도 신체를 가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원주민들이 신체를 가지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고 원주민들은 죽은 자나 동물들도 영혼을 가진다고 보기 때문에 백인들이 영혼을 가지는 것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반대로 각자의 자기종족 중심주의에 따라 타자의 신체에도 영혼이 살고 있는지 의심했으며 다른 영혼도 자신들과 유사한 신체를 갖출 수 있는 지 의심했다.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가설을 정립한다 : 신체와 영혼에 부여한 기호학적 기능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과 뒤바뀌어 있다. 그로부터 원주민의 존재론적 체제들은 서구의 그것과 갈라지게 된다.
      이로부터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카스트루는 원주민의 존재론, 즉 원주민의 철학을 배우는 것을 새로운 인류학의 목표라고 말했던 듯 합니다^^

  • 2024-04-04 23:23

    레비스트로스 특유의 필체, 비유적이면서 대조적이고, 대응적이면서 이분법적인? 표현들이 눈여겨 보여지는 것이었다. ㅎㅎ

    p264 첫번째 길들은 교통수단과 같은 방향으로, 두번째 길들은 그것을 차단하거나 가로지른다. (중략) 즉, 중심지나 변두리 간의 대립, 그리고 평행과 수직 간의 대립의 결합에 의해 네가 상이한 도시생활 양식이 결정되어지며, 이 요인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특혜를 주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실망을 주어가며 성공과 실패를 낳게 함으로써 미래의 주민들을 형성시키게 된다.

    p265 ...그들을 서쪽으로 몰고 가며, 동쪽 구역에게는 빈곤과 퇴폐를 강요하는 저 신비스러운 인자에게 내주어야만 한다. 그것은 아마도 태양이 움직이는 방향이 긍정적인 것이고, 그 반대 방향은 부정적인 것이라는, 즉 하나는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무질서라는 무의식적인 믿음을 지녔던 인간에게 태초부터 스며들었던 우주적 리듬의 단순한 표현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는 방향은 성취의 방향으로 느껴지며, 또 북반구의 온대지방 주민에게는 북쪽이라는 곳은 추위와 어둠의 본거지로, 남쪽은 더위와 햇빛의 고장으로 여겨진다.

    P266 음향과 향기가 색채를 지니며, 감정에는 무게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간은 그 고유의 가치를 소유하고 있다.
    이런 유의 대응관계를 추적해 보는 것은......
    만약에 물고기가 명암에 의해서 냄새를 미학적으로 구분하다면, 또 별들이 빛의 강도를 무게에 의해서 분류한다면-별들에게 어둠은 무거운 것, 밝음을 가벼운 것이므로..

    P267 사회학자는 전세계적이고 구체적인 인도주의를 공들여 만들어내는데 일익을 담당할 수 있다. 사회생활에서의 규모가 큰 시위 운동과 예술작품은 둘 다 무의식적인 삶의 수준에서 태어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경우는 집합적인 것이며, 후자는 개인적이라는....

    도시는 자주 교향곡과 시에 비유되어왔으며, 내게는 그러한 비교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느껴진다. (중략) 도시란 그 생물학적 역사를 도시의 경계 안에 가두고 있는 동물의 협회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피조물의 입장에서 사고하고자 하는 모든 의도에 의해 도시는 빚어지고 있다.

    p271 이렇게 우아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축 붐이 고이아스와는 반대였고, 어떤 역사도 시간의 흐름도 습관도 이 공허함을 채우지 못했고, 그 어색한 모습을 부드럽게 만들 수 없었다. 그곳은 마치 정거장이나 병원에서처럼 항상 스쳐 지나갈 곳, 영훤히 머무를 수 없는 곳으로 느껴졌다.

    p272 건물=시멘트 통 객실
    인간짐짝=순례자들
    다음 화물들=손님들(인간들)

    p278 그러나 나(레비스트로스)는 표면적인 대조나 외면상의 특이성을 경계한다.

    p279 동양=(도시계획상의 단위 구역의)경계선 내에 제대로 들어박히지 못하고 있는 촌락들은 집들과 길들의 복잡한 무질서를 보여줌, 아 동양이로구나.
    기하학적 도시계획을 편애하는 '에스파냐와 앵글로색슨의 신세계'와 정반대

    이렇게 문장들을 주고니, 받거니 하며 읽어 내려가니 점점 더 열대로 들어가는 길이 흥미로웠다(실은, 4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짐으로 해서, 읽기에 대한 스스로의 전환이 필요했다 ㅎㅎ).
    얼마나 슬픈 열대를 그려놓았기에 도시를 묘사하는 일에 이리도 공을 들이고, 뜸을 들이는 것일까?
    그가 살아 이 땅에 서 있다면, 시멘트 통 객실이 일자로 길게 쭉 뻗어있는 이 도시에서 공간이 가진 가치를 논할 수 있을까?
    순례자를 인간짐짝이라고 표현한 부분에서는 조소와 함께 그의 자신감? 자만심도 느껴진다.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4-04-05 03:02

    2장을 넘기지 않는 발제가 되고자ㅋ

  • 2024-04-05 08:26

    점점 늦어지네요...

    • 2024-04-05 09:10

      수정

  • 2024-04-05 09:03

    예속 상태의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독립’과는 전혀 다른 그 무엇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p294
    레비스트로스가 말하는 다른 그 무엇이 무엇일까?

    책을 꼼꼼히 읽지 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글속에서 맥락을 잡아내지 못하고, 내가 익숙한 질문속으로 쉽게 넘어가는 것도 예속상태의 습관인거 같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섬세하게 굴지 못하면
    금새 습관처럼 읽고 습관대로 말한다. 특히 요사이아이들에게도 습관처럼 말했다가 사과를 자주하게 된다. 새로운 앎이나 생각이 몸에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과 의지가 필요하다.

    때로는 내가 익숙한 마음의 고통 상태로 쉽게 돌아가려는 습속도 또하나의 예속이 된다. 관계에서도 마찬가지고. 오래 머물렀던 관계, 오래 지속되었던시간일수록 그 때 그 상황으로 당기는 힘이 너무 커서 행동은 패턴처럼 반복되기 쉽다. 바꾸고 싶다면 그 만큼 큰 의지가 필요하다.
    예속상태의 습관에서 벗어나려면
    신이 필요한걸까? 범죄를 저지르고 신앙속으로 빠져드는 사람들도 있긴 하다.

    -살아가는 데는 아주 조금만으로 충분하다. 약간의 공간과 음식과 오락과 기구와 연장. 이것은 '손수건 안의 인생' (좁은 공간에서의 최소 한의 삶이라는 뜻-옮긴이)이다. 하지만 영혼만은 부족함이 없다. 그 것은 부산한 거리에서도, 생생한 눈빛에서도, 토론의 격렬함에서도 느 낄 수 있다. 그것은 또 낯선 사람이 지나갈 때마다 하는 미소를 머금은 인사의 정중함에서도 엿볼수 있다. 이들이 우주 속에 자리잡을 때의 그 마음의 편함을 (이렇게 설명하지 않고) 달리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기도용 융단이 세계를 표상하는 문명이요. 땅바닥에 그어진 네모가 예배 장소를 설정하는 문명이다. 면도사, 대서인, 헤어 드레서, 장 인 등의 일을 하는 이들은 길 한가운데 버티고서 각자 자기 진열대 앞 에서, 파리와 통행인과 왁자지껄한 시끄러움 속에서 평온한 마음으로 자기 일을 열심히 한다. 이런 삶의 고달픔을 견뎌낼 수 있기 위해서는 초자연과의 매우 강인하고도 매우 개인적인 유대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의 이 지역의 이슬람교나 그 외 종교의 비밀의 하나도, 아마도 각자가 자기 신의 앞에 있다는 것을 항상 자각하고 있다는 사실속에 있을 것이다.-

    춤춰라,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일해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것처럼

  • 2024-04-06 22:25

    수정을 거쳐서~ 4부 요약, 올립니다.
    저는 4부 마지막 구절이 참 좋았어요.

    인디오의 아메리카 “인간이 자기 세계와 호흡을 같이하던 시대의 영상, 즉 자유의 행사와 자유의 표상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존재하던 시대의 영상을 몹시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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